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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오는 길은 우울했다. 마음이 무거웠다. 마치 나무늘보처럼 제사상에 놓을 음식을 느릿느릿 접시에 옮겨 담고 있는 동생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동생은 확실히 나무늘보 같았다. 아주 천천히 아주 힘겹게 음식을 접시에 옮겨 담고 있었다. 그런 그의 꾸부정한 어깨가 한없이 무거워 보였다.
아, 도대체 네 아픔은 무엇이냐, 왜 생긴 것이냐, 어떻게 해야 덜어낼 수 있느냐. 나는... 너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냐. 마음은 무겁고 슬프기만 하였다.
몇 년 전까지만 하여도, 나보다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줄만 알았던 동생이 갑자기 힘들어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렇게 자신만만하고 건강도 잘 챙기고 항상 밝던 내 동생이 이제는 갑자기 늙어버리고, 기운이 없어 보이고, 생기를 잃은 것처럼 축 늘어진 나무늘보 같이 된 것이 나는 너무 가슴 아프다.
그렇게 어머니와 아버지 제사를 한꺼번에 지내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형은 어머니 아버지 산소에 잔디씨를 뿌려야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내가 우리 3형제가 같이 가서 그 일을 하자고 하였다. 그래서 날짜를 5월 18일로 정하였다. 그날 내가 기차표를 미리 예매하겠다고 말하였다.
그래. 동생아,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어머니에게 가보자. 가서 어머니에게라도 한번 빌어보자. 제발 우리 막내를 보살펴주시라고 빌어보자. 그러면 어머니가 너를 건강하게 해주실 지도 모른다. 그래. 그렇게라도 한번 해보자. (2019. 4. 22.)
나의 인생
라일락꽃 그늘 아래서 하늘을 본다.
바람결에 반짝이며 흘러가는 강물을 본다.
한 줄기 바람조차 눈물겹다.
오, 이 메마른 얼굴에 닿는 부드러운 바람의 감촉은
얼마나 벅찬 환희인가,
경이로운 숨결인가.
살아있음에 바쳐지는 경건한 축복이여 무한의 감사여.
돌아보면 애달파라. 나의 인생이여,
나를 살게 한 것은 무엇이었던가.
오, 언제나 나를 전율케 하는 숭고한 내 어머니여,
그녀의 탯줄로 연결된 내 생명의 처절한 팔딱임이여.
거룩하여라. 내 생명의 원천이여.
(2022. 6.)
작년 4월 초순이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에 나가 하염없이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 중에서도 쇼팽의 녹턴 9번 1악장과 2악장,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23번 A장조(K488) 2악장,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 등을 듣고 있었다.
특히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23번 2악장 F#단조의 아다지오를 듣다보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나의 인생은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 것일까.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이 길의 끝은 어디인가. 무엇이 나를 살게 하였는가. 아, 지금 이 자리에 홀로 앉아 있는 나는 언제든 손을 흔들며 떠날 수 있는가.
그리하여 나는 2년 전에 써둔 시 「나의 인생」을 기초로 가곡 「인생」을 만들었다.
인생
어디로 흘러가는가 강물이여 강물이여
어디서 불어오는가 바람이여 바람이여
아픔 많은 세월 속에도 꽃은 피고 바람은 부네
외로워도 힘들어도 부둥켜안고 살아온 날들
돌아보면 애달파라 꿈결 같은 인생이여
(간주)
어디쯤 와 있는 걸까. 알 수 없네, 알 수 없네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돌아올 수 없는 이 길
사랑했다 고백하노라. 내 모든 것 다바쳤음을
행복했다 감사하노라. 아름다운 세상을 향해
바람이 부는 가을 언덕에 나 홀로 서 있네
낙엽이 지는 황혼 길에서 나 홀로 서 있네
결국 이 곡의 가사는 내 인생에 대한 돌아봄이고 평가였고 감상이었고 최종결론이었다. 내가 비록 가난 속에서 아무것도 없이 세상에 나와 허덕이며 살았지만 그래도 아내를 만나 사랑하였고 아이들을 낳았고 잘 길러냈다. 그리고 마침내 가난을 벗어나 우리는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부부는 어느덧 인생의 황혼 길에 들어서 있지만 우리들 인생을 돌아보면 그래도 아름다웠다고 생각한다. 그랬다. 나는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살았다. 내 모든 것을 다 바쳐 그녀를 사랑했고, 아이들을 사랑했고, 내 나라의 산과 들, 그리고 나를 살게 해준 이 땅의 모든 것들을 다 사랑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내 인생이 충분히 행복한 인생이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나는 드디어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부둥켜안다”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었다. 나는 이 표현을 언젠가 내 가곡에 꼭 써야겠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부둥켜안다”의 사전적 풀이는 단순하다. 그 뜻은 “두 팔로 꼭 끌어안다”라고 되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내가 힘들고 외롭고 지칠 때면 언제나 이 말이 떠올랐다. 부둥켜안는다는 것은 그냥 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누군가 몹시도 그리운 사람을 만났을 때, 반가운 사람을 만났을 때, 그를 내 품속으로 잡아 당겨 끌어안고 싶어진다. 그리고는 손으로 등을 두드리며 위로도 하고 반가워도 하는 것이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 나 스스로 이 세상에 나온 것도 아니다. 나를 낳아준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들이 있고, 나에게 다정하게 대해준 누나들, 친구들도 있고, 나를 사랑해준 아내와 내 딸들도 있다.
나는 지금도 내가 좋아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우선 끌어안고 싶어진다. 내 품으로 바짝 끌어 당겨 누군가를 안아보면 그의 숨결과 따뜻한 체온과 그가 가진 정(情)까지도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이다. 그럴 때 내 가슴에 가득 담긴 온정과 사랑을 담아 그에게 전달해 줄 수 있다면, 그래서 그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내게 다가와 나의 체온을 느끼며 끌어안아 준다면 그것이 서로 부둥켜안는 것이리라.
그리하여 이 가곡은 2024. 4. 8. 멜로디가 완성되었고, 2024. 4. 19. 구광일작곡가와 채보 후 편곡되었으며, 2025. 1. 7. 장충신세계레코딩스튜디오에서 바리톤 송기창의 가창으로 녹음되었다.
https://youtu.be/mi0h5zhIlqY?si=t_0eOkWoaDeaVsJ-
https://youtu.be/UMLkvULGdOk?si=p7TnxviXjjRRGXnc
첫댓글
그러시군요
가정사의 고뇌에서
그려내신 작품인 듯요
손기창 님의 목소리로 대작을 강추드립니다
양떼님,
찾아주셔서 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