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 정인지 외
▣ 원문과 풀이
제1장
海東(해동) 六龍(육룡)이 샤 일마다 天福(천복) 이시니. 古聖(고성)이 同符(동부)시니.
[풀이] 우리 나라에 여섯 성인이 웅비(雄飛)하시어, (하시는) 일마다 모두 하늘이 내린 복이시니, (이것은) 중국 고대의 여러 성군(聖君)이 하신 일과 부절을 맞춘 것처럼 일치하십니다.
- 조선 건국의 천명성, 정당성
제2장
불휘 기픈 남 매 아니 뮐 곶 됴코 여름 하니.
미 기픈 므른 래 아니 그츨 내히 이러 바래 가니.
[풀이]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하므로, 꽃이 찬란하게 피고 열매가 많습니다.
원천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끊이지 아니하므로 내를 이루어 바다로 흘러갑니다.
- 조선의 영원한 발전 기원
제3장
周國大王(주국 대왕)이 豳谷(빈곡)애 사샤 帝業(제업)을 여르시니.
우리 始祖(시조)ㅣ 慶興(경흥)에 사샤 王業(왕업)을 여르시니.
[풀이] 주나라의 대왕이신 고공단보께서 빈곡에 사시면서 제업의 기초를 닦으셨습니다. 우리 시조인신 목조께거 경흥에 사시면서 왕업의 기초를 닦으셨습니다.
- 유구한 조선 왕조의 기초
[배경 고사]
- 전절 : 주(周)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것은 무왕(武王) 때에 이루어졌지만, 그 제업의 기초는 시조 후직의 12세손 고공단보가 빈곡에서 조상의 업적을 이어받고 덕을 쌍아 국인(國人)이 다 추대했을 때부터이다.
- 후절 : 목조가 전주에서 살다가 삼척을 거쳐 함경도 덕원부로 옮기니, 170여 호의 백성이 그를 따랐다. 그 후 원나라에 귀화하여 경흥 동쪽으로 이사하였는데, 거기에서 원나라로부터 벼승을 받아 우리 나라 동북면의 민심이 목조께로 돌아가니 조선 왕업의 기초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제4장
狄人(적인)ㅅ 서리예 가샤 狄人(적인)이 외어늘 岐山(기산) 올샴도 하 디시니.
野人(야인)ㅅ 서리예 가샤 野人(야인)이 외어늘 德源(덕원) 올샴도 하 디시니.
[풀이] (주나라 태왕 고공단보가) 북쪽 오랑캐 사이에 사시는데, 그들 오랑캐가 침범하므로 기산으로 옮으심도 하늘의 뜻이시도다.
(익조가 목조 때부터 살던) 여진족 사이에 사시는데, 그들 여진족이 침범하므로 덕원으로 옮으심도 하늘의 뜻이시도다.
- 조선 왕조의 천명성
[배경 고사]
- 전절 : 주나라 태왕(太王) 고공단보가 빈곡에 살고 있을 때에, 적인(狄人)의 침범이 잦으므로 피폐(皮弊)와 견마(犬馬), 주옥(珠玉) 등을 주어 달랬으나, 이에 응하지 않으므로 칠수(漆水)와 저수(沮水) 두 강을 건너 기산 밑에 가서 살자, 빈곡 사람들이 따르는 자가 많아 시장과 같았다.
- 후절 : 목조(穆祖)의 뒤를 이어 익조(翼祖)가 오동에서 원나라 벼슬인 오천호 소장(五千戶所長)으로 있으면서 인심을 얻으니, 여진(女眞) 장수들이 시기하여 죽이려 하므로 적도(赤島)로 피하였다가 덕원으로 옮겼다. 이에 경흥 백성들이 따라 옮기는 자가 많아서 시장과 같았으니, 이것이 다 하늘의 뜻이라 하였다.
제7장
블근 새 그를 므러 寢室(침실) 이페 안니 聖子 革命(성자혁명)에 帝祜(제호) 뵈니.
야미 가칠 므러 즘겟 가재 연니 聖孫 將興(성손 장흥)에 嘉祥(가상)이 몬졔시니.
[풀이] 붉은 새가 글을 물고 (문왕의) 침실문 앞에 앉으니 거룩한 임금의 아들(무왕)이 혁명을 일으키려 하매 하느님이 주신 복을 미리 보이신 것입니다.
