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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서상진 세계잡지연구소장
'창작과비평' 창간호 표지(서상진 소장본) ⓒ천지일보 2023.02.25.
<창작과비평>은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문학잡지다.
1966년 1월 15일 창간했는데, 그보다 11년 먼저인 1955년에 발행된 월간 <현대문학>과 선의의 경쟁을 하며 지금까지 우리나라 문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필자는 1966년 창간호부터 1980년 통권 56호로 강제 폐간될 때까지 56책 완질과 1985년 부정기 1호, 1987년 부정기 간행물, 1988년 3월 1일에 나온 통권 59호(복간호)를 전부 소장했다. 여기에 그들을 아울러 서지학적으로 소개한다.
제호: <창작과비평>
발행일: 1966년 1월 15일. 1980년 여름호로 강제 폐간된 후 1988년 복간돼 현재도 간행 중이다.
발행인(창간호에서 복간호까지만 소개): 오영근(吳永斤, 창간호에서 7호까지), 한만년(8호에서 14호까지), 신동문(15호에서 37호까지), 백락청(38호에서 46호까지), 염무웅(47호에서 54호까지), 정해렴(55호에서 56호까지), 김윤수(57호에서 59호까지)로 이어졌다.
편집인: 백락청(白樂晴). 인쇄인: 강학성(姜鶴成)
발행소(창간호에서 복간호까지만 소개): 문우출판사(창간호에서 7호까지). 일조각(8호에서 14호까지). 창작과비평사(15호부터).
계간. 면수: 132면. 가격: 70원. 책 크기: 15.5㎝×22.5㎝.
'창작과비평' 창간호 목차와 통권 56호(강제 폐간호) 표지. (서상진 소장본) ⓒ천지일보 2023.02.25.
'창작과비평' 창간호 판권(서상진 소장본) ⓒ천지일보 2023.02.25.
<창작과비평>은 문학평론가 백락청이 28세 때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시작했다. 출발 당시의 풍경을 보면 요즘 흔하게 볼 수 있는 개소식 화환 증정이나 테이프 자르기는 고사하고, 문우출판사 사무실에 놓여있던 책상 하나가 전부였다.
하여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성서 욥기 8장 7절 말씀으로 <창작과비평>의 시작을 대변해 볼 수 있겠다. 현재 창작과비평사는 문학과지성사와 더불어서 한국문학계의 양대 산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니 말이다.
<창작과비평>은 문학이 추구하는 정신은 참여문학, 민중문학, 분단의 모순 등을 안으로 받아들여 물음표를 제시하는 문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런 문제의식의 표현은 아니었겠지만 창간 당시부터 창간사나 서문, 편집후기도 없이 25호까지 간행됐다. 그 후 26호부터 편집후기를 실어 독자들에게 더 가까이 접근했다.
1966년 백낙청이 흔한 창간사 대신에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 자세’에서 창간의 속 깊음을 내비친 것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짚고 넘어가려 한다.
1. 문학의 순수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
2. 문학의 사회기능과 독자
3. 한국의 문학인은 무엇을 할까?
4. 회원과 전망을 38페이지에 걸쳐 실었다. 그 힘 있는 문장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는 우리 문학의 태생이 그 출발을 서구와 달리하고 있는 사실을 지목한다.
“19세기 말 유럽 문학의 순수성 내지 비생산성은 싸르트르의 이야기대로 기실 근면한 산업사외의 산물이었는데 반해, 한국적 순수주의의 뼈대를 이루는 것은 그와 전혀 다른 이조(조선) 양반계급의 세계에서 비롯한 것이다. --- 한국의 순수문인들이 - 어찌 그들뿐 이리요마는- 사회문제에 소극적인 데 그치지 않고 예술 분야에서조차 안이한 창작태도와 족벌주의, 그리고 더러는 관권에 대한 하염없는 외경 등의 순수치 못한 기풍에 젖어있는 이유가”
“한국에서 정말 대다수 민중이란 아직 문학 독자가 아니다. 문학을 읽을 여유도 능력도 여유도 없는 사람들이다. 반면에 현재 독자층 가운데서의 대중이란 사실 대중도 아니거니와 그렇다고 소수 엘리뜨로서의 자각과 수준을 지닌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역사를 위해 맡을 것을 다 맡고도 문학은 여백餘白을 지닌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문학은 끝까지 고독한 작업이자 또한 태연한 작업이어야 하는 사실이 거기서 온다.”
“그 출발이야 누가 하든지 막막한 느낌이 앞서기 쉬울 것이다. 먼 길을 어찌 다가며 도중의 괴로움을 나눠줄 사람은 몇이나 될까? 오직 뜻있는 이를 불러 모으고 새로운 재능을 찾음으로써 견딜 수 있을 것이요, 견디는 가운데 기약한 땅에 다가서리라 믿는다.”
진정. 참으로. 깊은 속말을 꾹꾹 눌러 담은 창간사다. 견디면서 걸어온 길 어찌 견디기만 했을 것인가. 날마다 발견되는 새로운 재능과 잠재적인 독자가 진정한 독자가 되어 나타나는 기쁨이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을 것이다.
