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의 형식
- 굴업도에서
어떤 최후는 시든 꽃다발처럼 버려진다
산허리를 맴돌고 있는 안개는 꽃들의 영혼
종일 자신의 최후를 배회한다
목기미 해변의 닻무덤 같은
최후의 최후가 흩어져 있는 후덥지근한 시간 속에
그것이 그것인줄 모르는 사람들이
덕물산 아래 산게처럼 꼬물거린다
죽음의 내향성 발톱이 삶을 파고드는 현장에서
안개가 안개를 부르고
안개가 안개를 왜곡하고 희미하게 확장하고 있다
그것은 안개의 무의식
안개의 습관 같은 것
언덕에 오르자 누가 4절지 바다를 불쑥 내민다
꽃들의 유대에 대해
안개의 옅은 유머에 대해
들러붙어 꼬물거리는 속삭임들에 대해
마음의 찌불을 드리운다
야생사슴의 탈각된 뿔이 또 다른 생을 살고 있는 개머리 능선
너머 너머로 달려가
어느덧 소사나무 숲에 다다르는 바람 속에도
가만히 봉돌을 던져 본다
큰천남성 이파리가 이토록 영롱한 까닭은
발아래 하늘이 있기 때문
닻이 꽃으로 피어났듯
꽃의 닻들이 다시 먼 항해를 시작하는
아련하고 따뜻한 사빈들
무덤이라는 삶의 형식을
최후의 해후를
날 범하던 그 입술로 노래하는
바다 밖으로 돌돌돌 삐져나온 파도 한 자락
형식은 형식으로 파쇄된다
이재린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흥 문학상 대상
바다 문학상 대상
<시집> 마농꽃이 걸어서 우체국에 간다
카페 게시글
신갈나무방
무덤의 형식 / 이재린
블타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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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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