뱀이 까치를 물어다가 큰 나뭇가지에 얹으니, 거룩한 임금의 성손(聖孫)인 태조가 장차 일어남에 있어 경사로운 징조를 먼저 보이신 것입니다.
- 조선 건국에 대한 하늘의 계시
[배경 고사]
- 전절 : 주나라 문왕(文王) 때 천명을 받아 표시로 붉은 새가 다음과 같은 글을 물고 문왕 침실문에 와 앉았다. “부지런한 사람은 길(吉)하고 게으른 사람은 망한다. 의리(義理)를 지키는 사람은 흥하고 사욕(私慾)을 탐하는 자가 흉(凶)하다. 무릇 모든 일이 억지로 하지 않으면 사곡(邪曲)이 생기지 않고, 굳세지 못하면 바르지 못한다. 사곡(邪曲)이 일면 망할 것이고, 굳센 사람은 만세를 누린다. 인(仁)으로써 얻고, 인(仁)으로써 다스리면 백 세를 누릴 것이고, 불인(不仁)으로써 얻고 불인(不仁)으로써 다스리면 당세(當世)를 마치지 못하리라.”
- 후절 : 다조(度祖)가 행영(行營-야영을 하는 곳)에 있을 때, 까치 두 마리가 영중(營中)의 나무에 앉았다. 도조(度祖)가 그것을 쏘고자 하니 휘하 군사들이 모두, “몇 백 보나 되는 먼 곳이니 맞히니 못할 것입니다.”라고 하였으나, 도조(度祖)는 활을 쏘아 두 마리의 까치를 땅에 떨어뜨렸다. 마침 그 때 큰 뱀이 나와서 물어다가 나무 위에 가져다 놓고 먹지 않았다. 사람들이 신기하게 여기며 모두 칭송하였다.
제8장
太子(태자) 하히 샤 兄(형)ㄱ 디 일어시 聖孫(성손) 내시니이다.
世子(세자) 하히 샤 帝命(제명)이 리어시 聖子(성자) 내시니이다.
[풀이] 태자(계력)를 하늘이 가리시어 그 형(태백)의 뜻이 이루어지시매, 그의 손자 무왕을 내리신 것입니다.
세자(환조)를 하늘이 가리시어 원나라 황제의 명령이 내리시매, 이 태조를 내리신 것입니다.
- 천명에 의한 이 태조의 탄생
[배경 고사]
- 전절 : 고공단보에세 태백, 중옹, 계력의 세 아들이 있었는데, 고공단보가 당나라를 치려 하였으나 맏아들 태백이 이를 좇지 아니하였다. 이에 계력에서 위(位)를 물려주자 태백은 아버지의 뜻을 알고 중옹과 더불어 멀리 달아나 버렸다. 그래서 계력의 손자인 무왕이 위(位)를 계승하게 된 것이다.
- 후절 : 도조가 죽은 후 맏아들 자홍이 계승하였으나 이내 죽으니, 그 아들은 아직 어리므로 동생인 환조가 원제(元帝)의 명령으로 원의 천호장직을 이어받았다. 그리하여 그의 아들인 이 태조가 위(位)를 계승할 수 있었다.
제13장
말 리 하 天命(천명)을 疑心(의심)실 므로 뵈아시니.
놀애 브르리 天命(천명)을 모실 므로 알외시니.
[풀이] (무왕에게 은나라 주왕을 치라는) 말씀을 사리는 사람이 많다. (무왕이) 천명을 의심하므로 (천명인지 아닌지 몰라 주저하므로) (신인이) 꿈으로 (주왕을 치라고) 재촉하시도다.
(여말에 이씨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이가 많되, 천명을 모르시므로 (나라를 세우지 않더니) (하늘이) 꿈으로 알리시도다.
- 천명을 꿈으로 알림(하늘의 계시)
[배경 고사]
- 전절 : 무왕이 문왕을 이어 즉위하여 관병(觀兵)할 때, 기약하지 않고 모인 제후(諸侯)가 팔백이나 되었는데, 모두 주(紂)를 쳐야 한다고 무왕에게 진언(進言)했다. 그러나 무왕은 천명을 알 수 없다 하여 군대를 돌이켰다. 그 후 2년 뒤 주왕의 학정은 점점 심해가므로, 무왕은 ‘내 꿈으로 보나 점괘로 판단하나 천의(天意)가 내게 있음을 알 수 있으니, 반드시 주(紂)를 쳐 이기리라.’ 하고 발병(發兵)했다.
