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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31일 주일 설교
제목: 낙심한 영혼에게
본문: 예레미야 30: 3
https://youtu.be/iKPJY28uV-g?feature=shared
설교 목적
예레미야 30장과 31장은 하나님이 포로로 끌려간 유다와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될 것을 약속하신 말씀이다. 거기서 하나님은 어떻게 자기 백성이 회복될 것인지를 그림으로 설명하신다. 그들의 회개로 새 마음을 갖게 된 지금 하나님이 그들을 다시 세우시고 심으시기 위하여 확실하게 일하실 것이라는 약속이다.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도 유효하다. 즉, 누구든지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약속을 받고 기뻐하며 주장하고 담대하게 주님을 찬양할 수 있을 것이다.
‘만 가지 이유로’(송축해 내 영혼)라는 찬양에 나오는 가사처럼 ‘Ten thousand reasons for my heart to find’즉, 주님을 찬양할 수만가지 이유가 내 마음에 떠오른다. 그 이유들이 바로 주님의 약속을 가리킨다. 주님이 그렇게 약속하셨으므로 그 약속들마다 이루어질 때 나와 우리의 기쁨은 충만하게 될 것이다. 그 충만한 기쁨으로 주님을 찬양하고 삶에서는 더욱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고 축복하고 세우고 심으며 주님의 새 창조 사역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우리들이 마음에 품을 소망이며 믿음의 다짐이다.
주님이 깨셔서 세우고 심으리라고 약속하셨으니 우리도 깨어서 주님의 일하심에 맞추어 나아가자. 주님을 찬양하고 기뻐하면서 그 길에 동참한다면 우리의 새 해는 더욱 큰 용기와 희망으로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1년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보자.
2023년 12월 31일 주일 낮예배의 설교 본문은 예레미야 30장이며, 그날 밤 송구영신예배의 설교 본문은 예레미야 31장이다. 앞의 본문은 유다가 회복될 것에 대한 예언이고, 뒷장은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에 대한 약속이다. 이 두 말씀을 읽으면서 한 해를 돌아보고 새 해를 준비할 것이다. 그것이 금년의 마지막 주일을 준비하는 나의 방식이다.
예언자의 메시지는 결국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 환경과 상황 가운데서 희망도 자존심도 도덕도 어떤 꿈도 모조리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무기력한 사람들을 일깨우려는 것 아닐까? 그 메시지는 가장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고,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일깨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들의 과거에 대한 반성과 현실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있은 후에 하나님의 약속이 그들에게 주어진다. 그들은 이제 과거의 잘못을 뉘우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이제 그들에게 새로운 약속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에게 주님이 약속하신다. 다시 회복하여 주실 것이라고.
그렇다면 이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은 다시 일어나 기쁨으로 주님을 경배하고 소고치며 춤추며 기뻐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주님을 기뻐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주님께 복종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홍해를 건넜고 그들의 원수는 모두 홍해의 거친 물에 수장되었다. 그것은 영광스러운 승리였다. 그 옛적의 승리를 다시 일깨워 주시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격려하는 것이 이 예언의 특징이다. 우리도 그렇게 일어서야 한다.
설교 개요
1. 2023년을 돌아보면서
2. 낙심한 영혼들을 세우기 위한 격려의 말씀
3.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치료하고 계신다!
4. 고난 중에라도 잊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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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3년을 돌아보면서
오늘은 2023년도 마지막 날입니다. 1년 전 우리는 새로운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한 해를 선물로 맞이했습니다. 금년 한해 동안 우리 교회에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돌아보겠습니다.
먼저, 금년에는 병원에 입원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연초에는 박인자 집사님이 어깨를 다쳐 병원에 입원하더니, 3월에는 장은화 권사님이 입원하셨고, 5월에는 이인성 장로님이 임플란트 치료를 받으시면서 허리를 다쳐 두 달 동안 자리에 누워 계셨습니다. 김숙자 집사님도 한양대 병원에 두차례 입원하셨고, 12월에는 예종숙 권사님과 장명옥 권사님이 다쳐서 집에 계십니다.
