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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고쇼(京都御所)는 교토 부(京都府) 교토 시(京都市) 카미쿄우 구(上京区)에 있는 일본 왕실 주거지였으며, 14세기에서 1869년까지 명실공히 나이리(内裏), 킨리(禁裏)였습니다. 역대 일왕이 거주하며 의식을 거행하고, 정무를 보던 공간이고, 지금은 쿠나이쵸(宮内庁) 쿄토 사무소(京都事務所)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본래 다이리(内裏)라 함은, 오오우치라고 해서, 일왕이 머무는 거처를 말하고, 여러 곳 중에서도 헤이안쿄(平安京, 지금의 교토)에서는 다이다이리(大内裏) 중북부 및 약간 동쪽편의 동서 240미터, 남북 330미터의 장방형 구역을 회랑으로 둘러싼 영역을 특정합니다...
794년 현재의 교토, 헤이안(平安) 천도 당시에도 다이리(内裏) 위치는 현재 교토고쇼(京都御所)에서 1.7킬로미터 서쪽 센본도오리(千本通り) 근처였다고 하고, 현재의 교토고쇼(京都御所) 자리는, 원래 사토다이리(里内裏, 다이리, 内裏가 화재로 소실된 경우에 지어지는 임시 궁궐)의 하나였던 츠치미카도(土御門) 히가시노토우인도노(東洞院殿)가 있었다고 하네요.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인 14세기 후반부터 북조(北朝) 진영의 다이리(内裏)가 자리하여 1392년 남북조(南北朝)가 합쳐지면서, 이 곳이 정식 궁궐로 사용되어, 1869년 메이지 일왕(明治天皇, 1852-1912)이 도쿄(東京)로 궁을 옮길때까지 존속하였고, 이후 교토코우구우(京都皇宮)으로 불렸습니다.
즉슨, 1227년 이전까지는, 12개의 문이 회랑에 내어져 있었고, 안에는 전사(殿舎)가, 17전 5사(17殿5舎)가 좌우대칭으로 배치되었다고 하네요.. 남북축을 중심으로 겐라이몬(建礼門)-쇼우메이몬(承明門)-시신덴(紫宸殿)-지쥬우덴(仁寿殿)을 이 종형으로 배치되어 있고, 슌코우(春興), 기요우(宜陽), 료우키(綾綺), 운메이(温明), 안부쿠(安福), 교우쇼(校書), 세이료우(清涼), 고우료우(後涼), 후궁(後宮)으로 죠우쿄우(承香), 죠우레이(常寧), 죠우간(貞観), 레이케이(麗景), 센요우(宣耀), 고키(弘徽), 토우카(登花) 등의 17전(殿), 히교우(飛香), 교우카(凝華), 시호우(襲芳), 쇼우요우(昭陽), 시게이(淑景) 등의 5사(舎)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후 1331년, 고다이고 일왕(後醍醐天皇, 1288-1339)이 교토를 탈출하여, 카마쿠라 막부(鎌倉幕府)가 옹립한 고코곤 일왕(光厳天皇, 1313-1364)이 사토다이리(里内裏)로 삼은 이후, 메이지일왕(明治天皇)의 천도 전까지 약 550년에 걸쳐 계속 사용되어 왔던 다이리(内裏)인 셈입니다. 이를테면, 천년간의 교토 왕성의 절반이상을 이 곳에서 궁으로 삼았던 거네요...
