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참된 기도인
마태복음 6:5-8
조병결(趙炳潔)
4월 15일 (주일저녁)
祈禱不可外飾, 世多外飾, 至外飾祈禱, 甚愚者也. 欲耀人而祈禱, 欲使良心向主是祈禱, 主亦愛幼兒外也. 兒口祈禱必良心, 故主愛之. 主果責바리새敎人也. 爾心如在蓋, 蓋雖美矣. 其內有骨, 祈禱必自服, 祈禱可也. 主亦曰敦禮神時, 必與人和睦. 主賜我信後 , 可祈禱也. 無信之祈禱, 心內有疑, 或有苦故, 或者落心, 願祈禱而不成, 果何故也? 必反省可也. 勿以所欲而祈禱可也. 主曰先求義國, 此言言于祈禱者, 我祈時, 必離感情. 키블幼時祈禱曰 主乎! 賜我百萬円而不成, 反省曰此戒物欲, 我有情欲時, 主離我靡入焉. 或者祈而不得, 主臨海祈曰 使我渡. 主曰救得可也. 其次隱密中祈禱, 隱密中多恩, 主曰閉門喜何也? 此門卽世之欲也. 如世之情, 閉吾心則祈不成也. 故觀天祈禱最必要也. 余在阿峴入山祈禱時. 有哭聲, 此何故, 往聞之則乃女子之祈禱聲也. 其次入主之內祈禱可也. 吾與主爲一後可祈, 有一女祈時, 摩主之衣末, 而祈後終也. 有一兒數月前出遊落崖, 故生命危篤呼母, 人搬之入其室, 又呼母而沒. 牧者牧羊多苦楚, 獅虎怒吼捐身.
5절에 ‘기도는 겉치레인 외식으로 하면 안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는 외식을 하는 사람이 많아, 외식하며 기도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어리석은 자입니다. 남을 빛내 주기 위하여 기도하고 양심을 가지고 주님을 향하려고 하면 이는 올바른 기도입니다.
주님은 어린이를 사랑하셨습니다. 유아의 기도는 양심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이 사랑하셨습니다. 주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기를, ‘너희 마음은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겉모양은 아름다워 보이나 그 안에는 뼈들이 있습니다. 기도할 때 반드시 자복하는 기도를 하는 것이 옳습니다.
또 주께서 ‘하나님께 돈독히 예배를 드릴 때에는 먼저 이웃과 화목하라’고 하셨습니다. 주께서 믿음을 주신 뒤에 기도하는 것이 옳습니다. 믿음이 없는 기도는 마음속에 의심이 생기고, 또 고통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혹은 낙심하기도 하고, 기도를 하려 하나 이룰 수 없습니다. 이는 과연 무엇 때문입니까? 반드시 반성하는 것이 옳습니다.
비루한 욕심으로 기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기도하는 자에게 한 말입니다. 내가 기도할 때 반드시 감정을 떠나야 합니다. 케이블 목사가 어릴 때 기도하기를 ‘주여! 나에게 백만 엔을 주십시오.’하였으나 이루어지지 않자, 반성하기를 ‘이는 물질의 욕망을 경계하는 것이며, 내가 감정의 욕망을 가질 때 주님은 나에게 떠나시어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였답니다. 어떤 이가 ‘기도하여도 이룰 수 없다’고 하니, 주께서 바닷가에서 ‘나로 건너게 하라’ 하셨고, 또 이르시기를 ‘구하라, 그러면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은 은밀한 가운데서 기도하는 것이니 은밀한 가운데 은혜가 많습니다. 주님이 이르기를 ‘문을 닫았으나 기쁘다’라고 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이 문은 세상의 욕망으로 나가는 곳입니다. 만일 세상의 정에서 나의 마음을 닫아버리면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것이 가장 필요합니다.
내가 아현동에 있으며 입산기도를 할 때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싶어서 소리 나는 곳을 찾아가 들으니 바로 여자가 기도하는 소리였습니다.
