툇마루 풍경
한 바구니 담긴 곶감은 딱딱하게 이를 데 없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살집이 말라붙은 탓이다. 오래전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갖다 주신 곶감은 나에게는 아주 특별한 간식거리가 되었다. 저녁 식사 후에 심심하면 맛보았던 곶감 맛에 젖어 이제는 끊을 래야 끊을 수 없는 마약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씹으면 달착지근한 맛이 배어나오는 곶감, 그러나 살집보다 씨가 많은 게 흠이다. 곶감 한 개에 대 여섯 개 정도 씨가 들어있어 씨를 뱉다보면 보통 짜증나는 게 아니다. 아들 불알처럼 만지면 물렁물렁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스쳐야 하는데 이 놈의 곶감은 당최 곶감이 아니다. 아예 딱딱한 차돌이다. 살집이 딱딱해 한 입 물어뜯다보면 꼭 갈비를 뜯는 기분이다. 하기야 시골의 들녘 아무데나 흩어져 야무지게 몰아치는 바람이나 풍설에 산전수전을 겪은 탓이기도 하다. 감이 감 같지 않으니 주인도 손을 대지 않아 아예 우리 차지가 된 것이다.
몇 해 전 장인어른과 장모님 그리고 아내와 함께 처가가 있는 들녁에서 감을 따던 일이 생각났다. 처가동네에서 거의 5 리 정도 떨어진 평전 마을의 들녘이나 산길을 헤매면 감나무 몇 그루 정도는 눈에 띄었다. 임자 있는 감나무는 붉은 감이 그대로 달려 꽃처럼 황홀했으나 주인이 외지에 살아 돌보지 못하는 감나무는 그대로 내방쳐 두었다. 시골이라 공해 한 점 묻지 않는 감들, 붉은 빛깔이 노을빛 같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러나 감을 따기가 힘들었다. 감나무의 밑동 치를 발로 차도 감은 떨어지지 않고 대신 말라붙은 ㅣ잎들만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감나무 아래서 아무리 허공을 쳐다본들 감이 떨어질리 없었다. 감을 주어 담을 자루 몇 개 가지고 왔으나 감 하나 담지 못해 자루는 텅텅 비었다. 그래서 감나무에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감나무 가지는 아주 연약해 잘못 밟으면 가지가 찢어져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한발 한발 감 가지를 밟고 올라갔더니 주렁주렁 감이 매달린 가지들이 부러질 듯 휘어졌다. 감나무 아래 가족들이 애를 태웠다.
“조심해. 그까짓 감딸라카다 괜히 다치면 큰일 나”
“그냥 내려와. 그까짓 거 안따도 그만이여”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애가 탔다. 혹시 떨어져 다치면 그길로 황천길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자, 가지 흔들게요. 감 주워요”
나는 휘늘어진 감 가지를 붙잡고 힘껏 흔들었다. 살이 오른 감들이 후둑 후둑 떨어져 내렸다. 우박이 떨어지는 소리 같았다. 감나무 아래는 온통 뒹굴고 있는 감이 지천이었다. 폭신한 감잎위에 떨어져 멀쩡한 감들이 있는가 하면 땅에 떨어져 박살이 난 감들도 있었다. 서로 감을 줍느라 야단이었다.
양지쪽 툇마루 위
얇은 껍질을 벗고 붉게 드러누운 감들을 본다
떫은 몸에서 달콤한 맛으로 변할 때까지
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별들이 와르르 툇마루로 쏟아지는 무렵
별빛 속에 서린 향기를 제 몸에 집어넣고
달콤한 꿈을 꾸며 기나긴 세월을 보냈을까
몇 바퀴씩 감 껍질을 도르르 깎아내린
아버지의 처연한 손가락에도 붉은 감물이 들고
얇은 껍질이 마르고 말라 비뚤어질 때쯤
감들은 쫀득쫀득 분가루 묻어나는 곶감이 된다
별빛이 흐린 날이거나
바람이 몰아치는 날이거나
햇살 뜨겁던 양지 쪽 툇마루에는
초겨울로 접어드는 바람이
제 집인듯 웅웅 몸서리를 친다
--툇마루 풍경--
아내의 등위로 떨어지는 감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감들이 떨어졌지만 잘아 빠진 게 흠이었다. 애기 주먹만 할 정도로 작고 볼품없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감나무 주인도 귀찮아 감을 따가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리는 보물찾기하듯 낙엽이나 잡목 속으로 숨은 감들을 전부 찾아내 차로 싣고 처가로 왔다. 굵은 놈들은 홍시로 만들어 먹기 좋지만 잘고 볼품없는 것들은 곶감으로 만들어 먹으면 딱 좋았다. 그날 저녁 처가에서는 감을 깎느라 정신이 없었다. 줄에다 감을 꿰어 처마 아래 걸어 몇 달 두면 감은 껍질이 굳어지고 존득한 곶감으로 변하는 것이다. 처마 아래 걸린 곶감들, 한 폭의 풍경화가 따로 없었다.
