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Text Jh 15,1-8
(1)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1. 2024년 첫 주님의 날입니다. 내 나이 우리 나이로 ‘이른’이 되다 보니 젊은 사람들과 생각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고 내가 모자랄 수는 있지만 내가 믿은 믿음은 틀릴 수 없습니다. 세상의 것들은 세월에 따라 옳고 그름이 바뀔 수 있고 선하고 악함의 기준이 달라질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시대 조류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정해집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시대 조류를 따라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만 잘 살 수도 있고 유의미하게 살 수도 있으며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사는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2023년이 지나가고 2024년이 시작되었지만 새해에도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의 진의를 깨닫기 위한 노력을 해야만 합니다. 위험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것이요, 기회를 붙잡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새해 첫 주일에 주신 본문 요15,1-8 말씀은 이같은 뜻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주신 본문 중심으로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라는 말씀으로 은혜 받고자 합니다.
2. 첫 번째 말씀은 ‘내 안에 있어서 열매를 많이 맺어라.’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말씀을 포도나무에 비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스스로 참 포도나무라 하셨습니다. 의(義)의 태양이시며 밝게 빛나는 샛별이신 주님이 자신을 겸손히 포도나무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 포도나무는 포도원 농부이신 하나님에 의해 포도원에 심어진 나무, 즉 성육신하신 나무이지 우연히 생긴 나무가 아닙니다. 또한 이 포도나무에서 맺히는 열매는 하나님을 즐겁게 하고 사람을 기쁘게 한다는 의미(삿9,13)에서 참 포도나무입니다. 그리고, 이 포도나무의 가지인 성도는 이런 열매를 맺어야 하며,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들은 심판의 대상입니다.
어떻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까? 가지인 성도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줄기이신 주님 안에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 안에 있다는 것은 줄기로부터 진액을 공급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공급되고 지탱되는 것입니다. 또한 열매를 더 맺게 하려고 주님은 가지를 깨끗하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은 포도나무의 소유주이시며 보호자이십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경작물이라는 의미에서 농부이십니다. 하나님은 심으시고 물을 주시며 자라게 하십니다.(고전3,9 사5,1-2 27,2-3). 하나님께서 모든 가지를 항상 돌보시어 가지들을 잘 쳐 주시고, 아무도 해하지 못하도록 항상 보살펴 주시지 않는다면 세상의 어떤 나무도 열매를 맺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님께서는 가지가 열매를 더 많이 맺을 것을 기대하신다고 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더욱더 많이 열매를 맺으려면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된다고 하십니다. 주님은 온 우주보다 크신 분이시지만 작은 병 같은 인간의 속에도 계실 수 있는 분입니다. 잠시 둘러보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거주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성도가 주님 안에 거주하고자 하면 주님은 성도 안에서도 거주하십니다. 따라서 성도가 더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처음 열매 맺음에 대하여 더하여 주시는 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주님께 붙어 있는 것에서, 깨끗하게 하시는 주님께 순종하여야 하며, 주님 안에 거주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열매를 맺어야 하며 더 많은 열매를 맺는 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열매는 성령의 열매로서 갈5,22-23절에서 말하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등과 같은 성품에 해당하는 열매이고, 범사가 잘 되는 풍요와 육신의 건강과 같은 복된 삶(요삼1,2)에 해당하는 열매이며, 지위 상승(단2,48 에10,2)와 자손 번창(창13,16) 등과 사회에서의 영예로운 열매입니다.
2024년 동안 우리 모두 꼭 열매를 많이 맺는 복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두 달란트를 받았든 다섯 달란트를 받았든 꼭 더 많은 열매를 뱆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기질과 특성,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활과 이웃과의 관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경건과 모범 등을 기대합니다. 100배, 60배, 30배의 열매를 맺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한 알 그대로 있는 2024년이 아니라 죽어서 많은 열매를 맺는 한 해가 된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모든 의(義)의 열매를 맺어야 하고 사도로서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의 향기를 뿜어냄으로 영혼 구원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러기 위해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한 남자와 혼인을 하였다면 신부는 그동안 교제했던 모든 남자관계를 정리하고 한 남자에게만 붙어 있어야 합니다. 결혼을 하고도 이 남자 저 남자 만나면 가정파탄이 오고 불행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 옛날 남자였던 세상의 방식이나 풍습을 그만 따르고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알아서 거기에 우리의 몸을 산 제물로 드릴 정도로 한 남편인 예수님과의 관계에만 집중하면서 사시기를 기도합니다.