금년에 별세하신 분들은 김숙자 집사님의 아들(2.25)과 문정부 장로님의 모친(4.24), 남갑순 전도사님의 남편(7.14)과 김노순 권사님 오빠(9.3), 그리고 박용문 안수집사님(9.8)입니다. 모두 안타깝고 아쉬운 이별이었습니다.
금년에 우리 교회를 방문한 분들은 미국에서 오신 한신무학아파트의 네 모녀(7.30)와 미국 한인동산장로교회의 서석열 장로 부부(9.24), 그리고 이주희 최정호 집사 부부(12.10) 등이 있었습니다.
기념일이나 감사한 일로 기념떡을 후원한 분들도 있습니다. 연초에 조찬송 김대용 전도사 부부가 딸의 돌을 기념하여 떡을 돌렸고(1.15), 이금단 집사님이 백설기(2.12)를, 그리고 4월에는 가래떡을 돌렸으며, 부활절을 지나고 이금숙 권사님이 백설기를 돌렸고, 5월에는 박해자 사모님이 떡국떡을, 그리고 교회창립42주년 기념떡을 맞췄으며, 박용문 집사님의 유족의 감사떡(9.17), 그리고 성탄절에는 장명옥 권사님이 떡을 돌렸습니다.
우리 교회는 금년에 특별헌금을 했습니다. 2월에는 튀르키예에 지진이 나서 우리 교회가 후원금을 모아 50만원을 보냈고, 8월에는 큰 비가 내려 피해를 입은 교회들을 돕기 위해 20만원을 모금하여 보냈습니다. 그리고 필리핀 임마누엘교회의 도서관에 책을 보내기 위해 교우들이 학용품과 의류 등을 모아주셨습니다. 그리고 후원금 30만원(남숙희)이 모아졌습니다. 감사합니다.
금년에도 이덕순 집사님이 다섯차례에 걸쳐서 교회에 화분을 기증하셨습니다(3, 5, 6, 8, 12월). 점심을 대접한 분들은 부활절에 추어탕을 대접한 이인성 장로님(4.9)과 문정부 장로님이 모친 장례를 마치고 식사를 대접하셨습니다(4.24). 추수감사절에도 다같이 점심을 함께했습니다. 청년들은 어버이주일에 선물과 떡을 준비했으며, 어린이날과 성탄절에도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금년 초에 상속자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주중 성경공부를 실시하고자 했는데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암송을 실시했는데 이는 주중 기도회에 참석하신 분들을 중심으로 1단계 10구절, 2단계 2구절을 암송하고 있습니다. 주중 기도회에서는 모일 때마다 1장씩 성경을 읽었는데, 시편과 요한계시록, 그리고 히브리서를 읽었습니다. 기도회에 참석한 권사님들은 매주 금요일에 기도 후에 예배당을 청소하셨습니다.
저는 금년에 성동구청 기독신우회의 지도목사로서 매주 수요일 정오에 드리는 예배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그리고 한세대학교 신학대학원 종강 채플에서 설교를 했습니다(12.17). 우리 교회는 지난 여름에 남양주에 있는 글로리아 실버타운(김순금 집사)에서 여름수련회를 가졌습니다.
우리는 지난 한해 동안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잊고 있지만 우리 교회의 주보에 기록된 일들을 정리해 보면 이렇게 우리 가운데 적지 않은 일들이 있었고 그 가운데 주님이 일하고 계신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4월초부터 시작된 2인1조 전도운동은 우리 교회에게 금년에 가장 큰 도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지난 몇 년 동안에 우리는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몹시 안타까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 전도운동이 아직 결실하지 않고 있어서 우리는 낙심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한 해를 마치고 새해를 맞이하는 지금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오셔서 주의 말씀으로 희망과 용기를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2. 낙심한 영혼들을 세우기 위한 격려의 말씀
저는 금년도 마지막 주일 설교와 오늘밤에 있는 송구영신예배 설교에서 나눌 말씀의 본문으로 예레미야 30장과 31장을 선택했습니다. 이 본문은 포로로 끌려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이자 권면입니다. 하나님은 예언자 예레미야에게 말씀을 들려주시면서 책에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언자에게 말씀을 기록하게 하신 이유는 아마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려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예언이 이루어질 때 사람들에게 그 책에 기록된 말씀을 보고 과연 하나님의 말씀이 옳았음을 확인할 수 있게 하시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말은 날아가지만 글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기록된 예언입니다.
