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을 살게 하려 함이라(고전 15:22).
지금은 "그리스도 안"이라는 말을 그리스도인에게만 한정해서, 또 그리스도인 안의 거듭난 속사람에게만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다. 그들은 "성난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 안으로 떨어지는 것은 두려운 일이라(히브리서 10:31).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는 말이 무엇인가? 영적으로 죽은 것을 말하는데 육체적인 죽음은 영적인 죽음에 부가되어 따라오는 결과물일 뿐이다. 육체적 죽음은 영적인 죽음보다 900년 이상(홍수 이전) 뒤쳐질 수 있다.
영적인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하나님의 나라에 속하다)은 둘째 사망으로부터 면제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육체적인 죽음을 대부분 맛본 후에 하늘로 가게 되며 2천년의 역사 가운데 소수의 크리스찬들만이 이 시대 끝에 주님을 살아서 만나 휴거될 것이다. 육체적인 죽음은 맛볼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은 큰 일로 취급되지 않는다.
내가 내 친구들인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난 후 더 이상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눅 12:4).
다시 설명하자면 고전 15:22에서 "모든 사람"은 아담 안에서 영적으로 죽은 채 태어나서 육체적인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죽은 것같이"는 영적인 죽음을 말하는데 육체적인 죽음은 결과로 따라올 뿐이라고 이미 설명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두 가지, 영적인 사망과 육적인 사망을 제거하기 위해 오셨다. 하나님의 행하심의 원리와 법칙은 항상 "영적인 것 우선", "육적인 것 나중"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먼저이고 그 다음에 천국이다. 의가 먼저이고 그 다음이 화평이다(멜키세덱). "영적인 것"이 올바로 정립되면 육적인 것은 시차를 두고 차츰 회복되게 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되겠으나 그것은 영원시대에 가서의 일이고 그 전까지는 "영적인 중생"이 우선시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 중생"하여 이생에서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육적 사망까지) 셋째 하늘로 간다.
다른 시대에 구원받은 사람들은 영적인 문제는 정리되었으나 육적인 것은 백보좌 심판 때까지 보류하고 기다려야 한다. 때문에 진정한 영생을 맛보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로서 그들은 최소 1천년 앞서 모든 사람들보다 앞서 육적 영적 영생을 다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고전 15:22의 취지에서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결국 모든 사람이 다 영생을 얻도록 하시고자 하는 목적을 갖고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그러나 각자 자기의 서열대로 되리니 그리스도가 첫열매들이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분께 속한 사람들이라(고전 15:23).
23절에서부터 "서열"(order)이 나오는데 이것은 "순서"에 따라 계급이 매겨진다는 뜻의 서열은 아니다. 사실 "첫열매들"에 속한 그 구약 성도들보다 둘째인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분께 속한 사람들"인 그리스도인들이 더 서열이 높다. 때문에 고전 15:23은 언급된 순차별의 서열이 아니다. 순서와 서열은 차이가 난다.
첫열매들에 대해서는 앞서 설명했듯이 그리스도의 부활 때 함께 부활한 일부 구약 성도들이다.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부활할 사람들인데 이전에 필자가 이 주제를 놓고 몇 번 다루었으나 정곡을 그다지 찌르지 못했었기에 다시 말하겠다.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것"은 세 단계로 되어 있으며 공중 재림(교회의 휴거)과 환란끝 추수(환란후 휴거)와 지상 재림이다. 지상 재림 때는 휴거가 없지만 공중에 두 번 오실 때는 세 부류가 휴거된다(교회, 구약성도, 환란성도). 휴거가 있고 없고의 유무로 구별하자면 재림은 두 단계로 되어 있다고 정의내릴 수 있겠다.
고전 15:23에서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라고 언급된 것은 명백히 두 휴거를 모두 가리키는 것이다. 럭크만 박사도 마찬가지로 보고 있다. 대환란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은 아니지만 그분께 속한 가족들이고 구약 성도들도 그분의 친구와 가족들이다. 그분께 "속한 것"은 꼭 교회처럼 그분의 몸이라는 것뿐만이 아니라 친구나 가족도 포함되는 것이다.
주께서 모든 원수를 자기 발 아래 두실 때까지 통치하셔야 하리니(고전 15:25).
25절에서는 환란 끝 휴거를 언급하지 않고 곧바로 통치로 넘어갔다. 24절이 두 휴거를 아울러 언급했음이 명백해지는 셈이다. 천년왕국 때 주의 원수들은 주의 발 아래 있을 것이다. 그들 중 이미 불못에 들어간 자들도 있고(적그리스도, 거짓 선지자, 짐승의 표를 받은 인간들) 천년왕국 끝까지 주께서 참아주시는 자들도 있다.
