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할 때 그 지역의 ‘음식’과 ‘술’을 맛보는 것은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역 환경에 따라 문화가 형성되듯 음식도 자연이 주는 재료와 생활상에서 얻어진 조리법으로 탄생한다. 이젠 ‘맛집’을 검색하는 일은 여행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필수 행위가 됐고, ‘먹거리=관광’이라는 등식까지 만들어지고 있다. 언필칭 국민휴양지로 통하는 강릉에서 음력 5월 수릿날을 맞아 천년축제 단오제가 어울림 마당을 펼친다. ‘눈요기’와 ‘몸요기’에 ‘입요기’까지 즐길 거리와 진수성찬이 가득한 강릉으로 ‘식도락 여행’을 떠나보자.
■ 초당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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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당두부 |
강릉 음식을 말할 때 ‘초당두부’를 빼놓고는 설명이 안된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의 부친인 초당 허엽이 집 앞에 있는 샘물 맛이 좋아 이 물로 콩을 가공하고 바닷물로 간을 맞춰 두부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알알이 영근 햇콩과 맑은 동해 바닷물을 응고제로 쓰는 초당두부는 일반 두부맛과는 차원이 달라 전국적 유명세를 타고 있다. 콩물을 끓이고 난 뒤 두부로 굳힐 때 바닷물을 넣기 때문에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부드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환상적이다. 정성이 듬뿍 담긴 콩비지찌개와 웰빙 반찬들은 두부 차림상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음식에 있어 원조를 따지게 마련이지만 초당두부는 원조를 따질 필요가 없다. 2∼3대에 걸쳐 내려오는 전통 비법을 전수받은 전수자들이 초당두부의 자존심을 걸고 정성껏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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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회 |
■ 물회
‘물회’는 바다를 그대로 옮겨놓은 음식이다. 갓 잡아 올린 펄떡거리는 생선을 모양좋게 썰어 넣고 얼음을 동동 띄워 물에 말아먹는 물회는 바닷가와 가장 궁합이 잘 맞는 음식이라고도 규정할 수 있다. 오징어·잡어·가자미·모듬·전복물회 등 종류도 다양해 개인 입맛에 따라 메뉴를 선택할 수 있다. 물회는 원래 뱃사람의 음식이었다. 동 트기 전 새벽에 일터인 바다로 나가는 선원들이 밥 먹을 시간도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잡은 생선을 대충 썰어 고추장을 풀고 물에 말아 훌훌 넘겼다. 매콤하고 시원한 맛으로 더위를 식혀 주는 물회는 어부들의 뱃속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고, 세월이 흘러 남녀노소 누구나 맛보고 싶은 동해안 대표 음식으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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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두릅 |
■ 개두릅
‘강릉 개두릅(지리적표시 41호)’은 ‘봄나물의 왕자’로 불린다. 쌉싸래하면서도 향기가 입안가득 퍼져 입맛을 돋우는 음식으로 제격이다. 예로부터 영동지역에서는 엄나무를 출입문에 걸어 잡귀를 쫓았다는 일화가 전해지면서 가지를 꺾어 집집마다 문 위에 걸어 놓기도 했다. 강릉에 자생하는 개두릅은 참두릅보다 향이 짙고 맛이 좋다. 주로 데쳐서 고추장이나 된장에 찍어 먹지만 무침이나 된장찌개, 장아찌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나뭇가지와 껍질은 육류를 요리할 때 함께 넣으면 더욱 부드러워지고, 나뭇가지와 껍질 삶은 물은 식혜나 차로 만들어 마시면 신경통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칼로톡신, 칼로사포닌 성분이 많아 한방에서는 신경통·요통·신장병·당뇨병·피로회복 등의 약재로도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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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칼국수 |
■ 장칼국수
강릉 등 영동권에는 칼국수에 장을 푸는 ‘장칼국수’가 유난히 많다. 장칼국수는 고추장을 풀어 국물이 벌건 것이 우선 특징적이다. 국물 색깔만으로도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힌다. 여기에 칼로 송송 썬 면발에다 감자와 갖은 야채가 푸짐하게 곁들여진다. 계절에 상관없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면발을 후후 불면서 후루룩 먹으면 장칼국수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국물을 그릇째 들이키는 순간 ‘캬’ 소리가 절로 나오고, 얼굴이 땀으로 뒤범벅돼 사우나에 갈 필요도 없다. 속이 허하거나 전날 과음을 한다면 장칼국수 한 그릇이면 모든 게 해결된다. 텁텁하지 않고 칼칼·개운하다보니 웬만하면 반찬도 필요 없다. 면을 다 건져먹고 밥까지 말아 먹으면 장칼국수의 진정한 맛을 제대로 터득한 것이다.
■ 꾹저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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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꾹저구탕 |
강릉에서 ‘꾹저구탕’ 맛을 보지 못한다면 그 또한 음식 기행을 한 것이 아니다. 투박하게 못 생긴 민물고기지만, 탕을 끓여내면 그야말로 일품이다. 꾹저구탕에다 후추를 뿌리고 다진 양념과 고추를 넣어 수저로 휘휘 저어주면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조선 선조 임금 때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송강 정철 선생이 관동을 순행하면서 강릉 연곡지역을 방문했을 때 풍랑이 거세 출어하지 못한 주민들이 연곡천에서 민물고기를 잡아 탕을 끓였는데, 이를 맛 본 관찰사가 시원하고 담백해 고기 이름을 물었다. 주민들이 저구새가 꾹 집어먹는 고기라고 대답하자 송강이 그러면 앞으로 이 고기를 ‘꾹저구’라 하면 되겠다 해 지금까지 불려오고 있다. 이후 꾹저구탕은 여름철 보신용으로, 숙취 해소용으로 각광받으며 지역 전통음식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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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루묵 |
■ 도루묵
‘도루묵’도 동해안 대표 먹거리 중 하나다. 도루묵찜과 구이, 찌개 등 다양한 요리들이 진열해 있다. 뱃속에 들어있는 알들은 씹으면 옥수수처럼 톡톡 터지며 고소한 맛이 나고, 고추장에 갖은 양념을 넣은 국물은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조선 정조 때 이의봉이 편찬한 ‘고금석림’에서 고려의 왕이 동천했을 때 목어를 드신 뒤 맛이 있다 해 은어로 부르라 했는데, 환도 후에 그 맛이 그리워 다시 먹었을 때 맛이 없어 다시 목어로 바꿔 부르라 해 도루묵(도로목)이 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 막국수
‘막국수’는 더위를 한방에 날려주는 여름철 대표 음식이다. 산이 깊은 강원도에서는 과거 특별한 손님이 방문하면 메밀을 맷돌로 갈아 만든 메밀가루를 반죽해 국수로 만들어 별다른 양념없이 대접하는 일이 많았다. 동치미를 넣어 먹는 막국수는 설탕과 식초, 겨자 등을 적당히 넣은 뒤 계란 노른자를 풀고, 비빔막국수의 경우 육수를 조금 붓고 열무김치와 비벼 먹으면 제격이다. 막국수를 어느 정도 건져먹었으면 메밀 면을 삶은 물을 부어 남은 양념과 섞어 들이키면 그 맛이 일품이다. 막국수와 함께 메밀·감자·녹두전 등을 곁들여 먹으면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다. 뜨끈뜨끈한 수육 한 점과 배추김치를 막국수와 함께 싸 먹으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 환상적인 궁합을 연출한다. 강릉/김우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