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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강설 53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53 三十八, 이세간품(離世間品) 1 서 문 구름 일 듯 일어나는 이백 가지 질문에 병에서 쏟아 붇듯 이천 가지 대답이여. 운흥이백문(雲興二百問)에 병사이천답(甁瀉二千答)이라. 무엇이 도솔천에 계시면서 짓는 업이며, 어째서 도솔천궁에서 없어지며, 어째서 모태에 들어감을 나타냄이며, 무엇이 미세한 길을 나타냄이며, 어째서 처음 태어남을 나타냅니까? 어째서 미소를 나타내며, 어째서 일곱 걸음을 걸으며, 어째서 동자의 지위를 나타내며, 어째서 궁전에 있음을 나타내며, 어째서 출가함을 나타냅니까? 어째서 고행함을 보이며, 어떻게 도량에 나아가며, 어떻게 도량에 앉으며, 무엇이 도량에 앉았을 때의 특수한 모습이며, 어떻게 마군을 항복받음을 보임입니까? 무엇이 여래의 힘을 이룸이며, 어떻게 법륜을 굴리며, 어째서 법륜 굴림을 인하여 깨끗한 법[自淨法)을 얻음이며, 어째서 여래 응공 등정각께서 열반에 드심을 보이십니까? 훌륭하신 불자시여, 이와 같은 법들을 원컨대 연설하여주십시오. 2017년 0월 00일 신라 화엄종찰 금정산 범어사 如天 無比 차례 三十八, 이세간품(離世間品) 1 강설 ; 이세간품(離世間品)은 화엄경 총 아홉 번의 법회 중에서 여덟 번째의 법회다. 마갈제국(摩竭提國) 아란야(阿蘭若) 법(法) 보리도량의 보광명전(普光明殿)에서 한 품의 경전 7권을 설한 것이다. 그 내용은 10신과 10주와 10행과 10회향과 10지와 등각과 묘각의 법을 2백 가지의 질문을 하고, 그 하나하나의 질문에 각각 열 가지의 대답을 하여 불교의 수많은 용어들을 화엄경의 안목으로 새롭게 설파하였다. 이와 같은 법문의 형식을 고인(古人)들은 운흥이백문(雲興二百問)에 병사이천답(甁瀉二千答)이라고 표현하였다. 또는 현하이백문(懸河二百問)에 병사이천수(瓶寫二千酬)라고도 한다. 마치 먼 하늘에서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나서 하늘을 뒤덮듯이 2백 가지의 질문을 퍼부어대니 병에서 물을 쏟아 붓듯이 2천 가지의 답을 하는 것이다. 예컨대 그 첫 질문에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의지(依支)입니까?”라고 하였는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의지가 있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보리심으로 의지를 삼나니 항상 잊지 않는 연고며, 선지식으로 의지를 삼나니 화합하여 한결 같은 연고며, 착한 뿌리로 의지를 삼나니 닦아 모아 증장하는 연고며, 바라밀다로 의지를 삼나니 구족하게 수행하는 연고며, 일체 법으로 의지를 삼나니 구경에 벗어나는 연고며, 큰 서원으로 의지를 삼나니 보리를 증장케 하는 연고며, 모든 행으로 의지를 삼나니 다 성취하는 연고며, 일체 보살들로 의지를 삼나니 지혜가 같은 연고며, 모든 부처님께 공양함으로 의지를 삼나니 믿는 마음이 청정한 연고며, 일체 여래로 의지를 삼나니 자비하신 아버지의 가르침과 같이 끊어지지 않는 연고니라. 이것이 열 가지이니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러한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큰 지혜의 의지할 곳이 되느니라.”라고 하였다. 과연 화엄경의 뜻에 부합하는 화엄경 식의 질문과 화엄경 식의 대답이다.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무엇을 의지해야하며, 무엇이 특별한 생각이며, 무엇을 실천해야하며, 무엇이 선지식이며, 무엇이 정진이며, 무엇이 마음에 편안함이며, 무엇이 중생을 성취함이며, 무엇이 계행이며, 무엇이 스스로 수기 받을 줄을 아는 것이며, 무엇이 보살에 들어는 것인가에 대한 등등 불교의 중요한 2백 가지 명제들에 대해서낱낱이 각각 열 가지씩 답하였다. 어떤 명제들이 등장하며 어떤 답이 나올 것인지 실로 궁금하고 기대되는 이세간품이다.교학(敎學)상으로 이세간품을 신(信) 해(解) 행(行) 증(證)으로 과판(科判)하면 법에 의탁하여 닦아 아나가서 행(行)을 성취하는 부분[托法進修成行分]에 해당된다. 1, 서분(序分) (1) 기세간(器世間)의 원만함 爾時에 世尊이 在摩竭提國阿蘭若法菩提場中普光明殿하사 坐蓮華藏獅子之座하사 그 때에 세존께서 마갈제국(摩竭提國) 아란야(阿蘭若) 법(法) 보리도량의 보광명전(普光明殿) 연화장 사자좌에 앉아계셨습니다. 강설 ; 부처님이 성도하신 나라가 마갈제국이다. 이 마갈제국 아란야 법(法) 보리도량의 보광명전 연화장 사자좌에서 화엄경의 법회가 7처 9회중에 세 번째 열렸다. 제1회 보광명전에서 두 번째 법회인 6품의 경전이 설해졌고, 2회 보광명전에서 일곱 번째 법회인 11품의 경전이 설해졌고, 다시 3회 보광명전에서 여덟 번째 법회인 이 이세간품 한품의 경전이 설해졌다. 그러므로 화엄경이 가장 많이 설해진 곳이 이 보광명전이다. 화엄경이 설해진 곳이므로 기세간(器世間)이 원만하다고 한다. 또 화엄경을 설하신 세존에 대해서는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이 원만하다고 하고, 법문을 듣는 대중인 보살대중에 대해서는 중생세간이 원만하다고 한다. 이 모든 사실들에 대해서는 역시 이 화엄경을 편찬하고 결집한 경가(經家)가 설한 것이다. (2)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이 원만함 妙悟皆滿하시며 二行永絶하시며 達無相法하시며 미묘한 깨달음이 다 원만하시며, 두 가지 행을 영원히 끊었으며, 모양 없는 법을 통달하였습니다. 강설 ;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인 세존의 수승한 공덕에 대해서 경가가 설한 내용이다. 먼저 세존은 미묘한 깨달음이 원만하다. 이것은 아래에 열거할 공덕의 총체적인 내용이다. 모든 공덕은 깨달음으로부터 이뤄지기 때문이다. 또 깨달음이 원만하다면 세상 일체 존재에 대해서 중생들은 모두가 이것과 저것이라는 치우친 견해에 떨어져 상대적으로 보아 대립하지만 깨달음이 원만한 세존은 일체 존재의 상대적인 상반된 것[二行]에 치우치지 않고 부정과 긍정을 대립하지 아니하며 다 수용한다. 그러므로 고정된 모양이 없는 법을 깊이 통달한 것이다. 그래서 청량스님은 지(知)와 부지(不知)가 있으면 곧 이행(二行)이라고 하였다. 住於佛住하시며 得佛平等하시며 到無障處하시며 부처님의 머무는 데 머무르며, 부처님의 평등함을 얻어 장애가 없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강설 ; 부처님은 당연히 부처님이 머물 곳에 머문다. 부처님이 어찌 중생이 머무는 곳에 머물겠는가. 그러므로 깨달음을 성취한 모든 부처님들은 그 법이 다 같이 평등하여 어디에도 장애가 없는 곳에 이르렀다. 不可轉法에 所行無礙하시며 움직일 수 없는 법에 행함이 걸림이 없었습니다. 강설 ; 청량스님의 소(疏)에 “움직일 수 없는 법이란 일체 외도를 항복 받는 공덕이다. 가르침과 깨달음을 다른 이는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행함에 걸림이 없다는 것은 세간에 있으면서 세간에 걸리지 않는 공덕이다. 이를테면 이쇠훼예칭기고락(利衰毁譽稱譏苦樂) 등 여덟 가지 법이 능히 구속하지 못하는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立不思議하시며 普見三世하시며 헤아릴 수 없는 데 서서 세 세상을 두루 보십니다. 강설 ; 부처님의 정법에 안주한 공덕으로서 12분교에 편안히 머물면 다른 외도들이나 소승들은 생각할 수 없다. 또 삼세를 널리 보는 것은 수기(授記)의 공덕으로서 수기는 과거와 미래가 모두 현재와 같다. 身恒充徧一切國土하시며 智恒明達一切諸法하시며 몸은 일체 국토에 항상 가득하고, 지혜는 일체 모든 법을 밝게 통달하였습니다. 강설 ; 부처님의 몸이 일체 세계에 나아가서 수용하고 변화하는 공덕과 또 부처님에게는 지혜가 밝게 통달하여 일체 의혹이 다 끊어진 공덕이 있음을 밝혔다. 了一切行하시며 盡一切疑하시며 無能測身과 一切菩薩等所求智하야 到佛無二究竟彼岸하시며 모든 행을 분명히 알고 모든 의심을 끊었으며, 측량할 수 없는 몸과 일체 보살의 구하는 지혜가 평등하여 부처님의 둘이 없는 구경(究竟)의 저 언덕에 이르렀습니다. 강설 ; 부처님은 일체 행을 알아서 모든 의심이 다하였으며, 측량할 수 없는 몸이 있으며, 둘이 없는 구경(究竟)의 저 언덕에 이르렀다. 둘이 없음이란 앎과 알지 못함이 없는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具足如來平等解脫하시며 證無中邊佛平等地하시며 盡於法界하시며 等虛空界하시니라 여래의 평등한 해탈을 갖추고, 복판과 언저리[中邊]가 없는 부처님의 평등한 경지를 증득하였으므로 법계를 다하며 허공계와 같았습니다. 강설 ; 부처님은 여래의 평등한 해탈을 갖추었으므로 복판도 없고 언저리도 없는 진정한 중도의 자리에 있다. 일체 부처님과 평등한 경지를 증득하여 그대로가 일체 법계며 그대로가 일체 허공계다. 지정각세간이 원만한 세존을 간략히 설하였다. (3) 중생세간(衆生世間)이 원만함 <1> 모인 대중들의 수와 덕의 찬탄 與不可說百千億那由他佛刹微塵數菩薩摩訶薩로 俱하시니 말할 수 없는 백 천억 나유타 세계의 미진수 보살마하살과 함께 계셨습니다. 강설 ; 중생세간이 원만함이란 곧 보살들의 경지를 밝힌 것이다. 기세간과 지정각세간에 이어서 중생세간이 원만함을 설하는데 먼저는 그 수효를 말하고 다음은 그 덕을 찬탄하였다. 皆一生에 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 모두 한 생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이들이었습니다. 강설 ; 이 법회에 모인 보살대중들은 다음 생을 미루지 않고 곧 금생에 무상정각을 이룰 수행이 쌓여서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른 보살들이다. 各從他方種種國土하야 而共來集호대 悉具菩薩方便智慧하니 각각 다른 지방의 갖가지 국토로부터 와서 모이었으며, 모두 보살의 방편과 지혜를 갖추었습니다. 강설 ; 이 법회에 모인 무수한 보살들은 모두 다른 지방의 갖가지 국토로부터 왔으며, 모두 보살이 갖춰야할 방편과 지혜를 다 갖춘 이들이다. 所謂善能觀察一切衆生하야 以方便力으로 令其調伏하야 住菩薩法하며 이른바 일체중생을 잘 관찰하고, 방편의 힘으로 그들을 조복시켜 보살의 법에 머물게 하였습니다. 강설 ; 이 법회에 모인 보살대중들은 일체중생들의 근기를 잘 살펴서 적절한 방편의 힘으로 중생들을 모두 잘 조복시켜서 보살의 법에 머물게 한다. 즉 일체중생들을 모두 잘 교화하고 조복하여 보살로 만드는 이들이다. 모든 중생들을 잘 교화하여 보살로 만드는 것은 모든 부처님의 꿈이며 모든 보살들의 희망이다. 善能觀察一切世界하야 以方便力으로 普皆往詣하며 일체 세계를 잘 관찰하고 방편의 힘으로 널리 다 나아갔습니다. 강설 ; 이 법회에 모인 무수한 보살들은 어떤 세계든지 중생 교화를 위해서 가지 않는 곳이 없다. 善能觀察涅槃境界하야 思惟籌量하야 永離一切戱論分別하고 而修妙行하야 無有間斷하며 열반의 경계를 잘 관찰하여 생각하고 헤아리며, 일체 부질없는 말과 분별을 아주 떠나서 묘한 행을 닦아서 끊어짐이 없습니다. 강설 ; 보살들은 또 진정한 열반을 잘 알아서 일체 부질없는 말과 분별을 아주 떠났으나 중생을 교화하는 묘한 행을 부지런히 닦아 끝날 날이 없다. 번뇌가 사라지고 육신마저 끝나버린 그런 열반이 아니다. 왕성한 보살행을 펼치는 것이 진정한 열반이다. 善能攝受一切衆生하며 善入無量諸方便法하며 일체 중생을 잘 거두어 주고, 한량없는 모든 방편의 법에 잘 들어갔습니다. 강설 ; 불교가 하고자 하는 일은 보살행으로 한량없는 방편을 동원하여 일체중생들을 잘 섭수하고 교화하여 고통은 멀리 떠나게 하고 즐거움과 편안함을 마음껏 누리게 하는 것이다. 知諸衆生이 空無所有호대 而不壞業果하며 모든 중생들이 공하여 아무것도 없는 줄을 알면서도 업과 과보를 깨뜨리지 아니합니다. 강설 ; 참사람인 중생에게는 본래로 텅 비어 공하며, 본래로 부처님이지만 또한 오온의 중생에게는 업도 있고 업에 의한 과보도 있다. 예컨대 이것은 물과 물결의 관계와 같다. 이러한 사실들을 보살들은 잘 알고 있다. 善知衆生의 心使諸根과 境界方便의 種種差別하며 중생들의 마음과 여러 근(根)과 경계와 방편이 갖가지로 차별함을 잘 아십니다. 강설 ; 이 법회에 모인 보살대중들은 중생들의 마음과 근(根)과 경계와 방편이 갖가지로 차별함을 잘 알아서 중생 교화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悉能受持三世佛法하야 自得解了하고 復爲他說하며 세 세상의 불법을 잘 받들어 가지며 스스로 이해하고 다시 다른 이에게 말씀하십니다. 강설 ; 이 법회에 모인 보살대중들은 또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님 법을 잘 받들어 가져서 스스로도 잘 이해하고 다시 다른 이에게 잘 설한다. 於世出世無量諸法에 皆善安住하야 知其眞實하며 세간과 출세간의 한량없는 모든 법에 잘 머물러서 그 진실을 아십니다. 강설 ; 이 법회의 보살들은 세간의 법과 출세간의 법을 모두 다 잘 알아서 그 법에 편안히 머물러 일체 법의 실상을 잘 안다. 於有爲無爲一切諸法에 悉善觀察하야 知無有二하며 함이 있고 함이 없는 일체 모든 법을 모두 잘 관찰하여 둘이 있지 아니함을 알았습니다. 강설 ; 유위법이나 무위법이나 세간법이나 출세간법이나 그 실상을 잘 알면 일체 법이 둘이 없고 상대적인 법이 아님을 안다. 於一念中에 悉能獲得三世諸佛所有智慧하며 잠깐 동안에 세 세상 모든 부처님들의 가진 지혜를 모두 다 얻었습니다. 강설 ; 이 법회에 모인 보살들은 짧은 한 순간에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이 소유하신 지혜를 다 얻었다. 於念念中에 悉能示現成等正覺하야 令一切衆生으로 發心成道하며 잠깐 잠깐마다 다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하는 것을 나타내보여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마음을 내어 도를 이루게 하였습니다. 강설 ; 이 법회에 모인 보살들은 순간순간마다 등정각 이룸을 보여서 일체중생들에게 발심하여 도를 이루게 한다. 於一衆生心之所緣에 悉知一切衆生境界하며 한 중생이 마음으로 반연하는 데서 일체중생의 경계를 다 아십니다. 강설 ; 이 법회에 모인 보살대중들은 한 중생이 마음으로 반연하는 데서 일체중생의 경계를 다 안다. 중생들의 마음 씀씀이란 오온으로 작용하고 생각하여 감정을 일으키는 것 외에 달리 무엇이 있겠는가. 모든 중생들이 다 이와 같다. 雖入如來一切智地나 而不捨菩薩行하며 비록 여래의 일체 지혜의 경지에 들어갔지마는 보살의 행을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강설 ; 여래의 일체 지혜의 경지에 들어가야 보살행을 할 수 있다. 진정으로 보살행을 할 수 있는 것은 곧 일체 지혜의 경지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諸所作業이 智慧方便으로 而無所作하며 여러 가지 짓는 업은 지혜와 방편이므로 짓는 일이 없습니다. 강설 ; 이 법회에 모인 무수한 보살들은 지혜 방편으로 업을 지으므로 지어도 짓는 바가 없다. 爲一一衆生하야 住無量劫하며 而於阿僧祗劫에 難可値遇며 낱낱 중생을 위하여 한량없는 겁(劫)에 머물지마는 아승지 겁에도 만날 수 없습니다. 강설 ; 보살들은 낱낱 중생들을 위하여 한량없는 겁에 머물지만 중생들이 진정으로 보살을 만난다는 것은 백천만겁에도 어렵다. 그동안 한번만이라도 부처님을 만나거나 보살을 만났더라면 이미 이 법회의 보살들의 숫자에 들어가 있으리라. 轉正法輪하야 調伏衆生하야 皆不唐捐하며 바른 법륜을 굴리어 중생을 조복시킴이 모두 헛되지 아니합니다. 강설 ; 이 법회의 보살들은 언제나 바른 법륜을 굴리어 중생들을 조복하여 헛되지 않았다. 三世諸佛淸淨行願을 悉已具足하야 세 세상 모든 부처님들의 청정한 행(行)과 원(願)을 모두 구족하였습니다. 강설 ; 이 법회의 모든 보살들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의 훌륭한 행과 원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갖추었다. 成就如是無量功德하니 一切如來가 於無邊劫에 說不可盡이러라 이와 같은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한 것은 모든 여래가 그지없는 겁 동안 말하여도 다할 수 없습니다. 강설 ; 보살들은 이와 같은 한량없는 공덕을 모두 갖추어서 그 공덕을 일체 여래가 한량없는 세월 동안 설명하려해도 다하지 못한다. 이 법회에 모인 보살들의 덕을 찬탄하여 마쳤다. <2> 모인 대중들의 이름과 덕의 찬탄 其名曰普賢菩薩과普眼菩薩과普化菩薩과普慧菩薩과普見菩薩과普光菩薩과 普觀菩薩과普照菩薩과普幢菩薩과普覺菩薩이니라 그들의 이름은 보현(普賢)보살과 보안(普眼)보살과 보화(普化)보살과 보혜(普慧)보살과 보견(普見)보살과 보광(普光)보살과 보관(普觀)보살과 보조(普照)보살과 보당(普幢)보살과 보각(普覺)보살이었습니다. 강설 ; 이 법회에 모인 열 갑절의 말할 수 없는 백 천억 나유타 세계의 미진수 보살마하살들 중에 그 대표가 되는 열 명의 보살 이름을 밝혔다. 如是等十不可說百千億那由他佛刹微塵數가 皆悉成就普賢行願하야 深心大願이 皆已圓滿하며 이와 같은 등 열 갑절 말할 수 없는 백 천억 나유타 세계의 미진수 보살이 모두 보현의 행과 원을 성취하였으니, 깊은 마음과 큰 서원을 다 이미 원만하였습니다. 강설 ; 그 무수한 보살들이 갖춘 덕에 대해서는 이름을 열거하기 이전에 이미 밝혔으나 다시 또 요약하여 그 덕을 찬탄한다. 