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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전라남도 진도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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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E:126°15′ N:34°28′ |
면적 |
361.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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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사항 |
삼한시대 마한의 영토이며 백제시대 성왕 15년(537)에 진도군을 창설하였다. 그 후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시대 재설군하였다가 한때 옥주군으로 개칭하였고 현종 9년에 진도군으로 다시 개칭하였다.
원종 11년에는 삼별초군이 들어오면서 오랑국이 건국되었다가 원종 12년에 패전으로 없어졌다. 조선시대 태종 9년(1409)에 해남군과 합병하여 해진군으로 되었으나 세종 19년(1437) 진도군이 분군되었다. 고종 33년(1896)에 17개 면으로 개편되었다가 1914년에 7개 면으로 조정되었다.
진도는 1984년 10월 18일에 연육되어 뭍으로 변했다. 유적, 유물로는 운림산방, 용장사, 석불좌상과 항몽유적으로 용장산성, 남도석성 등이 있다.
특히 이곳은 민속의 보고답게 진도북놀이, 강강수월래, 진도만가, 진도씻김굿, 남도들노래 등이 전해지고 있다. 또 이곳은 천연자원과 관광자원이 풍부하게 산재해 있는데 상만리의 비자나무 숲과 사천리 상록수림 그리고 세계의 명견으로 알려진 진도개 등의 천연기념물과 우리나라에서 건립된 최초 사장교인 진도대교와 충무공 유적지가 있다.
점차 세계적인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는 신비의 바닷길 또한 빼 놓을 수 없는 진도의 명소이다.진도에는 벽파, 팽목, 쉬미 선착장이 있다. 진도 주변에는 혈도, 가사혈도, 백야도, 상조도, 하조도, 관매도, 독거도 그리고 접도, 금호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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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까지의 배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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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교통 항공 : 목포, 광주 철도 : 목포, 광주 버스 : 목포, 광주→진도, 서울→진도(강남고속버스터미널) 도로 : 서울→광산IC→(13번)→해남→(18번)→진도 해남에서 진도까지 진도대교로 연결되어있음
해상교통 목포→벽파(진도) 선박운항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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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숙박시설 ( 지역번호 06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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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스타호텔 543-0043 / 태평모텔 543-9988 / 대동모텔 543-5188 / 대광장 544-2846 /
대원장 543-0505 /미도장 544-2653 / 신라장 544-2284 / 일월장 542-6811 / 진일장 542-1414 /
혜성장 543-96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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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의 신비의 바닷길 영등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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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는 "한국판 모세의 기적"인 신비의 바닷길과 영등축제의 홍보사업을 통한 고부가가치의 관광산업육성과 지역경제 활성화 도모에 목적을 두며 월별 행사일정은 4월중순~8월중순까지 년5회 열리는 신비의 바닷길에 맞춰 개최를 합니다.
개막행사로 뽕할머니제사.진돌이 행렬,해상선박퍼레이드가 있고 본행사는 씻김굿,다시래기,남도들노래,
강강술래,진도만가,닻배노래등이며 부대행사로는 뽕할머니축원제,관광사진전시회.진도특산물명물전,
춘란 및 수석 전시회,진도개 묘기자랑등이 있습니다.
축제의 기원은 서기 1480년경 손동지라는 사람이 제주도로 유배도중 풍랑으로 표류하여 지금의 회동마을에 살게 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호랑이의 침해가 심하여 마을을 호동이라 불렀습니다.
그 후에 호랑이의 침해가 날로 심해져서 살기가 어렵게 되자 마을 사람들이 뗏목을 타고 의신면 '모도'라는 섬마을로 피하면서 황망중에 뽕할머니 한분을 호동마을에 남겼고 뽕할머니는 헤어진 가족을 만나고 싶어서 매일 용왕님께 기원하였는데 어느날 꿈속에 용왕님이 나타나시어 "내일 무지개를 내릴터이니 바다를 건너가라"는 선몽이 있어 모도에서 가까운 바닷가에 나가 기도하고 있던 중 갑자기 호동의 뿔치와 모도 뿔치 사이에 무지개처럼 치등이 나타났습니다.
