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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유대교(Judaism)
유대교는 유대인의 종교이다. 10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다. 2007년 현재 1400만여명의 신도가 있다.
과거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과 나치의 탄압을 받았다. 크게 율법의 문자적 해석을 주장하는 보수파와 자유로운 해석을 주장하는 개혁파로 나뉜다. 예수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 열심당으로 나뉘어 있었다.
유대교는 하나님의 임재를 인간행위와 역사에서 경험한다고 주장하는 유일신교이다. 유대교는 광의로는 아브라함·이삭, 야곱 등 족장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4,000여 년에 걸친 유대 민족의 종교현상 전부를 뜻하며, 협의로는 BC 5세기 유대 민족이 바빌론 유수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와 유대교를 재건한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2,400여 년 동안 믿어온 신앙체계를 가리킨다.
바벨론 포로와 유대교 재건 시대(BC 538~333)
유다 왕국이 바벨론 제국에게 패망하는 과정에서 엘리트 유대인들은 3차례에 걸쳐(BC 597, 587, 582)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노예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BC 539년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 황제가 바벨론을멸망시키고 이듬해 칙령을 내려, 바벨론에 살던 유대인들에게 귀향을 허락하고 성전재건을 명했다(에 1:2-4, 6:3-5). 세스바살과 그의 조카 스룹바벨이 유대 총독으로 임명되어, 동족들을 데리고 귀향해서 성전재건에 진력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사마리아인들과 귀향하지 않고 눌러 살던 유대인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은데다가, 귀향자들은 너무 곤궁해 생계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거의 한 세대가 지나 스룹바벨은 다리우스 황제의 지원을 받아 BC 515년 3월 드디어 성전을 완공하고 다시 제사를 드릴 수 있었다.
전통적인 신앙과 의식을 철저하게 고수하는 유대교 분파로서, 정통파 유대교는 개혁파 유대교가 견지하고 있는 입장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개혁파 유대교는 성서와 기타 성스러운 유대교 저서는 영구적 가치가 있는 도덕적 원칙은 물론 율법을 역사적·문화적인 상황에 따라 적용·해석한 것도 담고 있는데, 후자는 현 시대에서는 폐기해도 정당하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러므로 정통파 유대교에서 기록된 율법인 토라([구약성서] 처음에 나오는 5권의 책)와 구전율법([미슈나]에 성문화되어 있고 [탈무드]에 해석되어 있음)은 여전히 종교적으로 준수해야 할 유일한 규범이다.
정통파 유대교는 이러한 규범을 수정하라는 현대의 압박에 끈질기게 저항해왔으며, 매일 드리는 예배와 음식에 관한 규정, 전통적인 기도와 의식들, 규칙적이고 철저한 토라 연구, 회당에서 남녀가 따로 앉는 것 같은 관행을 철저하게 지켜왔다. 또한 안식일과 종교 절기를 엄격하게 지킬 것을 명령하며 공동 예배시에 악기 사용을 금한다.
외형상의 경직성에도 불구하고 정통파 유대교는 상당한 다양성을 지닌다. 삼손 라파엘 히르시의 지도 아래 19세기말에 발전한 신정통파는 현대적인 의상의 착용, 설교시의 일상어 사용, 현대 문화에 대한 보다 긍정적인 견해를 허용한다.
정통파 유대교, 보수파 유대교, 개혁파 유대교를 위시한 모든 유대교 분파는 유대적 신앙의 추종자임을 자처하고 상대방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통 랍비들이 비정통적인 결혼·이혼·개종이 유대율법의 규정에 어긋난다는 이유를 들어 그 적법성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여러 정통파 회당이 연합해서 미국 정통파 유대교 연맹을 결성했다. 대부분의 정통파 랍비가 가입한 단체들로는 미국 랍비 협의회. 북아메리카 정통파 랍비 연맹, 아메리카 랍비 연맹이 있다. 뉴욕 시에 있는 예시바대학교는 랍비 학문을 가르치는 신학교와 일반 학과로 구성되어 있으며, 미국에서 정통파 유대교 중심지 중 하나이다. 이스라엘에서 정통주의는 유대교의 공식적인 형태이며, 이스라엘 최고 랍비 회의를 통해서 상당한 권력과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유대인이란 어떤 사람인가? 유대교란 국민성, 또는 일개 종교, 아니면 그 둘을 다 말하는 것인가? 유대 사람으로 태어나 유대 사람으로부터 거절당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우리는 유대인들에게 무어라고 말해야 좋을까? 위의 그러한 질문들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유대교 신봉자들에게 관하여 묻게 되는 질문인 것이다. 유대인들을 처음에는 "히브리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이 말은 그들의 조상 "에벨(Eber)"이란 말에서 나온 이름이다(창10:21). 노아의 아들 셈이란 이름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Shem 으로부터 "Semitic" 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유대인과 아랍인을 포함하는 일개 집단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 유대인의 짧은 역사