'창작과비평' 통권 57호(부정기 1호) 표지, 통권 58호(부정기 간행물) 표지. (서상진 소장본) ⓒ천지일보 2023.02.25.
<창작과비평(이하 창비)>에 작품이 수록된 문인으로는 논문·평론에 강만길, 강문구, 고미숙, 고은, 권영길, 김경일, 김명인, 김사인, 김수영, 김현, 리영희, 문익환, 박현채, 백락청, 신용하, 안병직, 염무웅, 임헌영, 조태일, 천관우, 천상병, 최원식, 한완상 등이 있고, 시에 강은교, 고은, 김관식, 김규동, 김남주, 김만옥, 김수영, 김준태, 김지하, 김창완, 문병란, 문익환, 박두진, 박봉우, 박재삼, 박정만, 신경림, 신동엽, 양성우, 이광웅, 조태일 등이 있고, 소설에 김승옥, 김정한, 남정현. 문순태. 박완서. 안수길. 윤흥길. 이문구. 이호철. 조정래. 최인훈, 한승원, 황석영, 현기영 등이 있다. 그리고 동화로 권정생-똬리골댁 할머니(<창비>의 유일한 동화 한 편)-이 있다.
수록된 문인들을 보면 가히 진보적인 문인들의 낙원인 듯하다. 여타 문예잡지에서는 꺼리는 소설가인 현기영의 <순이 삼촌(제주 4.3사건)>을 처음으로 실어 국민에게 알렸다. 그러나 바로 소설집은 금서가 됐고 소설가 현기영은 군사정권에 구속돼 고문을 당하고 수감생활을 했다.
황석영의 <객지>와 이광웅, 양성우, 박노해, 문익환, 김지하, 김남주 등의 시 작품도 실어 전두환 군사정권의 ‘적폐 대상’이 돼 1980년 이른바 언론통폐합 때 강제 폐간당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창비>는 이에 굴하지 않고 1985년 <창작과비평> 57호를 부정기 간행물(무크지)로 간행하여 군사정권에 도전했다.
하지만 당시에 펜은 칼보다 무섭지도 강하지도 않아서 이번에는 출판사 등록이 취소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1987년 6월 민중항쟁 이후로 1988년 봄호로 복간을 해 현재에 이르렀다. 창간 당시의 정신(참여문학으로, 민중문학으로, 분단문학의 기치)을 잊지 않고 있다.
풍운 영웅의 서사에도 한 줄의 연사(戀事)는 훈김을 불어넣어 실체를 더 가까이 당겨주는 기운이 있다. 하여 방대한 출판의 역사 중에서 시인 백석(1912~1996, 북한에서 작고)의 연사를 소개할까 한다.
시인 이동순(영남대 명예교수)이 그 연사의 대담자이며 기록자인데 그는 그 기록을 1988년 <창비> 복간호에 19면에 걸쳐 소개했다. 그때까지 백석은 월북이라는 족쇄에 묶여 잊힌 금기의 시인이었다.
백석에게는 김영한이라는 여인(‘자야, 子夜’는 그 여인의 다른 이름)이 있었다. 그녀는 현대로 보면 탤런트와 같은 만능 예능인이었다. 그녀는 백석을 사랑했고 백석 또한 사랑하는 그녀와 함께 3년을 지냈다. 보기 드문 미남이고 호방했던 백석은 자야와 함께한 3년 동안 그녀에게 많은 시를 남겼다.
이동순 시인을 세 번에 걸쳐 만나는 동안 자야 여사는 자기의 꿈을 털어 놓았다. 그 꿈은 자신이 보관하고 있는 백석의 시를 출판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동순은 1987년 자야 여사를 세 번 만나 구술을 받아 삼 년간의 일과 시를 <창비>에 19면에 걸쳐 소개했다.
1987년 이동순이 <백석시전집>을 출판해 백석을 다시 독자들에게 소개한 일은 일대 사건이 됐다. 자야 여사의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자야 김영한 여사는 작고하기 전에 당신의 모든 것을 사회에 환원했고 법정스님이 징검다리가 돼 ‘길상사’라는 절이 탄생한 후일담이 됐다. 이런 기록은 작품을 통해서 그려보는 작가들의 면면을 넘어 작가를 살아있는 사람으로 가까이 느끼게 하는 배경이 되어 주리라 필자는 믿고 있다.
'창작과비평' 통권 59호(복간호) 표지(서상진 소장본) ⓒ천지일보 2023.02.25.
요즘 들어 각 지자체들이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필부(匹婦)에 불과한 시골 할머니들의 구술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위와 같은 일이라 생각한다. 큰 별을 따라 도는 작은 별의 아름다움에 주목하는 일 말이다.
<창비> 창간호부터 59호 복간호의 서지사항을 정리했다. <창비>의 면수는 1년에 면수를 연결해 34호까지 시행했고 35호부터는 연결하지 않았다. 독자와 연구자들은 착오가 없기를 바란다. <창비>는 2번 결호가 있는데 1969년 9월호와 1971년 12월호이다.
'창작과비평' 창간호부터 59호 복간호 서지사항 ⓒ천지일보 2023.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