그길로 마을 사람들이 뽕할머니를 찾기 위해 징과 꽹과리를 치면서 호동에 도착하니 할머니는 "나의 기도로 바닷길이 열려 너희들을 만났으니 이젠 죽어도 한이 없다"는 유언을 남긴 채 기진하여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이를 본 주민들은 뽕할머니의 소망이 치등으로 변하였고 영이 등천하였다하여 영등살이라 칭하고 이곳에서 매년 제사를 지내게 되었으며 그 후 자식이 없는 사람, 사랑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소원을 빌면 이루어 진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진도군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리 사이 2.8km의 바다가 조수간만의차로 해저의 사구가 40cm쪽으로 물위로 드러나 바닷길을 이루는데 이것을 '영등살'이라 하며 75년 이 현장을 목격한 주한 프랑스대사'피에르랑디'씨가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라 감탄하고 프랑스 신문에 소개한 것을 계기로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 진도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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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골산 5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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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내면 금성초등학교 교정에 소재하고 있으며 고려후기의 탑으로 높이 4.5m,단층기단5층석탑,기단높이104cm,갑석폭180cm,지대석4장판석,기단면석4장판석의 규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탑의 건립방법으로 결구 수법은 남북으로 벽판석이며 동서쪽에서 삽입식으로 끼워져 있고 갑석은 2장판석으로 상하 수평이며 하면에 부상이 없고 상면에는 괴임석이 각출되지 않았습니다.
건축양식은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이 1개씩인데 1층 탑신에서마 ㄴ4장 판석으로 결구석탑의 초층 탑신부의 구성 형태는 갑석이 두껍고 밋밋하며 경사를 주지않아 수평인 점은 정읍 은선리 삼층석탑과 일맥상통하여 백제양식의 남하를 입증하였습니다.
5층석탑의 기단부 및 초층 옥신에서 정읍 은선리의 3층석탑의 양식을 따름은 백제 양식의 모형이 전화되었다는 사실로서 이 석탑은 석질 등이 별로 좋지않고 우주간의 체감비례등이 맞지 않으나 보물로 지정한 것은 고려후기 작품이면서도 백제탑의 양식이 채택되고 있지 때문입니다. 이탑은 1971년 1월 8일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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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도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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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진도읍 수유리 및 군내면 덕병리, 둔전저수지에 소재하고 있으며 1962년 12월 3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길조로 알려진 고니는 진도군 군내면 해안 일대와 다도해 해안에서 12월과
2월 사이에 월동한다. 고니가 날아드는 곳은 진도읍 수유리 해안일대와 군내 간척지 담수로,둔전저수지일대이다.
이곳은 한국 남해안 지역에서 월동하는 고니류 집단의 일부에 불과하나 한국의 서남부에 위치한 유일한
월동 둥지이며 또한 한번도 서남부 해안을 거쳐 이동하는 고니 집단의 평화로운 휴식처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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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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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군내면 용장리 106번지에 소재하며 고려말기의 산성으로 둘레38,741척이고 높이는 5척이고 1964년 6월 10일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성의 대부분은 원형이 사라진 상태이며, 성지가 부분적으로 남아 있고 성내의 용장사지 및 행궁지가 보존되고 있다.
성의 길이는 군내면의 용장리,세등리,고군면의 도평리,벽파리,오류리를 잇는 산등성을 따라 총 12.75km이며 높이는 4m내외이다. 고려 원종때 몽고군의 침입을 받아 치욕적인 강화조약을 맺고 개경으로 환도하자 아에 반대한 삼별초군은 원종의 육촌인 온을 왕으로 추대하고 진도로 내려와 항거하는데 고려의 장군 배중손이 이끈 삼별초군이
대몽항쟁(1270년~1271년)의 근거지로 삼은 성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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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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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군내면 용장리산 90번지에 소재하고 고려초기의 석조물로 높이 1.95m에 재료는 화감암을 사용하고 있다. 이곳은 1972년 1월 29일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현재의 모습은 민머리고
얼굴은 둥글며 원만하나 약간 우둔하게 보인다.
법의는 통견으로 V자형을 취하고 있으나 사실성을 잃고 있으며 양편으로는 협시불 2구가 안치되어 있다. 좌불의 높이는 164cm로 얼굴은 시멘트로 보수하여 원형을 알 수 없고 형식화된 복연좌대와 광배를 갖추고 있다. 이들의 석불은 원래 삼존물이었던 것으로 보이나 모두 훼손상태가 심하여 시멘트로 보수하는등 원형
에 많은 손상을 입었다.
