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테의 돈으로 세상 읽기 57
공매도 열전
새로운 별이 뜨고 있다. 그것도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시리우스보다 밝은 별이 반짝인다. 그 별에는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과 같은 금속들이 발광한다. 2차전지산업을 말함이다.
주식만큼 눈치 빠른 시장도 없다. 주식가격이 턱없이 출렁거리는 것 같지만 곧 제자리를 찾는다. 다만 그곳에서는 기업의 현재가치보다 미래가치를 중시한다. 그런 시장의 특성은 가만히 앉아서도 미래산업을 점칠 수 있게 한다.
최근 국내 2차전지 관련 업체들의 주가가 가파르게 올랐다. 대기업들은 앞다퉈 2차전지 사업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미래 시장 규모가 반도체 시장을 넘어설 것이라는 주장이 헛소리만은 아닌 모양이다. 개인투자자들이 2차전지에 열광하는 것을 나그네쥐의 질주라고 주장하기엔 근거가 빈약하게 되었다.
주식시장 역사에 보기 드문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한편의 진영은 외국인과 기관투자자이고 다른 한편은 개인투자자들이다. 전장은 유달리 발광하는 어떤 별에서 시작되었다. 양 진영은 공매도라는 절벽에서 맞닥뜨렸다. 반드시 한쪽이 추락할 형국이다.
관전자들은 승패가 싱겁게 끝날 것으로 보았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에서 한 번도 다윗이 이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전투에서만큼은 다윗의 돌팔매와 다섯 개의 돌멩이가 더 단단해 보인다. 이미 골리앗의 이맛전엔 피가 흐르고 있다. 보는 재미가 쏠쏠해졌다.
공매도 세력들의 패색이 짙어가는 이유는 간단하다. 프로그램 공매도라는 관습 때문이다. 그들은 늘 그런 방식으로 개인투자자들을 눌러왔고 전략 또한 덩치와 힘으로 일관했다. 새로 나타난 별에 어떤 금속들이 빛을 내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제 그들에겐 성공습관에 안주하면 언젠가 실패한다는 교훈을 벽에 걸어놓을 시간 다가오고 있다. 지금까지 주식시장 역사에 없었던 일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어제는 보습을 만들고 내일은 로켓을 만든다. 쟁기질할 때가 있고 로켓을 발사할 때가 있다. 문화의 변화, 환경의 변화, 기술의 변화를 읽지 못하면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넣고 돌도끼를 다듬게 된다. 세상의 변화에 가장 민감한 이들은 기업이다. 그들이 무엇에 집착하는지를 보면 세상 돌아가는 모양이 눈에 들어온다.
궁지에서 요행히 벗어날 때면 천우신조라는 말을 한다. 하늘이 돕고 신령이 도왔다는 뜻이다. 어떤 이들은 우리나라가 천우신조로 2차전지의 헤게모니를 쥐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동안 반도체가 한국을 먹여 살렸다면, 다음은 2차전지가 밥상을 차릴 것이라는 예측에서다. 그들 말처럼 2차전지가 생산 기술의 한계에 봉착한 국내산업에 새로운 희망이 될지도 모른다. 다만 관련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천우신조로 2차전지산업의 강자가 된 것은 아니다.
포스코는 이제 단순한 제철 회사가 아니다. 2차전지의 핵심광물인 리튬도 곧 생산하게 된다. 포스코가 아르헨티나 4,000m 고지에 있는 염호(소금호수)를 인수했을 때 정치권은 자원개발이 아니라 자원 낭비라고 욕을 퍼부었다. 그곳에서 리튬을 개발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고 CEO의 목이 잘리기도 했다. 2년 후면 율촌 산업단지에서 연간 2만 5천톤의 수산화리튬이 생산된다. 전기차 약 60만대를 만들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LG 에너지솔루션의 2차전지 개발 역사도 경영진의 선견지명과 인내와의 싸움에서 거둔 드라마가 있다. 골리앗의 무덤을 만든 신성(新星)기업의 히스토리는 더 극적이다. 가진 것이 두 주먹뿐이었던 창업주가 일군 기업으론 믿기지 않은 성공신화다. 기초과학이 앞선 국가들도 이루지 못한 성취를 보면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고 이건희 회장이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1995년 중국 베이징 주재 한국 특파원과의 간담회에서 내심을 드러낸 것이 화근이었다. 우리나라의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 라고 말했으니 4류 그룹은 기분이 상했을 것이다. 그가 평창올림픽 유치에 매달려 보따리를 풀지 않았다면 더 오랫동안 외줄 타기 묘기를 해야만 했을지 모른다.
재벌총수의 쓴소리가 나온 지 30년 가까이 되었다. 정치와 행정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의문이나, 삼성이란 기업이 일류가 된 것은 틀림없다. 브랜드 컨설팅업체 인터브랜드(Interbrand) 발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작년도 브랜드가치는 125조원으로 일본의 토요타 자동차를 제치고 글로벌 5위를 차지했다.
요즘 정치권이 목불인견이다. 저들이 21세기 문명국가의 지도자가 맞는지, 누굴 위해 눈을 홉뜨며 싸움질하는지 알 수 없다. 그나마 자기들끼리 코피를 터치면 다행이다. 걸핏하면 땀으로 얼룩진 기업을 보고 호통친다. 제 코도 닦지 못하는 주제에 훈수를 두기도 한다.
무엇보다 저들의 전투는 드라마가 없다. 눈물 젖은 빵도 없고 불꽃처럼 화려한 비상도 없다. 다른 이의 눈물이 얼마나 짠지도 모르고 혁신이 없는 불꽃이 얼마나 금세 사위는지 알지 못한다. 쟁기질조차 해본 적이 없으니 벼를 보고는 쌀나무라고 부른다.
공매도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거품이 낀 주가를 바로잡아주고 시장 유동성을 확장한다. 공매도 제도가 유지되는 이유다. 하지만 작금의 정치권은 국가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공매도만 남발한다. 눈 씻고 찾아도 무엇하나 득 되는 일이 없다.
어떤 유행가에 내 인생에 태클을 걸지 말라는 가사가 있다. 그렇다. 밥상 차리는 손에 숟가락을 쥐여주지는 못할망정 상을 엎어버리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더니 요즘은 애꿎은 수산업 종사자들만 허리가 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