- 후절 : 이 태조가 위화도에서 회군할 무렵에, 진중에서는 태조가 나라를 세워 백성을 구해 줄 것을 바라는 동요[‘木子得國(목자득국)’이라는 참요적(讖謠的) 내용으로 이씨가 나라를 세울 것]가 떠돌기도 하고, 목자(木子 즉 李씨)가 나라를 얻을 것이란 뜻의 노래가 불리었으나, 태조는 천명을 모른다 하여 잠저(潛邸-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에 있을 때, 꿈에 신인(神人)이 하늘에서 내려와 금척(金尺-금으로 된 자)을 주면서 ‘공이 문무(文武)를 겸하여 민망이 높으니, 이것으로써 나라를 바로잡으라’고 하여, 드디어 마음을 결정하기에 이른 것이라 한다.
제20장
四海(사해) 년글 주리여, 매 업거늘, 얼우시고 노기시니.
三韓(삼한) 주리여, 바래 업거늘, 녀토시고 기피시니.
[풀이] 중국 천하를 남에게 주겠는가, 강에 배가 없으므로 하늘이 강을 얼게 하시고 또 녹게 하셨습니다.
우리 나라를 남에게 주겠는가, 바다에 배가 없거늘 바다를 얕게 하시고 또 깊게 하셨습니다.
- 천우신조(天佑神助)
[배경 고사]
- 전절 : 한(漢)나라 광무제 유수가 왕랑에게 쫓기어 호타하라는 강에 이르렀을 때, 녹았던 얼음이 다시 얼어붙어 유수의 일행이 건너간 후 다시 녹았다.
- 후절 : 익조가 여진족에게 쫓기어 바닷가에 이르렀을 때, 깊었던 물이 갑자기 빠지므로 그 틈을 타서 손부인과 함께 말을 타고 바다를 건너 무사히 적도에 다다랐다. 그 뒤에 바로 바다가 다시 깊어져서 적들은 더 이상 뒤쫓지 못했다.
제30장
뒤헤는 모딘 도, 알 어드 길헤, 업던 번게를 하히 기시니.
뒤헤는 모딘 즁 알 기픈 모새, 엷은 어르믈 하히 구티시니.
[풀이] 뒤에는 사나운 도적이 있고, 앞에는 어두운 길인데, 없던 번개를 하늘이 밝히시어 길을 찾게 하셨습니다.
뒤에는 사나운 짐승(표범)이 있고, 앞에는 깊은 연못인데, 엷은 얼음을 하늘이 굳게 하시어 화를 면하게 하셨습니다.
- 천우신조(天佑神助)
[배경 고사]
- 전절 : 후당 태조 이극용이 군사를 이끌고 변주에 이르니, 변주 절도사 주전충이 그를 초청하여 술에 취하게 한 후 공격하였다. 이에 이극용이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데 마침 큰 비가 내리면서 번갯불이 비치어 이극용의 앞길을 인도했기 때문에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다.
- 후절 : 이 태조가 들에서 사냥할 때, 갑자기 큰 표범이 뛰어나와 그를 덮쳤다. 이에 몹시 급하게 된 이 태조가 말을 채찍질하여 달아나는데 앞에 깊은 못이 가로막았다. 이 태조가 얼떨결에 연못 위로 말을 달리니 하늘이 연못을 얼게 해서 무사히 피신할 수 있었다.
제34장
믈 깊고 업건마 하히 命(명)실 톤 자히 건너시니다.
城(성) 높고 리 업건마 하히 도실 톤 자히 리시니다.
[풀이] 물이 깊고 배가 없건마는 하늘이 명하시므로 (금나라 태조가) 말을 탄 채 (혼동강을) 건너시었습니다.
성이 높고 사닥다리도 없건마는 하늘이 도우시므로 (태조께서) 말을 탄 채 내리시었습니다.