유대인들에게(물론 아랍인들에게도) 가장 중요한 조상중 한 사람은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은 셈의 자손(창11:10-28)이며 기원전 약 2,000년경에 살았던 한 히브리인이었다. 성서에는 아브라함과 하나님과의 사이에 한 언약이 설명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장차 가나안 땅(창17:8)을 상속받게 될 한 큰 민족(창12:2)의 아버지로 만들 것을 약속하셨다. 아브라함의 손자 이스라엘(야곱으로 알려진)에게는 열두 아들이 있었다. 이들 열두 아들들은 열두 민족을 이루었다. 그 국민들과 함께 그들은 "이스라엘의 자녀들" 또는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알리워 졌었다. 애굽에서 종으로 수백년간 생활한 후 그들은 모세에 의하여 자유를 얻게 되었다. 모세는 그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데리고 왔는데 후에 그 곳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다윗이 왕(1000 B.C) 이었을 때까지, 이스라엘은 확고히 이루어진 한 큰 국가였다. 다윗왕은 수도 예루살렘에 아름다운 성전의 중심지를 건설하고자 계획했다. 다윗왕의 아들 솔로몬이 그 성전을 완성함으로써 옛 세계의 기적중의 하나를 이루게 되었다. 솔로몬왕이 죽게 되자(922 B.C) 이스라엘 나라는 큰 내란으로 분열되었다. 그로 인하여 마침내 국가가 둘로 나뉘게 되어 북방은 "이스라엘", 남방은 "유대"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스라엘에는 장기간 국민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멀리하도록 했던 아주 부패한 왕들이 계속되었다. 기원전 721년에, 앗시리아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휩쓸었기 때문에 국민들은 분산되었던 것이다. 유대나라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왕들이 더러 있어서 좀 오랫동안 지속되었었다. 그러나 바빌로니아인들이 유대를 정복하여 기원전 586년에 성전은 파괴되고 말았다. 메디아인(메데)들과 페르샤인들이 바빌로니아를 정복했을 때 그들은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오늘날 유대인으로 알려진 사람들은 성전을 다시 짓기 시작했다.
유대인들의 종교인 유대교는 토라(Torah), 또는 율법에 굳게 기초를 두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이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그 율법을 순종하는 백성은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이 율법 후에 선지자들이 왔다. 이들 "하나님의 대언자들"은 공의와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선지자들은 사소한 법이나 규칙보다는 공의와 사랑을 더 중요시했던 것이다. 미가는 성서에서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6:8)고 했다. 이러한 고상한 행위는 유대인의 사고방식의 근본으로 아직도 간주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자선단체들이 유대인의 후원과 지도를 받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기원후(서기) 70년 로마인이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할 때까지 그들 국토에 남아 있었다. 그 이후에 유대인들은 그들의 범죄에 대한 희생물을 제공할 장소를 얻지 못하였다. 이 엄청난 상실후에, 그들은 살아있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공동사회를 건설하고 성전을 지어 세계 도처로 분산하였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여러번 핍박을 받아 왔으며, 그 중 가장 심했던 예는 6백만의 유대인이 살해됐던 나치스의 대학살이었다. 1948년에 유대인들은 다시 이스라엘을 창건했다. 이 새 국가에는 세계 100여개 국가로부터 온 이민들로 가득차 있었다. 1967년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점령했는데, 이는 기원전 586년 이후 최초로 그들이 자유로운 국민으로서 갖게된 일이다.
* 유대인의 풍습과 율법
유대교는 오늘날 세 종류로 존재하고 있다. 정통 유대교, 보수 유대교, 그리고 개혁 유대교이다. 정통 유대교인은 율법에 적힌 글대로 따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토라 또는 모세에 의해 쓰여진 율법을 주의깊게 연구하고 있다. 이 토라는 실제로 성서의 처음 다섯권의 책을 말하며, 정통 유대교인들에게 이것은 생활의 규율이 되는 것이다. 정통 유대교인들은 토라만을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수세기 동안 추가되어온 다른 가르침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중 어떤 가르침은 기원후 200년쯤에 "Mishnah" 란 책에 썼는데, 그것은 약 1,000 페이지 정도의 책이었으며, "Halakha" 혹은 "행할 길(the way to walk)" 이라고 알려져 있는 일상생활에 관한 교훈들로 주로 구성되어 있다. 기원후 500년 경에 유대교의 법전인 "탈무드"가 편찬되었는데, 약 36권으로 되어 있는 책이다. 그것은 Mishnah를 기초로 하여 편찬되었지만 특히 "Haggadah" 라고 하는 유명한 이야기들도 포함되어 있다.