전체적으로 밝히면 보현보살의 행과 원이다. 보현보살의 행과 원은 무수히 많으나 그 근본이 되는 것은 보현행원품에서 열거한 십대행원(十大行願)이다. 무량하고 무수한 보현의 행과 원을 이 법회에 모인 보살들은 다 이미 원만히 하였다. 一切諸佛出興世處에 悉能往詣하야 請轉法輪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는 곳에 다 나아가서 법륜 굴리기를 청하였습니다. 강설 ; 보현보살의 십대행원에도 이미 나타나 있는 내용이다. 부처님이 출현하시거나 보살과 선지식이 출현하시거나 아니면 누구에게나 항상 그 앞에 나아가서 법을 설해주시기를 청하는 것이다. 善能受持諸佛法眼하며 不斷一切諸佛種性하며 모든 부처님의 법의 안목을 잘 받아 가지어 일체 모든 부처님의 종자(種子) 성품을 끊지 않습니다. 강설 ; 모든 부처님의 종성(種性)을 이어받아 영원히 이어가게 하려면 먼저 부처님의 법의 안목을 받아 가져야 한다. 법의 안목이 곧 부처님의 종성이다. 여기 모인 무수한 보살들은 부처님의 종성을 이어가는 이들이다. 善知一切諸佛興世授記次第와 名號國土하며 成等正覺하야 轉於法輪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심과 수기하는 차례와 이름과 국토와 평등한 바른 깨달음을 이루심과 법륜 굴리심을 잘 압니다. 강설 ; 이 법회에 모인 무수한 보살들은 부처님의 출현과 수기하는 차례와 이름과 국토와 평등한 바른 깨달음을 이루심과 법륜 굴리심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잘 안다. 이와 같이 먼저 부처님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이 우선이다. 無佛世界에 現身成佛하야 能令一切雜染衆生으로 皆悉淸淨하며 부처님이 없는 세계에서 몸을 나타내어 부처를 이루어서 능히 모든 물든 중생들로 하여금 다 청정케 합니다. 강설 ; 여기 모인 보살들은 만약 부처님이 없는 세상이라면 스스로 몸을 나타내어 부처를 이루어서 모든 잡되고 물든 중생들에게 법을 설하여 그들을 다 청정케 한다. 能滅一切菩薩業障하며 入於無礙淸淨法界하니라 모든 보살의 업과 장애를 능히 없애고 걸림 없이 청정한 법계에 들어갔습니다. 강설 ; 이 보살들은 일체 업장을 다 소멸하고 걸림 없이 청정한 법계에 들어갔다. 그래서 서원의 힘으로 청정한 법계에 있으면서 다시 세상에 출현하여 업의 몸을 나타내고 중생을 교화한다. 2, 보현(普賢)보살이 삼매에 들다 爾時에 普賢菩薩摩訶薩이 入廣大三昧하시니 名佛華莊嚴이라 入此三昧時에 十方所有一切世界가 六種十八相動하야 出大音聲하니 靡不皆聞이라 然後에 從其三昧而起하시니라 그때에 보현보살마하살이 넓고 큰 삼매에 들었으니, 이름이 불화장엄(佛華莊嚴)입니다. 이 삼매에 들었을 때에 시방에 있는 모든 세계가 여섯 가지 열여덟 모양으로 진동하며 큰 소리를 내는 것을 듣지 못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런 뒤에 그 삼매에서 일어났다. 강설 ; 지금까지는 경가가 여러 가지 상황을 설명한 부분이다. 이제 보현보살이 이세간 법문을 설하기 위해서 먼저 불화장엄(佛華莊嚴)이라는 삼매에 들어가니 일체 세계가 6종 18상으로 진동하는 것을 보였다. 진동이 있은 뒤에 보현보살은 삼매에서 일어났다. 이와 같은 진동은 아주 희유하고 특별한 법문이 있기 전과 있은 뒤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육종진동(六種震動) 또는 육종십팔상(六種十八相)이라고 하는데, 흔들흔들하고 두루 흔들흔들하고 널리 두루 흔들흔들하며, 들먹들먹하고 두루 들먹들먹하고 널리 두루 들먹들먹하며, 울쑥불쑥하고 두루 울쑥불쑥하고 널리 두루 울쑥불쑥하며, 우르르하고 두루 우르르하고 널리 두루 우르르하며, 와르르하고 두루 와르르하고 널리 두루 와르르하며, 와지끈하고 두루 와지끈하고 널리 두루 와지끈하는 것이다. 3, 보혜(普慧)보살이 보현보살에게 2백 가지 법을 묻다 (1) 십신행법(十信行法)의 20문(問) 爾時에 普慧菩薩이 知衆已集하고 問普賢菩薩言하사대 그때에 보혜(普慧)보살이 대중들이 이미 다 모인 줄을 알고 보현보살에게 물었습니다. 강설 ; 보혜보살이 보현보살에게 질문한 2백 가지 법을 고인(古人)들은 십신행법(十信行法)에 20문(問), 십주행법(十住行法)에 20문(問), 십행행법(十行行法)에 30문(問), 십회향행법(十廻向行法)에 29문(問), 십지행법(十地行法)에 50문(問), 인원구경행법(因圓究竟行法)의 등각위(等覺位)에 32문(問), 과용원만행법(果用圓滿行法)의 묘각위(妙覺位)에 19문(問)으로 모두 52위 보살수행의 지위점차에 배대하였다. 먼저 십신행법의 20문을 들었다. 십신(十信)은 십주품이나 십행품이나 십회향품처럼 십신품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십신법문에 해당하는 여래명호품과 사성제품과 광명각품과 보살문명품과 정행품과 현수품 등 여섯 품의 법문이 있다. 특히 현수품은 신심에 대한 법을 설한 것으로 중요한 내용들이 많이 있다. 십신은 보살이 수행하는 계위(階位) 52위중에 처음의 10위(位)로서 부처님의 교법을 믿어 의심이 없는 지위이다. 신심(信心)ㆍ염심(念心)ㆍ정진심(精進心)ㆍ혜심(慧心)ㆍ정심(定心)ㆍ 불퇴심(不退心)ㆍ호법심(護法心)ㆍ회향심(廻向心)ㆍ계심(戒心)ㆍ원심(願心)을 들고 있다. 佛子야 願爲演說하소서 何等이 爲菩薩摩訶薩依며 何等이 爲奇特想이며 何等이 爲行이며 何等이 爲善知識이며 何等이 爲勤精進이며 “불자여, 바라건대 말씀하소서.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의지(依支)이며, 무엇이 신기한 생각이며, 무엇이 행(行)이며, 무엇이 선지식이며, 무엇이 부지런히 정진함입니까?” 강설 ; 먼저 다섯 가지 보살마하살의 의지와 신기한 생각과 행(行)과 선지식과 부지런히 정진함에 대해서 나누어 생각해 본다. 何等이 爲心得安隱이며 何等이 爲成就衆生이며 何等이 爲戒며 何等이 爲自知受記며 何等이 爲入菩薩이며 “또 무엇이 마음이 편안함이며, 무엇이 중생을 성취함이며, 무엇이 계행이며, 무엇이 스스로 수기 받음을 아는 것이며, 무엇이 보살에 들어감입니까?” 何等이 爲入如來며何等이 爲入衆生心行이며 何等이 爲入世界며何等이 爲入劫이며 何等이 爲說三世며 “또 무엇이 여래에 들어감이며, 무엇이 중생의 마음에 들어감이며, 무엇이 세계에 들어감이며, 무엇이 겁에 들어감이며, 무엇이 세 세상을 말함입니까?” 何等이 爲知三世며 何等이 爲發無疲厭心이며 何等이 爲差別智며 何等이 爲陀羅尼며 何等이 爲演說佛이며 “무엇이 세 세상을 앎이며, 무엇이 고달프지 않은 마음을 냄이며, 무엇이 차별한 지혜이며, 무엇이 다라니이며, 무엇이 부처님을 연설함입니까?” 강설 ; 여기까지 20종의 행문이 곧 십신행법의 20종 질문에 대한 내용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명제들이 반드시 믿음에 대한 것은 아니지만 믿음의 차원에서 살펴본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2) 십주행법(十住行法)의 20문(問) 何等이 爲發普賢心이며 何等이 爲普賢行法이며 以何等故로 而起大悲며 何等이 爲發菩提心因緣이며 何等이 爲於善知識에 起尊重心이며 “또 무엇이 보현의 마음을 냄이며, 무엇이 보현의 행하는 법이며, 무슨 연고로 큰 자비를 일으키며, 무엇이 보리심을 내는 인연이며, 무엇이 선지식에게 존중한 마음을 일으킴입니까?” 강설 ; 여기서부터 십주행법(十住行法)의 20문(問)에 해당한다. 십주(十住)란 보살이 수행하는 계위(階位)인 52위 중,제11위(位)에서 제20위까지를 말한다. 10신위(信位)를 지나서 마음이 진제(眞諦)의 이치에 안주(安住)하는 위치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주(住)라고 한다. (1) 발심주(發心住), (2) 치지주(治地住), (3) 수행주(修行住) (4) 생귀주(生貴住), (5) 구족방편주(具足方便住), (6) 정심주(正心住), (7) 불퇴주(不退住), (8) 동진주(童眞住), (9) 법왕자주(法王子住), (10) 관정주(灌頂住)이다. 何等이 爲淸淨이며 何等이 爲諸波羅蜜이며 何等이 爲智隨覺이며 何等이 爲證知며 何等이 爲力이며 “무엇이 청정함이며, 무엇이 모든 바라밀다이며, 무엇이 지혜가 따라 깨달음이며, 무엇이 증득하여 아는 것이며, 무엇이 힘입니까?” 何等이 爲平等이며 何等이 爲佛法實義句며何等이 爲說法이며 何等이 爲持며何等이 爲辯才며 “무엇이 평등이며, 무엇이 불법(佛法)의 진실한 뜻의 구절이며, 무엇이 법을 말함이며, 무엇이 지님[持]이며, 무엇이 변재입니까?” 何等이 爲自在며何等이 爲無着性이며 何等이 爲平等心이며 何等이 爲出生智慧며何等이 爲變化며 “무엇이 자유자재며, 무엇이 집착 없는 성품이며, 무엇이 평등한 마음이며, 무엇이 지혜를 냄이며, 무엇이 변화입니까?” 강설 ; 십주행법(十住行法)에 대한 20가지 질문을 들었다. 위의 20가지 질문이 반드시 십주법문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불법의 중요한 명제들을 열거하고 하나하나의 명제에 대해서 뒤에서 다시 열 가지씩 풀어서 밝힌 것이다. (3) 십행행법(十行行法)의 30문(問) 何等이 爲力持며 何等이 爲得大欣慰며 何等이 爲深入佛法이며 何等이 爲依止며 何等이 爲發無畏心이며 “무엇이 힘으로 지님이며, 무엇이 큰 위안을 얻음이며, 무엇이 불법에 깊이 들어감이며, 무엇이 의지함이며, 무엇이 두려움 없는 마음을 냄입니까?” 강설 ; 2백가지 질문 중에 여기서부터는 십행행법(十行行法)의 30문(問)에 해당한다. 십행(十行)이란 보살이 수행하는 계위(階位)를 52위(位)로 설정한 것 중에서 10신(信)ㆍ10주(住)에서 나아가 묘각(妙覺)에 이르는 한 계위의 이름이다. 보살이 10주위(住位)의 나중에서 불자(佛子)라는 인가를 얻은 뒤에 다시 나아가 이타(利他)의 수행을 완수하기 위하여 중생제도에 노력하는 지위를 열 가지로 나눈 것이다. 그 이름은 환희행(歡喜行)ㆍ 요익행(饒益行)ㆍ 무진한행(無瞋恨行)ㆍ 무진행(無盡行)ㆍ 이치란행(離癡亂行)ㆍ 선현행(善現行)ㆍ 무착행(無着行)ㆍ 존중행(尊重行)ㆍ 선법행(善法行)ㆍ 진실행(眞實行)이다. 何等이 爲發無疑惑心이며 何等이 爲不思議며何等이 爲巧密語며 何等이 爲巧分別智며何等이 爲入三昧며 “무엇이 의혹 없는 마음을 냄이며, 무엇이 부사의며, 무엇이 교묘하고 비밀한 말이며, 무엇이 교묘하게 분별하는 지혜며, 무엇이 삼매에 들어감입니까?” 何等이 爲徧入이며 何等이 爲解脫門이며 何等이 爲神通이며 何等이 爲明이며 何等이 爲解脫이며 “무엇이 두루 들어감이며, 무엇이 해탈의 문이며, 무엇이 신통이며, 무엇이 밝음이며, 무엇이 해탈입니까?” 何等이 爲園林이며 何等이 爲宮殿이며 何等이 爲所樂이며 何等이 爲莊嚴이며 何等이 爲發不動心이며 “무엇이 동산의 숲이며, 무엇이 궁전이며, 무엇이 즐기는 것이며, 무엇이 장엄이며, 무엇이 동하지 않는 마음을 냄입니까?” 何等이 爲不捨深大心이며 何等이 爲觀察이며 何等이 爲說法이며 何等이 爲淸淨이며 何等이 爲印이며 “무엇이 깊고 큰마음을 버리지 않음이며, 또한 무엇이 관찰함이며, 무엇이 법을 말함이며, 무엇이 청정이며, 무엇이 인(印)입니까?” 何等이 爲智光照며何等이 爲無等住며何等이 爲無下劣心이며 何等이 爲如山增上心이며 何等이 爲入無上菩提如海智며 “무엇이 지혜광명이 비침이며, 무엇이 같을 이 없이 머무름이며, 무엇이 못났다는 생각이 없는 마음이며, 무엇이 산처럼 더 올라가는 마음이며, 무엇이 위없는 보리에 들어가는 바다 같은 지혜입니까?” 강설 ; 여기까지 30가지의 질문이 십행행법(十行行法)에 해당한다. 비슷한 뜻을 가진 명제들이 중복이 되지만 같은 명제라도 수행의 차원을 달리해서 다르게 묻고 다르게 해석한다. (4) 십회향행법(十廻向行法)의 29문(問) 何等이 爲如寶住며 何等이 爲發如金剛大乘誓願心이며 何等이 爲大發起며 何等이 爲究竟大事며 何等이 爲不壞信이며 “무엇이 보배처럼 머무름이며, 무엇이 금강 같은 대승의 서원하는 마음을 냄이며, 무엇이 크게 발기(發起)함이며, 무엇이 구경의 큰일이며, 무엇이 무너지지 않는 믿음입니까?” 강설 ; 2백가지 질문 중에 여기서부터는 십회향행법(十廻向行法)의 29문(問)이다. 십회향이란 보살이 수행하는 계위(階位)인 52위(位) 중에서 제31위에서 제40위까지이다. 10행위(行位)를 마치고, 다시 지금까지 닦은 자리(自利)ㆍ이타(利他)의 여러 가지 행을 일체 중생을 위하여 돌려주는 동시에 이 공덕으로 불과를 향해 나아가 깨달음의 경계에 도달하려는 지위이다. 그 이름은 구호일체중생 이중생상회향(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廻向)ㆍ 불괴회향(不壞廻向)ㆍ 등일체제불회향(等一切諸佛廻向)ㆍ 지일체처회향(至一切處廻向)ㆍ 무진공덕장회향(無盡功德藏廻向)ㆍ 입일체평등선근회향(入一切平等善根廻向)ㆍ 등수순일체중생회향(等隨順一切衆生廻向)ㆍ 진여상회향(眞如相廻向)ㆍ 무박무착해탈회향(無縛無着解脫廻向)ㆍ 입법계무량회향(入法界無量廻向)이다. 何等이 爲授記며 何等이 爲善根廻向이며 何等이 爲得智慧며 何等이 爲發無邊廣大心이며 何等이 爲伏藏이며 “무엇이 수기(授記)이며, 무엇이 착한 뿌리를 회향함이며, 무엇이 지혜를 얻음이며, 무엇이 그지없이 광대한 마음을 냄이며, 무엇이 묻힌 갈무리[伏藏]입니까?” 何等이 爲律儀며 何等이 爲自在며 何等이 爲無礙用이며 何等이 爲衆生無礙用이며 何等이 爲刹無礙用이며 “무엇이 계율과 위의(威儀)며, 무엇이 자재함이며, 무엇이 걸림 없는 작용이며, 무엇이 중생의 걸림 없는 작용이며, 무엇이 세계의 걸림 없는 작용입니까?” 何等이 爲法無礙用이며 何等이 爲身無礙用이며 何等이 爲願無礙用이며 何等이 爲境界無礙用이며 何等이 爲智無礙用이며 “무엇이 법의 걸림 없는 작용이며, 무엇이 몸의 걸림 없는 작용이며, 무엇이 소원의 걸림 없는 작용이며, 무엇이 경계의 걸림 없는 작용이며, 무엇이 지혜의 걸림 없는 작용입니까?” 何等이 爲神通無礙用이며 何等이 爲神力無礙用이며 何等이 爲力無礙用이며 何等이 爲遊戱며何等이 爲境界며 “무엇이 신통의 걸림 없는 작용이며, 무엇이 신력(神力)의 걸림 없는 작용이며, 무엇이 힘의 걸림 없는 작용이며, 무엇이 유희며, 무엇이 경계입니까?” 何等이 爲力이며 何等이 爲無畏며 何等이 爲不共法이며 何等이 爲業이며 何等이 爲身이며 “무엇이 힘이며, 무엇이 두려움 없음이며, 무엇이 함께하지 않는 법이며, 무엇이 업이며, 무엇이 몸입니까?” 강설 ; 여기까지가 십회향행법(十廻向行法)의 29문(問)이다. 그런데 30문이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무엇이 몸입니까?”가 바로 십지행법(十地行法)의 50문(問)에서 다시 나오기 때문인가. (5) 십지행법(十地行法)의 50문(問) 何等이 爲身業이며 何等이 爲身이며 何等이 爲語이며 何等이 爲淨修語業이며 何等이 爲得守護며 “무엇이 몸의 업이며, 무엇이 몸이며, 무엇이 말이며, 무엇이 말의 업을 깨끗이 닦음이며, 무엇이 수호함을 얻음입니까?” 강설 ; 2백가지 질문 중에 여기서부터는 십지행법(十地行法)의 50문(問)이다. 십지(十地)란 보살이 수행하는 계위(階位)인 52위(位) 중 제41위로부터 제50위까지이다. 이 10지위는 불지(佛智)를 생성(生成)하고, 능히 주지(住持)하여 움직이지 아니하며, 온갖 중생을 짊어지고 교화 이익케 하는 것이 마치 대지(大地)가 만물을 싣고 이를 윤익(潤益)하게 함과 같으므로 지(地)라 이름 한다. (1) 환희지(歡喜地), (2) 이구지(離垢地), (3) 발광지(發光地), (4) 염혜지(焰慧地), (5) 난승지(難勝地), (6) 현전지(現前智), (7) 원행지(遠行智), (8) 부동지(不動地), (9) 선혜지(善慧地), (10) 법운지(法雲地)이다. 何等이 爲成辦大事며 何等이 爲心이며 何等이 爲發心이며 何等이 爲周徧心이며 何等이 爲諸根이며 “무엇이 큰일을 마련함이며, 무엇이 마음이며, 무엇이 마음을 냄이며, 무엇이 두루한 마음이며, 무엇이 여러 모든 근(根)입니까?” 何等이 爲深心이며 何等이 爲增上深心이며 何等이 爲勤修며 何等이 爲決定解며何等이 爲決定解入世界며 “무엇이 깊은 마음이며, 무엇이 더 느는 깊은 마음이며, 무엇이 부지런히 닦음이며, 무엇이 결정한 지혜며, 무엇이 결정한 지혜로 세계에 들어감입니까?” 何等이 爲決定解入衆生界며 何等이 爲習氣며 何等이 爲取며 何等이 爲修며 何等이 爲成就佛法이며 “무엇이 결정한 지혜로 중생계에 들어감이며, 무엇이 익힌 버릇이며, 무엇이 가짐[取]이며, 무엇이 닦음이며, 무엇이 불법을 성취함입니까?” 何等이 爲退失佛法道며何等이 爲離生道며何等이 爲決定法이며 何等이 爲出生佛法道며何等이 爲大丈夫名號며 “무엇이 불법의 길에서 물러감이며, 무엇이 생사를 떠나는 길이며, 무엇이 결정한 법이며, 무엇이 불법을 내는 길이며, 무엇이 대장부의 이름입니까?” 何等이 爲道며何等이 爲無量道며何等이 爲助道며何等이 爲修道며何等이 爲莊嚴道며 “무엇이 도(道)이며, 무엇이 한량없는 도며, 무엇이 도를 도움이며, 무엇이 도를 닦음이며, 무엇이 도를 장엄함입니까?” 何等이 爲足이며 何等이 爲手며 何等이 爲腹이며 何等이 爲藏이며 何等이 爲心이며 “무엇이 발이며, 무엇이 손이며, 무엇이 배며, 무엇이 오장이며, 무엇이 마음입니까?” 何等이 爲被甲이며 何等이 爲器仗이며 何等이 爲首며何等이 爲眼이며 何等이 爲耳이며 “무엇이 갑옷을 입음이며, 무엇이 싸우는 도구며, 무엇이 머리며, 무엇이 눈이며, 무엇이 귀입니까?” 何等이 爲鼻며 何等이 爲舌이며 何等이 爲身이며 何等이 爲意며 何等이 爲行이며 “무엇이 코며, 무엇이 혀며, 무엇이 몸이며, 무엇이 뜻이며, 무엇이 다님[行]입니까?” 何等이 爲住며 何等이 爲坐며何等이 爲臥며何等이 爲所住處며何等이 爲所行處며 “무엇이 머무름이며, 무엇이 앉음이며, 무엇이 누움이며, 무엇이 머무를 곳이며, 무엇이 다닐 곳입니까?” 강설 ; 여기까지가 십지행법(十地行法)의 50가지 질문이다. 십지의 경지에서 온갖 여러 가지 불법의 명제들을 살펴서 해석한 내용이다. (6) 인원구경행법(因圓究竟行法)의 등각위(等覺位) 32문(問) 何等이 爲觀察이며 何等이 爲普觀察이며 何等이 爲奮迅이며 何等이 爲獅子吼며 何等이 爲淸淨施며 “무엇이 관찰함이며, 무엇이 두루 관찰함이며, 무엇이 기운을 가다듬음[奮迅]이며, 무엇이 사자후며, 무엇이 청정한 보시입니까?” 