마침 예약한 숙소도 위치가 교토고쇼(京都御所) 서쪽 횡단보도 바로 건너 딱이라, 우리 모두는 아침에 미리미리 행장을 꾸려 출발가능하도록 체크아웃을 하고는 다같이 횡단보도를 건너 교토고소 관람을 하러, 주차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버스는 나중에 고쇼 주차장에서 탑승하는 걸로^^;;
이전에는 참관을 위해서는, 특별관람과 예약을 통한 일반관람, 투 트랙으로 예약을 해야 했던 교토고쇼가 2016년 7월 이후로는 예약이 불필요한 일반관람으로 바뀌었고, 다들 이런 변화에 더욱 편해진 교토고쇼(京都御所) 관람을 노리고 온, 우리와 마찬가지로 무료에 일반 관람하러 온 꽤 많은 다국적 인파로 북적북적한 틈에 우리는 세이쇼몬(清所門)으로 들어가 오른쪽에서 시계 반대방향으로 궁정을 일순하는 동선을 시작합니다^^
사실 고쇼의 정남에 위치한 문은 켄레이몬(建礼門)으로, 정전인 시신덴의 입구인 쇼우메이몬과 한 축을 이루는 정문인 셈인데, 왕실 혹은 국빈 방문하는 외국 정상들의 통행에만 사용되고, 담장 서쪽으로 돌아보면, 가장 남쪽부터 기슈우몬(宜秋門)-세이쇼몬(清所門)-코우고우몬(皇后門)이 있습니다. 참고로, 북쪽에는 사쿠헤이몬(朔平門), 동쪽에는 겐슌몬(建春門)이 있습니다. 주로 칙사(勅使)의 공식 출입문이었다고 하고, 근대에 접어들어서는 마찬가지로 외국 정상들이 주로 사용했었다고 하네요... 동쪽의 춘, 서쪽의 추로 문호를 정하는 건 매일반인 듯하네요^^ 남쪽을 예로 정한 것도 그렇구요...
우리가 출입하게 되는 세이쇼몬(清所門)은 왕궁의 통상 출입구 뿐만 아니라, 참관시 정식 출입구 역할을 하고 있어, 교토부 경찰 뿐만 아니라, 왕궁결찰본부 소속 왕궁호위관도 경호를 맡고 있습니다...
이 곳 교토 정원이, 교토 시내의 다른 쟁쟁한 정원과 비교하여 탁월하게 아름다워서 꼭 여길 왔으면 했던 것이라기 보다는, 그래도 고대 일본 헤이안 궁정의 신덴즈쿠리 양식의 전통정원이 중세 이래 일본 정원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기에, 그 원류를 짐작해볼만한 가장 성대한 복원 사례로서, 현재진행형으로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는 왕실 정원을 둘러보는 게 꽤 의미있겠다 싶었네요...^^;;;
그렇다고, 교토고쇼의 전 구역을 다 둘러볼 수 있는 건 아니고, 대략 위의 지도와 같이, 시신덴 구역부터 시작하여, 고이케니와 앞으로 걸으면서 일순하여 다시 출발했던 세이쇼몬(清所門)으로 되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입니다...
원래 궁궐이 처음 조성되었 때의 넓이는 잇쵸우시호우(一町四方, 약 109미터 x 109미터) 정도에 불과했지만,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義満, 1358-1408)가 대지를 더 넓힌 이래, 그 후,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의해 계속 정비되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정착되었습니다. 다이리(内裏)는 에도시대(江戸時代)에만, 1613, 1642, 1655, 1662, 1675, 1709, 1790, 1855년등, 8번이나 재건되었고, 그 중 1613년, 1642년의 경우 건물을 새로 짓는 경우였지만, 다른 때에는 화재로 인해 소실되어 재건된 경우입니다.
당시 정권을 잡고 있었던 막부에서, 비록 허수아비 왕실이었음에도, 그렇게 꾸준하게 왕궁 유지 보수에 열심이었던 것은, 그래도 일본 국민의 신망이 두터웠던 왕실의 인기를 등에 업고, 그 뒤에서 안정적으로 국정을 장악하고자 했던 속셈이 있었지 않을까 싶네요^^;;
특히, 1790년도의 재건은, 우라마츠 미츠요(裏松光世, 1736-1804)에 의해 헤이안 다이리(平安内裏)를 고증하여 복고적인 양식을 반영하여 이뤄졌다고 하구요, 현재의 다이리(内裏)는 막말(幕末)이었던 1853년 화재로 소실된 후, 1855년에, 이전 양식을 답습하여 재건된 것으로, 안세이 다이리(安政内裏)라고도 불립니다.
한편, 니죠우(二条) 토미노코우지(富小路) 다이리(内裏)에 근거지를 두었던 다이카쿠지 토우(大覚寺統) 계열의 남조(南朝) 궁궐과 대비하여, 현재의 교토고쇼(京都御所)는 츠치미카도(土御門) 히가시노토우인(東洞院) 다이리(内裏) 터 그대로는 아니고, 근대 이전까지 그 기반으로 확충되어 지금의 대지가 확정된 것으로 보면 될 듯합니다... 남조는 백년도 안가 소멸했으므로...