"자기 발 아래 두실 때까지"는 점진적으로 통치가 확대된다는 뜻처럼 보인다. 물론 후천년주의자들의 생각처럼 "지금" 영적으로 천년왕국이 확장되어 간다는 뜻은 아니다. 정확한 의미는 천년왕국 기간 동안에 "한 원수"(사망)를 제외하고 나머지 원수들(인간들과 피조세계 전체)은 모두 주의 발밑에 있다는 것이다.
멸망받게 될 마지막 원수는 사망이라(고전 15:26).
천년왕국이 끝나면 마지막 한 원수가 주께 굴복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사망"이다. 둘째 사망이라고 따로 정의하지 않았으므로 모든 것을 포괄한 표현이며 육체적 죽음과 영적 죽음 모두를 멸하신다는 뜻이다. 천년왕국 때는 아직 그 두가지가 살아 역사하고 있기에 성도가 육체적으로 죽을 수도 있고(영적으로는 안 죽지만), 악인이 육체적으로 죽을 뿐 아니라 영적으로 지옥에도 갈 수 있다. 그러나 영원 시대가 되면 두 가지 다 사라진다. 육체적 죽음에 대해서는 생명나무라는 확실한 대책이 생겨서 육체적 사망의 가능성도 원천 봉쇄된다.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복종시켰다고 하셨으니 만물이 그의 아래 복종하였다고 말씀하실 때 만물을 그의 아래 복종시켰던 그분은 제외된 것이 분명하도다. 만물이 그분께 복종할 때에 그때 아들 자신도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그분께 복종하시리니 이는 하나님께서 만물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시려 하심이라(고전 15:27-28).
여기서 "만물"은 육적인 것, 영적인 것을 모두 포함한다. "발 아래"는 위치적으로도 그렇고 영적으로도 그렇다는 뜻이다. "확장된" 영원시대의 불못은 주의 발 아래 있게 될 것인데 즉 우주의 피라미드 구조 밑바닥에 있을 것이다.
여기서 "복종"이란 계통, 위계질서상으로 상명하복의 의미에서 복종을 의미하는데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복종"하신다는 뜻이 무엇인가?
그가 아들이면서도 고난받은 일들로 순종을 배워서(히 5:8).
삼위일체에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니지만 (순종이나 복종은 구별된 객체들 간에 가능하다) 관계성에 있어 변화가 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있는 한 이름을 그에게 주사(빌 2:9).
하나님께서 세상 운영에 적용하시는 두 번째 영적인 원리는 "높아지고자 하면 먼저 낮아지라(겸손하라)"는 원칙이다. 피조물들은 누구나 이 원칙에 순응해야 높아질 수 있지 결코 스스로 높아져서는 안 되고 그것은 사탄의 교만처럼 저주가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벌레처럼 낮아지시는 시범을 보여주셨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온 피조물 위에 높이셨다. 그 다음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스스로 겸손하게 행하신다.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들이, 말하자면 인간들이 하나님의 "겸손의 원리와 미덕"을 배워서 그렇게 행하라는 대원칙을 제시하시는 것이다. 천년왕국은 그것을 테스트하는 기간이고 영원시대에는 실제 그렇게 모든 사람이 사는 곳이다.
하나님께서 만물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시려 하심이라
그렇게 될 때에 만물은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고 배우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낮아지면 높아진다는 법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을 때에 이 원칙을 확실히 배우고 넘어간다. 지옥에 가야 할 벌레같은 죄인을 구원시켜 주셨다는 생각을 갖고 살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진 것이다. 왜냐하면 주께서는 지옥까지 갔다 오셨기에 "겸손"에 대해 하실 말씀이 많기 때문이다.
때문에, 휴거의 소망이란 우리 스스로 높아지고자 하는 교만의 표출이 아니다.
이는 네가 네 마음속에 말하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가서 내가 내 보좌를 하나님의 별들보다 높일 것이요, 내가 또한 북편에 있는 회중의 산 위에 앉으리라(사 14:13).
휴거는 자신을 지옥까지 낮춘 사람들, 즉 지옥에 가야 할 죄인임을 인정하고 값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들인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그 보답으로 하늘까지 "높이시는" 사건이다. 먼저 지옥까지 낮아지지 않은 사람들은 이 경험을 할 수 없다. 지옥까지, 반드시 지옥까지 낮아져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충 어느 정도 선까지 타협해서 "좀 나쁜 죄인"이라고 고백한 정도는 어림도 없다. "내가 지옥에 가야 할 죄인"임을 시인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