강설 ; 인원구경행법(因圓究竟行法)의 등각위(等覺位) 32가지 질문이란 보살수행의 원인이 원만하게 성취되어 완성의 단계에 이르러 구경각인 묘각과 평등하여진 지위[等覺位]에서 살펴본 여러 가지 불법의 명제들을 열거하였다. 何等이 爲淸淨戒며何等이 爲淸淨忍이며 何等이 爲淸淨精進이며 何等이 爲淸淨定이며 何等이 爲淸淨慧며 “무엇이 청정한 계율이며, 무엇이 청정한 참음이며, 무엇이 청정한 정진이며, 무엇이 청정한 선정이며, 무엇이 청정한 지혜입니까?” 何等이 爲淸淨慈며何等이 爲淸淨悲며何等이 爲淸淨喜며何等이 爲淸淨捨며何等이 爲義며 “무엇이 청정한 인자함[慈]이며, 무엇이 청정한 어여삐 여김이며, 무엇이 청정한 기쁨이며, 무엇이 청정한 버림이며, 무엇이 이치입니까?” 何等이 爲法이며 何等이 爲福德助道具며 何等이 爲智慧助道具며 何等이 爲明足이며 何等이 爲求法이며 “무엇이 법이며, 무엇이 복덕으로 도를 돕는 도구[具]며, 무엇이 지혜로 도를 돕는 도구며, 무엇이 밝음이 만족함이며, 무엇이 법을 구함입니까?” 何等이 爲明了法이며 何等이 爲修行法이며 何等이 爲魔며 何等이 爲魔業이며 何等이 爲捨離魔業이며 “무엇이 법을 밝게 앎이며, 무엇이 법을 수행함이며, 무엇이 마(魔)이며, 무엇이 마의 업이며, 무엇이 마를 여의는 업입니까?” 何等이 爲見佛이며 何等이爲佛業이며 何等이 爲慢業이며 何等이 爲智業이며 何等이 爲魔所攝持며何等이 爲佛所攝持며何等이 爲法所攝持며 “무엇이 부처님을 봄이며, 무엇이 부처님의 업이며, 무엇이 교만한 업이며, 무엇이 지혜의 업이며, 무엇이 마에게 거두어 잡힘이며, 무엇이 부처님에게 거두어 잡힘이며, 무엇이 법에 거두어 잡힘입니까?” 강설 ; 여기까지가 수행의 원인이 되는 일체 보살행이 완성에 이른 인원구경행법(因圓究竟行法)의 등각위(等覺位)에 대한 32가지 질문이다. (7) 과용원만행법(果用圓滿行法)의 묘각위(妙覺位) 19문(問) 何等이 爲住兜率天所作業이며 何故로 於兜率天宮歿이며 何故로 現處胎며 何等이 爲現微細趣며 何故로 現初生이며 “무엇이 도솔천에 머물러서 짓는 업이며, 어째서 도솔천궁에서 없어지며, 어째서 태에 듦을 나타냄이며, 무엇이 미세한 길을 나타냄이며, 어째서 처음 태어남을 나타냄입니까?” 강설 ; 마지막 수행의 결과인 불과(佛果)의 작용이 원만한 묘각의 지위에서 살펴보는 19가지의 질문이다. 何故로 現微笑며 何故로 示行七步며何故로 現童子地며何故로 現處內宮이며 何故로 現出家며 “어째서 미소를 나타내며, 어째서 일곱 걸음을 걸으며, 어째서 동자의 지위를 나타내며, 어째서 내전에 있음을 나타내며, 어째서 출가함을 나타냅니까?” 何故로 示苦行이며 云何往詣道場이며 云何坐道場이며 何等이 爲坐道場時奇特相이며 何故로 示降魔며 “어째서 고행함을 보이며, 어떻게 도량에 나아가며, 어떻게 도량에 앉으며, 무엇이 도량에 앉았을 때의 특수한 모습이며, 어떻게 마군을 항복받음을 보입니까?” 何等이 爲成如來力이며 云何轉法輪이며 何故로 因轉法輪하야 得白淨法이며 何故로 如來應正等覺이 示般涅槃이니잇고 善哉라 佛子야 如是等法을 願爲演說하소서 “무엇이 여래의 힘을 이룸이며,어떻게 법륜을 굴리며, 어째서 법륜 굴림을 인하여 깨끗한 법[自淨法)을 얻음이며, 어째서 여래 응공 정등각께서 열반에 드심을 보이십니까? 훌륭하신 불자시여, 이와 같은 법들을 원컨대 연설하여주십시오.” 강설 ; 길고 긴 2백 가지의 질문을 숨 쉴 틈도 없이 쏟아 내었다. 옛 사람들이 표현하기를 “무더운 여름날 장마철에 하늘에서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나듯이 2백 가지의 질문을 일으키었다[雲興二百問].”고 하였는데 참으로 과연 그렇다. 질문하는 여러 가지 불법의 명제에는 중복이 되는 것도 있었는데 그것은 십신에서의 의미와 십주에서의 의미와 십행에서의 의미와 십회향에서의 의미와 십지, 등각, 묘각에서의 의미를 각각 달리해서 살펴본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4, 2백 가지 질문에 보현보살이 2천 가지로 답하다 (1) 십신(十信)의 20문(門)을 답하다 <1> 보살의 열 가지 의지(依支) 爾時에 普賢菩薩이 告普慧等諸菩薩言하사대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依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以菩提心爲依니 恒不忘失故며 이때에 보현보살이 보혜보살 등 모든 보살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의지가 있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보리심으로 의지를 삼나니 항상 잃어버리지 않는 연고이니라.” 강설 ; 2백가지 질문 중 첫 질문에 대한 답이다. 하나의 명제에 열 가지로 대답하였다. 사람은 무엇을 의지하여 살아야 하는가. 오온(五蘊)으로 된 자아(自我)만을 생각한다면 의식주와 부모처자와 형제자매와 국가와 재산과 명예 등등 여러 가지 의지해야할 것이 있겠으나 참사람의 삶을 살려는 보살의 삶이라면 먼저 지혜와 자비인 보리심을 의지해서 살아야 할 것이다. 사람이 지혜와 자비인 보리심, 즉 불심(佛心)이 없다면 보살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식주와 부모처자와 형제자매와 재산과 명예 등등은 잃어버릴 수 있지만 보리심은 한 번 의지하게 되면 결코 잃어버리지 않으며, 보리심으로 의지를 삼는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본래로 지니고 있는 참마음 참사람을 회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以善知識爲依니和合如一故며 “선지식으로 의지를 삼나니 화합하여 한결 같은 연고이니라.” 강설 ; 또 세상을 살려면 의지해야할 스승도 많다. 그러나 진정으로 의지해야할 참다운 스승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존재의 실상과 사람의 가치와 존귀함을 제대로 아는 선지식으로서 의지를 삼아야 한다고 한 것이다. 참다운 선지식은 영원히 화합하여 함께할 수 있기 때문이다. 以善根爲依니 修習增長故며 “착한 뿌리로 의지를 삼나니 닦고 익혀서 증장하는 연고이니라.” 강설 ; 또 착한 뿌리로 의지를 삼아야 한다. 세상을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려면 모든 사람들이 정직하고 착해야 한다. 세상이 사기와 협잡과 부정부패로 만연해 있다면 그곳은 곧 지옥이다. 기래서야 어떻게 사람이 살 수 있겠는가. 착하고 선량한 일은 하면 할수록 자꾸 반복되고 늘어나기 때문이다. 以波羅蜜爲依니具足修行故며 “바라밀다로 의지를 삼나니 구족하게 수행하는 연고이니라.” 강설 ; 바라밀은 6바라밀과 10바라밀 등이 있다. 그러나 제일 바라밀은 보시바라밀이다. 보시바라밀은 6바라밀에서도 첫째고, 10바라밀에서도 첫째며, 사섭법에서도 첫째며, 지혜와 자비의 구체적인 표현이다. 그러므로 보시바라밀은 모든 바라밀의 전체이며, 일체 모든 수행의 전체이다. 이 보시바라밀만 잘 수행하여 의지한다면 구족하게 수행하는 것이 된다. 以一切法爲依니究竟出離故며 “일체 법으로 의지를 삼나니 구경에 벗어나는 연고이니라.” 강설 ; 여기에서 일체 법이란 불교의 일체 가르침의 법을 뜻한다. 불교의 일체 가르침의 법을 의지해서 구경에는 번뇌에서 벗어나고, 생사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以大願爲依니 增長菩提故며 “큰 서원으로 의지를 삼나니 보리를 증장케 하는 연고이니라.” 강설 ; 보살은 일체 중생을 다 교화하겠다는 큰 서원을 의지하여야 한다. 그것이 삶의 목적이고 꿈이고 희망이어야 한다. 보살이 중생들을 보살피겠다는 일 밖에 달리 무슨 일이 있겠는가. 이것은 곧 지혜와 자비인 보리가 날로 증장하는 것이다. 以諸行爲依니普皆成就故며 “모든 행으로 의지를 삼나니 널리 다 성취하는 연고이니라.” 강설 ; 보살은 또 모든 수행을 의지로 삼는다. 수행하는 일 밖에 달리 또 무슨 일이 있겠는가. 보살의 수행은 날로 성취하기 때문이다. 以一切菩薩爲依니同一智慧故며 “일체 보살로 의지를 삼나니 지혜가 같은 연고이니라.” 강설 ; 보살은 역시 일체 보살로 의지를 삼아야 한다. 보살은 세상을 선도할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들이며, 본보기이며, 그 지혜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以供養諸佛爲依니信心淸淨故며 “모든 부처님께 공양함으로 의지를 삼나니 믿는 마음이 청정한 연고이니라.” 강설 ; 보살은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을 부처님으로 생각하여 항상 공양하는 일로 의지를 삼아야 한다.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을 부처님으로 생각하여 공양을 올리면 그 믿는 마음이 더욱 청정하여 지기 때문이다. 以一切如來爲依니 如慈父敎誨不斷故라 是爲十이니라 “일체 여래로 의지를 삼나니 자비하신 아버지와 같은 가르침이 끊어지지 않는 연고이니라.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보살은 일체 여래로서 의지를 삼으며 일체 중생 일체 생명도 여래로서 의지를 삼아야 한다. 왜냐하면 일체 여래는 자비하신 아버지와 같은 가르침이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세상의 어린 아이들이 그 부모를 의지하는 것과 같다.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爲如來無上大智所依處니라 “만약 모든 보살들이 이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큰 지혜의 의지할 곳이 되느니라.” 강설 ; 보살이 의지해야할 열 가지를 들었다. 잘 살펴보면 모두가 보살이 쓰는 마음이며 보살이 행하는 일들이다. 이와 같이 보살은 보살행을 의지하면 어떤 곳에 다니고 어떤 일을 하더라도 여래와 같이 위없는 큰 지혜의 의지할 곳이 된다. 2천 가지의 답변 중에 이제 열 가지를 설하였다. <2> 보살의 열 가지 기특한 생각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奇特想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於一切善根에 生自善根想하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기특한 생각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착한 뿌리에 자기의 착한 뿌리라는 생각을 내느니라.” 강설 ; 진정한 보살이라면 이와 같은 열 가지의 기특한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일체 모든 선한 일을 자기의 선한 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무슨 악한 생각이 있겠는가. 참으로 기특한 생각이다. 於一切善根에 生菩提種子想하며 “일체 착한 뿌리에 보리의 종자라는 생각을 내느니라.” 강설 ; 일체 선근은 아무리 작은 선근이라도 그것이 보리의 씨앗이라는 사실이다. 보리란 무엇인가. 지혜와 자비로 세상에 대해서 선을 행하자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선근이라도 그것은 곧 깨달음의 종자라는 생각은 참으로 기특한 생각이다. 於一切衆生에 生菩提器想하며 “일체 중생에게 보리의 그릇이란 생각을 내느니라.” 강설 ; 일체 중생에게는 모두가 참마음 참사람 진여자성 불성종자가 있기 때문에 깨달음의 그릇이라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모두가 잊고 있는 것을 보살이 일체 중생을 모두 깨달음의 그릇으로 생각하는 것은 진정 기특한 생각이다. 於一切願에 生自願想하며 “일체 서원에 자기의 서원이란 생각을 내느니라.” 강설 ; 부처님과 보살들과 일체 선지식들은 모두가 위대한 서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서원이 무엇이든 불보살과 선지식들의 훌륭한 서원을 자기가 세워야 할 서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기특한 생각이다. 於一切法에 生出離想하며 “일체 법에 벗어나는 생각을 내느니라.” 강설 ; 세상만사는 모두가 사람들을 깨우치는 큰 가르침들이다. 그 모든 가르침을 유심히 살펴보면 일체가 삼독번뇌에서 벗어나게 하고, 모든 번뇌와 나아가서 생사에서 벗어나게 하는 가르침들이다.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기특한 생각이다. 於一切行에 生自行想하며 “일체 행에 자기의 행이라는 생각을 내느니라.” 강설 ; 보살은 선한 행이든 나쁜 행이든 모두가 자기의 행이라고 생각한다. 선한 행은 스스로 행해야 할 행이고 나쁜 행은 스스로 고쳐서 바로잡아야 할 행으로 생각한다. 이와 같이 생각한다면 참으로 기특한 생각이다. 於一切法에 生佛法想하며 “일체 법에 불법이라는 생각을 내느니라.” 강설 ; 금강경에 “일체법(一切法)이 개시불법(皆是佛法)이니라.”라는 말이 있다. 실로 무슨 법인들 깨달음의 법속에 해당되지 않는 법이 있겠는가. 또 무슨 법인들 참마음의 법이 아닌 것이 있겠으며, 진여자성의 법이 아닌 것이 있겠는가. 일체 법을 모두 불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생각이면서 참으로 기특한 생각이다. 於一切語言法에 生語言道想하며 “일체 언어의 법에 언어의 도(道)란 생각을 내느니라.” 강설 ; 일반적으로는 언어는 언어일 뿐이지 도가 아니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언어도 역시 훌륭한 도다. 그러므로 언어가 곧 도라는 생각을 내는 것은 훌륭하고 기특한 생각이다. 대승찬(大乘讚)에도 “언어가 곧 큰 도이다. 언어를 번뇌라고 끊어 없애지 말라.”라고 하였다. 於一切佛에 生慈父想하며 “일체 부처님에게 자비하신 아버지라는 생각을 내느니라.” 강설 ; 일체 부처님이야말로 진정으로 자비하신 아버지이시다. 그래서 예불문에도 “사생자부(四生慈父)”라고 하였다. 언제나 부처님을 자비하신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기특한 생각이다. 一切如來에 生無二想이 是爲十이니라 “일체 여래에게 둘이 없다는 생각을 내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일체 여래는 그 수효가 무수 억 만이라 하더라도 동일한 여래며 동일한 법이며 동일한 법신이어서 하나이다.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無上善巧想이니라 “만약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위없이 교묘한 생각을 얻느니라.” <3> 보살의 열 가지 행(行)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行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一切衆生行이니 普令成熟故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행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중생의 행이니 널리 성숙케 하는 연고이니라.” 강설 ; 세 번째 질문인 행에 대한 답이다. 행(行)에 대하여 청량스님의 소에서는 “열 가지 행이란 수승한 생각을 의지하여 큰 행을 짓는다. 생각은 오직 마음에 있고 행은 몸과 말과 마음의 삼업에 통한다. 헛된 생각은 행하지 못하고 또한 이루는 것도 없다.”라고 하였다. 보살에게도 일체 중생의 행이 있는 것은 중생의 행으로부터 점점 성숙해서 보살이 되기 때문이다. 一切求法行이니 咸悉修學故며 “일체 법을 구하는 행이니 다 닦아 배우는 연고이니라.” 강설 ; 보살의 열 가지 행중에 법을 구하고, 진리를 구하고, 도를 구하는 행이야 말로 가장 바람직한 행이다. 법을 구하는 행은 모두가 닦아 배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공자도 논어 첫머리에서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하였다. 一切善根行이니 悉使增長故며 “일체 착한 뿌리의 행이니 모두 증장케 하는 연고이니라.” 강설 ; 보살은 항상 선근을 닦는 행으로 삶의 목적을 삼는다. 보살은 선근을 닦는 것 외에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항상 선근만을 닦기 때문에 선근을 닦는 일이 날로 증장한다. 一切三昧行이니 一心不亂故며 “일체 삼매의 행이니 한결 같은 마음이 산란치 않는 연고이니라.” 강설 ; 보살은 늘 삼매에 있어서 일심불란하다. 그와 같은 삼매를 떠나지 않으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보살행을 쉬지 않는다. 一切智慧行이니 無不了知故며 “일체 지혜의 행이니 알지 못함이 없는 연고이니라.” 강설 ; 보살은 일체 지혜가 있어서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 지혜가 있으므로 올바른 자비를 행하게 된다. 一切修習行이니 無不能修故며 “일체 것을 닦아 배우는 행이니 닦지 못할 것이 없는 연고이니라.” 강설 ; 보살은 모든 수행이란 수행은 하지 않는 것이 없다. 언제나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들을 교화하는 것으로 업을 삼기 때문이다. 一切佛刹行이니 皆悉莊嚴故며 “일체 부처님 세계의 행이니 다 장엄하는 연고이니라.” 