대정봉환 이후, 1868년 일본 왕실은 도쿄(東京)로 천도하였고, 1877년 메이지 일왕(明治天皇)이 교토를 방문했을 때, 불과 10년도 안된 기간에 황폐해져 있는 모습을 보고 복원을 지시했다고 하구요, 1926년까지 일본 왕실의 세 가지 신기(神器)의 하나인 야타노카가미(八咫鏡)를 모셔놨던 카시코도코로(賢所), 궁녀들의 거처였던 타이노야(対屋) 등의 건물이 연이어 철거되었던 것이고, 1945년에는 공습 피해 등을 막기 위해 임시로 전체의 반 가까이 해체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1954년에는, 인근 화재가 옮겨 붙어 코고쇼(小御所)가 소실했고, 그 후 1970년대 전반에 소실되었던 코고쇼(小御所)나 전시에 해체되었던 건물 등 일부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사이, 왕실에서 민간에 불하되어 현재까지 보존되어온 건물이 꽤 많아서, 현재까지 남은 유적 만으로도 수백년간의 왕실 건물의 면모를 짐작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1613년에 이건되었던 건물들을 살펴보자면, 텐쇼우(天正) 연간(1573-1592)의 다이리(内裏) 세이료우덴(清涼殿)을 1611년 이건하여 지었다는 난젠지(南禅寺) 호우죠우(方丈, 국보), 1268년 겟카몬(月華門)을 이축했다고 전해지는 도우후쿠지(東福寺) 겟카몬(月下門, 중요문화재), 무로마치(室町) 시대 중기에 지어졌던 세이료우덴(清涼殿)을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이 옮겨 지은 온죠우지(園城寺) 쇼쿠도우(食堂, 중요문화재), 1611년 센뉴우지(泉涌寺)로 이축된 시신덴(紫宸殿) 건물은 1841년에 소실되었다고 하네요...
난젠지(南禅寺) 호우죠우(方丈)
도우후쿠지(東福寺) 겟카몬(月下門)
온죠우지(園城寺) 샷카도우(釈迦堂)
닌나지(仁和寺) 곤도(金堂)
1613년 이후 이건된 건물로는, 닌나지(仁和寺) 곤도(金堂, 국보)는 간에이(寛永) 연간(1624-1645)의 시신덴(紫宸殿)을 옮긴 것으로 현존하는 시신덴(紫宸殿)으로는 가장 오래된 건물이고, 닌나지(仁和寺) 미에이도(御影堂) 역시 세이료우덴(清涼殿, 중요문화재) 일부를 옮겨왔고, 츠네고덴(常御殿)도 닌나지(仁和寺) 신덴(宸殿)으로 이건되었었다는데, 근대에 접어들어 소실되었다고 하구요, 그 외에도 꽤 많은 건물들이 민간에 불하되었었습니다... 이 역시, 막부의 전횡이 있었을 법도 한데, 여튼 왕실의 위엄을 빌리고자 하는 사찰 및 신사와 영합한 조치이기도 했을 듯합니다...
위 사진들의 공통적으로 넓게 앞으로 나온 마루와 난간, 그 앞으로 마당으로 내려서는 계단 및 난간으 보면, 궁정 건물 양식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네요...