하나님이 예언자 예레미야에게 기록하게 하신 말씀의 핵심은 그들이 포로로 끌려간 땅에서 돌아와 다시 약속의 땅에 살면서 번성하리라는 약속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아가게 할 날이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 조상들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니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예레미야 30:3
이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실 날이 올 것입니다. 그 일은 지금 포로로 끌려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시 돌아가게 하여 그들의 조상에게 하나님이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는 일입니다. 그들은 다시 조상들이 살던 땅을 차지하고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예레미야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이 말씀을 예레미야에게 주실 때 그 백성들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지금 매우 낙심한 상태입니다. 그들의 현재 상태에 대하여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우리가 무서워 떠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 두려움이요 평안함이 아니로다
6 너희는 자식을 해산하는 남자가 있는가 물어보라 어찌하여 모든 남자가 해산하는 여자 같이 손을 자기 허리에 대고 모든 얼굴이 겁에 질려 새파래졌는가
7 슬프다 그 날이여 그와 같이 엄청난 날이 없으리라 그 날은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 그러나 그가 환난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
예레미야 30:5~7
그들은 지금 평안을 잃고 두려워합니다. 남자들도 여자처럼 허리에 손을 대고 그 얼굴이 겁에 질려 새파래졌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그늘진 얼굴이 있습니다. 그 얼굴을 보고 자란 자녀들은 불행합니다. 어쩌면 지금 대한민국이 그렇게 그늘진 얼굴을 하는 나라가 되어 가고 있지 않을까요? 우리나라 교회들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는 출산률의 급감소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임금격차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사교육비가 너무 과중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택마련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하며, 어떤 극단적인 사람들은 동성애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 합니다.
우리나라의 수출이 거의 일년동안 하락세라고 경제전문가들은 우려합니다. 국제무대에서 적절한 처신을 못해서 외교적으로 덜 중요한 국가가 되었다고 우려하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경찰에 대한 민심은 이태원참사 이후로 더욱 나빠졌습니다. 최근에는 과도한 수사로 인하여 영화배우가 목숨을 끊어서 경찰에 대한 비난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양심적인 사람들이 존중받지 못하고 그들에 대한 박해가 법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사회에서 고위직에서부터 양심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온 국민이 아는 이야기를 뻔히 거짓말로 둘러대는 공직자들을 보면 비판을 넘어 조소와 탄식이 터져 나올 지경입니다. 이런 일들이 한 해를 마감하고 새 해를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합니다.
우리 교회적으로도 금년에 돌아가신 분들과 떠난 분들, 낙심한 분들을 생각해 볼 때 암담한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은 마치 나라가 망하고 성전도 무너지고 자신들은 먼 나라에 포로로 끌려온 이스라엘과 유다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들과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두렵고 낙심되는 상황이 그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예언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앞으로 하실 일이 있는데 그것을 책에 기록하여 남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언자 예레미야의 글은 낙심한 백성들을 위한 격려이며 동시에 그런 암울한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일깨워주는 지혜라고 하겠습니다.
오늘 한 해를 마치는 마지막 날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우리가 이 예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배우고 소망을 발견한다면 뜻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치료하고 계신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포로로 끌려간 상황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8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라 그 날에 내가 네 목에서 그 멍에를 꺾어 버리며 네 포박을 끊으리니 다시는 이방인을 섬기지 않으리라
9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며 내가 그들을 위하여 세울 그들의 왕 다윗을 섬기리라
1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나의 종 야곱아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먼 곳으로부터 구원하고 네 자손을 잡혀가 있는 땅에서 구원하리니 야곱이 돌아와서 태평과 안락을 누릴 것이며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11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할 것이라 너를 흩었던 그 모든 이방을 내가 멸망시키리라 그럴지라도 너만은 멸망시키지 아니하리라
예레미야 30:8~11상
하나님은 장차 자기 백성을 억누르고 압제하는 세력을 제거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마치 목에 매인 멍에와 같고 몸을 묶은 포박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 무겁고 답답한 것을 끊어버리실 것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이방인과 그들의 신을 왕으로 섬기지 않으며 그들은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다윗처럼 신실한 왕을 섬길 것입니다.