- 천우신조(天佑神助)
[배경 고사]
- 전절 : 금 태조(金 太祖)가 요나라 황룡부(黃龍府)를 칠 때 혼동강(混同江)에 이르니 배가 없었다. 태조는 한 사람을 시켜 앞을 인도케 하므로, 제군(諸軍)이 따라 건너는데 물 깊이가 말의 배에 미치었다. 다 건너고 나서 사공을 시켜 건너온 물목을 재게 하니 그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 길로 황룡부를 떨어뜨렸다.
- 후절 : 이 태조(李 太祖)가 송도에서 침입하여 온 홍건적(紅巾賊) 20만을 물리쳤는데, 한때 이 싸움에서, 적이 오히려 방루(防壘)를 쌓고 굳게 지키는 것을 해질 무렵에 여러 군사가 나가 에워쌌다. 이 날 밤 태조는 길가의 한 집에 머물러 있었는데, 밤중에 적이 포위를 뚫고 달아나려고 우리 군사와 성문(城門)을 다투느라 혼란해 있었다. 이 틈에 한 적이 뒤에서 창으로 태조의 귀 뒤를 찔렀다. 사세가 매우 위급하여 칼을 빼어 앞의 7, 8인을 베고, 말을 뛰게 하여 성을 넘었건만 말은 넘어지지 않았다. 이에 사람들은 모두 신이(神異)하게 여기었다.
제36장
셔 긔벼를 알, 나가샤, 모딘 도 믈리시니이다.
스 軍馬(군마) 이길 물리조치샤, 모딘 도 자시니이다.
[풀이] (돌궐족이) 당나라 서울의 소식을 알고 쳐들어오므로, (당 태종이) 혼자 나아가시어, 사나운 도적(돌궐족)을 물리치셨습니다.
(나하추가) 우리 나라 동북면의 시골 군사들을 이기고 (서울로) 쳐들어오므로, (이 태조가) 혼자 나아가시어 거짓 쫓기어 도망하는 척하여 사나운 도적을 잡으셨습니다.
- 이 태조의 지략과 용맹
[배경 고사]
- 전절 : 당나라 태종 이세민이 그 형제인 건성과 원길을 죽이고 즉위하자. 돌궐족이 당나라 서울이 내분으로 허약해진 줄 알고 쳐들어왔다. 이에 당 태종이 단기(單騎)로 나아가 위세를 보이니 돌궐족이 화의를 청하였다.
- 후절 : 공민왕 때 원나라 승상 나하추가 동북면에 침입하여 시골 군사들을 괴롭혔다. 이에 이 태조가 동북면 병마사로 출전하여 단기로 돌진하였다가 거짓 패주하니 적장이 급히 쫓아오는지라, 오른편을 슬쩍 피하니 적장이 멈추지 못하고 앞질러 달렸다. 이 때 이 태조가 뒤에서 활로 적장 3명을 쏘아 죽였다.
제48장
굴허 디내샤 도기 다 도라가니 半(반) 길 노 년기 디나리가
石壁(석벽)에 올이샤 도 다 자시니 현 번 운 미 오리가.
[풀이] 구렁에 말을 지나게 하시어 도둑이 다 돌아가니, 반 길 높인들 다른 사람이 지나가겠습니까?
석벽에 말을 올리시어 도독을 다 잡으시니, 몇 번 뛰어오르게 한들 남이 오르겠습니까?
- 이 태조의 초인적 용맹
[배경 고사]
- 전절 : 금태조가 적에 쫓겨 골목에 들어 길을 잃었는데, 적이 급히 쫓는지라 높은 언덕을 대번에 뛰어 넘어가니 적이 쫓아오지 못했다.
- 후절 : 이태조가 지리산에서 왜적을 토벌할 때 왜적이 절벽 위에서 대치하거늘, 장수들이 모두 올라갈 수 없다하므로, 태조가 칼등으로 말을 쳐서 한달음으로 올라가니 군사들이 뒤쫓아 적을 섬멸하였다.
제53장
四海(사해)를 平定(평정)샤 길 우희 糧食(양식) 니저니 塞外北狄(새외 북적)인 아니 오리잇가.
四境(사경)을 開拓(개척)샤 셤 안해 도 니저니 徼外南蠻(요외 남만)인 아니 오리잇가.
