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의 현실에서 성찬식을 자주 거행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느 기독교 사이트를 보니까 상찬식을 1년에 1번 하는 곳도 꽤 있더군요. 그러다보니 그리스도의 몸을 먹고 거기서 흘린 그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분도 꽤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감안하여 우르시누스의 해설을 아래에 올립니다. 많이들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76문)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의 몸을 먹고 거기서 흘린 그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답) 그것은 믿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모든 고난과 죽으심을 받아들여서 죄 사함과 영생을 얻는 것이요, 더 나아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시고 또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의 거룩한 몸과 더욱더 연합됨으로써, 비록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을지라도 우리가 그의 살 중의 살이요 그의 뼈 중의 뼈가 되어, 마치 한 몹의 지체들이 한 영혼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처럼 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고 다스림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
이 질문은 주의 성찬이 나타내는 것에 관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물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고 영적인 것이며, 다음과 같은 것들을 포괄한다.
1.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을믿는 믿음.
2. 그 믿음을 통하여 죄 사함과 영생을 선물로 받음.
3. 그리스도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합.
4. 동일한 성령의 살리시는 역사.
그러므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몸을 먹고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를 마신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공로에 근거하여 우리를 그의 사랑 안으로 받아들이신다는 것과, 우리가 그 동일한 믿음으로 죄 사함과 하나님과의 화목을 얻는다는 것과, 또한 우리의 본성을 스스로 취하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그의 성령을 -그는 우리를 중생시키시며, 빛과 의로움과 영생 등 그 자신이 취하신 그 본성에 속한 것들을 우리 속에 회복시키시는 분이시다 - 우리에게 베푸사 그를 통하여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를 그와 또한 그가 취하신 그 본성과 하나가 되게 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혹은 좀 더 간단히 말하자면, 그것은 곧 믿음으로 죄 사함을 얻는 것이요.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이요. 그의 생명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요. 혹은 그리스도와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다.
성찬의 떡을 먹는 일이야말로 바로 성령이 말씀하고 또한 사도신 경으로 우리가 고백하는 바 우리가 그리스도와 갖는 하나 된 교제인데, 이는 지체와 머리, 그리고 가지와 포도나무의 연합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한 사실에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살을 먹는 문제에 대해 요한복음 6장에서 가르치시며, 성찬에서 외형적인 표로서 이를 확증하시는 것이다. 앞으로 살펴보게 되겠지만, 아우구스티누스, 유세비우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힐라리우스 등의 옛 교부들도 그리스도의 살을먹는 일에 대해 이런 의미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황주의자들이 주장하는 화체(化體)의 교리(the doctrine of transubstantiation)나,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바 그리스도의 육체적리나, 입으로 떡을 먹는 것이 곧 그리스도의 몸을 먹는 것이라는 가르침이나 그 어느 것도, 성찬과 관련되어 나타나는 바 그리스도의 몸을 먹는 일을 약속해 주는 성경의 언어를 근거로 확증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한 것이다.
자카리아스 우르시누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 pp.309∼310.
첫댓글 성찬의 의미를 기초적으로 잘 파악하게 해주는 좋은 글입니다. 공감을 하는 좋은 내용입니다.
공감합니다.
유세비우스가 여러 명 있는데, 본문에 어거스틴 다음으로 나오는 유세비우스는 아래 인물로 보입니다.
======================
카이사레아의 에우세비오
... 그의 〈교회사 Ecclesiastical History〉에 실려 있는 그리스도교의 처음 몇 세기에 관한 기록은 그리스도교 역사기록의 이정표이다.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17a1504a
맞을 겁니다. 이 유세비우스의 초대 교회사 내용은 성찬과 세례에 대한 당시의 모습을 알려 주는 중요한 참고문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장코뱅 네, 알겠습니다.
성찬에 대해서 그 보이는 복음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하는데, 우르시누스의 해설이 큰 도움이 되어서 좋습니다.
칼빈의 성찬에 대한 견해
우리는 육체로는 주님과 멀리 떨어져 있으나 능력으로는 주님과 가까이 있게 됩니다. 주님은 성만찬을 통하여 이것을 우리에게 나타내 주시며, 우리는 이 교리를 적용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마치 짐승 같은 사람들처럼 성찬을 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성찬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육체를 위해 음식을 주신다고 이해하게 되어도 그것은 이미 축복입니다.
영혼은 불멸의 생명을 소유하게 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천사들일지라도 우리에게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이는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만찬을 받을 때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생명이며, 또한 주님 안에 연합해야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증거를 구하기 위해 성찬에 참여한다.”
우리는 일생에 단 한 번만 성찬을 받는 것이 아니라 종종 받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주님께로 이끄시고 이 육체로부터 구원해 주실 때까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잘 읽고 공부했습니다.
https://cafe.daum.net/1107/Y4OQ/166
츠빙글리의 성찬론(본문)과 기념설(댓글)
https://cafe.daum.net/1107/Y4OK/58
기념설(memorialism)
성찬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는 행위일 뿐이라는 믿음. 울리히 츠빙글리는 미사의 거행에 담긴 제사의 개념과 더불어 성찬의 빵과 포도주에 그리스도가 실제로 임재하신다는 주장이나 그 빵과 포도주의 본질이 바뀐다는 화체설을 강하게 거부했다. 그 대신, 그는 성례를 단순히 회중 안에 존재하는 신앙의 징표로 여기는 해석을 옹호했다. 그런 이유에서 그는 회중의 성찬 참여와 자국어 예배를 강하게 주장했으며, 그가 개정한 예전에서는 기념의 행위가 뚜렷이 강조되었다. 츠빙글리 파의 이 상징적인 견해는 지금도 많은 개혁교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켈리 M. 캐픽 등, 『개혁신학 용어사전』, p.37.
잘 읽고 참고합니다.
칼빈은 예배 순서 가운데에서 성찬식을 매우 중요시하던 분이었습니다. 그는 고전6:8을 주석하면서, 성찬을 행함에 있어서 누룩을 멀리해야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구약교회의 성도들에게 누룩을 금하신 것과 같은 취지라고 말했습니다. 구약시대의 유월절이 신약시대에 도래한 참된 유월절인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표상하므로, 신약교회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마시고자 한다면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성찬에 참여해야 하는데요. 이러한 순전함과 진실함이 성도들이 준비해야 하는 “누룩 없는 떡”입니다. 그러므로 “순전함”과 “진실함”에 어울릴 수 없는 모든 “악의”와 “악함”은 제거돼야 하고, 그런 것들을 버릴 때에만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참된 지체가 될 수 있습니다.
우르시누스의 설명이 간결하고 논리가 있네요.
성찬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참여하는 것, 곧 죄사함과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하며, 한 성령으로 살고 다스림을 받는다는 것이다.
잘 기억하겠습니다.
우르시누스도 당시에 만연했던 가톨릭의 화체설, 공재설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성찬은 그리스도와의 영적인 연합을 외형적인 표로서 이를 확증하는 거라고 강조하네요. 옛 교부들의 설명도 이것을 말했다고 하면서요.
네, 공감합니다. 좋은 요약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