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순 시인 시집 『하모니카 소리 들리는 원두막』 출판 추천사
문학박사 / 김인희
장규순 시인을 생각하면 영국의 낭만주의의 초석을 다져놓은 시인 윌리엄 워드워즈가 겹친다. 장 시인이 탈고한 시(詩)를 보내올 때마다 갓 태어난 생명을 대하듯 떨렸다. 시인의 시심이 생명으로 승화하여 우렁찬 울음소리를 내고 꼬물꼬물 움직였으며 진한 향기를 내뿜었다. 시인의 시를 대할 때마다 느끼는 감동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시집을 출판할 계획이라는 말을 바람결에 듣고 산실 밖에서 생명의 탄생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호흡을 가다듬었다. 드디어 시집 출판을 알리는 신호탄이 하늘에 날아올랐다. 시인은 출판을 앞두고 원고를 교정하느라 삼복더위를 옴짝달싹 못 하고 두문불출하였다. 교정을 마치고 출판사로 원고를 보낸 시인의 첫마디는 ‘시를 쓰는 것보다 교정하는 것이 더 힘들었다.’는 것이었다. 하여 시집 『하모니카 소리 들리는 원두막』은 두 번의 산고 끝에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되었다.
시인은 2011년 《서라벌문예》를 통하여 등단했다. 등단 후 한결같은 시심으로 생활하며 시를 쓰고 있다. 시인의 생활이 시로 승화되고 시가 곧 시인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필자가 서두에 워드워즈를 거론한 바와 같이 장 시인의 서정적인 시에서 주체할 수 없는 대지를 향해 비추는 초원의 빛을 느낄 수 있다. 추억 속의 장소나 일화를 시로 엮어 냈을 때 강가에 줄지어 핀 노란 수선화를 보듯 어찌할 수 없는 향수를 느낄 수 있다. 언젠가 문학회 행사에서 장 시인을 만나 담소를 나누는 중에 시인을 보면 워드워즈의 결이 느껴진다고 했을 때 그의 얼굴에 번지는 나르시시즘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시인이 한때 워드워즈에 심취했었다고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했던 것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마부위침(磨斧爲針)이란 말이 있다.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문자의 의미대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룰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시인을 생각할 때마다 마부위침이라는 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시인은 바쁜 생활을 핑계하지 않고 시를 쓰는 일에 성실했다. 비록 삶이 고단하고 산을 넘어야 하는 일이 놓이더라도 시를 쓰는 일을 미루지 않았다. 오히려 콧노래 부르면서 책상에 앉아 백지 위에 자음과 모음을 조탁하면서 고단함을 잊었고 산을 넘는 고난의 여정에 희열을 느꼈다. 시인은 뼛속까지 시인이요 시를 쓸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언젠가부터 평범한 일상이 기적처럼 여겨지고 있다. 평범한 가정의 모습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문을 열고 시인의 가정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시인은 사랑하는 아내와 어여쁜 두 딸이 있는 가장이었다. 시인은 시를 사랑하듯 아내를 사랑하고 시를 품듯 두 딸을 품고 비바람에도 끄떡없도록 그 자신이 철옹성이 되어 가정을 수호했다. 시인이 각계각층에서 인정받는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시인이 위풍당당하게 행보하는 든든한 지지대가 화목한 가정이었다는 것을 두 번 말할 필요 없다고 역설한다.
부여 궁남지 서동연꽃축제 시화전에 시인의 작품이 전시된 적이 있었다. 시인이 부인과 부여를 방문하여 궁남지 연꽃을 보고 싶다고 했다. 시인 부부를 만나기로 한 날에 폭우가 쏟아졌다. 시인 부부와 우산을 들고 시화전 장소로 갔을 때 시인의 눈빛이 빛나는 것을 발견했다. 시인 부부가 시화 액자를 보면서 한참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훈훈했다. 시인이 시를 사랑하는 마음이 필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타지에 있는 자신의 시를 보기 위하여 장대비를 뚫고 달려온 시인의 모습을 보면서 시를 사랑하는 자세를 배웠다. 그 후 장 시인은 필자에게 시인의 대명사가 되었다.
시집 『하모니카 소리 들리는 원두막』 제목을 전해 듣고 제목이 곧 시라고 느꼈다. 제목을 들었을 때 전원의 하루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야트막한 능선에 네 개의 기둥에 널빤지를 연결하여 지상에 조금 높여 지은 원두막이 하나 있다. 하루를 유영한 태양이 석양에서 자진하기 직전 절정의 몸부림으로 온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시간이었다. 원두막에서 누군가 하모니카를 불고 있었다. 그는 아마도 시인일 것이다. 시인이 하모니카로 부는 세레나데가 은은하게 전원을 감싸면 태양은 미련 없이 자진하고 시나브로 땅거미가 내려오고 밤하늘에 별이 하나씩 전율하며 빛날 것이다. 원두막 아래 덩굴에 매달린 수박이며 참외는 달콤하게 익어갈 것이다. 시인의 시(詩)도 아름답게 피어나 대지를 온통 그 향기로 물들인다고 믿으며 행복한 상상에 빠져들었다.
필자는 종종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이 한 말 ‘우리는 인류의 일원이기 때문에 시(詩)를 읽고 쓴다. 인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 하지만 시(詩)와 미(美),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이다.’을 인용하곤 한다. 시인의 시에 깃들어 있는 아름다움과 낭만을 발견하고 살며 사랑하는 시인의 삶에 감동하고 있다.
작금 21세기 최첨단 IT 강국의 한복판에서 AI가 시를 쓰고 챗GPT가 시평을 쓰고 있다. 공모전 글을 AI가 쓰고 학위 논문을 챗GPT가 쓰는 세상이 되었다. 챗GPT 창을 열고 시어를 입력하면 단 몇 초 만에 한 편의 시가 나온다. 그야말로 도깨비방망이로 ‘금 나와라 뚝딱’한 것처럼 챗GPT로 ‘시 나와라 뚝딱’한 것과 다름없다.
언어는 인격이다!
필자는 한국어의 별 최태호 교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대로 그 말씀을 가슴에 품고 있다. 최 교수님께서는 ‘AI의 글을 짜깁기한 것은 창작이 아니다.’라고 역설했다. 필자도 누누이 글이나 강의 중에 언어는 인격이라는 말을 역설하고 있다. 장 시인의 시에 고스란히 나타난 시인의 인격을 볼 수 있어서 흡족했다. 시어를 끌어안고 몇 날 며칠 낮과 밤을 지내고 백지에 꾹꾹 눌러 시를 쓰는 시인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그 인격에 경의를 표한다.
시인에게 시를 쓰는 일이 위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인이 그대로의 모습으로 시를 쓰고 삶을 영위하기를 간절하게 기도한다. 시인의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시어에 생명을 부여하고 한 편의 시를 탈고했을 때 그 시는 세상을 향하여 아장아장 걸어 나와 세상을 시나브로 점유할 것이다. 혼탁한 세상을 맑게 정화시킬 것이며 밝은 빛을 비추어 아름답게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는다. AI는 할 수 없는 그 위대한 일을 시인이 해내리라 굳게 믿으며 거듭 장규순 시인의 첫 시집 『하모니카 소리 들리는 원두막』 출판을 축하드린다. ♠
첫댓글
글 하나하나
심혈의 공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엄숙함
장중함과 함께
이 멋진 추천사를
바로 이 대로
출판사에 전송 하겠습니다. <장규순 시인의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