Torah, Mishnah, Talmud의 세 책이야말로 정통 유대교인들의 생활의 지침이 되는 책이다. 그 예로써 식사법을 보자. Torah 혹은 모세의 율법은 돼지고기나 생선을 먹지 못하도록 금하고 있다. 고기를 담은 접시에는 낙농식품을 담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식용가축들은 특수한 방법으로 도살해서 고기속에 피가 거의 없도록 해야했다. 정통 유대교인은 안식일에는 일이나 여행도 안하며, 전화를 걸지도 않으며, 글도 쓰지 않고, 돈을 만지거나, 사진을 찍지도 않는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제한하는 것이 있다.
보수 유대교인은 Torah 에 대하여 좀 관대하게 해석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율법을 그들은 대단히 중대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보수 유대교인은 히브리언어와 유대교의 전통을 살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한편 개혁 유대교인은 정통 유대교와는 전혀 거리가 먼 것이다. 그들은 유대교 자체가 의식보다 중요하다는 원리를 따르고 있다. 대부분의 개혁 유대교인들은 식사법이나, 또는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일과 같은 율법을 무시하고 있다.
그러나 정통, 보수, 개혁 어느 것을 막론하고 모든 유대인들은 안식일과 성일은 꼭지켜야 된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일치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속담이 있다. 즉, "이스라엘이 안식일을 지켰다는 것 보다는 안식일이 이스라엘을 지켰다"라는 속담이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로 시작해서 토요일 일몰까지 계속된다. 신앙이 아주 깊은 유대인 가정에서는 가족이 같이 있는 곳에서 부인이 전통적인 촛불에 불을 켜고 다음과 같은 축도를 드린다. "우리 주 되시며 이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우리를 깨끗이 해주시고 안식일에 촛불을 켤 수 있도록 명을 주신 당신께 축복을 드립니다." 그 다음 아버지가 축배를 들면, 전 가족이 조금씩 그 술을 맛보며, 그 후에 안식일의 빵을 자르게 된다. 안식일의 정찬이 끝나게 되면, 보수 유대교인과 개혁 유대교인은 성전으로 간다. 정통 유대교인의 주요 예배는 토요일 아침에 있으며, 그들과 보수 유대교인들의 대다수는 토요일 오후에도 다른 예배에 참석한다. 유대교의 가장 성스러운 날은 Rosh Hashana 라고 하는 유대 신정이며 9월이나 10월에 축하토록 하는 날과 Yom Kippur 라는 속죄일이다. 이 두 날은 회개와 영혼 탐구를 하기 위해 10일 간격으로 돌아온다. 다른 중요한 때는 유월절이다. 유월절은 기독교인들이 부활절을 맞게되는 때와 비슷한 때에 맞게 된다. 유월절에 유대교인 가정의 유월절은 가장 어린 아이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되는 데 그 질문은, "왜 이 밤은 다른 밤하고 달라요?" 라는 것이다. "우리가 애굽의 바로왕에게 노예로 되어 있을 때 우리의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힘센 팔로 그곳에서부터 인도하여 주신거다"라고 가족중의 연장자가 대답해 준다. 그리하여 기도와 특별한 음식과 그리고 아동들을 위한 게임을 비롯한 옛 의식과 축하가 시작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들 유대교인들과 공통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맨 먼저, 우리는 구약성서와 그것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같은 하나님을 믿고 있으며, 바로 그 분은 성스럽고, 의롭고, 순결하며, 불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양쪽 신앙은 기꺼이 선언하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4-5)고 하는 것이다.
성서의 도의적 윤리적 교리는 유대교와 기독교인의 전통의 일부이다. 양쪽 다 율법을,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아직도 창조의 주되시는 단 한분의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유대교와 기독교간에는 유사점이 있는데 이는 하나님을 숭배할 필요성과 가족의 중요성,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 등등이다.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한 위대한 선지자로 보며 그의 교훈이 훌륭하다고 말하는 정도로만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있다.