강설 ; 보살은 언제나 불법을 공부하여 자신의 인격을 향상시키고, 한편 향상된 인격으로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데 노심초사하는 사람이다. 이것이 일체 부처님 세계의 행으로 세상을 장엄하는 것이다. 一切善友行이니 恭敬供養故며 “일체 좋은 벗[善友]의 행이니 공경하고 공양하는 연고이니라.” 강설 ; 좋은 벗이란 늘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을 공경하고 공양하며 찬탄하는 사람이다. 보살은 바로 그와 같은 행을 하는 사람이다. 一切如來行이니 尊重承事故며 “일체 여래의 행이니 존중하고 받들어 섬기는 연고이니라.” 강설 ; 보살은 또 일체 여래가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받들어 섬기듯이 그와 같은 행을 하는 사람이다. 一切神通行이니 變化自在故라 是爲十이니라 “일체 신통한 행이니 변화가 자재한 연고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보살은 또 일체 신통을 지니고 있어서 그 변화가 자유자재하다. 보살의 이와 같은 열 가지 행은 너무나 수승하여 그대로가 여래와 같다. 그래서 보살대승불교에서는 성불한 뒤에는 다시 중생구제를 위해서 보살로 머물러 있다고 하는 것이다.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大智慧行이니라 “만일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큰 지혜의 행을 얻느니라.” 강설 ; 만약 보살이 위의 열 가지 법에 편안히 머문다면 그대로가 여래의 가장 높은 큰 지혜의 행이 된다. 그러므로 진정한 보살행은 곧 여래의 행이며, 여래의 행은 곧 진정한 보살의 행이다. <4> 보살의 열 가지 선지식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善知識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令住菩提心善知識과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선지식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보리심에 머물게 하는 선지식이니라.” 강설 ; 보살은 일체 중생에게 선지식이 되어 모든 수승한 법을 잘 가르친다. 무엇보다 먼저 사람들을 지혜와 자비의 마음인 보리심에 머물게 하는 선지식이 된다. 이와 같이 불교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리심을 내도록 가르친다. 심지어 동물을 만나면 동물에게도 보리심을 발하라고 일러준다. 令生善根善知識과令行諸波羅蜜善知識과 “착한 뿌리를 내게 하는 선지식이며, 모든 바라밀다를 행하게 하는 선지식이니라.” 강설 ; 보살은 또 사람들에게 정직하게 살도록 하고 선량하게 살도록 하며, 6바라밀과 10바라밀과 사섭법과 사무량심을 실천하도록 가르치는 선지식이 된다. 令解說一切法善知識과令成熟一切衆生善知識과 “모든 법을 해석하여 말하게 하는 선지식이며, 일체 중생을 성숙케 하는 선지식이니라.” 강설 ; 보살은 또 모든 사람들에게 일체 법을 설하여 일체 중생들이 성숙하도록 하는 선지식이 된다 이 모든 것은 보살의 의무이며 책임이다. 令得決定辯才善知識과令不着一切世間善知識과 “결정한 변재를 얻게 하는 선지식이며, 일체 세간에 집착하지 않게 하는 선지식이니라.” 강설 ; 법을 설하는 데는 분명하고 확실한 변재가 있어야 하는데 보살은 그것을 얻게 하는 선지식이 된다. 또 법을 설하여 세간에 집착하지 않게 하는 선지식이 된다. 令於一切劫에 修行無厭倦善知識과 令安住普賢行善知識과 令入一切佛智所入善知識과 是爲十이니라 “일체 겁 동안 수행하되 게으르지 않게 하는 선지식이며, 보현의 행에 편안히 머물게 하는 선지식이며, 일체 부처님의 지혜로 들어간 데 들게 하는 선지식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많은 사람들이 수행을 하되 오랫동안 하지 못하고 중간에 게으르고 싫증을 내어 그만두게 된다. 보살은 그러한 일이 없게 하는 선지식이 되며, 나아가서 보현의 행에 안주하여 일체 부처님의 지혜로 들어갈 곳에 들어가게 하는 선지식이 된다. 그래서 보살은 모든 수행을 완성하게 한다. <5> 보살의 열 가지 부지런한 정진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勤精進하니何等이 爲十고所謂敎化一切衆生勤精進과 深入一切法勤精進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부지런한 정진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중생을 교화하는 부지런한 정진이며, 일체 법에 깊이 들어가는 부지런한 정진이니라.” 강설 ; 보살은 언제나 부지런하다. 세상이 이와 같이 험난하고 위태로운데 보살이 게으르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열 가지 부지런한 정진을 들었다. 일체 중생을 교화하고, 일체 법에 깊이 들어가는 부지런한 정진이다. 嚴淨一切世界勤精進과修行一切菩薩所學勤精進과 “일체 세계를 깨끗이 장엄하는 부지런한 정진이며, 일체 보살이 배울 바를 수행하는 부지런한 정진이니라.” 강설 ; 보살은 모든 세상을 아름답고 향기롭게 만들어야 하고, 보살들이 배울 바를 수행하는 부지런한 정진이 있어야 한다. 滅除一切衆生惡勤精進과止息一切三惡道苦勤精進과 “일체 중생의 나쁜 짓을 제멸하는 부지런한 정진이며, 일체 삼악도의 고통을 쉬게 하는 부지런한 정진이니라.” 강설 ; 모든 중생들이 저지르는 일체 부정과 부패와 비리와 패악들을 말끔히 없애야 하며, 또한 지옥 아귀 축생 등 삼악도의 고통도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하여야 한다. 그 래서 보살은 부지런히 정진하여야 한다. 摧破一切衆魔勤精進과願爲一切衆生하야 作淸淨眼勤精進과 “일체 마(魔)의 무리를 꺾어버리는 부지런한 정진이며, 일체 중생을 위해서 청정한 눈이 되기를 서원하는 부지런한 정진이니라.” 강설 ; 보살은 또한 일체 마군과 외도들과 삿된 견해들을 깨트려 없애야 하고, 일체 중생을 위해서 청정한 눈이 되기를 서원하는 부지런한 정진이 있다. 供養一切諸佛勤精進과 令一切如來로 皆悉歡喜勤精進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具足如來無上精進波羅蜜이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는 부지런한 정진이며, 모든 여래로 하여금 환희케 하는 부지런한 정진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약 모든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정진바라밀다를 구족하게 되느니라.” 강설 ; 보살은 모든 사람 모든 생을 부처님으로 여겨서 공양하고 공경하며, 존중하고 찬탄하는 부지런한 정진과 일체 여래를 환희케 하고 일체 중생을 환희케 하는 부지런한 정진이 있다. 이러한 법에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정진바라밀다를 구족하게 된다. <6> 보살의 열 가지 마음이 편안하여짐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心得安隱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自住菩提心하고 亦當令他住菩提心하야 心得安隱하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마음이 편안하여짐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스스로 보리심에 머물고, 또 다른 이도 보리심에 머물게 하여 마음이 편안하여지느니라.” 강설 ; 보살이 만약 마음이 편안하려면 스스로 보리심에 머물고 또한 다른 모든 사람들도 보리심에 머물러야만 마음이 편안해 진다. 자기 자신만 보리심에 머물고 다른 사람은 보리심에 머물지 못한다면 보살의 마음은 편안할 수 없다. 이러한 마음 씀씀이는 모든 경우에 다 해당되는 보살로서의 절대적인 원칙이다. 自究竟離忿諍하고 亦當令他離忿諍하야 心得安隱하며 “스스로 끝까지 성내고 다툼을 여의고, 또 다른 이도 성내고 다툼을 여의게 하여 마음이 편안하여지느니라.” 강설 ; 보살이 자신은 성내고 다툼을 멀리 떠났으나 다른 사람이 성내고 다툼을 떠나지 못하였다면 그 마음이 편안할 리 없다. 성내고 다투는 일은 모든 사람 모든 생명들이 멀리 멀리 떠나서 다시는 없어야할 일이다. 自離凡愚法하고 亦令他離凡愚法하야 心得安隱하며 “스스로 범부의 어리석은 법을 여의고, 또 다른 이도 범부의 어리석은 법을 여의게 하여 마음이 편안하여지느니라.” 강설 ; 범부의 어리석은 법이란 누구에게나 있어서는 안 될 법이다. 보살이 자신에게만 범부의 어리석은 법을 떠나고 다른 사람에게는 그대로 있다면 마음이 편할 리 없다. 自勤修善根하고 亦令他勤修善根하야 心得安隱하며 “스스로 착한 뿌리를 부지런히 닦고, 또 다른 이도 착한 뿌리를 부지런히 닦게 하여 마음이 편안하여지느니라.” 강설 ; 보살은 항상 스스로 정직하고 착하다. 그러나 보살만 정직하고 착하면 세상은 부정과 부패와 사기협잡으로 만연되어 있어서 보살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정직하고 선량해서 어디서든지 6바라밀을 닦는 사람들로 충만해야만 보살의 마음이 편안하다. 自住波羅蜜道하고 亦令他住波羅蜜道하야 心得安隱하며 “스스로 바라밀도에 머물고, 또 다른 이도 바라밀도에 머물게 하여 마음이 편안하여지느니라.” 강설 ; 보살은 스스로 6바라밀과 10바라밀과 사섭법과 사무량심과 10선 등을 잘 행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다른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그 모든 바라밀을 행해야 보살의 마음이 편안하다. 自生在佛家하고 亦當令他生於佛家하야 心得安隱하며 “스스로 부처님의 가문에 태어나고, 또 다른 이도 부처님의 가문에 태어나게 하여 마음이 편안하여지느니라.” 강설 ; 만약 보살이 자신은 부처님의 가문에 태어나고, 다른 사람은 부처님의 가문에 태어나지 못했다면 그 마음이 편안할리 없다.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이 스스로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부처님의 가문에 태어나면 보살의 마음은 비로소 편안할 것이다. 自深入無自性眞實法하고 亦令他入無自性眞實法하야 心得安隱하며 “스스로 제 성품 없는 진실한 법에 깊이 들어가고, 또 다른 이도 제 성품 없는 진실한 법에 들어가게 하여 마음이 편안하여지느니라.” 강설 ; 일체 존재와 일체 사건을 그 자체의 고정 불변하는 성품이 없다. 이것이 진실한 법이다. 자체 성품이 없는 진실한 법에 스스로도 깊이 들어가고, 다른 사람들도 깊이 들어간다면 보살의 마음은 비로소 편안하여 진다. 自不誹謗一切佛法하고 亦令他不誹謗一切佛法하야 心得安隱하며 “스스로 모든 부처님의 법을 비방하지 않으며, 또한 다른 이에게도 모든 부처님의 법을 비방하지 않게 하여 마음이 편안하여지느니라.” 강설 ; 모든 보살들은 일체 불법에 대해서 결코 스스로 비방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르고 참된 이치인데도 불구하고 불법을 비방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구업을 짓는가. 보살은 그것을 보면 마음이 편안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참된 이치와 그렇지 못한 이치를 분별할 줄 안다면 보살의 마음이 얼마나 편안할 것인가. 自滿一切智菩提願하고 亦令他滿一切智菩提願하야 心得安隱하며 “스스로 일체 지혜의 보리원(菩提願)을 만족하고, 또 다른 이도 일체 지혜의 보리원을 만족케 하여 마음이 편안하여지느니라.” 강설 ; 지혜는 곧 깨달음이고 깨달음은 곧 지혜다. 스스로 이 원이 만족하고 또 다른 사람들도 이 원이 만족한다면 보살의 마음이 편안할 것이다. 自深入一切如來無盡智藏하야 亦令他入一切如來無盡智藏하야 心得安隱이 是爲十이니라 “스스로 모든 여래의 다함없는 지혜의 장(藏)에 깊이 들어가고, 또 다른 이도 모든 여래의 다함없는 지혜의 장에 들어가게 하여 마음이 편안하여지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불법을 공부하여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여래의 지혜 창고다. 보살은 스스로 그와 같은 지혜 창고에 깊이 들어가고, 다른 사람들도 빠짐없이 다 들어간다면 마음이 편안할 것이다. 그래서 “자타가 일시에 불도를 이루어지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大智安隱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큰 지혜의 편안함을 얻느니라.” <7> 보살의 열 가지 중생을 성취함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成就衆生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以布施로 成就衆生하며 以色身으로 成就衆生하며 以說法으로 成就衆生하며 以同行으로 成就衆生하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중생을 성취함이 있으니, 무엇이열인가. 이른바 보시로 중생을 성취하고, 육신으로 중생을 성취하고, 법을 설하여 중생을 성취하고, 함께 행함으로 중생을 성취하느니라.” 강설 ; 중생을 성취한다는 것은 중생을 교화하고 성숙시키고 제도한다는 뜻을 다 가지고 있다. 그와 같이 중생을 성취, 교화, 성숙, 제도하려면 어떤 방법이 필요할까. 제일 잘 통하는 방법이 보시다 . 다음으로 그 모습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모습을 나타내어 진리의 가르침을 설해주는 것이다. 또 함께 있어주고, 함께 같은 일을 하고, 함께 놀아주는 것이다. ------------------- 以無染着으로 成就衆生하며 以開示菩薩行으로 成就衆生하며 以熾然示現一切世界로 成就衆生하며 “물들지 않으므로 중생을 성취하고, 보 살의 행을 열어 보임으로 중생을 성취하고, 모든 세계를 치성하게 나타내 보임으로 중생을 성취하느니라.” 강설 ; 스스로 물든 사람이 어떻게 남을 물들지 않게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물들지 않은 청정한 보살의 행을 열어 보임으로 중생을 성취한다. 以示現佛法大威德으로 成就衆生하며 以種種神通變現으로 成就衆生하며 以種種微密善巧方便으로 成就衆生이 是爲十이니 菩薩이 以此成就衆生界니라 “불법의 큰 위엄과 덕을 나타냄으로 중생을 성취하고, 갖가지 신통과 변화로 중생을 성취하고, 갖가지 미세하고 훌륭한 방편으로 중생을 성취하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보살은 이것으로 중생계를 성취하느니라.” 강설 ; 불법의 큰 위엄과 덕을 나타내고, 갖가지 신통과 변화를 보이고, 갖가지 비밀하고 교묘한 방편으로 중생을 성취한다. <8> 보살의 열 가지 계(戒)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戒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不捨菩提心戒와 遠離二乘地戒와 觀察利益一切衆生戒와令一切衆生住佛法戒와修一切菩薩所學戒와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계(戒)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보리심을 버리지 않는 계와 이승(二乘)의 지위를 멀리 여의는 계와 일체중생을 관찰하여 이익케 하는 계와 일체중생들을 불법에 머물게 하는 계와 모든 보살의 배우는 것을 닦는 계니라.” 강설 ; 계(戒)란 목숨처럼 아끼고 지켜서 어기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보살이 보리심을 버리는 것은 목숨을 버리는 것과 같다. 또 대승법을 존중하는 대승보살이 성문법이나 연각의 법을 멀리하기를 목숨을 지키듯이 지켜야 한다. 또 일체 중생을 잘 관찰하여 이익 하도록 해야 하고, 부처님의 법에 머물도록 해야 하고, 일체 보살이 배워야 할 것을 반드시 닦아 익혀야 한다. 於一切法에 無所得戒와以一切善根으로 廻向菩提戒와不着一切如來身戒와思惟一切法호대 離取着戒와 諸根律儀戒가是爲十이니라 若諸菩薩이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廣大戒波羅蜜이니라 “일체 법에 얻을 것이 없는 계와 일체 착한 뿌리로 보리에 회향하는 계와 일체 여래의 몸에 집착하지 않는 계와 일체 법을 생각하되 집착을 여의는 계와 모든 근(根)의 계율과 의식의 계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고 광대한 지계(持戒)바라밀다를 얻느니라.” 강설 ; 5계와 10계와 250계 등을 지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일체 법은 얻을 바가 없다는 사실이 보살의 계다. 일체 선근을 닦아 보리에 회향하는 것이 보살의 계다. 또 일체 여래의 몸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일체 법을 생각하되 집착을 여의는 등등이 진정한 보살의 계다. 