그런 약속과 함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격려하십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격려하실 때 그들을 부르시는 호칭을 보십시요.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나의 종 야곱이라고 부르십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자신의 종이라고 부르실 때, 그 의미는 하나님이 그 사람을 통해서 이 세상에 자기 뜻을 펼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대리인이며 일꾼입니다. 그런 사람을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불렀습니다(고린도전서 3:9).
하나님의 동역자들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다시 태평과 안락을 누릴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셔셔 그들을 억누르고 흩었던 자들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백성은 멸망시키지 않고 보존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열어 주시는 새로운 세상을 물려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백성을 구원하실 때 악을 행하던 압제자들을 멸망시키실 것이지만, 자기 백성에게는 어떻게 하실까요? 하나님의 구원은 자기 백성을 단지 건지시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고 그 종으로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존재가 되게 만드십니다.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법에 따라 너를 징계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만 여기지는 아니하리라
1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
13 네 송사를 처리할 재판관이 없고 네 상처에는 약도 없고 처방도 없도다
14 너를 사랑하던 자가 다 너를 잊고 찾지 아니하니 이는 네 악행이 많고 네 죄가 많기 때문에 나는 네 원수가 당할 고난을 네가 받게 하며 잔인한 징계를 내렸도다
15 너는 어찌하여 네 상처 때문에 부르짖느냐 네 고통이 심하도다 네 악행이 많고 네 죄가 허다하므로 내가 이 일을 너에게 행하였느니라
16 그러므로 너를 먹는 모든 자는 잡아먹힐 것이며 네 모든 대적은 사로잡혀 갈 것이고 너에게서 탈취해 간 자는 탈취를 당할 것이며 너에게서 노략질한 모든 자는 노략물이 되리라
1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쫓겨난 자라 하매 시온을 찾는 자가 없은즉 내가 너의 상처로부터 새 살이 돋아나게 하여 너를 고쳐 주리라
예레미야 30:11하 ~ 17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징계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잘 아십니다. 그래서 무죄한 자로만 여기지 않으시지요.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어떤 사람으로 지으셨는지를 아시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도 아십니다. 그래서 그들의 죄와 허물 때문에 생긴 상처와 부상을 하나님이 치료하시려고 징계하십니다. 그들의 송사를 판결해 줄 재판관도 없고 상처에 바를 약도 없습니다. 사람의 몸에 난 상처라면 치료약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 사이에 난 물질적 피해로 인한 송사라면 적절한 재판관과 변호사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있는 문제는 그들의 삶에 있는 죄악입니다.
그 죄와 악행 때문에 그들은 매력을 잃어버렸고 아무도 그들을 찾지 않습니다. 그래서 본래 그들의 원수가 당해야 할 고난을 자기 백성에게 당하게 하는 징계를 내리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방에 가두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병에 걸려 치료가 필요하다면 그 사람은 격리되어야 하고 치료를 위해 따로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징계는 바로 그런 것입니다. 치료와 회복을 위한 것입니다.
자기 백성은 상처를 입어 부르짖습니다. 그 고통이 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악행이 많고 네 죄가 허다하기 때문에 내가 이 일을 네게 행하였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백성은 징계를 받아 재물을 빼앗겼고 사로잡혀 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쫓겨난 자라는 명예롭지 못한 이름을 얻었고 그들을 찾는 자도 없습니다. 그들은 격리되었고 외롭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그들의 상처로부터 하나님은 새 살이 돋아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고난 중에 자기 백성을 치료하고 계셨습니다.
우리나라 교회가 지금 이런 고통과 상처로 신음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지금 징계하시고 치료하시는 중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 가운데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치료하고 계십니다.
4. 고난 중에라도 잊지 말아라!
