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배경이 된, 삼척의 김씨네 막걸리라는
장소는 나도 몇 번 간 적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더 반가웠다.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평상시와 다를 바 없이 혼술을 하는데 어디서 본듯한, 아닌듯한, 이십 대 초반의 젊은이가 합석을 요구한다. 자신이 불러낸 자아, 젊은 박문구 인 것이다.
그들은 회상한다. 그들은 사실을 재창조한다. 강릉이라는 지역이 갖고 있는 보수성, 가슴과 달리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걸음이지만 대관령으로부터 내려오는 칼바람에 결코 주눅들지 않는다
그의 정체를 알지 못한 채 함께 있게 된 친구 그는 당시 유신체제하에 일급지명수배자였으며 얼마뒤 죽음으로 강 위로 떠오른다. 그 일로 주인공도 유신체제하에서 피해갈 수없는 고초를 겪고 가슴에 불덩이는 점점 끓어오른다. 담담함과 격정, 울분으로 비틀지 않은 순수한 언어가 책을 완성하고 있다
책을 눈으로 보았는데 귀로 들은 듯 생생하다. 고단한 청춘이라고 낭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어둡고 배고픈 시간들도 시간이 배경이 되어줄 때에는 낭만이된다.
책장을 펼치니 수많은 강릉이 용같이 허연이빨을 내보이며 파도가 되어 내게 달려왔다. 그리고 뒤를 이어 키를 늘리며 찾아오는 겨울그림자.
"그의 무의식에 똬리 틀고 있는 어떤 분노나 좌절감은 가끔 의식의 벽을 뚫고 뛰어나와 자신을 지배하면서 마음을 낮게 가라앉히곤 했습니다" <p.103>
"남대천 뒤 남산 위에서 조각달이 희미하게 빛을 뿌렸다. 싸라기별이 점처럼 뿌옇게 붙은 하늘 중앙에서 조금 북으로 기운곳에 북두칠성이 뚜렷했다(중략)
계속 시선을 내리면 사자다리가 힘찬 낫을 머리 위에 세우고 밤하늘의 잡기를 베어버리듯 솟았다. 북두칠성과 북극성을 지나 눈길을 내리면 닻별이 찬연하게 빛났다. 그 밑으로 꼬리별이 선명하게 흐르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p.191>
두 개의 의미있는 죽음이 나오는
결코 가볍지 않은 소설이다
강원도의 힘이 감자가 아니었다
은둔고수 박문구 작가를 응원한다
강릉이, 삼척이 가고 싶어진다
다시 태어나는 겨울을
만날것 같은 예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