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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dragonboy
[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개천절과 단군릉 그리고 ‘평양의 단군 할아버지’
내일이 국경일 ‘개천절’이다. 개천절은 '하늘이 열린 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개천이란 본디 환웅이 처음으로 하늘을 열고 백두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홍익인간·이화세계의 뜻을 펼치기 시작한 사건을 가리킨다. 보통 개천은 BC 2333년 10월 3일에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 날은 실제로는 단군이 나라를 세운 날이었다. 개천 및 개국의 연대를 역사적 사실로 믿는 이들은 실제 개천은 단군의 개국보다 124년 앞선 상원갑자년(上元甲子年) 10월 3일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하지만, 신화적 연대에 불과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지금의 개천절은 양력 10월 3일로 되어 있으나, 여러 단군숭봉단체는 전통에 따라 음력 10월 3일에 제천의식을 행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개천절을 공휴일로 지정하지는 않았지만, 90년대 중반 이후 단군릉이 개관하면서, 매년 개천절이 되면 단군릉에서 ‘단군제’라는 제사를 지내고 기념행사를 진행한다. 북한이 자랑하는 <조선대백과사전(4)>(1996년 발행)에는 ‘개천절’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개천절’과 관련있는 ‘단군’ 자료들을 보기로 한다.
<평양방송>은 "우리 민족은 단군의 핏줄을 이은 하나의 민족으로서 땅도 하나, 언어도 하나, 문화도 하나, 풍습도 하나인 단일민족"이라며 "우리 민족이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통해 공고화되고 체질화된 민족의 공통점을 기초로 한다면 얼마든지 쉽게 화해하고 단합하여 조국통일 위업을 실현할 수 있다"고 했다.
또 <평양방송>은 "오랜 세월 한 핏줄을 이으며 한 강토에서 함께 살아온 단군의 후손들인 우리 민족이 외세에 의해 북과 남으로 갈라져 고통을 겪는 것은 민족사적 견지에서나 민족적 독립과 자주성을 지향하는 시대의 요구에 비추어 보아도 그렇고 더는 참을 수 없는 비극"이며 "이런 조건에서 온 겨레는 단군민족인 우리 민족이 하나의 단일민족임을 철저히 명심하고 대단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 월간 홍보잡지 <조선>은 "단군은 조선민족의 원시조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의 현명한 령도와 공화국정부의 민족문화보존정책에 의하여 주체82(1993)년에 평양시 강동군에서 조선민족의 시조인 단군과 그 안해의 유골이 발굴됨으로써 단군이 지금으로부터 5000여년전에 실재한 인물이라는 것이 확증되였다. 단군민족통일협의회는 김일성주석께서 단군릉발굴을 발기하시고 개건사업을 이끌어주신 10돐과 김정일령도자께서 이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여주신 9돐을 맞으며 단군의 자료들을 보여주는 화첩<우리 민족의 원시조 단군>을 만들어 내놓았다."고 했다.
여기서 북한이 말하는 '단군릉'의 '개건' 과정을 보면 1) 1993년 1월 김일성이 발굴 방법 제시. 2) 1993년 2월 단군 유골과 유물 발굴. 3) 1993년 9월 27일 김일성이 능터 결정 및 설계 방법 제시. 4) 1994년 7월 6일 김일성이 '최종형성안' 검토(7월 8일 김일성 사망) 5) 1994년 10월 11일 ‘단군릉개건준공식’의 순(順)이다. 이 성역에는 '단군릉, 단군릉개건기념비, 단군릉기적비,단군의 네 아들상(부루.부소.부우.부여),단군의 측근신하상(팽우.고시.해월.비천생.신지.치우.주인.여수기),망부석,문기둥,상돌과 돌향로,돌범' 등이 있다. 능(陵)의 안에는 "단군과 그의 안해의 유골이 안치된 무덤칸" 등이 있다.
<조선대백과사전(5)>(1997년)의 '단군릉' 설명을 보면 "김일성동지께서는 지난날 그릇된 력사관에 의하여 이지러진 민족사의 수많은 사건들과 사실들을 하나하나 바로잡도록 하여주시였으며 최근년간에는 력사학자들에게 단군연구를 심화시킬데 대한 과업을 주시고 바쁘신가운데서도 그 연구정형을 알아보시면서 여러차례 강령적인 교시를 주시였다. 특히 1993년 1월에는 강동군에 있는 단군릉도 발굴해보도록 학자들의 눈을 틔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천리혜안의 예지와 투철한 주체적인 력사관에 의하여 오래동안 사람들의 관심밖에 있던 단군릉에 대한 발굴이 진행되여 1993년 2월에 단군 유골과 유물이 발굴되게 되였다."(651쪽)라고 되어 있다.
<조선대백과사전(5)>의 '단군신화' 설명 중에는 "단군은 평양을 도읍으로 삼아 왕이 되고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고 하였다. 그는 1,500년간 나라를 다스리다가 산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는데 그때 나이가 1,908살이였다고 한다. 최근 평양시 강동군에 있는 단군릉에서 단군의 유골이 발굴되고 그 년대가 밝혀짐으로써 단군이 신화적인물이 아니라 실재한 력사적인물이라는것과 함께 반만년에 걸치는 조선민족사의 유구성이 뚜렷이 확증되고 그에 따라 신화의 유산적가치도 력사적사실들에 기초하여 확인하게 되였다."라는 문장들이 들어 있다.이 인용문의 문제점은 구태여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북한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단군과 단군의 안해(남한:아내)'의 '유골'이 평양땅에 있다는 것이다.<조선민족의 발상지 평양>(사회과학출판사,2000년)에는 "단군은 평양에서 태생한 실재한 력사상의 인물"이고, "민족의 성지로서의 평양의 력사적지위는 무엇보다도 조선민족의 발상지, 우리 겨레의 동질성을 이룩한 중심지, 민족문화의 발원지"(4쪽)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남북통일이 되면 수도는 자동적으로 평양? 아무 생각 없이 '단군릉'을 찾는 일은? 역사적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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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단군 할아버지가 터잡으시고
홍익인간 뜻으로 나라 세우니
대대손손 훌률한 인물도 많아 ...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의 전문이다. 우리 모두 단군정신을 선양하고 홍익인간 사상을 전포합시다.
붓다의 길따라...나무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