[풀이] (당 태종이) 천하를 평안하게 하시어 길 가는 사람이 양식 걱정을 잊고 다니니, 북쪽 오랑캐인들 찾아와 항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태조가) 사방의 국경 지방을 개척하시어, 남쪽의 오랑캐인들 찾아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이 태조의 선정(善政)
[배경 고사]
- 전절 : 당 태종이 중국 천하를 평정하매 풍년이 들어서 여행하는 사람들이 먹을 것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좋게 되었다. 이렇게 되니 돌궐족이 와서 항복했다.
- 후절 : 이 태조가 나라를 세운 후 교화(敎化)가 널리 미쳐서 북쪽의 백성들이 편히 살게 되었고, 또 왜인이 통상을 청하매 왜구의 침입으로 고통을 받던 남해의 섬에 사는 백성들도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유구국 임금도 사신을 보내어 신(臣)이라 일켤었으며, 섬라국(태국의 옛 국토) 임금도 사신을 보내어 그 나라의 특산물을 바쳤다.
제67장
자거늘 밀므리 사리로 나거 니다.
셤 안해 자싫 제 한비 사리로 뷔어 니다.
[풀이] (원나라 백안(伯顔)의 군사가 송나라를 치려고) 전당강 가에 진을 치고 자는데, 밀물이 사흘이나 이르지 않다가 떠난 뒤에야 그 자리가 물 속에 잠기었습니다.
(이태조가) 위화도에서 묵으실 때, 큰 비가 사흘이나 계속되되, 섬이 회군한 뒤에야 온 섬이 물 속에 잠기었습니다.
- 천우신조(天佑神助)
[배경 고사]
- 전절 : 원세조(元世祖)의 중서승상(中書丞相) 백안(伯顔)이 송나라를 치려고 군사를 전당강 가에 주둔시키니, 항주(杭州) 사람이 이를 보고 곧 조수(潮水)에 잠길 것이라 생각하여 기뻐하였는데, 밀물이 사흘 동안이나 이르지 않다가 떠난 뒤에야 그 곳이 물 속에 잠기었다.
- 후절 : 이태조가 위화도에 군사를 주둔시키니, 장마비가 수일 동안이나 내렸으나 물이 불지 않더니 회군한 뒤에야 비로소 온 섬이 물 속에 잠기었다.
제68장
아니 말이샤 므를 마시니, 하히 부러 뵈시니.
한비 아니 그치샤 날므를 외오시니, 하히 부러 우릴 뵈시니.
[풀이] 강가에 진을 치는 것을 말리지 않으시고 물을 막으셨으니, 이는 하늘이 일부러 남에게 (그 기적을) 보이신 것입니다.
큰 비를 그치게 하지 않으시고, 홍수를 딴 데로 돌리셨으니, 이는 하늘이 일부러 우리에게 (기적을) 보이신 것입니다.
- 천우신조(天佑神助)
[배경 고사]
- 전절 : 원나라 승상 백안이 전당강 가에 진을 치는 것을 하늘이 말리지 않으시고, 대신 밀물을 밀려오는 것을 막으신 것은 천명이 원나라에 있다는 것을 온 천하에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 후절 : 이 태조가 위화도에 주둔하였을 때, 하늘이 큰 비가 내리는 것을 막지 않으시고 대신 홍수를 딴 데로 돌리신 것은, 이 태조가 천명을 받았음으로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제83장
君位(군위)를 보ㅣ라 큰 命(명)을 알오요리라 바 우희 金塔(금탑)이 소니.
자로 制度(제도)ㅣ 날 仁政(인정)을 맛됴리라 하 우흿 金尺(금척)이 리시니.
[풀이] 임금의 자리를 보배라고 여기기 때문에 (하늘이) 천명을 알리려고 (왕건의 꿈 속에서)바다 위에 금탑이 솟았습니다.
자로써 제도 나오므로 (하늘이 이 태조에게) 어진 정치를 맡기려고 (끔 속에서) 하늘에 있는 금척을 내리셨습니다.
- 천명에 의한 조선 창업
[배경 고사]
- 전절 : 고려 태조 왕건이 아직 임금의 자리에 오르기 전 꿈에 9층 금탑이 바다 가운데에 서 있고, 자신이 그 위에 올라가 있는 꿈을 꾸었다.
