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에게 가족이 보내주는 기원과 응원만큼 크나큰 격려가 또 있을까.
병마와 싸우는 가족이 있다면 ‘병’을 가족의 숙명전환과 인간혁명을 위한 도약대로 받아들여 광포의 신심(信心)을 분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여기 강한 신심과 화목함으로 가장의 암을 이겨낸 한가족이 있다.
일가화락의 신심과 화목함으로 '암'을 이겨낸 김종원(앞줄 오른쪽 장년)씨와 가족들
불행의 서막 계속된 옆구리 통증
김종원(67)씨가 처음 몸에 이상을 느낀 것은 지난 1998년.
언젠가부터 왼쪽 옆구리 쪽에서 쿡쿡 쑤시는 느낌의 원인 모를 통증이 시작됐다.
대전 가수원동에서 농사를 짓고 살던 그는 바쁜 농사일에 무쳐, ‘별 이상이야 있으랴’ 하며 지나쳤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같은 통증이 계속 반복됐다.
체증인가 하고 동네마다 용하다는 약국에서 약을 지어다 먹어봤지만 그것도 무용지물.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자 큰 아들 내외가 김씨를 을지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CT촬영 등 여러 검사를 했다.
하지만 검사 결과 옆구리 쪽에서는 별 이상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뜻밖에도 담석증 판명이 나왔다.
며칠 후 수술 날짜가 잡혔고 레이저를 이용한 간단한 수술로 완치!
이때까지만 해도 김씨와 가족들은 담석증 때문에 그동안 옆구리가 아팠나 보다 생각했다.
그러나 담석증 치료 후에도 2년 동안이나 옆구리 쪽의 통증은 계속 됐다.
드디어 지난 2000년, 더 이상 참다못한 김씨가 스스로 병원 갈 채비를 서둘렀다.
‘아무리 생각해도 옆구리 쪽에 무언가 이상이 있는 게 틀림없어!’
건양대병원을 찾았다.
2년 만의 재검사.
이때까지만 해도 ‘별 일이야 있으려고’라는 것이 가족 모두의 심정이었다.
하지만 청천벽력 같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절망적 상황입니다”
의사는 김씨 부부를 내보내고 아들 내외만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말들이 쏟아졌다.
“종격종양입니다. 이미 심장 부근에 10cm나 자라있어 절망적 상황입니다.”
기가 막혔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아무런 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의사의 말로는 2년 전에는 깨끗했던 상태를 봤을 때, 2년 만에 10cm나 자랄 정도로 빠른 진행을 보이고 있고, 미리 발견하지 못했다면 결국 심장을 압박해 사망하는 무서운 병이라고 했다.
이런 탓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암이 아닌 심장마비로 죽은 줄로만 안다고.
‘종격(縱隔, mediastinum)’은 폐장, 심장, 대동맥, 식도 등 우리 몸에서 생존과 관계되는 거의 모든 장기들이 모여 있는 부위로 생명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부위다.
‘종격종양(縱隔腫瘍, tumor of the mediastinum)’은 이 종격동(縱隔洞)에 생기는 종양이다.
가장 흔한 증상으로는 흉통, 기침, 쉰 목소리, 호흡곤란이 있고 그 외에 천명음(상기도의 협착으로 인한 청진소견), 연하곤란, 호너증후군 등이 있다.
종격종양의 경우 대부분 무증상으로 시작하지만 상대정맥 압박으로 인해 안면부종, 경부정맥 확장, 상지 부종을 일으킬 수 있고, 기도, 식도, 대혈관으로 침범하면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무통증이기에 조기 발견이 어려워 이들 장기가 종양에 의해 압박돼 중증으로 발전하기 쉽다.
일가화락 이체동심의 지혜
큰 며느리 김정이씨가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절망하기 보다 ‘드디어 올 게 왔구나!’ 하는 태연한 마음이었습니다.
결혼하자마자 신심을 하며 ‘숙명전환’에 대해 알게 됐고, 이 때가 바로 ‘우리 가족 숙명전환의 때구나’라고 실감할 수 있었어요”라고.
허탈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아내 임학순씨도 가장 먼저 본존님 앞에 앉아 창제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수년 동안 남편을 괴롭힌 옆구리 통증은 2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이 옆구리 통증으로 인해 흉부의 암을 발견하게 됐다. 공덕이 아닌가!’
그리고 주인공 김종원씨도 “아버님, 정확한 병명은 정밀검진을 더 받아봐야 안데요”라며 얼버무리는 자식들의 눈치를 통해 ‘암’임을 직감했다고.
