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구름고래비누 작가님의 <시녀로 살아남기>의 본문을 발췌한 글입니다. 스포일러 주의※
#로맨스판타지 #서양풍 #빙의물 #역하렘 #남주찾기 #궁정로맨스 #엉뚱여주 #평범여주
이건 너무 가혹한 거 아닌가.
"왕비님, 왕비님! 정신 차리셔야 합니다!"
"한 번만 더 힘을 주세요! 왕비님!"
"왕비마마! 아기님이 숨을 쉬지 못합니다! 제발!"
처음 보는 여자가 커다란 침대 위에 누워 침대맡에 설치된 봉을 잡고 기를 쓰고, 피 칠갑이 된 침대 아랫부분을 여러 사람이 살피며 수선을 피우고 있었다.
"아스! 뭐하는 거니! 가서 뜨거운 물이라도 더 떠 와!"
패닉에 빠져 있을 시간도 없었다. 저 '아스'가 난가?
피가 잔뜩 묻은 천을 끌어안은 시녀가 날 밀쳤고, 어버버 하는 사이에 나는 시녀들 틈에 끼어 커다란 대야로 뜨거운 물을 나르고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 틈에 끼어 몇 번이나 물을 날랐을까.
빈 대야를 들고 돌아서는데 등 뒤에서 사람들의 환호가 들렸다.
"왕자 아기씨입니다, 왕비님."
"경하드립니다!"
그사이 나는 거울을 찾아보았다. 당장 내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다. 마음은 급한데 거울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아서 옆에 있던 아무 시녀를 잡고 물어봤다.
"여기 거울 없어?"
"거울? 왜?"
"얼굴이 엉망일 것 같아서."
"그러게. 머리 좀 정리해야겠다. 저쪽 쪽방에 큰 거울이 있을 거야."
고맙다고 인사하고 방 끄트머리에 있어서 눈에 잘 띄지도 않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은 화장실 비슷했는데 거기 거울이 있었다.
그 거울 속에 내가 있었다.
방밖에 있는 다른 시녀들과 똑같은 디자인인, 절대 내 돈 주고 살 일이 없는 까맣고 소박한 드레스만 뺀다면 낯설지도 않은 나였다.
한치의 변화도 없는 나였다.
이대로 문을 다시 열고 나가면 내 방은 아니더라도 서울 어딘가의 건물에 서 있을 것만 같은 나였다.
그런 소설이 있었다.
제목은 아마 <탈출기>로 기억한다. 제목과 내용이 하나도 상관이 없는, 읽은 사람들은 왕과 남자의 티끌 하나 없이 아름다운 사랑에 감동하게 되는 뭐, 그런 흔한 소설 중 하나였다. 단 하나, 그들의 사랑에 장애가 되는 존재가 있다면 아마 왕비가 아니었을까?
그래. 그러니까 이건 아마 책 빙의인 것 같다.
내가 읽던 판타지 소설에 이런 장르도 있었지, 맞아. 그토록 바라던 이세계 진입은 내 청춘이 저물도록 오지 않았고 그 대신에 책에 빙의가 된 모양이다.
그럼 난 뭘 해야 할까. 이세계에서 영영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건 수능 성적표 나왔을 때였지 지금이 아니다.
나는 내 세계에서 살고 싶다.
"카르멘 도나. 흑마법사와의 내통 혐의로 널 체포한다."
왕은 칼을 뽑고 다시금 유모님의 몸 어딘가에 찔러 넣었다. 그쯤부터 나와 유모님은 같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던 것 같다. 뜨뜻하고 후끈한 타인의 피가 내 몸에도 튀었고 나는 진저리를 치며 뒷걸음치다 무너졌다.
"끌고 가."
온몸에서 피 비린내가 난다. 기절할 것 같다. 유모님이 정말 죄를 지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유모님께 정말 죄가 있다면 국왕이 한 일은 정당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과연 그럴까?
국왕은 내내 내게서 눈을 떼지않다가 피가 덜 닦인 손으로 내 얼굴을 잡아 휙휙 돌려보았다.
"너 이름이?"
"아, 아스입니다. 전하."
"마침 내 아들의 유모가 없어졌는데 말이야."
.
.
.
"네가 하면 되겠군."
내 몸에서 나는 피비린내에 몸서리가 쳐진다. 남의 피 때문에 나는 냄새겠지? 아직 어디도 안 다쳤지만 다음에도 그럴까?
