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6.13 03:03
[국립중앙의료원 음압병실 간호사 40명 '메르스와 사투']
창문 없는 병실서 환자 돌봐… 외부 나갈 땐 격리실서 방역
병실 청소·소독까지 전담, 2주 만에 3㎏ 빠질 정도
식구들 감염 막으려고 귀가 포기… 기숙사 생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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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중앙의료원 간호사들은 3㎏이 넘는 전신 방호복을 입고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를 돌보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 제공
음압 병실은 병실 안 기압이 외부보다 낮아서 문밖으로 공기가 나가는 게 차단된다. 창문도 없다. 이 병실에서 환자들을 돌본 김씨는 두 시간 만에 나왔다. 하지만 외부로 나가기 전에 격리실에서 방호복을 벗고 방역을 거쳐야 한다. 두세 겹씩 덧대 입은 보호 장갑과 보호 신발은 땀에 절어 잘 벗겨지지 않았다. 땀 범벅이 된 상의를 쥐어짜자 탈수 직전 빨래처럼 물기가 쏟아졌다.
이날 바깥에서 바라본 의료원은 마치 폐쇄된 것처럼 적막했다. '메르스 중앙 거점 의료 기관'으로 지정된 의료원은 지난 10일까지 일반 환자를 모두 다른 병원으로 보냈다. 대신 메르스 환자 11명의 격리 병상이 마련된 신관 6~8층은 재난 영화 속 야전병원처럼 분주했다. 흰 간호사복 대신 고글 안으로 눈만 빠끔히 보이는 전신 방호복을 입은 간호사들이 메르스 방어 최전선에서 24시간 사투(死鬪)를 벌이고 있었다.
현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메르스 방역에 투입된 간호사는 40명이다. 모두 자원한 사람이다. 15명은 인공호흡기를 쓴 중증 환자를 돌보고, 25명은 상대적으로 증상이 약한 환자들을 맡고 있다. 전신 방호복 무게는 3㎏이 넘는다. 8시간 3교대 근무가 원칙이지만 근무마다 2~3회, 최장 4시간 방호복을 입고 환자를 돌보고 있다. 가냘픈 간호사가 방호복으로 중무장하고 욕창이 생길까 환자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주는 모습은 차라리 안쓰러웠다. 메르스 격리 병동 수간호사 정은숙(52)씨는 "일반인 출입이 엄격히 금지돼 있기 때문에 청소·소독 등 격리 병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간호사 손을 거치고 있다"며 "탈진하는 간호사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정씨도 2주 만에 3㎏이 빠졌다.
실제 메르스와 싸우는 일은 체력전(戰)이 됐다. 지난달 20일 '1호 확진 환자'가 의료원에 이송돼 비상근무에 들어간 지 20일이 넘었다. 평균 경력이 5년 넘은 숙련 간호사가 대부분이지만 전례 없는 강력한 전염병에 긴장감도 극에 달했다. 만에 하나 있을 감염도 각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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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 주차장에 설치된 음압 격리 텐트 - 국가 지정 격리 병상이 있는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은 주차장에 음압 격리 텐트를 설치했다. 국립중앙의료원 관계자는 12일 “음압 격리 병실이 부족할 정도로 환자가 늘면 환자를 수용하려고 예비적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김지호 기자
하지만 전우애는 전장(戰場)에서 피어나는 것이다. 이날 간호사들은 서로 방호복 벗는 걸 도와주며 "파이팅"을 외쳤다. 수간호사 정씨는 "서로 몸이 좋지 않은 동료를 대신해 추가 근무를 자청하거나 휴일 출근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며 "격무로 다들 체중이 수 ㎏씩 빠져 원치 않게 다이어트를 하게 됐다고 격려하고 있다"고 했다.
정작 바깥세상 일부에선 이들을 '메르스 의료진'이라고 낙인 찍고 있다. 간호사 김현아(28)씨는 "메르스 치료에 투입된 이후 3주가 넘는 동안 바깥소식을 잘 몰랐는데, 최근 인터넷에서 '간호사가 메르스를 옮기는 매개체'라는 댓글을 보고 맥이 빠졌다"고 했다.
그래도 메르스 사태 이후 이들은 쪽잠을 마다하지 않고 있었다. 그 결과 지난 5일 국내 메르스 확진 환자 가운데 첫 완치자(여·63)가 이 의료원에서 나왔다. 16일간 격리 치료를 받은 이 여성과 그의 딸은 밤낮없이 병상을 지킨 간호사들과 의료진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퇴원했다. 수간호사 정씨는 "마지막 메르스 환자가 건강하게 퇴원할 때까지 모든 간호사가 메르스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