용장산성 바로 옆에 위치해 있는 조그만한 암자에 안치되어 있는 이 석불은 광배 일부가 떨어져 나가고 동체도 원형이 아닌 시멘트로 발라버려 원래의 모습을 찾을 길이 없고 다만 대좌석이 원형대로 남아 있어서 시대추정을 가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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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만비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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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회면 상만리 980번지에 소재하며 나무의 높이는 9.2m,둘레5.6m,가지길이는 동쪽은 5.1m,서쪽6.4m,남쪽6.5m,북쪽5.8m의 규모를 가지고 있으며 1962년 12월 3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0년 전까지만 하여도 바로 이 거목 밑에서 솟는 샘물을 식수로 썼으나 나무를 보호하기 위하여 샘을 떼어서 독립시키고 그 주위에 석축을 쌓아서 보호하고 있다.
나무 부근에는 모기가 서식하지 않으며 마을에 있는 나무여서 개구장이들이 올라가서 노는 일이 많으나 아이들이 떨어져도 다치지 않는다하여 마을에서는 신목으로 섬기고 정월, 8월보름에는 온마을 사람들이 나무 아래 모여 마을을 지켜온 이 거목앞에서 제사를 지낸다.
소나 돼지를 통채로 잡아놓고 정갈하게 지은 메를 올려 지내는 제사는 이 마을의 가장 큰 제사이고 제주는 정월 초 나흘부터 목욕 재계하고 바깥 출입을 삼가하며 금줄을 나무 주변에 치고 제주를 장만할 때도 절대로 맛을 보지 않는 등 엄격한 금기를 지킨다는 것이다.
정월 대보름 제사와 함께 이 마을 남녀가 편을 갈라 벌이는 줄다리기 시합도 빼놓을수 없는 행사이다. 이 행사가 끝나면 제사에 장만한 음식을 주민과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즐기고 이 나무의 내력은 확실치
않으나 상만사 입구에 서있어 고려시대 심어져 자란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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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만사지 5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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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회면 상만리 675번지에 소재하고 고려시대의 탑으로 높이 4.2m에 화강암으로된 2중 기단 5층탑이며 1972년 1월 20일에 문화재로 지정어 있다.
건축양식으로 하대갑석은 역시 4매의 판석으로 결구하였으나 중석의 결구 상태가 좋지 않아 균형을 잃고 있으며 상하에 별조식이 보이지 않고 상대중석은 4매 판석으로 짰는데 전후면은 파석으로 세우고 좌우면은 삽입하였으며 각면에 우주가 희미하게 모각되어 있다.
이 탑은 기단부에 이중기단임을 보여주고 있으나 상하층에서의 우주와 탱주가 선명치 않고 또한 갑석하면의 부연이 생략되는 등 일부 기법에는 퇴화현상이 여실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소규모의 탑일지라도 우리나라의 최남단인 도서 지방에까지 탑의 조성이 이루어졌음을 볼 수 있는 좋은 예라고 할수 있다. 유적지안내판 내용으로 이 석탑은 상만리 마을위 산자락에 상만사라 전해진 사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는 구암사라는 조그마한 암자가 있다.
상만리 오층석탑은 구암사 건물의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는데 원해 제 위치인지는 알 수 없고 마을 사람의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이웃마을 탑림에 있던 사탑인데 절이 폐찰되면서 옮겨온 것이라고 하나 이곳 상만
사터에서도 많은 기와파편이 출토퇴는 것으로 보아 원래 위치로 추정되며 이절의 역사가 오래됨을 알 수 있다.
탑의 조성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974년 4월경에 새로 절을 지으면서 정지작업중 고려자기 2점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고려후기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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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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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임회면 남동리에 소재하고 고려시대의 석성으로 석성일원은 6,101평이고 둘레는 1,233자이고 높이는 8자이며 1964년 6월 10일 지정되었다.