이와 같은 법에 머물러야 가장 훌륭한 지계바라밀을 얻는길이다. <9> 보살의 열 가지 수기 받는 법 佛子야 菩薩摩訶薩이有十種受記法하야 菩薩이 以此自知受記하나니 何等이 爲十고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수기 받는 법이 있어서 보살이 이것으로써 스스로 수기 받을 줄을 아나니, 무엇이 열인가.” 강설 ; 수기에는 부처님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부처님이나 보살에게 보증을 받는다는 뜻의 수기(受記)가 있고, 부처님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부처님이나 보살이 보증을 해 준다는 뜻의 수기(授記)가 있다. 여기에서는 보살이 이러이러한 일로 인하여 스스로 수기 받음을 아는 것이다. 所謂以殊勝意로 發菩提心하야 自知受記하며 永不厭捨諸菩薩行하야 自知受記하며 住一切劫行菩薩行하야 自知受記하며 修一切佛法하야 自知受記하며 於一切佛敎에 一向深信하야 自知受記하며 “이른바 수승한 뜻으로 보리심을 내어 스스로 수기 받을 줄을 알며, 모든 보살의 행을 영원히 버리지 않고스스로 수기 받을 줄을 알며, 일체 겁에 머물러 보살행을 행하고 스스로 수기 받을 줄을 알며, 일체 부처님의 법을 닦아서 스스로 수기 받을 줄을 알며, 일체 부처님의 교법을 한결같이 깊이 믿고 스스로 수기 받을 줄을 아느니라.” 강설 ; 보살이 수승한 뜻으로 보리심을 내거나 모든 보살의 행을 영원히 버리지 않거나 일체 겁에 머물러 보살행을 행하거나 일체 부처님의 법을 닦거나 일체 부처님의 교법을 한결같이 깊이 믿는 이와 같은 일들은 당연히 부처님이라는 보증을 받는 일이 된다. 그것이 곧 수기를 받는 일이다. 修一切善根하야 皆令成就하야 自知受記하며 置一切衆生於佛菩提하야 自知受記하며 於一切善知識에 和合無二하야 自知受記하며 於一切善知識에 起如來想하야 自知受記하며 恒勤守護菩提本願하야 自知受記가 是爲十이니라 “또한 일체 착한 뿌리를 닦아 모두 성취케 하고 스스로 수기 받을 줄을 알며, 일체중생을 부처님의 보리에 두고 스스로 수기 받을 줄을 알며, 일체 선지식에게 화합하여 둘이 없이 하고 스스로 수기 받을 줄을 알며, 일체 선지식에게 여래라는 생각을 내고 스스로 수기 받을 줄을 알며, 보리의 본래 소원을 부지런히 수호하고 스스로 수기 받을 줄을 아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또 일체 착한 뿌리를 닦아 모두 성취케 하거나 일체중생을 부처님의 보리에 두거나 일체 선지식에게 화합하여 둘이 없이 하나가 되거나 일체 선지식에게 여래라는 생각을 내거나 보리의 본래 소원을 부지런히 수호하는 이와 같은 일들은 모두가 수기를 받는 일이다. <10> 보살의 열 가지 모든 보살에 들어감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入하야 入諸菩薩하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入本願하며 入行하며 入聚하며 入諸波羅蜜하며 入成就하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들어감이 있어서 모든 보살에 들어가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본래의 소원에 들어가고, 행에 들어가고, 모음에 들어가고, 모든 바라밀다에 들어가고, 성취에 들어가느니라.” 강설 ; 보살의 본래의 소원이란 보살이 가지고 있는 보살의 모든 소원들을 뜻한다. 보살은 그 모든 소원에 들어가며, 보살의 행에 들어가며, 보살이 모으는 법에 들어가며, 보살이 닦는 모든 바라밀에 들어가며, 일체 중생들을 성취하는 데 들어간다. 入差別願하며 入種種解하며 入莊嚴佛土하며 入神力自在하며 入示現受生이 是爲十이니 菩薩이 以此普入三世一切菩薩이니라 “차별한 소원에 들어가고, 가지가지 이해에 들어가고, 불국토를 장엄함에 들어가고, 신통의 힘이 자재함에 들어가고, 일부러 태어나는 데 들어가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보살이 이것으로써 삼세의 모든 보살에 널리 들어가느니라.” 강설 ; 또 보살은 온갖 차별한 원이 있는데 그 원에 다 들어가며, 가지가지 이해에 다 들어가며, 세상을 살 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불토를 장엄하는데 들어가며, 위신력이 자유자재한데 들어가며, 보살이 일부러 중생을 위해서 태어나는데 들어간다. 이 모든 것은 보살이 모든 보살의 할 일에 들어가는 것을 밝혔다. <11> 보살의 열 가지 여래에 들어감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入하야 入諸如來하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入無邊成正覺하며 入無邊轉法輪하며 入無邊方便法하며 入無邊差別音聲하며 入無邊調伏衆生하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들어감이 있어서 모든 여래에 들어가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그지없이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데 들어가며, 그지없이 법륜(法輪)을 굴리는 데 들어가며, 그지없는 방편의 법에 들어가며, 그지없이 차별한 음성에 들어가며, 그지없이 중생을 조복시킴에 들어가느니라.” 강설 ; 여래에게는 그지없는 열 가지 일이 있다. 깨달음을 이루고, 법륜을 굴리고, 방편의 법이 있고, 차별한 음성이 있고, 중생을 조복 받는 일들이다. 보살은 이 모든 여래의 그지없는 일에 다 들어간다. 보살에게는 본래로 보살의 능력과 여래의 능력을 다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入無邊神力自在하며 入無邊種種差別身하며 入無邊三昧하며 入無邊力無所畏하며 入無邊示現涅槃이 是爲十이니 菩薩이 以此普入三世一切如來니라 “그지없는 신통의 힘이 자재함에 들어가며, 그지없이 갖가지로 차별한 몸에 들어가며, 그지없는 삼매에 들어가며, 그지없는 힘과 두려움 없음에 들어가며, 그지없이 열반을 나타내는데 들어가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보살이 이것으로써 삼세 일체 여래에 들어가느니라.” 강설 ; 또 그지없는 신통의 힘이 자재함과 그지없이 갖가지로 차별한 몸과 그지없는 삼매와 그지없는 힘과 두려움 없음과 그지없이 열반을 나타내는 일 등이다. 보살은 이 모든 여래의 경지에 다 들어간다. <12> 보살의 열 가지 중생의 행에 들어감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入衆生行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入一切衆生過去行하며 入一切衆生未來行하며 入一切衆生現在行하며 入一切衆生善行하며 入一切衆生不善行하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중생의 행에 들어감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중생의 과거의 행에 들어가며, 일체중생의 미래의 행에 들어가며, 일체중생의 현재의 행에 들어가며, 일체중생의 착한 행에 들어가며, 일체중생의 착하지 못한 행에 들어가느니라.” 강설 ; 보살이 중생의 행에 들어가지 않으면 중생을 제도할 수 없다. 그래서 일체중생의 과거의 행과 일체중생의 미래의 행과 일체중생의 현재의 행과 일체중생의 착한 행과 일체중생의 착하지 못한 행에까지 다 들어간다. 入一切衆生心行하며 入一切衆生根行하며 入一切衆生解行하며入一切衆生煩惱習氣行하며 入一切衆生敎化調伏時非時行이 是爲十이니 菩薩이 入微細世界하며 入覆世界하며 入仰世界하며 入有佛世界하며 入無佛世界가 是爲十이니 菩薩이 以此普入十方一切世界니라 “미세한 세계에 들어가며, 엎어진 세계에 들어가며, 잦혀진 세계에 들어가며, 부처님이 있는 세계에 들어가며, 부처님이 없는 세계에 들어가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보살이 이것으로 시방의 모든 세계에 두루 들어가느니라.” 강설 ; 보살이 들어가지 않는 세계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와 같은 온갖 세계에 다 들어가서 일체 중생을 모두 교화하고 조복한다. 보살은 더러운 세계와 깨끗한 세계와 작은 세계와 큰 세계와 미진수 세계와 미세한 세계와 엎어진 세계와 잦혀진 세계와 부처님이 있는 세계와 부처님이 없는 세계 등에 다 들어간다. <14> 보살의 열 가지 겁에 들어감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入劫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入過去劫하며 入未來劫하며 入現在劫하며 入可數劫하며 入不可數劫하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겁(劫)에 들어감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지나간 겁에 들어가며, 오는 겁에 들어가며, 지금 겁에 들어가며, 셀 수 있는 겁에 들어가며, 셀 수 없는 겁에 들어가느니라.” 入可數劫이 卽不可數劫하며 入不可數劫이 卽可數劫하며 入一切劫이 卽非劫하며 入非劫이 卽一切劫하며 入一切劫이 卽一念이 是爲十이니 菩薩이 以此普入一切劫이니라 “셀 수 있는 겁이 곧 셀 수 없는 겁인 데 들어가며, 셀 수 없는 겁이 곧 셀 수 있는 겁인 데 들어가며, 모든 겁이 곧 겁이 아닌 데 들어가며, 겁이 아닌 것이 곧 모든 겁인 데 들어가며, 모든 겁이 곧 한생각인 데 들어가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보살은 이것으로 모든 겁에 두루 들어가느니라.” 강설 ; 보살은 들어가지 않는 세계가 없듯이 또 들어가지 않는 시간이 없다. 그래서 모든 겁에 다 들어간다. 지나간 겁과 오는 겁과 지금 겁과 셀 수 있는 겁과 셀 수 없는 겁과 셀 수 있는 겁이 곧 셀 수 없는 겁과 셀 수 없는 겁이 곧 셀 수 있는 겁과 모든 겁이 곧 겁이 아닌 데와 겁이 아닌 것이 곧 모든 겁인 데와 모든 겁이 곧 한생각인 데까지 다 들어간다. <15> 보살의 열 가지 삼세를 설함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說三世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過去世에 說過去世하며 過去世에 說未來世하며 過去世에 說現在世하며“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로 삼세를 말함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과거 세상에서 과거 세상을 말하며, 과거 세상에서 미래 세상을 말하며, 과거 세상에서 현재 세상을 말하느니라.” 未來世에 說過去世하며 未來世에 說現在世하며 未來世에 說無盡하며 “미래 세상에서 과거 세상을 말하며, 미래 세상에서 현재 세상을 말하며, 미래 세상에서 다함이 없음을 말하느니라.” 現在世에 說過去世하며 現在世에 說未來世하며 現在世에 說平等하며 現在世에 說三世卽一念이 是爲十이니 菩薩이 以此普說三世니라 “현재 세상에서 과거 세상을 말하며, 현재 세상에서 미래 세상을 말하며, 현재 세상에서 평등함을 말하며, 현재 세상에서 세 세상이 곧 한 생각임을 말하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보살은 이것으로 삼세를 두루 말하느니라.” 강설 ; 보살은 또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서 또 각각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있음을 설한다. 마지막으로 삼세가 곧 일념인 것과 함께 9세와 10세가 서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설한다. 그래서 구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이라 한다. <16> 보살은 열 가지 삼세를 안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知三世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知諸安立하며 知諸語言하며 知諸談議하며 知諸軌則하며 知諸稱謂하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세 세상[三世]을 아는 일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나란히 정돈함[安立]을 알며, 모든 말을 알며, 모든 의논을 알며, 모든 법칙을 알며, 모든 일컬음을 아느니라.” 知諸制令하며 知其假名하며 知其無盡하며 知其寂滅하며 知一切空이 是爲十이니 菩薩이 以此普知一切三世諸法이니라 “모든 법령을 알며, 거짓 붙인 이름을 알며, 그 다함이 없음을 알며, 그 적멸함을 알며, 모든 것이 공함을 아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보살이 이것으로 모든 세 세상의 여러 법을 두루 아느니라.” 강설 ; 보살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이 질서 있게 배열되어 있고, 또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말과 의논과 법칙과 일컫는 것과 법령과 거짓 이름과 다함없음과 적멸함과 일체가 다 텅 비어 공함까지를 다 안다. 이것으로서 일체 삼세의 모든 법을 널리 안다. <17> 보살의 열 가지 고달프지 않은 마음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發十種無疲厭心하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供養一切諸佛호대 無疲厭心하며 親近一切善知識호대 無疲厭心하며 求一切法호대 無疲厭心하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고달프지 않은 마음을 내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는 데 고달프지 않은 마음과 모든 선지식을 친근하는 데 고달프지 않은 마음과, 모든 법을 구하는 데 고달프지 않은 마음이니라.” 강설 ; 보살은 보살의 마음을 내고 보살의 행을 하는데 결코 고달파하거나 싫어하거나 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보살이 보살의 마음을 내는데 고달파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보살이 아니다. 일체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는 일과 일체 모든 강설 ; 만약 백천만겁에도 만나기 어려운 이 귀중한 불법을 만나고도 조금이라도 싫어하는 마음을 낸다면 그는 사람이 아니며, 불자가 아니며, 수행자가 아니다. 화엄경과 같은 이 최상승법을 만났으면 더욱 열심히 듣고 더욱 열심히 전파해서 더 많은 중생들을 교화하고 조복하여 일체 중생들을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의 경지에 올려두어야 한다. 於一一世界에 經不可說不可說劫토록 行菩薩行호대 無疲厭心하며 遊行一切世界호대 無疲厭心하며 觀察思惟一切佛法호대 無疲厭心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疲厭無上大智니라 “낱낱 세계마다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겁을 지내면서 보살의 행을 행하는 데 고달프지 않은 마음과 모든 세계에 다니는 데 고달프지 않은 마음과 온갖 부처님의 법을 관찰하고 생각하는 데 고달프지 않은 마음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곧 여래의 고달프지 않은 위없는 큰 지혜를 얻느니라.” 강설 ; 보살은 아무리 오랜 세월을 보살행을 행해도 피로해하거나 싫증을 내는 마음이 없다. 그래서 일체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중생들을 교화해도 싫증을 내지 않고, 일체 불법을 관찰하고 사유해도 싫증을 내지 않는다. <18> 보살의 열 가지 차별한 지혜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差別智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知衆生差別智와 知諸根差別智와 知業報差別智와 知受生差別智와 知世界差別智와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차별한 지혜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중생의 차별을 아는 지혜와 모든 근기의 차별을 아는 지혜와 업과 과보의 차별을 아는 지혜와 태어나는 차별을 아는 지혜와 세계의 차별을 아는 지혜이니라.” 知法界差別智와 知諸佛差別智와 知諸法差別智와 知三世差別智와 知一切語言道差別智가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廣大差別智니라 “또한 법계의 차별을 아는 지혜와 모든 부처님의 차별을 아는 지혜와 모든 법의 차별을 아는 지혜와 세 세상의 차별을 아는 지혜와 일체 말하는 길의 차별을 아는 지혜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이 광대하게 차별한 지혜를 얻느니라.” 강설 ; 보살의 지혜에는 차별한 것을 아는 지혜와 차별이 없는 것을 아는 지혜가 있다. 즉 차별지와 무차별지혜라 한다. 차별지는 눈에 보이는 현상들이 차별하듯이 일체 차별을 아는 지혜고, 무차별지는 차별한 현상의 내면에 평등하고 통일된 다 같은 본질이 있는데 그것을 아는 지혜이다. 