- 후절 : 이 태조가 위화도에서 회군할 때, 이씨가 나라를 얻을 것이라는 내용의 노래들이 떠돌아다니자, 모든 휘하 사람들이 이 태조에게 왕위에 오르기를 청하였으나 천명을 몰라 망설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태조의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금척(金尺)을 주면서 “공이 문무를 겸비하여 민망(民望)이 높으니 이것으로써 나라를 바로 잡으라.” 하였으므로 드디어 마음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제91장
아바님 이받 제 어마님 그리신 므를 左右(좌우)ㅣ 하 아바님 怒(노)시니.
아바님 뵈 제 어마님 여희신 므를 左右(좌우)ㅣ 쓸 아바님 일리시니.
[풀이] (당 태종이 궁중에서) 당 고조(高祖)를 모시고 잔치를 할 때, 죽은 모후(母后)를 그리워하신 눈물을 좌우가 참소하여 아버님이 성을 내시니.
(태종이 모후 산소에서 시묘하며) 아버님을 뵐 때, 어머님을 여의신 눈물을 좌우가 슬퍼하여, 아버님이 아들의 효성을 칭찬하시니.
- 태종의 효심
[배경 고사]
- 전절 : 당 태종(唐太宗)이 궁중에서 고조를 모시고 잔치를 할 때, 죽은 모후(母后)를 생각하여 눈물을 흘리니, 고조의 총희(寵姬)들이 저희들을 미워하며 우는 것이라고 참소하여, 고조가 아들에게 성을 냈다.
- 후절 : 태종(太宗)-이방원이 모후에게 신의왕후(神懿王后)의 상(喪)을 입으실 때에, 능(陵) 앞에 여막(廬幕)을 짓고 있다가 태조를 뵈러 서울로 향할 때면 길에서 눈물을 그치지 않았다. 태조저(太祖邸)에 이르러서도 느낀 바가 있으면 통곡하니, 좌우가 다 슬퍼하였고, 태조는 항상 그 효성을 칭찬하였다.
제102장
시름 업스샤 이 지븨 자러 시니 하히 뮈우시니.
모맷 病(병) 업스샤 뎌 지븨 가려 시니 하히 病(병)을 리오시니.
[풀이] 근심하는 마음이 없으시지마는 이 집에서 유숙(留宿)하려 하시니, 하늘이 (한 고조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시니.
몸에 병이 없으시지마는 저 집에 (방간의 초대에) 가려 하시니, 하늘이 (방원에게) 병을 내리시도다.
- 천우신조(天佑神助)
[배경 고사]
- 전절 : 흉노(匈奴)가 마읍(馬邑)에 침입하자 한신(韓信)도 이에 가담하였다. 한 고조가 이를 토벌하다 평성(平城)에서 포위되었다. 7일 만에 조(趙)나라로 돌아와 조왕(趙王) 장오(張敖)를 핍박하자, 조나라 재상 관고(貫高)와 조오(趙午) 등이 노하여 고조를 해하려 하였다. 고조가 한신의 잔당을 파하고 조나라 고을인 백인(柏人)에서 유하려다가, 지명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柏人을 迫人으로 고치면 사람에게 핍박을 당한다는 뜻) 자지 않고 갔기 때문에 조왕(趙王)의 해를 면하였다. 즉 고조를 헤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하늘이 그 마음을 움직였다는 뜻이다.
- 후절 : 정도전(鄭道傳)의 난(‘방원의 난’이라고도 함)을 평정한 뒤, 논공행상에 있어 불평을 가진 박포(朴苞)가 방간(芳幹)을 충동하여 태종을 제거하려고 했다. 이에, 방간이 태종을 해하려고 자기 집으로 청하였으나, 태종은 갑자기 병이 나서 가지 못하였기 때문에 화를 면하였다. 태종을 구하기 위하여 갑자기 태종에게 병을 내렸다는 뜻이다.
제109장
리 病(병)이 기퍼 山脊(산척)에 몯 오거늘, 君子(군자) 그리샤 金罍(금뢰)ㄹ 브려 시니.
리 사 마자 馬廐(마구)에 드러오나, 聖宗(성종) 뫼셔 九泉(구천)에 가려 시니.
[풀이] 말이 병이 깊어서 산마루에 못 오르므로 남편을 그리워하시며 금으로 만든 술잔에 술을 가득 부어 시름을 잊으려 하셨습니다.
말이 화살을 맞아 마구간에 들어오거늘, 남편(태종)을 모시고 함께 죽어 황천에 가려 하셨습니다.