성의 건축양식은 이 성은 조선시대 수군진영의 진지로서 그 보존 가치가 매우 크고 남도석성에 있는 쌍교와 홍교는 석성의 외곽을 건너 다니기 위하여 축조한 것인데, 편마암의 자연석재를 사용한 것으로는 전국적으로 보기 드물어 학계에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재 성의 총 길이는 610m이고 높이는 5.1m이다. 남도석성은 고려 원종때 배중손장군이 삼별초군을 이끌고 진도로 남하하여 대몽항쟁의 근거지로 삼고 최후까지 격전을 벌인 석성이라고 전한다. 고려시대 고종이후 시작한 왜구의 침범은 연해 지방을 노략질
함으로써 충정왕 2년(1350년)에는 진도의 관부와 백성들은 내륙 영암지방으로 옮겨 조선시대 세종 19년(1437년)까지 피난생활을 하다 다시 귀향한 것이다.
이들 수군진들의 축성연대는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가장 불리한 경상도 및 전라좌수영 관하의 수군진들의 1488년(성종19년)에서 1490년(성종21년)까지 3년간에 걸쳐 축성되고 전라우수영 관하의 수군진들이 연산군~중종 연간에 축성된 점으로 미루어 볼때 성종~연산군 연간에 이 성이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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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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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 위치하고 정면삼간,측면이간의 조선시대 건축물이다. 쌍계사는 진도읍에서 동남방으로 왕무덤재를 넘어 7km쯤 가노라면 반경 2km정도의 들판을 가운데로 하고 사방으로 산맥이 에워싸고 있는 산천리 76번지에 자리잡고 있다.
신라때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는 이절은 절 양편으로 하천이 흐른다 하여 쌍계사라 이름지었으며 쌍계사 대웅전의 건립연대는 1982년 대웅전을 해체하여 보수할 때 발견된 상량문의 연대가 강희 36년 즉 숙종 23년이란 기록이 나와 정확히 1967년에 건립된 사실을 알 수있다.
건축약식은 약1m의 높이인 자연석 기단에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원주를 세웠으며 건물은 정면삼칸, 측면이칸의 맞배지붕의 다포계양식이다.
중앙문은 사분합이며 양문은 3분합문인데 양편의 문은 대살문이고 중앙문은 빗살문이다. 공포는 창방 위에 평방을 돌리고 그 위에 포작하였으며 출목수는 내외가 공희 삼출목이다.
여기에서 특징있는 것은 참자 형식이 마치 석탑이나 부도의 기단부의 안성에서 보인 장식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도리의 내 외목도와 중도리 및 종도리를 설치하는데 고주를 양편에 세우고 우물 천정을 가구하였으며 대들보가 밖으로 노출되어 있다. 이건물은 1985년 2월 25일에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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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림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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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 위치하고 운림산방은 첨찰산을 깃보봉으로 수 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져 있는 깊은 산골에 아침저녁으로 연무가 운림을 이루었을 것이고, '연화'를 지었던 소치의 사상으로도 운림이라는 당호가 잘 맞고 이곳에서 소치는 미산 허형을 낳았고 미산이 이곳에서 스림을 그렸으며 의제 허백련이 미산에게 처음으로 그림을 익힌 곳이다.
이와같이 유서깊은 운림산방은 소치-미산-남농-임전등 4대에 걸쳐 전통 남화를 이어준 한국남화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운림산방,쌍계사,상록수림이 한데 어우러진 이곳을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으며 운림산방에서 약150m를
오르면 1995년 8월 15일에 세워진 진도아리랑비가 아담하게 서있다.
소치는 1808년 진도읍 쌍정리에서 허임의 5남매중 장남으로 태어나 1896년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소치는 어려서 부터 그림에 재주가 있어 28세때부터 두륜산방(현,해남 대흥사)의 초의대사 밑에서 공제 윤두서의 화첩을 보면서 그림을 익히기 시작하여 33세때 초의선사의 소개로 김정희 밑에서 본격적인 서화수업을 하게되었다.
비록 낙도에서 태어났으나 천부적인 재질과 강한 의지로 시,서,화에 능하여 40세 되던 1847년 7월 낙선재에서 헌종을 뵐 수가 있었고 헌종이 쓰는 벼루에 먹을 찍어 그림을 그렸는가 하면 흥성대원군,권동익,민영익,정학연등을 비롯하여 권문세가들과 어울리면서 시를 짓고 글을 쓰며 그림을 그렸다.
1856년 추사가 세상을 떠나자 소치는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첨찰산 아래 쌍계사 남쪽에
자리를 잡아 집을 짓고 화실을 남들어 여생을 보냈다. 운림산방 앞에 있는 연못은 한면이 35m가량되며, 그중심에는 자연석으로 쌓아 만든 둥근 섬이 있고 여기에는 소치가 심었다는 백일홍 한 그루가 있다.