여기에서는 보살이 중생의 차별과 모든 근기의 차별과 업과 과보의 차별과 태어남이 차별한 것과 우주법계의 차별과 모든 부처님의 차별과 모든 법의 차별과 과거 현재 미래의 차별과 모든 언어의 차별을 아는 지혜가 있음을 밝혔다. <19> 보살의 열 가지 다라니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陀羅尼하니何等이 爲十고所謂聞持陀羅尼니 持一切法하야 不忘失故며 修行陀羅尼니如實巧觀一切法故며思惟陀羅尼니了知一切諸法性故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다라니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들어 지니는 다라니니 온갖 법을 지니고 잊지 않는 연고며, 닦아 행하는 다라니니 모든 법을 사실대로 교묘하게 관찰하는 연고며, 생각하는 다라니니 일체 모든 법의 성품을 분명히 아는 연고이니라.” 강설 ; 다라니(陀羅尼)란 총지(摠持)ㆍ능지(能持)ㆍ능차(能遮)라고 번역한다. 무량무변한 뜻을 지니고 있어서 모든 악한 법을 버리고 한량없이 좋은 법을 가지는 것이다. 보통으로 다라니라 하는 것에 두 가지가 있다. (1) 지혜 혹은 삼매를 말한다. 이것은 말을 잊지 않고 뜻을 분별하며, 우주의 실상에 계합하여 수많은 법문을 보존하여 가지기 때문이다. (2) 진언(眞言)은 범문(梵文)을 번역하지 않고 음(音) 그대로 적어서 외우는 것이다. 이를 번역하지 않는 이유는 원문의 전체 뜻이 한정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과 밀어(密語)라 하여 다른 이에게 비밀히 하는 뜻이 있다. 이것을 외우는 사람은 한량없는 말을 들어도 잊지 아니하며, 끝없는 이치를 알아 학해(學解)를 돕고, 모든 장애를 벗어나 한량없는 복덕을 얻는 등 많은 공덕이 있으므로 다라니라 한다. 흔히 범문(梵文)의 짧은 구절을 진언(眞言) 또는 주(呪)라 하고, 긴 구절로 된 것을 다라니 또는 대주(大呪)라 한다. 法光明陀羅尼니 照不思議諸佛法故며 三昧陀羅尼니 普於現在一切佛所하야聽聞正法하야 心不亂故며 圓音陀羅尼니 解了不思議音聲語言故며 三世陀羅尼니 演說三世不可思議諸佛法故며 “법의 광명다라니니 부사의한 모든 부처님의 법을 비추는 연고며, 삼매다라니니 널리 일체 부처님 계신 데 나타나서 바른 법을 들어 마음이 어지럽지 않은 연고며, 원만한 음성다라니니 부사의한 음성과 말을 이해하는 연고며, 세 세상 다라니니 세 세상의 불가사의한 모든 부처님 법을 연설하는 연고이니라.” 種種辯才陀羅尼니 演說無邊諸佛法故며 出生無礙耳陀羅尼니 不可說佛所說之法을 悉能聞故며 一切佛法陀羅尼니 安住如來力無畏故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欲得此法인댄 當勤修學이니라 “갖가지 변재다라니니 그지없는 모든 부처님의 법을 연설하는 연고며, 걸림 없는 귀를 출생하는 다라니니 말할 수없는 부처님의 말씀한 법을 모두 듣는 연고며, 일체 불법(佛法)다라니니 여래의 힘과 두려움 없는 데 머무는 연고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법을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부지런히 닦아 배울 것이니라.” 강설 ; 경문에서 말하는 열 가지 다라니는 일체 법을 들어서 가지는 문지(聞持)다라니와 일체 법을 사실대로 관찰하는 수행다라니와 일체 모든 법의 깨달아 아는 사유(思惟)다라니와 부사의한 모든 부처님의 법을 비추는 법의 광명다라니와 부처님 계신 데 나타나서 바른 법을 들어 마음이 어지럽지 않은 삼매다라니 등등을 밝혔다. <20> 보살의 열 가지 부처님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說十種佛하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成正覺佛과 願佛과 業報佛과 住持佛과 涅槃佛과 法界佛과 心佛과 三昧佛과 本性佛과 隨樂佛이니 是爲十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부처님을 말하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정각(正覺)을 이루는 부처님과 서원(誓願)의 부처님과 업보(業報)의 부처님과 머물러지니[住持]는부처님과 열반한 부처님과 법계(法界)인 부처님과 마음 부처님과 삼매 부처님과 본 성품 부처님과 따라 즐기는 부처님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보살은 열 가지 부처님, 즉 십불(十佛)을 이야기 한다. 십불에 대해서는 지엄(智嚴)스님이 지은 화엄공목장(華嚴孔目章) 제2권에서 해경(解境)십불과 행경(行境)십불을 들었는데 해경(解境)십불은 보살이 진지(眞智)로써 관할 때는 법계가 모두 불(佛)인 것이니 이를 나눈 것으로는 중생신ㆍ국토신ㆍ업보신ㆍ성문신ㆍ벽지불신ㆍ보살신ㆍ여래신ㆍ지신ㆍ법신ㆍ허공신이 있다. 또 행경(行境)의 십불은 수행이 완성한 뒤 얻은 부처님 경계를 열 가지로 나눈 것으로서 정각불ㆍ원불ㆍ업보불ㆍ주지불ㆍ열반불ㆍ법계불ㆍ심불ㆍ삼매불ㆍ본성(本性)불ㆍ수락불(隨樂佛)이 있다. 여기까지가 십신(十信)에 대한20문을 2백 가지로 답한 것이다. (2) 십주(十住)의 20문(二十門)을 답하다 <1> 발심주(發心住)를 답하다 211) 보살의 열 가지 보현의 마음 佛子야菩薩摩訶薩이發十種普賢心하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發大慈心이니 救護一切衆生故며 發大悲心이니 代一切衆生受苦故며發一切施心이니 悉捨所有故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보현의 마음을 내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크게 인자한 마음을 내나니 일체중생을 구호하는 연고며, 크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내나니 일체중생을 대신하여 고통을 받는 연고며, 온갖 것을 보시하는 마음을 내나니 가진 것을 모두 보시하는 연고이니라.” ' 강설 ; 다음은 십주(十住)의 20문(二十門)을 답한 내용으로서 먼저 초주(初住)인 발심주(發心住)를 답한 내용이다. 그 중에 보현의 열 가지 마음을 밝혔다. 보현보살은 수많은 보살들 중에 가장 이상적인 보살이며 모든 보살행 중에 가장 중요한 보살행을 행하는 보살이다. 그래서 무수한 보살 중에 한 보살만 취한다면 당연히 보현보살을 취한다. 그의 마음은 어떤가. 일체중생을 구호하려는 크게 인자한 마음[大慈心]과 일체중생의 고통을 대신하여 받는 크게 어여삐 여기는 마음[大悲心]과 가진 것을 모두 버리어 보시하는 온갖 것을 다 보시하는 마음을 내는 보살이다. 發念一切智爲首心이니 樂求一切佛法故며發功德莊嚴心이니 學一切菩薩行故며發如金剛心이니 一切處受生호대 不忘失故며發如海心이니 一切白淨法이悉流入故며 “일체 지혜를 생각함으로 머리를 삼는 마음을 내나니 일체 불법을 구하기를 좋아하는 연고며, 공덕으로 장엄하는 마음을 내나니 모든 보살의 행을 배우는 연고며, 금강과 같은 마음을 내나니 모든 곳에 태어남을 잊지 않는 연고며, 바다와 같은 마음을 내나니 온갖 희고 깨끗한 법이 모두 흘러 들어가는 연고이니라.” 강설 ; 또 열 가지 보현의 마음 중에 일체 불법을 구하려는 일체 지혜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마음과 일체 보살행을 배우려는 공덕으로 장엄한 마음과 모든 곳에 태어남을 잊지 않으려는 금강과 같은 마음과 온갖 희고 깨끗한 법이 모두 흘러들게 하려는 바다와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이다. 發如大山王心이니 一切惡言을 皆忍受故며 發安隱心이니 施一切衆生無怖畏故며 發般若波羅蜜究竟心이니 巧觀一切法無所有故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疾得成就普賢善巧智니라 “큰 산과 같은 마음을 내나니 일체 나쁜 말을 다 참고 받아드리는 연고며, 편안한 마음을 내나니 일체중생에게 두려움 없음을 주는 연고며, 반야바라밀다의 구경(究竟)의 마음을 내나니 온갖 법이 아무것도 없음을 교묘하게 관찰하는 연고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마음에 편안히 머물면 보현의 교묘한 지혜를 빨리 성취하느니라.” 강설 ; 일체 나쁜 말을 다 참고 받아드리려는 큰 산과 같은 마음과 일체중생에게 두려움 없음을 주려는 편안한 마음과 일체 법이 아무것도 없음을 교묘하게 관찰하려는 반야의 마음을 내는 것이다. 222) 보살의 열 가지 보현행의 법 佛子야菩薩摩訶薩이 有十種普賢行法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願住未來一切劫普賢行法과 願供養恭敬未來一切佛普賢行法과願安置一切衆生於普賢菩薩行普賢行法과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보현행의 법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미래의 모든 겁에 머물기를 원하는 보현행의 법이며, 미래의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공경하기를 원하는 보현행의 법이며, 일체중생을 보현보살의 행에 두기를 원하는 보현행의 법이니라.” 강설 ; 또 보현보살의 열 가지 행하는 법을 밝혔다. 미래의 모든 겁에 머물고, 미래의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공경하기를 원하고, 일체중생을 보현보살의 행에 두기를 원하는 등등 보현의 행하는 법이다. 願積集一切善根普賢行法과願入一切波羅蜜普賢行法과願滿足一切菩薩行普賢行法과願莊嚴一切世界普賢行法과 “일체 선근을 모으기를 원하는 보현행의 법이며, 일체 바라밀다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보현행의 법이며, 일체 보살의 행을 만족하기를 원하는 보현행의 법이며, 일체 세계를 장엄하기를 원하는 보현행의 법이니라.” 강설 ; 또 온갖 착한 뿌리를 모으기를 원하고, 모든 바라밀다에 들어가기를 원하고, 모든 보살의 행을 만족하기를 원하고, 일체 세계를 장엄하기를 원하는 보현의 행하는 법 등이다. 願生一切佛刹普賢行法과 願善觀察一切法普賢行法과願於一切佛國土에 成無上菩提普賢行法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勤修此法하면 疾得滿足普賢行願이니라 “모든 부처님 세계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보현행의 법이며, 모든 법을 잘 관찰하기를 원하는 보현행의 법이며, 모든 부처님의 국토에서 가장 높은 깨달음 이루기를 원하는 보현행의 법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을 부지런히 닦으면 보현의 행과 원을 빨리 만족케 하느니라.” 강설 ; 모든 부처님 세계에 나기를 원하고, 모든 법을 잘 관찰하기를 원하고, 모든 부처님의 국토에서 위없는 보리 이루기를 원하는 등의 보현의 행하는 법이다. 233) 보살은 열 가지 중생을 관찰하고 큰 슬픔을 일으킨다 佛子야菩薩摩訶薩이以十種觀衆生하야 而起大悲하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觀察衆生이 無依無怙하야 而起大悲하며 觀察衆生이性不調順하야 而起大悲하며 觀察衆生이貧無善根하야 而起大悲하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로 중생을 관찰하고 큰 슬픔을 일으키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중생이 의지할 데 없고 믿을 데 없음을 관찰하고 큰 슬픔을 일으키며, 중생의 성품이 고르고 순하지 못함을 관찰하고 큰 슬픔을 일으키며, 중생이 가난하여 선근이 없음을 관찰하고 큰 슬픔을 일으키느니라.” 觀察衆生이 長夜睡眠하야 而起大悲하며 觀察衆生이 行不善法하야而起大悲하며 觀察衆生이 欲縛所縛하야 而起大悲하며 觀察衆生이 沒生死海하야 而起大悲하며 “중생이 긴긴 밤에 잠들어 있음을 관찰하고 큰 슬픔을 일으키며, 중생이 착하지 못한 법을 행함을 관찰하고 큰 슬픔을 일으키며, 중생이 욕심에 얽매임을 관찰하고 큰 슬픔을 일으키며, 중생이 생사(生死) 바다에 빠져있음을 관찰하고 큰 슬픔을 일으키느니라.” 觀察衆生이 長嬰疾苦하야 而起大悲하며 觀察衆生이 無善法欲하야而起大悲하며 觀察衆生이 失諸佛法하야 而起大悲가 是爲十이니 菩薩이 恒以此心으로 觀察衆生이니라 “중생이 병고(病苦)에 길이 얽혀있음을 관찰하고 큰 슬픔을 일으키며, 중생이 착한 법에 욕망이 없음을 관찰하고 큰 슬픔을 일으키며, 중생들이 모든 부처님의 법을 잃어버림을 관찰하고 큰 슬픔을 일으키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보살이 항상 이러한 마음으로 중생을 관찰하느니라.” 강설 ; 보살이 큰 자비심을 일으키는 까닭에 대해서 들었다. 중생이 의지할 데 없고 믿을 데 없으며, 중생의 성품이 고르지 못하며, 중생이 가난하여 착한 뿌리가 없고, 중생이 긴긴 밤에 잠자는 것과 중생이 착하지 못한 법을 행하고, 중생이 욕심에 얽매여 있고, 중생들이 생사의 바다에 빠져 있고, 중생이 병고에 길이 얽혀 있고, 중생이 착한 법에 욕망이 없고, 중생이 모든 부처님의 법을 잃어버리는 것 등을 관찰하고는 큰 자비심을 일으키는 것이다. 4) 보살의 열 가지 보리심을 내는 인연 佛子야 菩薩摩訶薩이有十種發菩提心因緣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爲敎化調伏一切衆生故로發菩提心하며 爲除滅一切衆生苦聚故로發菩提心하며 爲與一切衆生具足安樂故로發菩提心하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보리심을 내는 인연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중생을 교화하고 조복시키기 위하여 보리심(菩提心)을 내며, 일체중생의 고통무더기를 소멸하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며, 일체중생에게 구족한 안락을 주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느니라.” 강설 ; 발보리심(發菩提心), 보리심을 내는 일은 불법수행의 첫 번째 과정이다. 불법을 통하여 지혜를 연마하고 자비를 실천하여 사람들에게 이익을 나누는 일은 보리심으로부터 출발한다. 보리심을 좀 더 널리 설하면 나누는 마음이며, 베푸는 마음이며, 정직하고 선량한 마음이며, 지혜롭고 자비로운 마음이며 불심(佛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마음을 통하여 스스로도 이익하고 다른 사람도 이익하게 하여 불국토가 이뤄지는 것인데 경문에서는 그 까닭을 낱낱이 밝혔다. 먼저 일체중생을 교화하고 조복시키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며, 일체중생의 고통무더기를 소멸하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며, 일체중생에게 구족한 안락을 주기 위하여 보리심을 낸다. 爲斷一切衆生愚癡故로 發菩提心하며 爲與一切衆生佛智故로 發菩提心하며 爲恭敬供養一切諸佛故로 發菩提心하며 爲隨如來敎하야 令佛歡喜故로 發菩提心하며 “일체중생의 어리석음을 끊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며, 일체중생에게 부처님의 지혜를 주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며, 일체 모든 부처님을 공경하고 공양하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며, 여래의 가르침을 따라서 부처님을 환희케 하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느니라.” 강설 ; 불교를 믿는 불자들은 길을 가다가도 개나 소나 돼지와 같은 동물을 만나면 으레 “발보리심 하라.”라는 말을 일러주고 지나간다. 전생에 보리심이 없어서 동물로 태어났으니 지금이라도 보리심을 내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서 지혜와 자비를 실천하라는 뜻이다. 보리심을 내는 까닭을 다시 밝혔다. 일체중생의 어리석음을 끊기 위하여, 일체중생에게 부처님의 지혜를 주기 위하여, 모든 부처님을 공경하고 공양하기 위하여, 여래의 가르침을 따라서 부처님이 환희케 하기 위하여 보리심을 낸다. 爲見一切佛色身相好故로 發菩提心하며 爲入一切佛廣大智慧故로 發菩提心하며 爲顯現諸佛力無所畏故로 發菩提心이 是爲十이니라 “모든 부처님의 육신과 상호를 보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며, 모든 부처님의 광대한 지혜에 들어가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며, 모든 부처님의 힘과 두려움 없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부처님과 일체 보살들과 조사들과 선지식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서 표현하면 보리심이다. 이와 같이 중요한 마음이 보리심이다. 그 까닭을 또 모든 부처님의 육신과 상호를 보기 위하여, 모든 부처님의 광대한 지혜에 들어가기 위하여, 모든 부처님의 열 가지 힘과 네 가지 두려움 없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보리심을 낸다. <2> 치지주(治持住)를 답하다 251) 보살은 선지식을 친근 공양할 때에 열 가지 마음을 일으킴이 있다 佛子야若菩薩이 發無上菩提心인댄爲悟入一切智智故로親近供養善知識時에應起十種心하나니 何等이 爲十고 “불자여, 만일 보살이 위없는 보리심을 내었을진댄 일체 지혜의 지혜에 깨달아 들어가기 위한 까닭에 선지식을 친근하고 공양할 때에는 마땅히 열 가지 마음을 일으키나니, 무엇이 열인가.” 