위 지도를 보면, 젤 아래 '서쪽' 표시 바로 왼쪽에 다이고덴이라고 저택이 표시되어 있는데, 바로 우리가 묵었던 헤이안호텔(御所西京都平安ホテル)입니다.^^ 근처에는 교토(京都) 오오미야고쇼(大宮御所), 센토우고쇼(仙洞御所)가 있는데, 교토(京都) 오오미야고쇼(大宮御所)는 고미즈노오 일왕(後水尾天皇, 1596-1680)의 중궁(中宮)이었던 토우후쿠몬인(東福門院, 1607-1678)을 위해 지은것이 시초이며, 현재의 건물은 1867년 에이쇼우코우타이고우(英照皇太后, 1835-1897)를 위해 지어졌던 건물입니다. 현재는 일왕, 왕후, 왕세자 및 왕세자비의 교토 방문시 거처나 국빈 숙소로 이용되고 있고, 센토우고쇼(仙洞御所)는 고미즈노오 일왕(後水尾天皇, 1596-1680) 즉위 후 거소로 지어졌지만, 현재는 정원과 다실(茶室)만 남아 있습니다. 곳곳에 민가와 저택들이 들어서 있는 모습으로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거의 대부분의 영역이 교토고엔(京都御苑)으로 조성되어 환경성(環境省)에서 관리하고 있고, 교토고쇼(京都御所), 오오미야고쇼(大宮御所), 센토우고쇼(仙洞御所)는 현재 왕실 전용으로 명문화된 국유재산으로, 쿠나이쵸(宮内庁)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동서 250미터, 남북 450미터 가량의 장방형 대지에, 크게 세 군데 영역으로 나뉘어, 남쪽으로는 다이리(内裏)의 정전(正殿)이었던 시신덴(紫宸殿), 일왕이 정무를 봤던 세이료우덴(清涼殿)을 비롯하여, 의식과 정무 용도의 건물들이 남아 있고, 그 북쪽, 대지의 한 중앙 영역에는, 일왕의 일상공간이나, 왕실 내부 행사, 접견 등에 이용되었던 건물들로, 코고쇼(小御所), 오가쿠몬쇼(御学問所), 오츠네고덴(御常御殿) 등이 모여 있고, 그 북쪽으로는, 본래 왕실 여인들의 숙소였던 코우큐우(後宮)이 있는데, 현재 많은 건물이 철거되었지만, 아직도 코우고우구우오츠네고덴(皇后宮御常御殿), 히교우샤(飛香舎) 등의 건물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현재, 시신덴(紫宸殿), 세이료우덴(清涼殿), 코고쇼(小御所), 오가쿠몬쇼(御学問所), 오츠네고덴(御常御殿), 코우슌(迎春), 오스즈미쇼(御涼所), 코우고우구우오츠네고덴(皇后宮御常御殿), 와카미야(若宮)・히메미야고덴(姫宮御殿), 히교우샤(飛香舎) 등이 남아 있습니다.
일본 전통 가옥 건축양식상 이렇게 궁정 건축부터 쇼인 건축까지 일별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잠깐 언급하자면, 시신덴(紫宸殿)과 세이료우덴(清涼殿)이 헤이안(平安) 시대의 주택 건축양식인 신덴즈쿠리(寝殿造)에 기반하고 있는 데 비해, 일상생활 공간인 코고쇼(小御所), 오가쿠몬쇼(御学問所), 오츠네고덴(御常御殿) 등은 쇼인즈쿠리(書院造)와 스키야즈쿠리(数寄屋造)의 요소가 강한 면이 있어 꽤 대조적입니다... 신덴즈쿠리(寝殿造) 양식이 가미되어 복원되었다고 하지만, 평면배치나 쇼우헤키가(障壁画), 의장 등에 부분적으로 반영된 반면, 그 외 외관, 입면, 세부 수법은 에도(江戸) 시대 당시의 기술이 반영되어 있다고 하네요...
동선상 우리는 세이료우덴(清涼殿) 서쪽, 쇼인즈쿠리(書院造) 건물을 먼저 만나게 되는데, 그 주된 방 이름을 따다 쇼다이부노마(諸大夫の間)라 불립니다. 내부에는 3개의 방으로 되어 있는데, 동서 방향으로, 쿠교우노마(公卿の間), 텐죠우비토노마(殿上人の間), 쇼다이부노마(諸大夫の間)라 명명되어 있습니다...