소치가 시화에 뛰어나 민영익은 '묵신'이라 했으며 정문조는 여기에 시를 더하여 삼절이라 하였고 김정희는 중국 원나라 4대화가의 한 사람인 황공망을 '대치'라 했는데 그와 견줄만 하다고 소치라 했다고 한다. 이곳은 1981년 10월 20일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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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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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교통리 275번지에 위치하며 진도향교는 1437년 이후에 세워졌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당시 읍치소는 고군면 고성이었으므로 그 이듬해나 임시 향교를 운영했을 것으로 보고있습니다.
1440년 읍치소를 지금의 읍내로 옮길 때 향교도 따라왔을 것이나 정확한 위치는 확인할 길이 없다. 1475년(성종6년)에는 동외리로 옮겼다가 1597년 저유재란때 불타고 위패만 철마산 바위굴에 모셔졌고 전쟁이 끝나고 1623년 다시 용두리 쪽에 세워졌다가 1656년 교통리 275번지의 현
위치에 옮겨 세웠다.
이 향교 운영의 대표자를 전교라 하여 2년마다 새로 선출하고 오늘날은 한학을 했던 노인들이 유교의 성현들에게 제사 지내는 장소 정도로 알고 있지만 조선시대를 이끈 선비정신의 교육장이었다. 진도향교-조선조 효종 7년(1656년) 건립되고 오성25현위 봉안향교 대성전-춘추 석전제 제사사당 단군전-군민들의 정성으로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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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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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 소재지를 두고 있으며 인류가 야생동물을 가축화한 최초의 동물이 개라는 것은 구석기시대 화석에서 개의 유골을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 능히 입증할 수 있다.
진도의 자랑인 진도개는 가축으로서 사육하게된 뚜렷한 기록이 없으나 구전된 바에 의하면 4가지 유래설이 있다.
첫째, 남송시대 무역선이 진도 근해에서 조난 당하였을 때 남긴 남송국개가 상도하여 진도개의 시조를 이루었다는 설이 있고
둘째는 고려 원종때 삼별초군이 강화도에서 관군과 몽골군에게 항거하려고 진도로 근거지를 옮긴 일이 있어, 그때 몽공군이 난을 평정하기 위하여 관군과 함께 진도에 원정시 남기고 간 개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으며
세째로 이조 초기에 진도군 지산면에 설치하였던 국영(관마) 목장의 병견용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당시 몽골에서 수입했다는 설과 네째로 우리나라 고유견이 있어 번식유지해 왔는데 진도에 분포했던 개만이 육지와 격리되어 타견화 혼혈됨 없이 순수번식으로 고유의 혈통을 보존하여 오늘의 진도개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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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아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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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는 민속문화의 보고이다. 우리나라 3대 아리랑의 하나인 진도아리랑의 고장이며 강강술래, 남도
들노래, 진도 북놀이, 다시래기, 씻김굿, 만가 등 하나같이 민속문화의 보고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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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돔,참돔,볼락,농어,조기 낚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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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감성돔,참돔,볼락,농어,조기 등이 올라오며 초들이 들물이 물때로서 차량으로 이동한 후 도보또는
사선을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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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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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자는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는 해양성 기후와 일조시간이 가장 긴 지리적 특성으로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칼슘, 유기산, 비타민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 고혈압, 저혈압, 시력보호, 당뇨병 등의 한방 약제로 이용된다. 가격은 600g 에 24,000원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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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랑과 구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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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랑은 해양성 기후에서 자란 영양이 풍부한 구기자와 배, 대추, 레몬의
추출액을 혼합, 만든 음료수로써 맛과 향이 독특한 한방 음료수이다.
구기력은 구기자, 배, 영지의 추출물을 농축한 것으로써 각종 스트레스와 공해로 진친 현대인의 피로회복과 음주 흡연으로 약해진 간기능 회복에 좋은
새로운 한방 음료수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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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자 된장과 고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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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자 된장은 영양이 풍부한 콩으로 빚은 메주를 재래식 방법으로 발효시켜 만든 된장에 구기자 분말을 혼합하여 옹기에 담아 야외에서 숙성시킨 것으로써 맛이 독특하고 영양이 풍부하다.