所謂起給侍心과 歡喜心과 無違心과 隨順心과 無異求心과 一向心과 同善根心과 同願心과 如來心과 同圓滿行心이 是爲十이니라 “이른바 시중들 마음과 환희한 마음과 어기지 않는 마음과 수순하는 마음과 달리 구함이 없는 마음과 한결 같은 마음과 선근이 같은 마음과 소원이 같은 마음과 여래의 마음과 원만한 행이 같은 마음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두 번째 치지주(治地住)란 항상 공관(空觀)을 닦아 심지(心地)를 청정하게 다스리는 지위이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고, 가장 높고, 가장 깊고, 가장 아름답고, 그보다 더 높은 것이 없는 위없는 마음인 보리심을 내고 일체 지혜의 지혜에 깨달아 들어가기 위하여 선지식을 친근하고 공양할 때에는 마땅히 열 가지 마음을 일으켜야함을 밝혔다. 262) 보살은 열 가지 청정함이 있다 佛子야若菩薩摩訶薩이起如是心하면 則得十種淸淨하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深心淸淨이니 到於究竟하야 無失壞故며色身淸淨이니 隨其所宜하야 爲示現故며音聲淸淨이니 了達一切諸語言故며 “불자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키면 열 가지가 청정하여지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깊은 마음이 청정하니 구경까지 이르도록 없어지지 않는 연고며, 육신이 청정하니 마땅한 바를 따라서 나타내 보이는 연고며, 음성이 청정하니 일체 모든 말을 모두 통달하는 연고이니라.” 강설 ; 선지식을 친근하여 공양할 때에 위와 같은 열 가지 마음을 일으킨다면 열 가지 청정함을 얻게 된다. 청정이란 깨끗하다는 뜻이며, 훌륭하다는 뜻이며, 길상하다는 뜻이며, 복되다는 뜻이며, 텅 비었다는 뜻이며, 성취하였다는 뜻이며, 아름답다는 뜻이다. 청정하다는 말과 같이 좋은 말이 있을까. 그래서 깊은 마음이 청정하고, 육신이 청정하고, 음성이 청정하다. 辯才淸淨이니 善說無邊諸佛法故며智慧淸淨이니 捨離一切愚癡暗故며 受生淸淨이니 具足菩薩自在力故며眷屬淸淨이니 成就過去同行衆生諸善根故며 “변재가 청정하니 그지없는 모든 부처님 법을 잘 연설하는 연고며, 지혜가 청정하니 모든 어리석음을 여의는 연고며, 태어남이 청정하니 보살의 자유자재한 힘을 구족한 연고며, 권속이 청정하니 과거에 함께 수행하던 중생들의 모든 선근을 성취하는 연고이니라.” 강설 ; 또 변재가 청정하고, 지혜가 청정하고, 태어남이 청정하고, 권속이 천정하다. 果報淸淨이니 除滅一切諸業障故며 大願淸淨이니 與諸菩薩로 性無二故며 諸行淸淨이니 以普賢乘으로 而出離故라 是爲十이니라 “과보가 청정하니 일체 모든 업장을 제멸한 연고며, 큰 서원이 청정하니 모든 보살로 더불어 성품이 둘이 없는 연고며, 모든 행이 청정하니 보현의 법(乘)으로 벗어나는 연고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또 과보가 청정하고, 큰 서원이 청정하고, 모든 행이 청정하여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3> 수행주(修行住)를 답하다 271) 보살은 열 가지 바라밀이 있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波羅蜜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施波羅蜜이니 悉捨一切諸所有故며 戒波羅蜜이니 淨佛戒故며 忍波羅蜜이니 住佛忍故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바라밀다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보시 바라밀다니 일체 모든 가진 것을 다 보시하는 연고며, 계율 바라밀다니 부처님의 계율을 깨끗이 하는 연고며, 참는 바라밀다니 부처님의 인욕에 머무는 연고이니라.” 강설 ; 수행주(修行住)는 만선(萬善) 만행(萬行)을 닦는 지위이기 때문에 수행주라 한다. 精進波羅蜜이니 一切所作이不退轉故며禪波羅蜜이니 念一境故며般若波羅蜜이니 如實觀察一切法故며智波羅蜜이니 入佛力故며 “정진 바라밀다니 모든 짓는 일이 물러나지 않는 연고며, 선정 바라밀다니 한 경계를 생각하는 연고며, 반야 바라밀다니 모든 법을 사실 대로 관찰하는 연고며, 지혜 바라밀다니 부처님의 힘에 들어가는 연고며, 願波羅蜜이니 滿足普賢諸大願故며 神通波羅蜜이니 示現一切自在用故며 法波羅蜜이니 普入一切諸佛法故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具足如來無上大智波羅蜜이니라 서원 바라밀다니 보현의 모든 큰 서원을 만족하는 연고며, 신통 바라밀다니 온갖 자유자재한 작용을 나타내 보이는 연고며, 법(法) 바라밀다니 일체 모든 부처님 법에 두루 들어가는 연고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가장 높은 큰 지혜 바라밀다를 구족하게 되느니라.” 강설 ; 여기에서의 열 가지 바라밀다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 지혜, 원(願), 신통, 법(法)이다. 다른 곳에서 끝의 네 가지가 방편, 원(願), 역(力), 지(智)인 것과는 약간 다르다. 282) 보살은 열 가지 지혜로 따라 깨달음이 있다 佛子야菩薩摩訶薩이 有十種智隨覺이니 何等이 爲十고所謂一切世界無量差別을 智隨覺과一切衆生界不可思議를 智隨覺과一切諸法의一入種種하고 種種入一을 智隨覺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지혜로 따라 깨달음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세계의 한량없이 차별한 것을 지혜로 따라 깨달음이며, 일체 중생계의 불가사의한 것을 지혜로 따라 깨달음이며, 일체 모든 법이 하나가 가지가지에 들어가고 가지가지가 하나에 들어가는 것을 지혜로 따라 깨달음이니라.” 강설 ; 지혜로 따라 깨닫는다는 것[智隨覺]은 보살이 어떤 사실과 이치를 지혜로 철저히 깨달아 그것과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모든 세계의 한량없이 차별한 것과 일체 중생계의 불가사의한 것과 보살의 지혜로 하나가 되고, 또 일체 모든 법이 하나가 가지가지에 들어가고 가지가지가 하나에 들어가는 것을 지혜로 따라 깨달아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一切法界廣大를 智隨覺과 一切虛空界究竟을 智隨覺과 一切世界가 入過去世를 智隨覺과 一切世界가 入未來世를 智隨覺과 “온갖 법계의 광대한 것을 지혜로 따라 깨달음이며, 모든 허공계의 끝닿는 데를 지혜로 따라 깨달음이며, 모든 세계가 과거 세상에 들어감을 지혜로 따라 깨달음이며, 모든 세계가 미래 세상에 들어감을 지혜로 따라 깨달음이니라.” 一切世界가 入現在世를 智隨覺과 一切如來의 無量行願을皆於一智에 而得圓滿을 智隨覺과 三世諸佛이 皆同一行으로 而得出離를 智隨覺이 是爲十이니 “모든 세계가 현재 세상에 들어감을 지혜로 따라 깨달음이며, 모든 여래의 한량없는 행과 원을 모두 한 지혜에 원만함을 지혜로 따라 깨달음이며, 세 세상 부처님들이 다 같은 행으로 벗어남을 얻음을 지혜로 따라 깨달음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一切法自在光明하야 所願皆滿하야 於一念頃에 悉能解了一切佛法하야 成等正覺이니라 “만일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모든 법의 자재한 광명을 얻고 소원이 다 만족하여 잠깐 동안에 모든 불법을 다 능히 이해하고 정등각을 이루느니라.” 강설 ; 보살의 지혜가 어떤 사실과 이치를 따라 깨닫는다는 것은 모든 법의 자재한 광명을 얻어서 소원이 다 만족한 경지이며, 잠깐 동안에 모든 불법을 다 이해하여 부처님이 이루신 정등각을 함께 이루는 경지이다. 29<4> 생귀주(生貴住)를 답하다 1) 보살은 열 가지 증득하여 앎이 있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證知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知一切法一相하며 知一切法無量相하며 知一切法在一念하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증득하여 앎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법이 한 모양임을 알며, 모든 법이 한량없는 모양임을 알며, 모든 법이 한 생각에 있음을 아느니라.” 강설 ; 생귀주(生貴住)는 존귀한 종성에 태어난다는 뜻으로 여래의 종성에 들어가는 지위이다. 이 지위에서 보살이 증득하여 아는 열 가지를 밝혔다. 보살은 일체 법은 그 근본은 하나의 모양이면서 또한 한량없는 모양이라는 사실을 안다. 또 일체 법은 한 생각에 있음을 안다. 知一切衆生의 心行無礙하며 知一切衆生의 諸根平等하며 知一切衆生의 煩惱習氣行하며 知一切衆生의 心使行하며 知一切衆生의 善不善行하며 “일체중생의 마음의 행이 걸림이 없음을 알며, 일체중생의 모든 근기가 평등함을 알며, 일체중생의 번뇌와 습기의 행을 알며, 일체중생의 마음이 하는 바의 행을 알며, 일체중생의 착하고 착하지 못한 행을 아느니라.” 강설 ; 이 지위의 보살은 일체중생의 마음 의 행과 모든 근기의 평등과 번뇌습기와 마음이 하는 바의 행과 착하고 착하지 못한 행을 다 증득하여 안다. 知一切菩薩의 願行自在하야 住持變化하며 知一切如來의具足十力하야 成等正覺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一切法善巧方便이니라 “모든 보살의 원과 행이 자재하게 머물러 가지며 변화함을 알며, 모든 여래가 열 가지의 힘을 구족하고 등정각 이룸을 아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모든 법의 최선의 방법[善巧方便]을 얻느니라.” 강설 ; 또 모든 보살의 원과 행이 자재하게 머물러 가지며 변화함과 모든 여래가 열 가지의 힘을 구족하고 정등각을 이룸까지를 다 증득하여 안다. 30<5> 구족방편주(具足方便住)를 답하다 1) 보살은 열 가지 힘이 있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力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入一切法自性力과 入一切法如化力과 入一切法如幻力과 入一切法皆是佛法力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힘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법의 제 성품에 들어가는 힘과 모든 법이 변화와 같은 데 들어가는 힘과 모든 법이 환술과 같은 데 들어가는 힘과 모든 법이 불법인 데 들어가는 힘이니라.” 강설 ; 구족방편주(具足方便住)는 부처님과 같이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방편의 행을 갖추어 상모(相貌)가 결함(缺陷)이 없는 지위이다. 이 지위 보살의 열 가지 힘을 밝혔다. 일체 법의 제 성품이란 변화와 같고, 환술과 같고, 꿈과 같고, 그러면서 일체 법이 모두 불법인 것에 들어가는 힘이다. 於一切法에 無染着力과於一切法에 甚明解力과於一切善知識에恒不捨離尊重心力과 令一切善根으로 順至無上智王力과 “모든 법에 물들지 않는 힘과 모든 법을 매우 밝게 아는 힘과 모든 선지식을 항상 떠나지 않고 존중하는 마음의 힘과 모든 착한 뿌리로 하여금 가장 높은 지혜의 왕에 수순하여 이르게 하는 힘이니라.” 강설 ; 일체 법이 변화와 같고, 환술과 같고, 꿈과 같으므로 물들어 집착함이 없다. 그것은 곧 힘이다. 이러한 법을 밝게 아는 것도 역시 힘이다. 모든 선지식을 항상 떠나지 않고 존중하는 마음도 큰 힘이다. 또 착한 뿌리를 심은 것이 궁극에는 가장 높은 지혜를 수순하여 이르게 되는 것이 큰 힘이다. 於一切佛法에 深信不謗力과 令一切智心으로 不退善巧力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具如來無上諸力이니라 “모든 불법을 깊이 믿어 비방하지 않는 힘과 온갖 지혜의 마음이 물러가지 않게 하는 공교한 힘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여러 가지 힘을 갖추느니라.” 강설 ; 보살은 또 일체 불법을 깊이 믿어 비방하지 않는 힘과 일체 지혜의 마음에서 물러서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다. 31 <6> 정심주(正心住)를 답하다 1) 보살은 열 가지 평등함이 있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平等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於一切衆生에 平等하며 一切法에 平等하며 一切刹에 平等하며 一切深心에 平等하며 一切善根에 平等하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평등함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중생에 평등함과 일체 법에 평등함과 일체 세계에 평등함과 일체 깊은 마음에 평등함과 일체 착한 뿌리에 평등함이니라.” 一切菩薩에 平等하며 一切願에 平等하며 一切波羅蜜에 平等하며一切行에 平等하며 一切佛에 平等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一切諸佛無上平等法이니라 “일체 보살에 평등함과 모든 원(願)에 평등함과 모든 바라밀다에 평등함과 모든 행에 평등함과 모든 부처님에 평등함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일체 모든 부처님의 위없이 평등한 법을 얻느니라.” 강설 ; 정심주(正心住)란 보살의 용모가 부처님과 같을 뿐만 아니라 마음도 똑같은 지위를 말한다. 이 지위에서 보살은 열 가지 평등함과 열 가지 불법의 참된 이치의 글귀가 있다. 먼저 열 가지 평등함을 밝혔다. 322) 보살은 열 가지 불법의 참된 이치의 글귀가 있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佛法實義句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 一切法이 但有名이며 一切法이 猶如幻이며 一切法이 猶如影이며 一切法이 但緣起며 一切法이 業淸淨이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불법의 참된 이치의 글귀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법이 이름만 있음과 일체 법이 마치 환술과 같음과 일체 법이 그림자와 같음과 일체 법이 다만 인연으로 생김과 일체 법이 업이 청정함이니라.” 一切法이 但文字所作이며 一切法이 實際며 一切法이 無相이며 一切法이 第一義며 一切法이 法界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善入一切智智無上眞實義니라 “일체 법이 다만 글자로만 지어짐과 일체 법의 진실한 경계와 일체 법이 모양이 없음과 일체 법의 제일가는 뜻과 일체 법의 법계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일체 지혜의 지혜인 위없이 진실한 이치에 들어가느니라.” 강설 ; 불법의 참된 이치의 글귀란 어떤 것인가. 일체 법이 이름만 있음과 일체 법이 마치 환술과 같음과 일체 법이 그림자와 같음과 일체 법이 다만 인연으로 생김과 일체 법이 업이 텅 비어 청정하다는 것이다. 또 일체 법이 다만 글자로만 지어졌다는 사실이 진실한 경계며, 모양이 없으며, 제일가는 뜻이며, 일체 법의 법계이다. 33 <7> 불퇴주(不退住)를 답하다 1) 보살은 열 가지 법을 말함이 있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說十種法하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說甚深法하며 說廣大法하며 說種種法하며 說一切智法하며 說隨順波羅蜜法하며 說出生如來力法하며 說三世相應法하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법을 말함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매우 깊은 법을 말하고, 넓고 큰 법을 말하고, 갖가지 법을 말하고, 일체 지혜의 법을 말하고, 바라밀다를 따르는 법을 말하고, 여래의 힘을 출생하는 법을 말하고, 과거 현재 미래와 서로 응하는 법을 말하느니라.” 說令菩薩不退法하며 說讚歎佛功德法하며 說一切菩薩이 學一切佛平等하야 一切如來境界相應法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巧說法이니라 “보살을 물러가지 않게 하는 법을 말하고,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는 법을 말하고, 모든 보살들이 일체 부처님의 평등함을 배워서 모든 여래의 경계와 서로 응하는 법을 말하나니,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이 공교하게 말하는 법을 얻느니라.” 강설 ; 불퇴주(不退住)란 보살의 몸과 마음이 한데 이루어 날마다 더욱 자라나고 물러서지 않는 지위이다. 이 지위의 보살은 열 가지 법을 말함이 있으며 열 가지 지님이 있다. 먼저 매우 깊은 법과 광대한 법과 가지가지 법과 일체 지혜의 법과 바라밀다를 수순하는 법 등이 있다. 만약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이 공교하게 말하는 법을 얻는다. 342) 보살은 열 가지 지님이 있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持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持所集一切福德善根하며 持一切如來所說法하며持一切譬喩하며 持一切法理趣門하며 持一切出生陀羅尼門하며 持一切除疑惑法하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법을 지님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아 놓은 일체 복덕과 선근을 지니고, 일체 여래의 말씀한 법을 지니고, 일체 비유를 지니고, 일체 법의 나아갈 문을 지니고, 일체 것을 내는 다라니문을 지니고, 일체 의혹을 없애는 법을 지니느니라.” 