* 예수 그리스도 관(觀) : 커다란 차이점
유대교와 기독교를 분리시키는 큰 요건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냐 하는 질문에 있다. 예수가 지상에 계셨을 때부터 유대교인들과 기독교인들은 분리되고 있었다. 그 당시에도 유대교인들은 메시야(기름부음 받은 자) 또는 그리스도를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기억해야 한다. 메시야는 구약성서의 선지자들이 예언하기를 그의 백성을 그들의 죄로부터 속량하실 분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때까지 전통이나 사소하고 율법적인 성서의 해석이 원죄와 인간의 개인적인 구원의 필요성에 있어서 시시하게 이야기되어 왔다. 그 결과로 많은 유대인들은 자기 나라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이 증오하고 있던 로마인들을 축출할 수 있고 이스라엘 국가의 옛 영광을 재건할 수 있는 다윗과 같은 위대한 왕을 찾고 있었다. 우리가 이러한 것을 깨닫게 될 때, 왜 많은 사람들이 갈릴리의 겸손한 예수님에 의해 실망 당하게 되었는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라고 주장했다. 어느 날 예수님은 사마리아의 한 우물가에서 한 여인과 만나게 되었을 때, 어떻게 그녀의 영적인 갈증을 만족하게 채울 수 있는가에 대하여 설명하셨다. 죄가 많은 그 여인 역시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가 바로 약속받은 그 메시야라고 말씀하셨다. 그 여인은 그를 믿고 구원을 받게 되었다(여4:7-26)
예수님이 메시야이며 그리스도이신 것을 신약 여러 곳에 기록하고 있다(마16:16,26:63-65, 눅24:26, 요8:28). 예수님이 메시야라고 하는 기독교인의 믿음은 구약성서의 선지자들의 예언을 예수께서 이행하셨음으로 그 확고한 증거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예언을 완전히 수행하셨다 하는 것은 그의 주장이 진실됨을 우리에게 증명해 주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다음의 몇가지 실례를 보자. 헤롯왕이 메시야를 발견한 후 죽이고자 했을 때 그는 유대 성직자들과 학자들에게 메시야가 출생할 장소가 어디냐고 물었던 것이다. 그 사람들은 미가의 예언(마5:1-3)을 기억하고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을 알고 있었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사야서 7장 14절과 9장 6절에 쓰기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마태는 마태1:23에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의 탄생에 있어서 이루어진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 안에,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셨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화평의 왕자이시다. 이러한 모든 명칭은 하늘로부터 오신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는 아버지에 의해 우리에게 오신바 되었다! 그 예수는 인류에게 구원을 주시고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1:21). 스가랴는 왕은 전쟁을 좋아하는 정복자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겸손하게 나귀를 타고 오실 것이라고 예언했다(슥9:9). 우리가 오늘날 종려주일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날에 예수는 바로 그와같은 방법으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오셨다. 왜 오셨는가?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마21:4)
* 이사야 53장의 고난당하는 종
그러나 이러한 예언적인 구절중의 가장 중대한 것은 이사야서에 기록되어 있다. 49장에서 시작하여, 이사야는 자기 백성들을 죄로부터 구속하기 위하여 고통을 당하게 될 메시야왕 즉, 하나님의 "종"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사야 53장을 보면 그 종은 멸시를 받을 것이며, 거절당할 것이며, 고난을 많이 겪을 것이며, 비통한 일로 가득차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다(3). 얼마나 이것은 세상 인간을 구속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완전하게 묘사한 것인가! 그러나 그는 특히 자기 백성들에 의해 거절당했던 것이다(요1:1-12). 이사야는 또한 메시야의 대속적인 사업을 설명하고 있다. 인류의 죄로 인하여 메시야가 형벌을 대신 받는 것에 관하여도 설명하고 있다(사53:4-6). 베드로도 벧전2:24-25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을 위해 죽으셨고 그의 고난당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고 가르치고 있다. 마지막으로 메시야가 어떻게 돌아가실 것인가도 설명해 주고 있다. 복음서를 보면, 이러한 여러 가지 예언들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다(사53:7-9, 눅23:32-33, 마27:57-60).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도 구약성서에 또한 다음과 같이 예언되어 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시16:10).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베드로는 이 예언을 그의 최초의 설교에서 인용했다(행2L27-31). 많은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보았었다. 그들은 구약 성서에서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알았다. 이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하신 말씀을 기억했다. "또 이르시내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대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눅24:44-47)
그러면 기독교인과 유대교인과의 차이는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예수에 대한 질문이다. 예수 스스로가 주장하신 대로 그는 메시야였을까, 아니면 거짓말쟁이였을까? 이 문제를 논쟁으로 해결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각 사람이(유대인이거나 이방인이거나 간에) 예수를 주의깊게 보아 그 질문에 답변해야 될 것이다. 우리는 예수를 구약성서에서 예언한 것처럼 메시야로서, 구세주로서, 그리고 주님으로서 받아들여야 되겠는가? 그를 믿기로 하는 사람은 누구를 불문하고 그는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계신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로마서10:12)
**기독교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 하나님에 대하여
◎ 기독교인 : 한 하나님이 성서에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삼위일체로 나타내지고 있다. 신의 한 본질안에 동일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신 세 인격이 함께 있다.
◎ 유대교인 :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주님 하나님, 여호와는 한 분이시다-쉐마
* 죄론
◎ 기독교인 : 인간은 아담 안에서 타락했으며, 죄가운데서 태어난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죄 즉, 교만, 능동적이거나 수동적인 형태로 된 하나님께 대한 독자적인 반항같은 것으로 인하여 심판받는다.
◎ 유대교인 : 인간은 원죄를 갖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선하게 태어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선악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자유롭게 태어났다. 각 사람은 자신에 대한 책임을 갖고 있다.
* 구원관
◎ 기독교인 :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에서의 대속적인 죽음을 통해서 구원을 얻는다.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 유대교인 : 유대인이든 아니든 어느 사람이든지 구원은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을 믿고 또 도덕적인 생활을 함으로써 얻게 된다. 유대교는 내세를 믿는 듯 하나 그러나 현세에서의 윤리적 도덕적 행동을 강조하는 것만큼 내세를 위한 준비에 관하여는 강조하지 않는다.