그 다음은 주님의 안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하나가 되어야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여자는 기도할 때 주님의 옷자락 끝을 만지며 기도하고서야 끝을 보았습니다. 어린 아이 하나는 두어 달 전에 놀러나갔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생명이 위독한 데서 ‘엄마!’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아이의 집으로 옮겨 갔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또 어머니를 부르며 죽었습니다.
목자는 양을 기를 때 그 고초를 몸소 겪으며, 사자나 호랑이의 울부짖음 속에서도 몸을 버리십니다.
마태복음 19:16-18, 로마서 12:1-2
최영택(崔榮澤)
4월 18일 (수요)
余是靑年也. 言于靑年也. 昔論山卽有一商人殖利, 一市日, 有人大醉至一嶺, 有盜命曰止, 市人等恐㤼, 各出錢, 一人藏錢袴衣, 盜索各人得錢, 而至藏錢者, 批之曰 汝藏錢乎? 汝是盜也. 盜呼曰盜. 今日之人標榜愛德, 而皆僞也. 有一靑年來問于主, 主曰 勿盜勿淫勿殺, 是皆今日之現狀也. 殺人云者, 卽奪人命者也. 人之憾情厚, 則是殺人之原也. 人有甚惡者, 則曰爾是殺漢云, 是實人之告白也. 過去大我爭人, 皆曰是爲正義, 及人類之平和云, 是實殺人者也. 口實雖是, 然其事則實非也. 露國之革命是也.
나는 청년으로서 청년에게 말합니다. 옛날 논산(論山)의 한 상인이 장사로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어느 장날 어떤 사람이 술에 잔뜩 취해 산 고개를 넘는데 도둑이 나타나서 그 자리에서 돈을 내어놓으라고 하였습니다. 장사꾼들이 놀라서 제각각 돈을 내어놓았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돈을 바지 속에 숨겼습니다. 도둑이 각 사람들을 수색하다가 감춘 돈을 찾아내고 나무라며 하는 말이 ‘야, 이 도둑놈아! 네가 돈을 숨겼어?’ 하였답니다. 도둑놈이 도둑놈에게 도로 도둑이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 날 사람들이 사랑과 덕[愛德]을 표방하는 것은 위선입니다. 한 청년이 주님에게 와서 물었을 때, 주께서 ‘도둑질 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살인하지 말라’라고 하셨는데, 이것들은 모두 오늘날 나타나고 있는 현상들입니다.
살인은 남의 목숨을 빼앗는 것입니다. 사람의 나쁜 감정이 두텁게 쌓이면 그것이 살인의 근원이 됩니다. 사람 중에 매우 악한 사람을 이르기를 ‘너, 죽일 놈이야’라고 합니다. 이것은 실제로 살인하고 싶은 자의 고백입니다. 지난 날 많은 사람들이 대아(大我)라는 명목으로 남과 다툴 때 모두가 말하기를 ‘이것이 정의이고 인류의 평화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도 살인하는 것입니다. 구실은 아무리 옳더라도 그가 한 일을 보면 사실 잘 못 되어 있습니다. 러시아 혁명이 바로 그것입니다.
욥기 3:17-18
함 부인(咸 夫人)
余洗濯于彰義門, 見百花心甚喜. 余曾無花無結實, 哀哉. 口發惡言結惡果何等悲哉. 吾信者何時發花結果也?
나는 창의문(彰義門)에서 세탁을 하는데 백화(百花)가 피어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매우 기뻤습니다. 나는 일찍이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열매도 맺지 못하여 슬펐습니다. 입으로는 악한 말만 하여 악한 결과를 가지게 되니 얼마나 슬픕니까? 우리 신자는 언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지요?
이수경 씨
看不愛兄弟, 不能聽兄弟, 故心甚苦痛, 而 使家夫甚苦, 心尤悲痛.
사랑하지 않는 형제를 보고, 형제의 말소리를 듣지 못하니 마음이 매우 고통스럽고 남편으로 하여금 매우 고통스럽게 하니 마음이 더욱 비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