쿠교우노마(公卿の間)는 토라노마(虎の間)라고도 했는데, 최고위 관직 중 하나인 산기(参議) 이상 직급의 관리 및 가문이 이용했고, 텐죠우비토노마(殿上人の間)는 츠루노마(鶴の間)라고도 했는데, 다이묘쇼코우(大名諸侯), 교토 치안을 담당하는 쇼시다이(所司代), 명문가에서 주로 이용했습니다. 쇼다이부노마(諸大夫の間)는 사쿠라노마(桜の間)라고도 했는데, 그 이름 그대로 쇼다이부(諸大夫), 그 외의 낮은 직위나 계급의 관리 및 가문에서 이용했습니다. 이처럼 고쇼(御所) 내에서는 신분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방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습니다만, 돌아볼 당시에는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없어서, 기록으로 대신합니다^^;;;
각각은 방을 장식하고 있는 쇼헤키가(障壁画)의 주제에 따른 것으로, 모두 수묵담채이며, 토라즈(虎図)는 간타이(岸岱, 1782-1865), 츠루즈(鶴図)는 카노우 에이가쿠(狩野永岳, 1790-1867), 사쿠라즈(桜図)는 하라 자이쇼우(原在照,, 1813-1872)의 작품입니다.
천천히 시신덴 외곽 회랑을 따라 왼쪽으로 돌다보면, 그 남쪽에 쇼우메이몬(承明門), 동쪽에 닛카몬(日華門), 서쪽에 겟카몬(月華門)이 나타나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그 외에도, 따로 지붕을 얹지 않은 4 곳의 와키몬(掖門)이 있어서, 쇼우메이몬(承明門)의 좌우로 쵸우라쿠몬(長楽門), 에이안몬(永安門), 닛카몬(日華門) 남쪽, 겟카몬(月華門) 남쪽에 각각, 사에키몬(左掖門), 우에키몬(右掖門)이 있긴 합니다.
쇼우메이몬(承明門)으로 살짝 엿보는 시신덴(紫宸殿)의 지붕이 소박한 히와다부키(檜皮葺)인 데에 비해, 그 주위를 둘러싸는 회랑과 문은 보다 격식이 높은(??) 카와라부키(瓦葺)입니다... 바로 이 쇼우메이몬(承明門) 남쪽 방향으로 축 상에 고쇼(御所)의 정문(正門)에 해당하는 켄레이몬(建礼門)이 있습니다.
시신덴(紫宸殿), 세이료우덴(清涼殿) 복원을 총지휘했던 당시의 중신 마츠다이라 사다노부(松平定信, 1759-1829)는 처음에는 당시의 흉년에 재정난을 이유로 복고적으로 중건하는 데에 반대하다가, 이 두 건물에 한해 헤이안큐 양식의 복고풍으로 재건하기로 했고, 당시 귀족가문이면서 유우소쿠코지츠(有職故実) 가문 출신인 우라마츠 미츠요(裏松光世,1736-1804)의 의견을 구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평면구성 등, 일부 헤이안(平安) 시대 양식을 차용하고 있지만, 그 외 지붕 양식은 에도(江戸) 시대 당시의 양식을 이어받고 있고, 공포 양식을 보더라도, 사찰 건축 등에서 볼 수 있는 복잡한 구성이고, 주춧돌도 중세 이후의 선종양식에서 차용된 것입니다만, 그래도 근대건축사학이 미처 태동하지 않은 시기에, 문헌조사만으로 헤이안(平安) 시대 양식을 어느 정도 재현한 점이 높이 살만합니다...
우리가 먼저 만나게 되는 건물이 바로 시신덴, 교토고쇼의 정전입니다... 도보로 먼저 남문, 정문인 쇼우메이몬 너머로 우아한 기풍을 자랑하는 시신덴이 넘겨다 보입니다... 몇 번을 들러도 분위기는 꽤 독특하고 위엄이 있어보입니다...