* 예수 그리스도
◎ 기독교인 : 그리스도은 하나님의 독생자로 이사야 53장에서 예언한 대로 메시야이며 그는 사람인 동시에 하나님이시다. 그는 전혀 죄가 없으셨으며 모든 인류를 죄에서 구속하기 위해 돌아가셨다.
◎ 유대교인 : 예수를 훌륭한 윤리 선생으로 믿고 있는 유대인들도 있으나 그들은 그를 메시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데 그 이유는 예수는 이 세상에 지속되는 화평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메시야는 사람 개개인을 구원하는 분이 아니고, 이스라엘 민족을 압박에서 구해내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다.
텔레비전 퀴즈 쇼를 위한 좋은 질문이 여기에 있다. "주요한 세계의 종교 중에서 가장 역사가 짧지만, 다른 어느 지방에서보다 아프리카에서 개종자가 많이 생기는 종교는 어느 종교인가?" 그것은 기독교가 아니고 이슬람교이다. 그것은 아시아, 구라파 및 아프리카 대륙의 32개 국가 내에 4억 5천만의 신봉자를 갖고 있다. 이슬람교는 종종 회교(Mohammedanism)라고 잘못 부르기도 하는 종교에 대한 올바른 이름이다. "이슬람(Islam)"이란 말은 순종이란 뜻이며 이 종교의 창시자인 마호멧의 신인 알라(Allah)에게 대한 순종을 뜻하는 것이다. 신봉자들은 그들 자신을 므슬림(Muslims) 또는 모슬렘(Moslems)이라 부르며, 이는 "복종하는 자들"이란 뜻이다.
현황 : 유대인 총수 1천만 2백만 명에 대하여 90%가 넘는 11,303,050명의 교도
1. 유대교의 발생과 발전
(1)여호와 종교의 창설자 모세(1,200 B.C.)
창설자는 모세다. 그는 팔레스틴에 흉년으로 인하여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의 후예이다. 그는 나일강 갈대밭에 버려졌으나 애급 공주의 구출로 왕궁에서 길러지게 된다. 그의 나이 40세에 궁중 생활을 버리고 미디안 광야로 망명하여 거기서 40년간 생활을 하다 여호와 신의 부름을 받고 동복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킨다. 출애급한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에서 40년간 기도하며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중심 하여 유대교의 경전의 핵심이 되는 법전을 받았다고 한다.
(2)가나안 입주로부터 왕국의 건설까지(1200-1030 B.C.)
창설자인 모세는 가나안 입주를 보지 못하고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 의해 이스라엘족의 가나안 입주가 가능하게 된다. 입주 후 그들은 목축 생활에서 비교적 발달된 농경 생활과 좀더 진보된 문화적 생활에 접함에 따라 유일신 사상에서 떠나 여호와 경배와 바알신 숭배를 동시에 하게 된다.
(3) 왕국의 건설로 포로 시기까지(1030-586 B.C.)
사사 시대를 지나 사울을 왕으로 추대하므로 사사 시대의 최후를 장식하는 동시에 예언자로서 최초의 인물인 사무엘과 그의 영도 하에 있는 예언자군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사무엘 시대에 설립된 유다왕국은 사울, 다윗왕을 거쳐 솔로몬 왕시대에 불행히도 남북 왕국으로 갈라져(933B.C.) 북왕국을 이스라엘, 남왕국을 유대라 하여 수 삼세 기를 계속 하다가 북왕국 이스라엘은 기원전 721년에 앗수르에의해 멸망하고, 남왕국은 기원전 586년에 신흥 바벨론에 의하여 망하였다. 최초의 문서 예언자는 아모스로 기원전 8세기에 남국 유대에서 출생하였으나 주로 북왕국에서 예언하였다. 아모스의 후배인 호세아는 기원전 746-735년경 이스라엘에서 예언했으며, 이사야는 유다에서 740-700까지 40년간 수도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예언한 예언자의 거성이다. 이사야와 거의 동시대 즉, 유다 열왕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시대에 모라셋 사람 미가는주로 북왕국에서 그 수도 사마리아의 멸망에 관하여 예언하였다. 북국의 멸망 후 남국 유다는 스바냐, 나훔, 하박국등이 예언하였다. 유다국이 기원전 596년에 바벨론에 정복당하고 많은 사람이 포로로 잡혀가기 전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의 소년 시절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언하였다.
(4)포로 생활 중의 예언자의 활동(586-539 B.C.)
에스겔은 기원전 593년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예언자가 되었고 597년에 바벨론에 잡혀가 거기서 포로 된 유대인들에게 예언하였다. 에스겔과 함께 포로 생활 중에 활동한 예언자를 제2이사야라 한다.
(5) 율법 종교의 성립(538-400 B.C.)