- 원경 왕후의 덕행
[배경 고사]
- 전절 : 주 문왕의 후비가 남편을 따라가고 싶었으나 말이 병이 나서 갈 수가 없었으므로, 다음과 같은 노래를 지어 불렸다. “저 산에 저 언덕에 올라보려 하나 / 내 말이 이미 병들었도다. / 금잔에 술이나 가득 부어서 / 길이 이 시름 잊어볼까 하노라.”
- 후절 : 방간의 난 때 군사들이 타고 나갔던, 태종 저택의 말이 화살을 맞은 채 돌아오므로, 원경 왕후는 태종이 싸움에 패한 것으로 생각하고 전장에 나가서 태종과 같이 죽으려 하였다 이에 여러 사람들이 말려도 듣지 않고 나아가다가 승전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비로소 돌아왔다.
제110장
四祖(사조)ㅣ 便安(편안)히 몯겨샤 현 고 올마시뇨 몃 間(간)ㄷ 지븨 사시리고.
九重(구중)에 드르샤 太平(태평)을 누리 제 이 들 닛디 마쇼셔.
[풀이]
사조(목조, 익조, 도조, 환조)께서 편안히 못 계시어 몇 곳을 이주하셨겠는가? 몇 간이나 되는 집에서 사셨겠는가? (그 고초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황후께서) 궁궐이나 드시어 태평 성대를 누리실 때에 이 뜻(조상들의 개국을 위한 고초)을 잊지 마소서.
- 잊지 말아야 할 조상의 노고
[배경 고사]
- 전절 : 목조가 전주에 살 때 지주(知州)와의 사이가 어긋나서 강원도 삼척현으로 옮아가 살게 되었다. 그러나 거기서도 못 살게 되어 바다를 건너 함길도로 옮겼다가 원나라에 귀화하여, 뒤에 다시 경흥부(慶興府) 동쪽 오동 땅에 옮아 살게 되었다. 원나라에서는 목조에게 오천호소(五千戶所) 다루하치의 벼슬을 주었는데, 우리 나라의 동북면의 민심이 모두 목조께로 돌아갔다.
- 후절 : 익조는 목조의 뒤를 이어 위덕(威德)이 날로 높아지니, 야인(野人)들이 익조를 시기하여 죽이려 하므로 익조는 경흥부 동쪽 60여 리에 있는 적도(赤道)로 피신하여 움을 파고 살다가, 후에 다시 덕원(德源)으로 돌아와 살게 되니 경흥 백성들이 좇아와서 마치 저자를 이루듯 하였다.
제116장
道上(도상)애 僵尸(강시) 보샤 寢食(침식)을 그쳐시니, 旻天之心(민천지심)에 귀 아니 디시리.
民瘼(민막) 모시면 하히 리시니, 이 들 닛디 마쇼셔.
[풀이] 길 위에 얼어 죽은 시체를 보시고 침식을 잊으셨으니, 백성을 사랑하는 어진 마음으로 어찌 그들을 돌보지 않으시리.
백성의 고충을 모르시면 하늘이 버리시나니, 이 뜻을 잊지 마소서.
- 명심해야할 애민 정신(愛民精神)
[배경 고사]
우왕 때 왜선(倭船) 500여 척이 충청도 진포에 머무르면서 경상, 충청, 전라를 침범하여 그 피해가 막심했다. 그 때 이 태조가 순찰사로 왜적으로 막으러 나아가니, 백성들의 시체가 산야(山野)에 가득한지라, 그 모양이 너무나 불쌍하여 침식을 잊고 상심했다.
제125장
千世(천세) 우희 미리 定(정)샨 漢水(한수) 北(북)에 累仁開國(누인개국)샤 卜年(복년)이 업스시니.
聖神(성신)이 니샤도 敬天勤民(경천근민)샤 더욱 구드시리다.
님금하 아쇼셔 落水(낙수)예 山行(산행) 가 이셔 하나빌 미드니가.
[풀이] 천세 전부터 미리 정하신 한양에, 어진 덕을 쌓아 나라를 여시어, 나라의 운명이 끝이 없으시니. 성스러운 임금이 이으시어도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부지런히 돌보셔야 더욱 굳으실 것입니다. 임금이시여, 아소서. 낙수에 사냥 가 있으며 할아버지를 믿었습니까?