持成就一切菩薩法하며 持一切如來所說平等三昧門하며 持一切法照明門하며 持一切諸佛神通遊戱力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大智住持力이니라 “일체 보살을 성취하는 법을 지니고, 일체 여래가 말씀한 평등한 삼매문을 지니고, 일체 법을 밝게 비추는 문을 지니고, 일체 모든 부처님의 신통으로 유희하는 힘을 지니나니,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큰 지혜에 머물러 지니는 힘을 얻느니라.” 강설 ; 보살은 일체 선법을 남김없이 다 지닌다. 그래서 일체 복덕과 착한 뿌리를 지니고, 일체 여래의 말씀한 법을 지니고, 일체 비유를 지니고, 일체 법의 나아갈 문을 지니고, 일체 것을 내는 다라니문을 지니고, 일체 의혹을 없애는 법을 등을 다 지닌다. 35 <8> 동진주(童眞住)를 답하다 1) 보살은 열 가지 변재가 있다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辯才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於一切法에無分別辯才와於一切法에 無所作辯才와於一切法에無所着辯才와於一切法에了達空辯才와於一切法에無疑暗辯才와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변재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법에 분별이 없는 변재와 일체 법에 지음이 없는 변재와 일체 법에 집착이 없는 변재와 일체 법에 공한 줄을 아는 변재와 일체 법에 의심의 어두움이 없는 변재이니라.” 於一切法에 佛加被辯才와 於一切法에 自覺悟辯才와 於一切法에 文句差別善巧辯才와 於一切法에 眞實說辯才와 隨一切衆生心하야 令歡喜辯才가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巧妙辯才니라 “일체 법에 부처님이 가피하는 변재와 일체 법에 스스로 깨닫는 변재와 일체 법에 글귀가 차별하고 교묘한 변재와 일체 법에 진실하게 말하는 변재와 일체중생의 마음을 따라 환희케 하는 변재니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이 교묘한 변재를 얻느니라.” 강설 ; 동진주(童眞住)란 그릇된 소견이 생기지 않고 보리심을 파하지 않는 것이 마치 동자의 천진하여 애욕이 없는 것과 같아서 부처님의 10신(身) 영상(靈相)이 일시에 갖추어지는 지위이다. 이 지위에서 보살의 열 가지 변재가 있다. 362) 보살은 열 가지 자재가 있다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自在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敎化調伏一切衆生自在와 普照一切法自在와修一切善根行自在와廣大智自在와 無所依戒自在와一切善根廻向菩提自在와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자재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중생을 교화하고 조복시키는 자재와 일체 법을 두루 비추는 자재와 일체 선근의 행을 닦는 자재와 넓고 큰 지혜의 자재와 의지할 데 없는 계율의 자재와 일체 선근을 보리에 회향하는 자재이니라.” 精進不退轉自在와 智慧摧破一切衆魔自在와 隨所樂欲하야 令發菩提心自在와隨所應化하야 現成正覺自在가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大智自在니라 “정진하여 물러가지 않는 자재와 지혜로 모든 마군들을 깨뜨리는 자재와 좋아하는 욕망을 따라 보리심을 내게 하는 자재와 응당 교화할 바를 따라 바른 깨달음 이룸을 나타내는 자재니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큰 지혜의 자재를 얻느니라.” 강설 ; 동진주(童眞住) 지위의 보살에게는 또 열 가지 자재가 있다. 일체중생을 교화하고 조복시키는 자재와 일체 법을 두루 비추는 자재와 일체 착한 뿌리의 행을 닦는 자재와 넓고 큰 지혜의 자재 등이다. 37 <9> 법왕자주(法王子住)를 답하다 1) 보살은 열 가지 집착 없음이 있다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無着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於一切世界에 無着하며 於一切衆生에 無着하며 於一切法에 無着하며 於一切所作에 無着하며 於一切善根에 無着하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집착 없음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세계에 집착이 없고, 일체 중생에게 집착이 없고, 일체 법에 집착이 없고, 일체 짓는 일에 집착이 없고, 일체 착한 뿌리에 집착이 없느니라.” 於一切受生處에 無着하며 於一切願에 無着하며 於一切行에 無着하며 於一切菩薩에 無着하며 於一切佛에 無着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能速轉一切衆想하야 得無上淸淨智慧니라 “일체 태어나는 곳에 집착이 없고, 일체 소원에 집착이 없고, 일체 행에 집착이 없고, 일체 보살에 집착이 없고, 일체 부처님께 집착이 없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능히 일체 모든 생각들을 빨리 전환하여 위없는 청정한 지혜를 얻느니라.” 강설 ; 법왕자주(法王子住)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지혜(智慧)가 생겨서 다음 세상에 부처님의 지위를 이을 지위이다. 이 지위에서 보살이 먼저 열 가지 집착 없음이 있다. 일체 세계에 집착이 없고, 일체 중생에게 집착이 없고, 일체 법에 집착이 없는 등등이다. 382) 보살은 열 가지 평등한 마음이 있다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平等心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積集一切功德平等心과 發一切差別願平等心과於一切衆生身에 平等心과於一切衆生業報에 平等心과於一切法에 平等心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평등한 마음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공덕을 모으는 평등한 마음과 일체 차별한 소원을 내는 평등한 마음과 일체중생의 몸에 평등한 마음과 일체중생의 업보에 평등한 마음과 일체 법에 평등한 마음이니라.” 於一切淨穢國土에 平等心과 於一切衆生解에 平等心과 於一切行에 無所分別平等心과 於一切佛力無畏에 平等心과 於一切如來智慧에 平等心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其中하면 則得如來無上大平等心이니라 “일체 깨끗하고 더러운 국토에 평등한 마음과 일체중생의 알음알이에 평등한 마음과 일체 행에 분별할 것이 없는 평등한 마음과 일체 부처님의 힘과 두려움 없는 데 평등한 마음과 일체 여래의 지혜에 평등한 마음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그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이 크게 평등한 마음을 얻느니라.” 강설 ; 보살의 법왕자주 지위에서 또 열 가지 평등한 마음이 있음을 밝혔다. 일체 공덕을 모으는 평등한 마음과 일체 차별한 소원을 내는 평등한 마음과 일체중생의 몸에 평등한 마음과 일체중생의 업보에 평등한 마음 등등이다. 39 <10> 관정주(灌頂住)를 답하다 1) 보살은 열 가지 출생하는 지혜가 있다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出生智慧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知一切衆生解出生智慧와 知一切佛刹種種差別出生智慧와知十方網分齊出生智慧와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출생하는 지혜[出生智慧]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중생의 이해[解]를 알고 출생하는 지혜며, 일체 부처님 세계의 갖가지 차별을 알고 출생하는 지혜며, 시방그물의 한계를 알고 출생하는 지혜이니라.” 知覆仰等一切世界出生智慧와 知一切法一性種種性廣大性出生智慧와 知一切種種身出生智慧와 知一切世間顚倒妄想에悉無所着出生智慧와 “엎어지고 잦혀진 등의 일체 세계를 알고 출생하는 지혜며, 일체 법의 한 성품과 갖가지 성품과 광대한 성품을 알고 출생하는 지혜며, 일체 갖가지 몸을 알고 출생하는 지혜며, 일체 세간의 뒤바뀌고 허망한 생각에 모두 집착한 데 없음을 알고 출생하는 지혜이니라.” 知一切法이 究竟皆以一道出離出生智慧와 知如來神力이 能入一切法界出生智慧와 知三世一切衆生의 佛種不斷出生智慧가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於諸法에 無不了達이니라 “일체 법이 구경에는 다 한 길로 벗어남을 알고 출생하는 지혜며, 여래의 신통한 힘이 일체 법계에 능히 들어감을 알고 출생하는 지혜며, 세 세상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종자를 끊지 않음을 알고 출생하는 지혜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모든 법에 통달하지 못함이 없느니라.” 강설 ; 관정주(灌頂住)는 보살이 이미 불자가 되어 부처님의 사업을 감당할 만하므로 부처님이 지혜의 물로써 정수리에 붓는 것이 마치 인도에서 왕자(王子)가 자라면 국왕이 손수 바닷물을 정수리에 부어 국왕이 되게 하는 것과 같으므로 이마에 물을 붓는 지위[灌頂住]라고 부른다. 이 지위의 보살은 열 가지 출생하는 지혜가 있다. 일체중생의 이해[解]를 알고 출생하는 지혜와 일체 부처님 세계의 갖가지 차별을 알고 출생하는 지혜와 시방그물의 한계를 알고 출생하는 지혜 등이다. 402) 보살은 열 가지 변화가 있다 佛子야菩薩摩訶薩이 有十種變化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一切衆生變化와一切身變化와一切刹變化와一切供養變化와一切音聲變化와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변화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중생의 변화와 일체 몸의 변화와 일체 세계의 변화와 일체 공양의 변화와 일체 음성의 변화이니라.” 一切行願變化와 一切敎化調伏衆生變化와 一切成正覺變化와 一切說法變化와 一切加持變化가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具足一切無上變化法이니라 “일체 행과 원의 변화와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하는 모든 변화와 일체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변화와 일체 법을 말하는 변화와 일체 가지(加持)하는 변화이니,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온갖 위없이 변화하는 법을 구족하게 되느니라.” 강설 ; 또 이 지위의 보살에게는 열 가지 변화가 있다. 일체중생의 변화와 일체 몸의 변화와 일체 세계의 변화와 일체 공양의 변화 등이다. 여기까지가 십주위의 20문을 답한 내용이라고 고인(古人)들은 과판(科判)하였다. 그러나 그 내용들이 반드시 십주위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과판을 반드시 의지해서 해석할 것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다음 십행(十行)의 30문(三十門)을 답한 내용이 54권에서 시작하지 않고 53권 끝에서 시작하는 것을 살펴보면 약간의 의문이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문의 내용과는 관계없이 나눈 경문의 양에 의해서 80권으로 나눈 것을 따른다. 41 (3) 십행(十行)의 30문(三十門)을 답하다 <1> 환희행(歡喜行)을 답하다 1) 보살은 열 가지 힘으로 유지[堅持]함이 있다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力持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佛力持와 法力持와衆生力持와業力持와行力持와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힘으로 유지함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부처님의 힘으로 유지하며, 법의 힘으로 유지하며, 중생의 힘으로 유지하며, 업(業)의 힘으로 유지하며, 행(行)의 힘으로 유지하느니라.” 願力持와 境界力持와 時力持와 善力持와 智力持가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於一切法에 得無上自在力持니라 “서원(誓願)의 힘으로 유지하며, 경계의 힘으로 유지하며, 시간의 힘으로 유지하며, 착한 힘으로 유지하며, 지혜의 힘으로 유지함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곧 온갖 법에 위없는 자재한 힘으로 유지함을 얻느니라.” 강설 ; 이제 십행(十行)의 30문(三十門)을 답한 내용이다. 첫째 제1 환희행에서 열 가지 힘으로 유지함을 들었다. 부처님의 힘으로 유지하며, 법의 힘으로 유지하며, 중생의 힘으로 유지하며, 업(業)의 힘으로 유지하며, 행의 힘으로 유지하며, 서원의 힘으로 유지하며, 경계의 힘으로 유지하며, 시간의 힘으로 유지하며, 착한 힘으로 유지하며, 지혜의 힘으로 유지하는 등이다. 이세간품 1 끝 화엄경 강설 53 끝 |
첫댓글
이세간품(離世間品)은 화엄경 총 아홉 번의 법회 중에서 여덟 번째의 법회다.
마갈제국(摩竭提國) 아란야(阿蘭若) 법(法) 보리도량의 보광명전(普光明殿)에서
한 품의 경전 7권을 설한 것이다.
그 내용은 10신과 10주와 10행과 10회향과 10지와 등각과 묘각의 법을 2백 가지의 질문을 하고,
그 하나하나의 질문에 각각 열 가지의 대답을 하여 불교의 수많은 용어들을 화엄경의 안목으로
새롭게 설파하였다.
이와 같은 법문의 형식을 고인(古人)들은
운흥이백문(雲興二百問)에
병사이천답(甁瀉二千答)이라고 표현하였다.
또는 현하이백문(懸河二百問)에
병사이천수(瓶寫二千酬)라고도 한다.
마치 먼 하늘에서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나서
하늘을 뒤덮듯이 2백 가지의 질문을 퍼부어대니 병에서 물을 쏟아 붓듯이 2천 가지의 답을 하는 것이다.
부처님이 성도하신 나라가 마갈제국이다. 이 마갈제국
아란야 법(法) 보리도량의 보광명전 연화장 사자좌에서
화엄경의 법회가 7처 9회중에 세 번째 열렸다.
제1회 보광명전에서 두 번째 법회인 6품의 경전이 설해졌고,
2회 보광명전에서 일곱 번째 법회인 11품의 경전이 설해졌고,
다시 3회 보광명전에서 여덟 번째 법회인 이 이세간품 한품의 경전이 설해졌다.
그러므로 화엄경이 가장 많이 설해진 곳이 이 보광명전이다.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법을 말함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매우 깊은 법을 말하고,
넓고 큰 법을 말하고,
갖가지 법을 말하고,
일체 지혜의 법을 말하고,
바라밀다를 따르는 법을 말하고,
여래의 힘을 출생하는 법을 말하고,
과거 현재 미래와 서로 응하는 법을 말하느니라.”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무엇을 의지해야하며,
무엇이 특별한 생각이며,
무엇을 실천해야하며,
무엇이 선지식이며,
무엇이 정진이며,
무엇이 마음에 편안함이며,
무엇이 중생을 성취함이며,
무엇이 계행이며,
무엇이 스스로 수기 받을 줄을 아는 것이며,
무엇이 보살에 들어는 것인가에 대한 등등
불교의 중요한 2백 가지 명제들에 대해서낱낱이 각각 열 가지씩 답하였다.
어떤 명제들이 등장하며 어떤 답이 나올 것인지 실로 궁금하고 기대되는
이세간품이다.교학(敎學)상으로 이세간품을 신(信) 해(解) 행(行) 증(證)으로 과판(科判)하면
법에 의탁하여 닦아 아나가서 행(行)을 성취하는 부분[托法進修成行分]에 해당된다
보리심으로 의지를 삼나니 항상 잊지 않는 연고며,
선지식으로 의지를 삼나니 화합하여 한결 같은 연고며,
착한 뿌리로 의지를 삼나니 닦아 모아 증장하는 연고며,
바라밀다로 의지를 삼나니 구족하게 수행하는 연고며,
일체 법으로 의지를 삼나니 구경에 벗어나는 연고며,
큰 서원으로 의지를 삼나니 보리를 증장케 하는 연고며,
모든 행으로 의지를 삼나니 다 성취하는 연고며,
일체 보살들로 의지를 삼나니 지혜가 같은 연고며,
모든 부처님께 공양함으로 의지를 삼나니 믿는 마음이 청정한 연고며,
일체 여래로 의지를 삼나니 자비하신 아버지의 가르침과 같이 끊어지지 않는 연고니라.
이것이 열 가지이니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러한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큰 지혜의 의지할 곳이 되느니라.”라고 하였다.
과연 화엄경의 뜻에 부합하는 화엄경 식의 질문과 화엄경 식의 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