고쇼(御所) 남쪽에 남면하여 세워진 다이리(内裏) 정전(正殿), 시신덴(紫宸殿)은, 일왕의 즉위(即位), 관례(元服), 세자책봉(立太子), 절기마다 베풀어졌던 연회(節会) 장소로, 왕실에서 가장 중요한 공적 의식이 행해지던 건물입니다. 히와다부키(檜皮葺き) 팔작지붕에, 정면 9칸, 측면 3칸 공간 바깥으로 사방으로 히사시(廂) 공간 바깥으로 스노코엔(簀子縁)이라 하여 마루를 덧붙였습니다. 마루를 제외하고, 정면 33미터, 측면 23미터에 달하는 규모인데, 특이하게도, 측면 세칸이 등간격이 아니고, 북쪽의 한 칸이 다소 좁은데, 주위의 마루 가에 난간을 둘렀고, 건물 정면에는 18단의 계단이 달려 있습니다. 모양을 보면, 앞서 시신덴을 이건한 것으로 알려진 닌나지 곤도와 조금 유사한 듯 다른 분위기가 비교됩니다... 아래의 도면을 보면, 추정 헤이안교 당시 시신덴 도면, 닌나지 곤도, 현재의 시신덴 도면이 참 일관되게 헤이안 궁정의 정전 양식이 유지되어 왔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듯^^;;
그 앞에는 모래를 깔아, 일본 특유의 상징이 충실히 반영된 마당을 가로질러 가던 다른 해의 동선과 달리, 그 앞만 살짝 맛보고 되돌아나와야 합니다@@아쉽지만, 여기서 단체사진을 한번 찍고 천천히 둘러보면서 되돌아 나옵니다...
들어가 볼 수는 없겠지만, 공부삼아 시신덴에 대해 조금 더 찾아봤더니, 건물 내부는 칸을 나누지 않고, 둥근 기둥에, 마루(床)는 다다미(畳) 없이 누구이타지키(拭板敷)에다가, 텐죠우이타(天井板)를 올리지 않은 케쇼우야네우라(化粧屋根裏) 양식입니다. 그리고 정면의 기둥 사이에는 시토미(蔀, 예전에는 시토우미, 御格子라고 불렸던)라 하여 덧문을 달았습니다.
신덴즈쿠리(寝殿造)는 일본에 전래된 건축양식을 원류로 하여, 담백한 건축미를 선호하는 일본 특유의 감성이 가미되어, 시신덴(紫宸殿), 세이료우덴(清涼殿)은 다이리(内裏)의 중심건물이면서 화려하거나, 위압적이지 않고, 기둥 등 부재도 소박하기 그지없어, 시토미(蔀)의 문살도 흑칠 마감입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부분 부분 주칠(朱漆) 마감을 하여 변화를 꾀하고 있기도 합니다...
모야(身舎)라 불리는 실내에는 중앙에 어좌, 향우(向右)에 왕후좌가 있는데, 1915년에 실제로 다이쇼 일왕(大正天皇,1879-1926)의 즉위대례(即位大礼)에 맞춰 만든 것이라고 하네요...
그 남쪽에 조성된 단테이(南庭) 안에는, 건물에서 볼 때 왼쪽에 벚꽃(桜), 오른쪽에 귤(橘)이 심어져 있습니다. 이를테면, 꽃나무와 과실수를 대표하여 한 그루씩 심어져 있는 셈이라네요...
헤이안 천도 당시에는 매화가 심어져 있었다고 하는데, 960년 나이리(内裏)가 소실되어, 965년에 재건될 때 매화 대신 벚나무가 심어졌다고 하네요.. '만요우슈우(万葉集)' 시절만해도 당시 일본에서 꽃나무의 대표는 매화였다고 하는데, 헤이안시대 무렵에는 벚나무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하네요... 현재의 귤은 1859년 심어졌고, 벚나무가 심어져지만, 현재의 나무는 1930년에 가츠라노미야테이(桂宮邸)로부터 옮겨 심은 산벚나무라고 합니다.
발길은 다시 시신덴 북쪽 좁은 모래 마당으로 들어갑니다...
시신덴(紫宸殿)의 북서쪽에 있는 세이료우덴(清涼殿)은, 남북방향으로 기다란 동향(東向)의 장방형 건물로, 헤이안(平安) 시대 다이리(内裏)에서는 일왕의 거주공간이었지만, 1573-1592년간에 일왕의 일상생활을 위한 오츠네고덴(御常御殿)이 지어지면서부터는, 집무 혹은 의식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었으며, 기본적으로는 시신덴(紫宸殿)와 같은 양식이지만, 본래 주거공간을 목적으로 하였던 터라, 건물 내부에 여러 개의 방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교토고쇼의 건물군 답사는 거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애써 동선 오른편의 정원을 나중에 리뷰하려고 하지만^^;;; 그 왼쪽에 일왕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는 영역이 펼쳐져 있습니다... 사실 좌우를 두리번거리면서 둘러보긴 했지만, 설명의 편의를 위해 나눠서 기록합니다...