하지만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과 신심이 있기에 담담할 수 있었다.
소견서를 들고 당장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했다.
부모가 좀 더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으면 하는 5남매의 효심이었다.
곧 수술날짜가 잡혀 지난 2000년 6월, 종격종양의 실체가 드러나는 대수술이 잡혔다.
이때 김씨를 옆에서 간호한 것은 큰 며느리.
임씨가 고된 병간호를 하는 것보다 집에서 강성한 창제를 보내고, 젊은 사람이 병원에서 지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수시로 전화통화를 하며 상황을 공유하고, 마음을 하나로 했다.
일가화락의 지혜로운 묘안이었다.
수술 당일, 아내 임씨도 병원으로.
김씨와 가족들의 긴장 속에 오전 10시 경 수술을 시작. 수술은 오후 6시가 다 돼서야 끝났다.
종양 전체와 폐, 대동맥 일부를 절제했다.
“막상 수술에 들어가도 암이 몸속에 퍼진 상황이라면 수술을 포기해야 할 지 모릅니다.”
“수술이 성공적이더라도 70~80% 재발할 수 있습니다.”
의사의 무서운 말들이 있었지만 가족들은 본존님의 수호와 갱사수명을 기원했다.
"남편의 몸에 암의 씨 한톨도 남지 않도록!" 강성한 기원으로 응원해준 아내 임학순(왼쪽)씨와 함께.
기원한 그대로 빠른 ‘퇴원·회복’
수술은 그야말로 대성공!
회복 기간도 5일 만에 몸에 연결한 호스와 링거를 모두 뽑을 정도로 회복이 빨랐다.
아내는 새벽마다 빈 화장실을 찾아 필사의 창제에 도전했다.
‘본존님! 조속한 회복과 남편의 몸에 암의 씨가 한 톨도 남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그리고 수술 일주일 만에 퇴원해도 좋다는 병원 측의 말.
가족들은 놀라 병원으로 달려왔다.
당시 거의 날마다 뉴스의 첫 페이지를 장식할 정도로 뜨거운 이슈가 됐던 것이 바로 의료파업이었다.
가족들은 환자가 다 낫지도 않았는데 조기 퇴원시키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따질 참이었다.
그러나 의사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김종원씨는 ‘특수 체질’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뼈가 튼튼하고 건강한 할아버지는 처음 봤어요! 회복도 다른 사람보다 배나 빨랐습니다.”라고.
가족들의 얼굴엔 안도의 한숨과 기쁨의 눈물이 뒤엉켰다.
그리고 김씨가 퇴원한 바로 다음 날 병원 노조가 대대적인 파업에 들어갔다.
김씨보다 먼저 입원한 환자들 중에는 수술도 못 받고 병원을 나와야만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조속한 회복과 퇴원 후 재발없이 영원히 완치할 수 있도록’ 기념한 아내와 가족들의 기원이 그대로 통한 것이다.
퇴원 후 건양대병원에서 6주간의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이때도 김씨는 두통이나 메스꺼움도 없이 무사통과!
집에서도 ‘특수 체질’ 김씨는 특별식을 먹지 않고, 가족이 먹는 똑같은 음식을 섭취했다.
다만 자녀들이 사준, 암 치료와 예방에 좋다는 오가피물을 1년 정도 복용(服用)했다.
암 재발의 고비라는 5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김씨는 예전보다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아내 임씨와 황금 같은 노후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금생 끝까지 더욱 타인의 행복과 광선유포(廣宣流布)를 위해 건강하고 복운 넘치는 인생을 살겠노라 다짐하고 있다.
※ 의사의 말 (서울아산병원 박승일 교수)
종격종양은 종양의 기원 부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뉩니다.
김종원씨는 종격종양 중 20%에 해당하는 침윤성 흉선종에 해당합니다.
흉선은 흉골 뒤쪽, 심장 앞쪽에 있는 작은 장기인데, 종양 자체에 기인(起因)하는 증상은 주로 흉통, 기침, 객담, 호흡곤란, 안면과 경부의 울혈, 부종 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증상은 질환이 상당히 진행된 후에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고 무증상인 경우도 많습니다.
김종원씨의 경우 발견 시간이 경과해 종양의 크기가 매우 컸고, 주변 장기에도 많이 침윤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수술 5년째인 지난 11일에 다시 진찰했습니다만, 환자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전이가 발견되지 않았고, 후유증인 숨 찬 증세도 심각하지 않아 매우 건강합니다.
화광신문 2005.03.18. 628호 김종원 서대전권 남대전지부 壯회원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 더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