구기자 고추장은 일조시간이 가장 긴 해야성 기후에서 자란 영양이 풍부한 고추와 구기자 분말을 혼합하여 숙성시킨 것으로 맛이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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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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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자주는 쌀, 보리로 빚은 순곡증류수에 구기자 열매와 뿌리에서 인체에
유익한 성분을 추출하여 숙성시킨 것이다. 강장, 심신피로, 시력장애, 노화방지 등에 좋은 알카리성 식품이며, 식사,취침전 작은컵 1잔씩 규칙적으로 복용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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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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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가 있는 가정으로 선물을 할때 가장 먼조 떠오르는 것이 진도 미역인데, 아무리 오래 끊여도 미역이 싱싱하게 살아있고 맛이 좋은 것이 특징이다. 조선시대 미역, 해태, 전복, 마른숭어와 해조류는 진도의 진상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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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홍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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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도 이상에 붉은 빛깔이 특이하며 맛이 좋고 뒤끝이 깨끗하여 널리 평가 받고 있는 민속주이며 무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어있다.
홍주는 쌀,보리로 빚은 순곡 증류주에 체했을 때나 피부질환이 생겼을때 먹거나 환부에 발라 치료하는 약초인 지초 뿌리의 성분을 추출하여 숙성시킨것으로 옛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민속주로 향기가 독특하다. 진도군농협 유통판매과(061-544-3901)에서 연중판매하여
가격은 350ml 2병(10,000원)700ml 1병(10,000원),1000ml 도자기세트(35,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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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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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군내면 녹진과 해남군 문내면 학동사이에 놓여진 길이484m,폭11.7m의 사장교로 1984년 10월에 준공 낙조와 야경이 아름답고 다리아래의 울돌목은 이충무공의 3대해전중 하나인 명량대첩지로 잘알려져 있는 곳으로 이곳의 물살이 장관을 이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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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도11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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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도는 접섬,금갑도,갑도,접배도라고 불리워왔으며 곳곳에 기암절경과 상록 활엽수림,낙엽수림이 혼재하는 아름다운 숲으로 접도11경이란 임중암동춘란향,황모만및 수품만 일출경,해중망월경,구자탄낙조경,단애고송경,추일귤원향,암야무선중계탑경,병풍바위와 동백경,몰동바위 기암경,아홉봉기암경,
작은 이마와 솔섬의 기암경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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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도 매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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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신면 상구자도와 하구자도를 삼킬듯한 자세로 앉아 있으며, 큰 매한마리가 천상세계에서 옥황상제의 저주를 받아 내려앉아 돌섬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다. - 진도시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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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도6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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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도6군도란 가사군도,성남군도,상조군도,하조군도,거차군도,관매군도를 지칭하며 가사군도는 쉬미항에서 약10분정도 해상으로 나가면 북에서 남으로 펼쳐져있고 동에서 서로 잔 소나무로 위장한듯 벙커를 연상케하는 대소동도,석벽으로 구축한 주지도,양덕도,공도,가사백사,호송,다공도,접우도,북송도,불도 등이 사방으로 펼쳐져 있으며 검푸른 파도와 절벽에 부딪혀 떨어지는 물보라가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성남군도는 무너지는 듯한 외병도와 내병도,치솟는 듯한 옥도와 유금도,죽도의 요술지대,기암괴석이 암벽의 전시장을 이루는 곳이며 상하조군도는 안개가 연기처럼 산허릴 휘어감고 마중이나 나온 듯 3번째 관문인 상조순도가 연달아 이어지고 있고 제4관문인 거차군도는 상조군도를 막 지나면 암초단지가 돌출하여
마치 바다속에서 솟아오르는 거북이 등짝같아 보이고
그 위에 2~3m높이의 기둥을 세워 주의 표시가 보이고 이곳은 한반도 최서남단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조도지구에 위치한 섬으로 경관이 거친파도와 세찬풍파에 씻겨 이루어진 기암괴석과 바다안개에 쌓여 아름다운 자태를 숨기고 있는 모습은 신비로움과 함께 한폭의 병풍을 둘러 놓은 듯 보여 병풍도라 불리고 있으며 관매군도의 관매8경은 관매도해수욕장,방아섬(남근바위),돌묘와 꽁돌,할미중드랭이굴,하늘다리,서들바굴폭포,다리축구석,하늘담로 구성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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