그는 나를 마주 보며 조용히 웃었다. 달은 우리 등 뒤에 있었고 나는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카락을 다시 놓쳐 버렸다. 머리카락은 온갖 방향으로 흩어지며 내 귓가와 뺨, 그리고 미오 경의 눈썹과 얼굴을 스쳐 돌아다녔다.
테라스로 나온 후로 바람은 계속 멈추질 않았다. 미오 경이 손을 내밀어 내 이마를 쓸어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주고 한동안 머리카락이 눈을 가리지 않도록 잡아주었다. 달은 등 뒤에 있어서 나는 그의 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달이 밝나 봐요. 미오 경 눈동자 색깔이 보여요."
'저희가 그럴 사이인가요?'
전쟁터에서 창에 옆구리를 관통당했을 때도 이것보다 아프지는 않았다. 심장을 가시로 찔린 것처럼 잠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우리가 그럴사이냐고?
당연히.
세사르 카직이 끝까지 아스 토케인을 숨겼다면 모를까. 그렇지 못한 순간부터 클라인 카펠라의 모든 것은 아스 토케인의 것이었다.
"선생님 일어나 보세요. 별이 나왔어요."
나는 곤히 잠든 세야를 깨워 그때 보고 싶었던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보여주었다.
하늘은 생각보다 낮았고 별들 사이로 손을 담글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야는 누운 채 별을 보며 아름답다고 말했다.
나는 낮의 그처럼 내 이마를 그의 이마에 콩 부딪히며 새 꿈을 찾아야 할 그를 위로했다.
"밤에 보는 별이 아름답죠?"
"아스 양 눈 속에도 별이 있네요."
나는 서둘러 겉옷을 벗어 던지고 얇은 속옷과 코르셋 차림으로 내 방문을 나섰다.
"제게 무슨 볼일이죠, 카직 백작님?"
세사르 카직은 인상을 쓰더니 슬쩍 몸을 반쯤 돌려 내게서 시선을 떼버렸다.
"아프다고 들었는데."
"하도 열심히 일했더니 몸살이 났습니다."
나는 천천히 걸어 계단을 내려갔다. 진짜 놀라운 게, 그 안하무인에 오만한 세사르 카직이 내가 계단을 내려와서 다가갈수록 한 걸음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이었다.
"아픈 저를 꼭 봐야 할 용건이 무엇일까요, 백작님?"
그는 날 힐끔 보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더니 자기 겉옷을 벗어 내 어깨 위에 걸쳐 주었다. 그 와중에도 시선은 단 한 번도 내 눈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게 신기했다.
".....넌 이런 면은 예전이랑 변한 게 없군. 다음에 다시 오겠다."
세상은 다시 거울을 돌리는 것처럼 푸른빛은 어두워지고 붉은빛은 사라지며 빛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시엘의 손목에 걸려있던 달이 물결을 헤치는 것처럼 천천히 밤하늘을 가로질러 시엘의 어깨와 귓가에 걸렸고 하늘은 다시 안온한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그 밤하늘의 한 가운데에서 나를 위해 낮을 밤으로 만들어준 대마법사가 달보다 밝게 웃었다.
"어때요, 아스? 저는 대마법사입니다. 당신을 위해 낮을 밤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라면을 끓이다 눈을 떠보니 왕도 게이, 후궁도 게이, 기사도 게이, 신하도 게이, 사서도 게이인 BL소설 속 왕의 냉대를 받는 왕비의 시녀로 깨어났다. 주인공 버프라곤 1도 없는 평범한 시녀 아스가 된 그녀는 과연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머지는 <시녀로 살아남기>에서 확인해주세요!
헉! 너무 많이 스포한거 아니야??
... 라고 생각하는 해태들이 있을까봐 하는 변명..
남주 당 한 장면만 골랐습니다.... 시녀살려 남주 후보들은 다섯명.......
(앞 부분에 왕은 아님)
사실 더 들고 오고 싶었는데 너무 스포여서 참았어요
카카페에 웹툰도 있는데 그림체 예쁘고 존잼입니다 추천추천
(+)
시녀살려는 2000원대 로설입니다
교보에서 모으는거 추천드려요
첫댓글 ㄱㅆ 쪼금 수정해서 재업했습니다~~ 스크랩 대환영
시녀살려 너무 좋았어 입문초반부터 얘기 들었다가 너무 무서운 분위기라서 중도하차했다가 다시 읽었는데... 재밌드라
진짜 개존잼
시녀살려.. 얼른 봐야지..!!
글 너무 잘썼다
감사합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