고난의 시간이 길어지면 우리는 낙심합니다. 질병으로 입원하는 시간이 길어질 때도 고통스럽습니다. 찾는 이도 없고 상황은 악화될 때 우리는 마음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한없이 초라한 것 같이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을 아시고 하나님은 징계를 받는 자기 백성에게 이렇게 격려하십니다: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야곱 장막의 포로들을 돌아오게 할 것이고 그 거처들에 사랑을 베풀 것이라 성읍은 그 폐허가 된 언덕 위에 건축될 것이요 그 보루는 규정에 따라 사람이 살게 되리라
19 그들에게서 감사하는 소리가 나오고 즐거워하는 자들의 소리가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번성하게 하리니 그들의 수가 줄어들지 아니하겠고 내가 그들을 존귀하게 하리니 그들은 비천하여지지 아니하리라
20 그의 자손은 예전과 같겠고 그 회중은 내 앞에 굳게 설 것이며 그를 압박하는 모든 사람은 내가 다 벌하리라
21 그 영도자는 그들 중에서 나올 것이요 그 통치자도 그들 중에서 나오리라 내가 그를 가까이 오게 하리니 그가 내게 가까이 오리라 참으로 담대한 마음으로 내게 가까이 올 자가 누구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2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23 보라 여호와의 노여움이 일어나 폭풍과 회오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 위에서 회오리칠 것이라
24 여호와의 진노는 그의 마음의 뜻한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돌이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끝날에 그것을 깨달으리라
예레미야 30:18~24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징계를 받는 자기 백성에게 소망을 주십니다. 그들이 다 치료되고 회복되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열어주시는 세상이 있습니다. 그 세상에서 야곱의 포로들은 돌아올 것이며, 그들이 거하는 곳에 하나님이 사랑을 베푸시며, 그 성읍들은 다시 건축될 것이며, 파수꾼들도 다시 제 자리에 서서 보초의 임무를 수행할 것입니다.
그들은 감사 찬송을 부르고 즐거움 속에서 번성할 것입니다. 그들은 부흥하고 칭찬과 명성을 얻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전처럼 성장할 것이고 그들의 세력은 강성할 것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불쌍히 여김을 받지 않으며 이제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지도자를 선출하여 자치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하게 나아갈 것입니다.
이것이 본래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던 영광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과거의 영광은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말씀하시기를 그것을 다시 회복하여 주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약속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최고의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위해 헌신할 제사장 나라를 만드시려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시던 날에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출애굽기 19:6, 참고. 레위기 16:12
성경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회복하시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 주실 때는 언제나 이 언약을 하십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의 마지막에서 하늘의 새 예루살렘 도시가 땅으로 내려와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자기 백성에게 주실 때에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요한계시록 21:3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하나님이 열어 주시는 새로운 세상을 맡기시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에게는 약속의 땅이 주어졌고 그렇게 고난을 통해 징계를 받은 백성에게도 새 하늘과 새 땅을 주리라는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이런 선언을 하십니다. 그것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것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우리가 하나님의 양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친아들 예수님에 비하면 우리는 양자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은퇴 목사님이 들려주신 이야기에는 아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 나라에 가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저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겠지요. 그런데 제 아들은 어떻습니까? 제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으니 제 아들은 하나님을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합니까? 그리고 제 손자들은 하나님을 증조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 육신으로는 제 부모가 저를 낳으셨지만 사실은 저의 친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십니다. 저의 부모는 잠시 동안 맡아서 기르는 양부양모입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마음이 좀 불편했습니다. 우리는 부모를 귀하게 생각하는 윤리와 도덕을 배우며 자랐는데 교회가 부모를 양부모라고 하고 진짜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의 이야기를 좀더 들어보고 나중에 생각해 보니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하나님을 진짜 아버지로 믿고 사셨습니다. 우리의 아버지가 하나님이시라면 무엇을 염려하고 걱정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과 담력으로 목회를 하셔서 그런지 그 목사님은 은퇴하시면서 견실한 교회를 후임에게 물려주셨습니다. 고난 중에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잊기 쉽습니다. 우리가 누군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잊어버리면 사람들이 우리를 부르는 대로 우리를 이해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쫓겨난 민족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사람들이 다 그렇게 부릅니다. 그들은 망한 민족이라고.
그런데 하나님은 예언자 예레미야에게 글에 남기라고 하신 예언을 통해서 그 민족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며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다! 이것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고유한 은사와 사역을 통해서 멋진 인생을 살면서 풍성한 결실을 거둘 것입니다.
<다음에 예레미야 31장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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