- 경천근민(敬天勤民)의 당부
[배경 고사]
<도선(道詵)의 비결서(秘訣書)> 신라 때의 중 도선의 비결서에 의하면, 삼각산의 남쪽, 곧 한수(漢水)의 북쪽에 도읍을 정하면 나라가 흥하리라고 하였다. ‘한수북(漢水北)’은 도선의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水之北曰陽(강의 북쪽을 陽이라 한다.)’이라 하였으니, ‘한수북(漢水北)’은 ‘한양’을 가리킨다.
<하(夏)나라 태강왕> 하나라 태강(太康)이 임금으로 있으면서 놀음에 빠져 그 덕을 잃으니 백성이 모두 다른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도 할아버지인 우왕(禹王)의 덕만 믿고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하더니, 마침내는 사냥을 절도(節度) 없이 해서 뤄수이(洛水) 밖으로 사냥간 지 백 날이 넘어도 돌아오지 않으므로, 궁(窮)나라 후(后) 예(羿)가 백성을 위하여 참을 수 없다 하여 태강을 허베이(河北)에 돌아오지 못하게 하고, 폐위시켜 버렸다.
▣ 핵심 정리
- 연대 : 완성 세종27년(1445년) / 주해 및 간행 세종 31년(1449년)
- 갈래 : 악장, 서사시
- 형식 : 2절 4구의 대구 형식(1, 125장 제외)
- 구성 : 서사, 본사, 결사의 3단 구성
① 제1~2장 - 개국송(開國訟)
② 제3장~109장 - 사적찬(事蹟讚)
③ 제110장~125장 - 계왕훈(戒王訓)
- 성격 : 송축가
- 체재 : 전 10권 5책, 125장의 연장체
- 의의 : 한글로 된 최초의 장편 서사시 / 15세기 중세 국어의 귀중한 자료
- 창작 동기
① 외적 동기 : 훈민정음의 시험과 국자(國字)의 권위 부여
② 내적 동기 : 조선 건국의 정당성 천명과 조선 왕조의 원대한 포부 표출 및 후대 왕에 대한 권계
- 주제 : 조선 창업의 정당성
▣ 작품의 이해와 감상
훈민정음으로 쓰여진 작품으로 조선 건국에 대한 송축가이며 일종의 영웅 서사시이다. 전체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제1~2장은 서가(序歌)로서, 조선 왕조의 창업이 천복이며 필연적이라는 것과 왕조의 영원한 번창을 송축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고, 제3~109장은 본가(本歌)로서, 목조(穆祖)․익조(翼祖)․도조(度祖)․환조(桓祖)․태조(太祖)․태종(太宗) 등 육조의 사적을 찬양하고 있으며, 제110~ 125장은 결가(結歌)로서, 후대 왕에 대하여 권계(勸戒)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노래의 창작 동기는 첫째, 역성 혁명(易姓革命)이 천명임을 밝혀 민심을 귀순시킬 필요가 있었으며, 둘째는 후대 왕에 대한 권계(勸誡)의 목적, 그리고 셋째는 훈민정음의 실용성에 대한 시험과 우리글에 대해 존엄성 및 권위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전 125장 중 제1장과 제125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2절 4구로 되어 있는데, 제3장~제109장까지는 전절은 중국 역대 제왕의 사적을, 후절은 조선 왕조 6조(六祖)의 사적을 찬양하는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다.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과 함께 악장 문학의 대표적 작품이며 세종 당시의 국어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장편 서사시이다.
▣ 형성 평가
1. 제2장이 다른 연에 비해 특히 우수하다고 생각되는 점 두 가지만 지적해 보라.
[정답]
①한자어가 전혀 없이 우리말로 되어 있음
② 전체가 적절한 비유로 되어 있어 문학성이 높음
2. 제125장의 ‘님금’이 후대의 임금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하나비’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지 말해 보라.
[정답] 6조(목조, 익조, 도조, 환조, 태조, 태종)
3. 이 노래의 내용 가운데 오늘날의 시각으로 볼 테, 비판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은 무엇인지 설명해 보라.
[정답] 육조의 사적이 중국의 성군들과 흡사하다는 것을 강조하여 건국의 정당성을 획득하려 한 것은 사대 사상의 발로로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