기원전 537년 신흥 바샤국의 고레스왕에 의하여 유대 포로들이 해방된 후 유대교는 점차로 율법과 제사 종교로 변모되었다. 이 율법주의 운동의 중심은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등에 나타난 세밀한 규정이다.
(6)계시 문학 운동(400 B.C - 100 A.D.)
이 운동은 강대한 이민족의 정복과 압박을 당하되 자력으로 이를 벗어날 수 없는 그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호소하는 생각에서 시작된 운동이다.
(7)시내곡(회당, Synagogue)의 발생
이것의 발생은 유대인의 포로 생활 중 종교 생활을 계속할 필요에서였다고 본다.
(8)오늘의 유대교
오늘의 유대교는 세파로 나뉘는데, 정통파로서 재래의 유대교의 율법을 고수하는 파이며, 제2는 자유 파로서 현대인에게 부적당한 옛 의식과 조문을 포기하고 이를 현대인들에게 적응하려는 혁신파이고, 셋째는 위 둘의 중간적 태도이다.
2. 성문학의 발생
유대교의 경전이 비로소 생기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9세기경이었다. 이를 2세기에 편집하여 한 권으로 만들었다.
(1)율법서인데 성경의 첫 다섯권
(2)예언서 인데 전 예언서와 후 예언서
(3)성록
(4)탈무드, 유대교의 경전은 아니다.
3. 메시야 대망의 사상
유다를 구원하고 그들의 행복과 번영을 누리게 할 것으로 믿었는데 그러한 구원자를 그들은 '메시야' 혹은 '기름 부은 자'라고 불렀다. 메시야 사상은 건전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며, 참된 의미에 있어서 메시야사상은 정치적이며, 복수 적이며,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이며, 도덕적이며, 종교적인 것이다.
4.시온주의 운동(Zionism)
이 운동은 1897년에 발생하여 1차 세계대전 이후에 더 활발해 진 운동인데 고국 복위 운동이다. 1948년 5월14일 신생 이스라엘국이 창건되었다.
5.유대교의 신조
뚜렷한 신앙 개조가 없다는 것이 특색이다. 유대교의 절대적인 신앙은 하나님의 유일성이다.
6.결 론
유대교는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종교적 집단으로서 가장 고상한 신관과 구원관을 전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종교 신봉자인 유대인은 편협한 민족사상과 배타주의와 지나친 율법주의 때문에 그들의 예언자들이 전한 숭고한 교훈과 정신을 몰각하고 그들의 혈통 가운데서 혜성처럼 나타난 위대한 인물 예수 그리스도를 멸시하고 배척했다. 그러나 유대교는 기독교에게 귀중한 유산을 주어 인류 전체에 큰 공헌을 끼쳐 줄 수 있는 종교가 되도록 선구자적 역할을 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유대인에 대한 해석이 매우 다양하다. 유대인, 이는 유대교를 신봉하는 사람을 말한다. 유대교를 단순히 하나의 종교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 용어의 참 뜻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보통 유대교 (Judaism)라 하면 이스라엘 백성(또는 유대인)의 종교, 문화, 법적인 전승 내지 문명을 총체적으로 가리키는 표현이다. 넓은 의미에서 유대인은 혈연이나 개종에 의해 [구약성서]에 나오는 히브리인들의 후손인 고대 유대 민족이 된 사람을 가리킨다.
유대민족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선택을 받았다는 선민사상을 지니고 있는 민족이다. 그들은 오래 전에 나라를 잃고 유랑생활을 하면서 혈맥을 유지해 왔다. 그러다가 지금으로부터 55년 전에 그들은 메마른 사막 위에 겨우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건설할 수 있었다. 저들은 그들의 독특한 예배 의식과 전통적인 종교 풍습 속에 젖어서 생활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율법을 지키는 것’을 그들의 국시로 삼아 온 이스라엘은 나라와 사회와 민족의 명맥이 국교인 유대교 속에서 이어져 내려왔다.
현재 이스라엘 총 인구 약 630만 명이며 이 가운데 유대인이 약 490만 명, 그 나머지는 아랍 족 약 110만명(모슬렘 교도 약 89만명, 기독교인 약 11만명, 기타)과 트루즈 족 약 11만명(모세의 장인을 족장으로 하며 또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민족), 그리고 네게브와 사막지방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베두인족 등이 분포를 형성하고 있다.