3. 두 번째 말씀은 7절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 말씀은 앞에서 열매를 많이 맺으라고 하신 말씀을 중심으로 해석하면 많이 맺는 정도가 아니라 “원하는 대로” 무한정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또 다른 해석은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도움이나 지원이 필요할 경우 얼마든지 지원받을 수 있고 도움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있어 열매를 많이 맺는 성도들에게 추가로 약속된 은혜입니다. 뒤에 이어져 나오는 14-16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4)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6)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이런 특혜의 복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라는 조건절이 붙어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에서 ‘너희가 내 안에, 내 말이 너희 안에’로 바뀌어져 있습니다. 즉 성도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은 성도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는’ 복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한 ‘내 말’은 12절과 17절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이라고 가르쳐주십니다. 주님은 성도가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을 제일 좋아하시고 보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친구로 삼고 싶어 하시는 인간들을 위해 친히 죽으심으로 이 사랑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하지만 성도가 따라야 할 주님의 말씀이 ‘서로 사랑’ 한 가지만이라고 주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최고의 계명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마22,37-40)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음과 힘과 목숨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내 몸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 두 계명 안에는 모든 계명이 포함되어 있다고도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도가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아야만 하는데,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나라가 아주 가난하게 살던 시절에 당시 목사님들은 우리 민족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집중적으로 성경에서 복을 받는 비결을 연구했습니다. 선교사들에게 배운 것이 아니라 성경에 모든 답이 있다고 믿고서 성경을 탐독하며 그 비결을 찾은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른 후, 많은 목사님들이 공통적으로 발견한 비결이 4가지로 요약되었습니다. 첫째가 주일성수였고 둘째는 십일조였으며 셋째는 사역자 섬김, 넷째는 첫 열매 봉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네 가지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것’이라고 구별한 것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귀중히 여기고 하나님께 마땅히 드릴 것을 드릴 때에 복을 받는다는 비결을 찾아내어 성도들에게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그렇게 살기 위해 정말 목숨 걸고 충성했었고 우리나라의 교회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부흥을 이루었으며 나라도 정말 말씀대로 부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와서 교회가 많이 부흥되어 재정이 넉넉해지면서 이 말씀을 가르치지 않거나 가르치더라도 목숨을 걸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학자들과 목사들 가운데서 교회가 지나치게 율법적이며 헌금을 강조하고 있다고 비판을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저 혼자라도 이래서는 안 된다는 믿음으로 기회 있을 때마다 성도들과 후배 목회자들에게 강조했지만 반응은 영 신통찮았습니다. 대형 교회는 그렇게 철저하게 신앙생활을 하라고 강조하지 않아도 필요한 재정을 확보할 수 있어서, 작은 교회들은 그렇게 강조하면 교인들이 떠날까봐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 은퇴한 제 입장에서는 이런 교회의 현실을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섬기며 살기 위해 충성해야 합니다. 만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복을 받는 비결은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대로 해야 합니다. 최소한 선배 신앙인들이 복을 받기 위해 죽을 각오로 가르치고 또 행하였던 네 가지, 주일성수, 십일조, 사역자 섬김, 첫 열매 봉헌 등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성도들 마음속에 담고 살아야 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대한민국과 성도들에게 2024년뿐만 아니라 영원히 살아 있기를 소원합니다.
4. 세 번째 말씀입니다. 8절입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이 말씀은 성도가 열매를 많이 맺을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주님께 인정받는 성도가 된다는 뜻입니다. 성도가 열매를 많이 맺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답게 산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삶의 목적과 목표로 정하고 예수님의 성품을 나의 인격이 되며 성령님의 권능을 힘입으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것 또한 ‘내가 그 안에, 그가 내 안에 거할 때’에 일어나는 일이며, 이로 인하여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게 된다고 본문은 가르쳐줍니다.
성경에는 그렇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들 이야기도 많고, 반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 사람들 이야기도 많습니다. 특히 히11장에는 성경의 인물들 중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인물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더 나은 예물을 드린 아벨, 사는 동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은 에녹, 오직 믿음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던 노아,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오직 말씀에 순종하여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났고 나중에 이삭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인정 받았던 아브라함, 믿음으로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지위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길을 택한 모세 등등의 이야기는 모두 복 주시는 이는 하나님뿐임을 믿고 충성한 이야기입니다.
그 반대의 사람들 이야기도 많이 있습니다. 한때는 사도 바울의 동역자였으나 세상으로 가버린 데마, 살다가 어려움을 만나자 하나님이 아닌 자기 수단 방법을 따라 이사를 갔다가 망한 엘리멜렉, 왕이 된 것을 하나님의 섭리인 줄 모른 채, 그 왕권을 지키기 위해 정적을 제거하면 될 줄로 알고 무도하게 행하였던 사울 왕, 최고로 복을 받은 다윗의 아내가 되었음에도 복을 복으로 여기지 않다가 망한 사울 왕의 딸 미갈, 초대 교회의 대부흥 현장에서 함께 은혜를 받고 살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다가 목숨을 잃은 아나니아와 삽비라 등이 모두 그런 류의 사람들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훗날 하나님의 심판대에도 홀로 서서 심사를 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류를 쫓는 사람들의 의견을 기준으로 삼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내 편한 것을 우선으로 살아서도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살고 있는지를 묻고 그렇게 살기 위해 몸부림쳐야 합니다. 이 진리는 달라질 수 없습니다. 부디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진정한 제자로서의 삶을 살기를 힘쓰시길 당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