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고속도로에서는 새들에게 우선권이 있다
전창수 지음
모든 고속도로에서는 새들에게 우선권이 있다·1
새들이 떠나는 고속도로에서는
백킬로미터 이하라는 푯말이
심각한 웃음을 띠고 그들을 통과시킨다
아직
보도블럭 위의 설치된 간판들은
제 몫을 다해 멋대로이다, 가는 길
움직임마다 놓인 피사체.
비상(飛上)하는 저들의 힘찬 날개짓.
승리지상주의가 짓밟힌 흔적들.
짓밟힌 것은 저 사람,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법.
끝없이 변화하는 법.
머물 곳을 찾아보지만
이미 한번 돌아간 도로에
후진은 없다. 유턴도 없다.
가끔 지나치는 간판들
모두 들떠서 아롱거리다가
서민들을 위한다며 일렬로 일렬로,
함께 고속도로를 탄다
모든 고속로에서는
질주하는 자유만이 있다.
모든 고속도로에서는 새들에게 우선권이 있다·2
겨울도 아닌데 창가에 또는
거리 곳곳에 서리가 붙는다
혹독한 장마와 수해
그리고 가뭄의 여름을 보낸 뒤
비로소 내리는 가을,
감전이 두렵지 않은 듯 태연하게
전깃줄에 발을 감싸 안는 까치 한 마리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의 앞으로 번식기를 맞은 듯한 참새가
참새를 쫓고 있다
올해도 추위가 빨리 찾아왔군, 애써
태연한 말투로 중얼거리는 관리소 아저씨의 홍조(紅潮).
여름 내내 공원을 가득 채웠던 비둘기,
평화를 상징하는 파출소 모퉁이에서 간혹
아직 떠나지 못한 이들만 모이를 쪼아댈 뿐.
그 비둘기를 따뜻하게 응시하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입담도 들리지 않는다
새들이 떠나는 고속로에서는
100킬로미터 이하라는 푯말이
조금은 일찍 찾아온 추위에 당황해
심각한 웃음을 띠고 그들을 통과시킨다
흐린 날씨 탓에 어둠은 조금 더 일찍
잔디 사이사이로 드나들기 시작했다, 아파트
건물 주택 상호들이 차츰차츰 불을 밝히면
아직 남아있던 새들도 스스로 사라져간다
나무나무마다 들려져 있던 낙엽들.
밤이 오는 강한 바람에 휩쓸리고
추위를 가리지 않고 한겨울을 보내는 텃새는
부랴부랴 집을 짓는다 겨울도 아닌데
철새들은 벌써부터 보색을 띤다
모든 고속도로에서는 새들에게 우선권이 있다·3
사람이 있는 여름 고속도로
어딘가에선 도로의 바람이 불어오고
유턴 어딘가로 향해 가면
내려 앉은 파란 딱지 하나
슬픔과 함께 하늘을 세고 있었다.
우선하여야 할 것은 아무것도 내주지 않은
모두를 위해 내달리던 새들이
강물 어딘가에 콕콕콕 먹이를 쪼아대어
드러눕는 어딘가,
바람이 일렁이던 길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