1. 유대교의 발생배경
(1) 발생배경
고대에 유대인은 원래 유다, 즉 유다 지파(약속의 땅을 점령한 12지파 중의 하나) 혹은 유다 왕국의(북이스라엘 왕국과 대비되는) 구성원을 의미했다. 유대는 히브리라고도 하며 이스라엘이라고도 하며 팔레스틴이라고도 한다. \"히브리\"란 명칭은 아브라함의 육대조의 이름이 \"헤베\"였는데 \"헤버의 자손\"이란 의미에서 생긴 이름이요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이 별명인데 야곱이 자손이란 의미로 이스라엘이란 이름이 생긴 것이요, \"유대\"는 이스라엘의 아들 중에 장자의 자격을 가졌다고 할 만한 유다에게서 난 이름이다. 유다는 본래 이스라엘의 장자는 아니었으나 12형제 중에 대표자 노릇을 한데서 중요한 지위를 점령하였고 또 12지파중에 가장 큰 지파였고 다윗 왕조와 같은 큰 왕조가 유다 지파에서 일어났으므로 12지파를 총칭하여 유대 민족이라고 부르기까지에 이르렀다.
애초에 히브리인(Ivrim)이라고 불린 전체 유대 민족은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때부터 바빌론 유수가 끝날 때까지(BC 538) 이스라엘 사람들(Yisreelim)로 불렸다. 유대인이라는 용어는 라틴어의 유다이우스(Judaeus)와 히브리어의 예후디(Yehd)에서 비롯된 그리스어 이우다이오스(Ioudaios)에서 나온 말이다. 예후디라는 말은 〈구약성서〉의 뒷부분에만 나오는 형용사로서 이복형제인 베냐민의 자손과 함께 유다 왕국을 이루고 있던 야곱의 넷째 아들 예후다(유다)의 후손을 가리킨다.
(2) 창시자
이스라엘 나라의 국조 이스라엘의 조부인 아브라함으로 보기도 한다. 아브라함은 조상 때에 바빌로니아 동남 지방에 살던 셈 종족이었는데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 시대에 서북편으로 올라가서 하란 지방에 살다가 아브라함이 팔레스틴으로 이주하였다. 팔레스틴은 본래 함 종족의 일 분파인 가나안인이 정주한 지방이었다. 그후에 손자 이스라엘의 시대에 애굽으로 가서 살다가 이스라엘의 7대 손 때에 큰 민족이 되어 팔레스틴으로 돌아와 나라를 세웠다. 아브라함은 기원전 2천년경이요, 팔레스틴에 돌아와 나라를 설립한 때는 1천 4백년경이었다. 전통적인 유대인은 유대교는 시내산에서 모세가 받았고, 그 이후로 변함없이 유대인들에 의해 유지된 하나의 고대종교라고 한다. 그러나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레 성전이 무너지고 포로로 잡혀가 새로운 제도로서 회당이 발전되면서 랍비 유대교의 기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유대교의 기원과 발전과정을 체계적으로 알기에는 쉽지 않다.
2. 유대교의 기본사상
유대주의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 그리고 유대인을 선택하고 그들에 게 토라를 주었다\'라로 말할 수 있다. 유대주의(Juaism)는 종교인가 아니면 윤리체계인가에 대한 질문을 했다. 왜냐하면 때때로 번역을 함에 있어서 유대주의는 윤리를 위해서 존재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투르네르 박사는 단호하게 종교이다라고 대답한다. 유대주의의 가장 근본을 이루는 성경 구절은 흔히 쉐마(shemah; 들으라)로 알려진 신명기 6:4-9, 신명기 11:13-21, 그리고 민수기 15:37-41이고 미쉬나의 처음 시작은 이 성경 구절들을 해석하기 시작함으로 구성된다. 유대인들은 오늘날도 하루에 두 번씩(아침과 저녁) 이 성구들을 암송한다.
3. 현대 유대교의 세 흐름
유대인 가운데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바리새인 격인 정통파 유대인이 있고, 개혁파 유대인, 보수파 유대인, 그리고 세속적인 유대인이 있다. 하스칼라 운동과 게토로부터의 해방을 경험한 유대교는 다양한 흐름으로 현대 세계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 정통유대교
정통파 유대인은 섭씨 35도의 폭염 아래에서도 검은 모자를 눌러 쓰고 검은 두루마기와 검은 양복에 넥타이까지 매고 다닌다. 이들은 아이들도 10여명씩 낳는다. 유대민족의 살아있는 골동품격인 사람들이다.
정통파는 다시 하레딤(Haredim)과 정통파로 나누는데 하레딤은 다시 하시딤과 진보 하레딤으로 나누어지지만 이들은 모든면에서 거의 비슷하다. 랍비문학에서 계명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하시디(hasid)라는 용어 는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인 히브리어 헤세드(hesed; 출 34:6-7), \"자비\"라는 말 에서 유래한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명예는 개인의 경건과 하나님의 형상(imitatio dei)을 의미하며 하시디의 경건은 신성한 영감과 궁극적으로 구원에 이르게 한다고 미쉬나에 언급되어 있다(Sot9:15). 하시딤의 마지막세대로 보이는 힐렐(Hillel)의 시대(주전 1세기 후반) 이후에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하시딤의 대중적인 복구운동은 18세기에 포돌리아(Podolia)에서 이스라엘 벤 엘 리에젤(Israel Ben Eliezer) 일반적으로 바알 셈토브(BA\'AL SHEM TOV)로 불리는 그에 의해서 창설되었다. 당시에 이와 유사한 집단들이 많이 있었으나 다른 집단들은 사라지거나 이스라엘 바알 셈 토브를 존경하는 집단에 흡수되었다. 이들은 독특한 의복과 귀밑머리를 기르고 있기 때문에 보는 즉시 구별할 수 있다. 이스라엘에서 유대교의 그외에는 대부분 집단은 정통파로 볼 수 있다.
