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7월 중국 북경에서 개최된 아이가스(IGARSS) 2016 학회에 참석했을 때다. 우리나라에서는 백세시대를 말하며, 내 나이가 많다거나 내가 무척 늙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내 연구실에서 공부한 후에 지금 중국 북경(北京), 칭화(靑華), 북경 과기(科技)대학교 등의 교수로 있는 제자들이 내가 앞으로 몇번이나 중국을 방문할지,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방문이 될지도 모르지 않겠느냐며, 아이가스 학회가 끝난 후 나와 아내의 중국 관광을 자기들이 주선해 주겠다는 이메일을 받았었다. 이 이메일을 받고 좀 착잡한 생각이 들었지만, 곡부(曲阜), 태안(泰安) 등 몇 군데를 둘러보겠다고 하였고, 그 중에 백두산을 포함했었다.
북경에서 항공편으로 장백산 공항에 내려 이도백하(二道白河)에서 쉬고 다음날 아침 일찍 백두산으로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백두산 북파 입구 매표소에는 중국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백두산은 ‘삼국유사’(1280 AD)에 고조선의 건국신화를 설명하면서 태백산으로 알려졌던 성층화산(成層火山)으로 우리 민족의 영산(靈山)이다. 중국과 북한의 국경은 천지의 중간을 지나지만 압록강과 두만강 물줄기를 따라 그린 국경에는 백두산의 거의 4분의3이 중국에 속한다. 백두산은 1978년에 중국 정부가 장백산으로 유네스코(UNESCO) 자연유산으로 등록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5년 백두산(長白山) 관할권이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서 길림성으로 넘어가게 되자, 연변 조선족에게는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예측 했었다. 그러나 백두산이 길림성 관할로 넘어간 후 중국의 명승지로 개발되어야 한다는 중국 정부의 정책에 따라 큰 투자가 시작되었고, 장백산 공항도 그 일환으로 서문(서파) 가까이 건설되어 2008년에 새로 개통됐다.
내가 중국에 처음 간 것은 1986년 시안(중국 이름 西安)에서 개최된 학회 때문이었다. 그때 서점에서 산 ‘중국의 성산(聖山)’이라는 책에는 황산과 장백산(백두산)이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 꼽혔었다. 등산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일본의 후지산은 백두산 보다 약 1000m 더 높고,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실제 등산하면 철에 따라 좀 다르기는 하겠지만 정상 부분의 화산재 때문에 등산화와 옷이 온통 화산재에 덮여 지저분해진다. 유럽의 명산으로 꼽히는 올림피아산의 정상 부분은 제우스의 옥좌로 잘 알려져 있지만 한쪽 벽은 떨어져 나가 삐쭉하고, 일반인들이 등산하기는 상당히 위험하다. 또 동아프리카의 명산이며, 세계에서 5째로 높다는 킬리만자로는 백두산 보다 3000m 이상 더 높고, 역시 멀리서 보면 참 아름답다. 그러나 정상의 화구엔 백두산 천지 같은 화구호(火口湖)가 없고 황량하다. 남미 볼리비아에 있는 쎄로 카켈라(Cerro Caquella)는 우리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에 있기 때문에 항상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우뚝 솟아 웅장하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백두산과 많이 다르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말할 때 그 아름다움의 정의는 물론 주관적이겠지만, 나는 백두산을 항상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 ‘우리의 영산(靈山)’으로만 알아 왔다.
우리 연구실에서는 1990년 초부터 인공위성 정밀측지법으로 백두산을 포함한 세계의 여러 활화산들의 움직임과 폭발 가능성을 관측하기 시작했다. 캐나다의 RADARSAT-1/2, 일본의 ALOS-1/2, 독일의 TERRASAR-X 등의 인공위성 탑재 합성개구레이더와 GPS를 활용하게 되면서 나는 여러 차례 백두산을 방문했고, 레이더 보정을 하기 위한 시설을 백두산 주변 여러 곳에 설치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우리 연구는 우리 민족의 영산을 주제로 한 자랑스러운 케이스였다. 그러나 백두산 관할권이 연길 조선족 자치주에서 길림성으로 넘어간 후에는 우리가 설치한 시설을 사용하는데도 매번 중국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북파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마치 컨베이어 벨트 같이 움직이는 수백대 중 한 미니버스를 타고 천문봉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와, ~와!”하는 중국 관광객들의 소리가 들렸다. “백두산 날씨는 하루에도 23번 변한다”는 말이 있지만, 7월의 백두산 날씨는 일반적으로 예측할 수 없다. 그런데 백두산 천지 위 하늘에 구름이 걷히고 푸른 하늘이 모습을 드러내자 중국 관광객들이 지르는 함성이라고 했다. 천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철벽봉, 천문봉, 자하봉 주변에 중국 관광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고 엄습해오는 회한(悔恨). 순수하게 학문적 목적으로 우리가 설치한 시설 사용도 중국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중국 정부는 이미 오래 전에 장백산(백두산)을 유네스코에 자연유산으로 등록을 했다는 산. 백두산은 과연 우리 산이었나? 국제사회에는 혹시 장백산만 존재하고 백두산이란 산은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나 자신에게 몇 번째 물어 본다.
(2016년 10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