코고쇼(小御所)는, 세이료우덴(清涼殿) 동쪽, 시신덴(紫宸殿)의 북동쪽에 있는 팔작지붕의 건물으로, 회의나 접견, 왕세자 관례 등의 의식에 사용되었다고 하구요. 1868년의 대정봉환의 역사적 무대이기도 했고, (小御所会議) 단지, 건물은 이후 소실되어, (폭격도 아니고, 불꽃놀이 중에 옮겨붙어 소실되었다는@@) 1958년에 복원된 것입니다. 외관은 신덴즈쿠리의 양식이지만, 내부는 쇼인즈쿠리의 양식이라네요...
반면, 나란히 세워져 다 같이 동쪽의 고이케니와를 감싸고 있는 고가쿠몬쇼(御学問所)는 코고쇼(小御所)의 북쪽에 있는 팔작지붕의 건물로, 코고쇼와 대조적으로 헤이안 시대 풍으로 복원하지 않고, 내부와 외관 모두 쇼인즈쿠리 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강학 뿐 아니라, 유흥의 장소로도 사용되었다고 하구요,
고이케니와를 감싸듯 고가쿠몬쇼 북동쪽에 지어진 오츠네고덴(御常御殿)은, 일왕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곳으로서, 고쇼 내에 가장 큰 건물 중 하나이며, 이를테면, 헤이안 시대에는 세이료우덴이 일왕의 거소 역할을 했다면, 근대에 접어들어서는 세이료우덴은 의식 장소로 사용되고, 일상생활을 위해 오츠네고덴을 쇼인즈쿠리 양식으로 새로 지었다고 합니다...
또한 왕실 건물군의 격에 걸맞게, 방마다 저마다의 격식과 용도에 맞춰 쇼우헤키가(障壁画)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카노우 파(狩野派), 토사 파(土佐派), 마루야마 시죠우 파(円山四条派) 등을 비롯하여, 에도(江戸) 시대 말기의 일본 화단의 주요 화가들이 망라되어 있습니다만, 일반 관람중에 건물 안을 들어가볼 수는 없어서, 아쉽게 자료로만 만족해봅니다... 이와 같이 교토고쇼(京都御所)는 건축, 정원, 쇼우헤키가(障壁画) 등이 일체가 되어 일본 전통 문화의 정수를 전하고 있다고 합니다만, 역시 자료로만 만족해봅니다^^;;;
<코고쇼(小御所) 쇼우헤키가(障壁画)>
<고가쿠몬쇼(御学問所) 쇼우헤키가(障壁画)>
<오미마(御三間) 쇼우헤키가(障壁画)>
<오츠네고덴(御常御殿) 쇼우헤키가(障壁画)>
고개를 돌아보면, 우리의 주 목표인 왕실 정원, 오이케니와(御池庭)가 이제 코 앞에 있습니다^^
앞서 지나온, 시신덴(紫宸殿) 단테이(南庭)와 세이료우덴(清涼殿)의 토우테이(東庭)는, 정원이 조성되었던 에도(江戸) 시대의 유행에 따라, 흰 모래를 깔아 조성하여 의식을 치르는 데 활용했던 데에 반해, 코고쇼(小御所), 오가쿠몬쇼(御学問所), 오츠네고덴(御常御殿)의 동쪽 일대에 남북으로 길게 조성된 이 정원은, 상대적으로 왕족의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건물 인근에 조성되어, 연못과 계류를 중심으로 한 전형적인 일본 전통 정원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오이케니와(御池庭)가 연못 중심으로 조성된 것은, 코보리엔슈(小堀遠州)가 조경에 참여한 이후라고 하지만, 현재와 같은 형태가 된 것은 엔보우(延宝, 1673-1681) 연간이었다고 추정되긴 합니다. 오이케니와(御池庭)라고도 불릴만큼, 정원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연못은, 코고쇼 쪽 가장자리에 스하마를 조성하고, 중앙부에는 세 개의 나카지마(中島)가 있고, 5개의 다리가 놓여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