정통파 유대교에서 기록된 율법인 토라([구약성서] 처음에 나오는 5권의 책)와 구전율법([미쉬나]에 성문화되어 있고 [탈무드]에 해석되어 있음)은 여전히 종교적으로 준수해야 할 유일한 규범이다. 정통파 유대교는 이러한 규범을 수정하라는 현대의 압박에 끈질기게 저항해왔으며, 매일 드리는 예배와 음식에 관한 규정, 전통적인 기도와 의식들, 규칙적이고 철저한 토라 연구, 회당에서 남녀가 따로 앉는 것 같은 관행을 철저하게 지켜왔다. 또한 안식일과 종교 절기를 엄격하게 지킬 것을 명령하며 공동 예배시에 악기 사용을 금한다.
(2) 개혁파 유대교(Reform Judaism)
유대교의 전통적인 신앙·율법·의식 중 많은 것을 수정하거나 포기함으로써 현대의 변화된 사회적·정치적·문화적 상황에 적응하려는 시도이다. 개혁파 유대인은 모든 예배의식을 현대화하여 예배를 드리는 의식이 마치 한국의 기독교의 의식과 같아서 설교도 하고 찬송도 하는 등 교인들에게 퍽 개방적인 유대교의 한 종파이다. 하시딤이 극단적인 보수주의의 입장이라면 개혁파는 극단적으로 치우친 자유주의로 생각할 수 있다.
개혁 유대교는 성서와 랍비적 기원을 가진 저서(예를 들어 〈탈무드〉)에 규정된 의식·율법·관습의 구속력에 도전함으로써 정통 유대교와 차이가 있다. 이스라엘 야콥슨(1768~1828)은 유대교 평신도로서, 1801년 브런즈윅의 제즌에 혁신적인 학교를 세웠다. 1809년 그곳에서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참가한 가운데 처음으로 개혁적인 예배를 보았다. 야콥슨의 예배의식은 히브리어가 아닌 독일어로 진행되었으며, 남녀가 함께 앉아도 되었다. 또한 오르간과 성가대가 예배에 추가되었다. 전통적으로 소년들의 성년의식인 \'바르 미츠바\' 대신 소년·소녀를 위한 견진성사를 제도화했다. 예배에서 이스라엘을 국가로 회복시켜줄 개인적인 메시아에 대한 언급은 모두 생략했다. 개혁운동 지지자들은 더 이상 그들의 머리를 가리거나 기도할 때 숄(탈릿)을 두르지 않았다. 매일의 공동예배는 취소되고 안식일에 일을 해도 괜찮았으며, 음식에 대한 율법(카슈루트)은 낡은 것으로 선포되었다.
(3) 보수파 유대교
보수파 유대인은 모든 종교의식을 잘 지키며 안식일마다 회당에 나가 예배를 드리는 경건한 사람들이다. 보수파 유대교는 전통 유대교의 본질적 내용을 보존하려는 종교운동이며, 개혁 유대교보다는 유연한 입장을 취하면서 종교관습의 현대화를 허용했다. 초기 보수주의 사상을 고취한 자카리아스 프랑켈(1801~75)은 독일에서 열린 일련의 개혁파 회의(1844~46) 이후 극단주의자들과 결별했다.
유대 종교는 유대 문화 및 민족적 정체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는 생각을 고수한 그는 종교 관습과 전통을 비본질적인 요소로 여기는 태도를 비판했다. 그는 역사 연구를 통해 구전법과 성문법의 내용들이 보다 영속적인 종교 진리의 당시대적 표현에 불과하다는 것을 밝힐 수 있으며, 이 절차를 거친 후 그 내용들을 현대적인 삶의 맥락에 맞도록 재해석할 수 있다고 이 운동은 모든 세대에 적용할 수 있는 생명력으로서 율법의 신성함을 강조한다. 정통주의에 따라 보수주의자들은 안식일의 거룩함을 주장하며, 일요일에 공중예배를 보는 것이 더 일반화된 세계에서도 가능한 한 안식일을 준수해야 한다고 고집한다. 식사 규정법도 존중하여 준수하지만 필요한 경우 수정도 가능하다.
정통파 유대교, 보수파 유대교, 개혁파 유대교를 위시한 모든 유대교 분파는 유대적 신앙의 추종자임을 자처하고 상대방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통 랍비들이 비정통적인 결혼·이혼·개종이 유대율법의 규정에 어긋난다는 이유를 들어 그 적법성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