그 풍경화는 시간을 거슬러 내려가 아득한 내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을 몰고 왔다. 천상 농사꾼인 부모님은 감을 아주 좋아 하셨다. 시골 사람 다 그렇듯이 농사일 끝나고 시간이 남으면 감을 따다 홍시를 만들거나 감을 깎았다. 곶감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특히 어머니의 감 사랑은 대단하셨다. 혈육이상으로 감을 좋아해 감 따는 가을이 돌아오면 누구보다 바빴다.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도롱골 밭가에는 휘늘어진 감나무 몇 그루가 서있어 가을이면 붉디붉은 감들이 주렁주렁 달렸다. 그 당시에는 공해가 없고 품종도 좋아 그런지 보기만 해도 살점이 더덕더덕 붙은 아주 실한 감들이 태반이었다. 감나무 가지를 들춰보면 눈동자에 물이 들도록 빨갛게 익은 홍시 몇 개가 떨어질 듯 간신히 붙어 있었다. 후덥지근한 여름, 짙게 깔린 그늘을 깔고 앉아 반으로 쪼개 먹는 홍시의 맛은 아직도 내 혀끝을 자극하고 남을 정도였다. 감이 더욱 붉게 익어 감가지가 휘어지면 나는 감나무에 올라가 감을 땄다. 언제든지 감을 딸 때에는 내 차지가 되었다. 겁이 없고 모험을 좋아하는 어린 나이라 감나무에 올라가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부모님도 장인어른과 장모님처럼 똑같이 마음을 졸였다. 마음을 졸이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리 집과 이웃해 살고 있었던 찬석이 형이 감나무에서 떨어져 다 죽어가는 것을 어머니가 살려낸 후로 걱정은 더했다. 찬석이 형은 나보다 서너살 많은 동네 형인데 자기 집 앞 대문가에 서있던 감나무에 올라가 감을 딴 일이 있었다. 집에 있는데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들려 밖으로 뛰어 나가보니 찬석이 형이 눈을 까집고 거의 죽은 상태에 있었다. 그때 어머니는 찬석이 형에게 물을 먹여주고 이마에 물을 찍어주어 정신이 들게 했는데 그 날 이후로 어머니는 내가 감나무에 올라가는 것을 무척이나 꺼리셨다.
그러나 어머니가 걱정을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감을 딸 군번은 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몸이 부실한 아버지나 허리가 뒤로 휘청 굽은 어머니가 감나무에 올라가 감을 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감나무 아래서 부모님이 하는 일이란 넓은 돗자리를 양 손에 잡고 떨어지는 감이 한가운데로 떨어지게 하는 일이었다. 부모님의 염려아래 감을 한 소쿠리 씩 따 자루로 묶어 집으로 싣고 오면 그 때부터 감 깎기가 시작되었다. 온전한 놈은 홍시용으로 쓰고 떨어져 흠집이 많거나 깨져 상처투성인 놈은 곶감용으로 썼다. 대청마루는 온통 감으로 탑을 쌓았다. 붉은 페인트 같은 빛깔로 윤기 흐르는 감들이 사방팔방으로 뒹굴었다, 그냥 쳐다만 보아도 배가 불렀다. 이런 표현은 어머니가 잘 써먹는 말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감들이 어머니 품속에 들어오면 그것은 얼마 못가 물렁한 홍시가 되거나 곶감이 되었다. 그런데 하루 밤 지고 일어난 아침, 나는 별천지 같은 풍경을 보게 되었다. 처마 아래에 걸려있는 붉은 감들, 그것은 차라리 꽃이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붉은 감이 꽃보다 아름다운 건 처음 보았다.
곶감은 서늘한 그늘 속에서 더 잘 말라간다. 얇게 벗겨낸 껍질들은 장독대 따가운 햇살 속에서 말라가고 대신 곶감은 꼬들거리는 제 껍질을 보며 말라간다. 질긴 노끈에 곶감을 달아 서까래 아래 매달면 곶감은 철늦은 가을 늦게 핀 꽃처럼 노랗고, 서까래 주위도 환해진다. 세월이 약이라도 되듯, 몇 달쯤 지나면 쫀득쫀득해진 곶감에선 분가루 하얗게 묻어나고 막 태어난 흑인 아이의 불알처럼 쪼글쪼글 변해간다 -- 곶감--
붉은 감들은 멀리서 보면 불빛처럼 아름다웠다. 노끈에 줄줄이 감을 꿰어 몇 줄로 매달아 놓으면 그 질서정연한 배열에 눈이 황홀했다. 그렇게 멋진 예술이 없었다. 예술에 대해 뭐가 뭔지도 모르는 부모님은 이 때만 되면 팔자에도 없는 예술가가 되었다. 예술, 곶감이 만들어낸 예술은 먹는 것조차 아까웠다.
그렇게 곶감은 시간이 갈수록 익어갔다. 볕도 알맞고 바람도 선선한 곳에 두면 곶감은 단내를 풍기며 익어갔다. 그 단내를 맡고 멀리서 날아온 벌들이 곶감 주변을 날아다니며 웅웅거렸다. 그럴수록 내 손도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몰래 빼 먹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곶감 빼먹듯이 하는 말은 이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질서정연하게 매달린 곶감 중에서 존득한 놈 몇 개만 빼 먹다 보면 곶감 줄이 허전했다.
내가 먹는 것만 봐도 어머니는 배가 부른 모양이었다. 가지런한 치아를 들어내 보이며 웃는 어머니의 얼굴은 따스한 햇살에 흩어져 시골 촌부의 머리를 하고 계셨다. 지금쯤 어머니가 살아계신다면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쫀득쫀득한 곶감을 맛볼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곶감도 만들어 본 사람만이 그 맛을 내는 모양이다.
딱딱하고 차돌 같은 곶감을 먹다보면 불현듯 부모님 생각이 났다. 그 때의 곶감 맛이 그립다. 억센 일로 갈라터진 지문을 꾹꾹 눌러 곶감을 납작하게 만들어 놓으면 며칠 안가 하얀 분가루가 번졌다. 그것은 하얀 분가루 맛인지도 몰랐다. 쫀득쫀득한 곶감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보면 그렇게 많던 곶감이 눈 깜짝할 사이에 줄어들었다. 내가 먹는 모습을 보고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 보이면 웃던 어머니, 딱딱하고 차돌 같은 곶감을 집어들 때마다 처마 아래 거닐며 잘 익은 볕을 쬐던 어머니의 얼굴이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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