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632년에 모하메드가 죽습니다.
그런데 죽을 때 아들도 없고 그가 지명한 후계자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이슬람교는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는 여러 파벌로 분열이 이루어 지는데 결국 수니파가 정통으로 인정이 되어 수니파 중심적으로 통합이 이루어 집니다.
그리고 오랜 토론 끝에 마호메드의 신실한 제자중에서 후계자를 선출하기로 합니다. 그 결과 모하메드의 친구로서 이슬람교로 최초로 개종한 사람이자 장인(丈人)인 아부 바크르(Abu Bakr)가 후계자로 선출됩니다.
그는 "칼리파트 라술 알라"(Khalifat Rasul Allah, 신의 사자의 후계자)라는 호칭을 받아 초대 칼리프가 됩니다. 칼리프는 이슬람교 신정정치 공동체의 종교적, 정치적 최고 지도자로서 왕이나 대통령위에 군림하는 중세 신성 로마제국 당시의 교황보다도 더 막강한 권한을 소유합니다. 아부 바크르는 2년간 칼리프직을 수행하다가 634년 죽기 직전 우마르('Umar)를 후계자로 지목합니다.
우마르는 칼리프가 되자 칼리프 선출을 위한 규정을 만듭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칼리프 선출을 위한 위원회를 구성하여 그 중에서 한 명을 칼리프로 선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미르가 644년에 암살당하고 우트만 브 아판('Uthman B 'Affan)이 3대 칼리프로 선출됩니다.
한편 모하메트가 죽자 그의 무덤이 있는 메디나를 중심으로 마호메트의 혈통을 따라 후계자를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파벌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모하메트가 사실은 후계자를 지명했는데 그가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 브 아비 탈리브('Ali b Abi Talib)”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시아트 알리"(Shi'at 'Ali)라는 집단으로 "시아"(Shi'a)파로 불립니다. 혈통적 후계자를 칼리프로 선출해야 한다고 하는 이들의 주장은 제자들중에서 적격자를 후계자로 선출하여 칼리프로 추대하자고 하는 수니파와 정면 충돌하게 됩니다.
이 충돌은 3대 칼리프가 죽고 새로운 칼리프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쌍방이 첨예하게 대립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시아파의 강력 지지를 받은 “알리”가 제4대 칼리프에 오르지만 수니파와 시아파의 알력은 계속됩니다.
이런 와중에 알리가 661년 암살을 당합니다. 그리고 알리의 유력한 후계자인 장남 하산도 수니파의 조종을 받은 그의 아내에 의해 독살당합니다. 그리고 하나 남은 알리의 차남 후세인은 680년 수니파인 우마이야 왕조에 대항해서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실패로 돌아가고 후세인은 수니파와 치른 전투에서 참혹하게 살해당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수니파에 대한 시아파의 원한은 극에 달하게 되고 그 갈등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 이슬람교도 가운데 수니파는 85%, 시아파는 15%입니다. 수니파의 종주국은 사우디 아라비아입니다. 그리고 터키, 시리아, 이집트, 요르단, 예멘,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 대부분 이슬람 국가가 수니파입니다. 시아파의 종주국은 이란입니다. 그리고 이라크, 레바논, 헤즈볼라등이 시아파 진영에 속해 있습니다.
따라서 겉으로 볼때는 똑같이 모하메트를 숭배하면서 6신과 5행을 행하는 무슬림이지만 속으로는 두 종파가 정통성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2011년부터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은 시아파 정권 (알아사드) 대 수니파 반군의 싸움이고 2014년 터진 예멘 내전도 수니파 정권 대 시아파 반군의 대결 구도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2016년 1월 1일 사우디는 46명의 태러범등과 함께 왕정 전복 혐의로 체포된 사우디내 시아파 지도자 “니므르 알-니므르도”의 사형을 집행합니다.
그러자 이란은 즉각 사우디를 향해 저주를 퍼 부으면서 비난하고 성난 이란의 시아파 군중들은 테헤란의 사우디 대사관에 불을 지르고 사우디와 이란은 국교를 단절합니다. 이와함께 중동 이슬람 국가들 또한 분열합니다. 수니파인 바레인과 수단, UAE 등도 이란과 외교 관계를 단절하고 걸프 지역 수니파 왕정 6개국 모임인 걸프협력회의(GCC)와 친 사우디 성향의 아랍연맹(AL)도 “사우디 지지” 성명을 발표합니다. 이에 맞서 이란, 이라크, 헤즈볼라 등 시아파 진영은 사우디에 보복을 선언하고 나섭니다.
사우디와 이란의 갈등은 7년을 끌다 지난 2023년 3월 10일 양국 최고위급 회담에서 국교 단절을 끝내고 관계 정상화가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중재자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중동에서의 영향력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중심축이 이전되었음을 단적으로 보여 준 사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