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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남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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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작품 1 | 청빈해서 아름다웠던 습작시대 |
대표 작품 2 | |
수상연도 | 2003년 |
수상횟수 | 제22회 |
출생지 | 전주 |
[대표 작품]
청빈해서 아름다웠던 습작시대 / 권남희
언제부터였을까.
나의 글쓰기가 세상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게….
쫓기는 마음이 들수록 방바닥에 배 깔고 엎드려 책을 읽고 낙서를 하던 내 젊은 날이 그리워진다. '영혼의 배고픔'으로 내면을 닦달하는 작가적 기질이나 나를 내어주려는 성실함보다 '글 좋더라'는 따뜻한 평에 위안을 얻으려,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의식하며 단어를 검색하고 문장을 수도 없이 손질해대는 나….
그래도 불안함을 버리지 못해 빈약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에 덧붙일 책을 찾는 중년의 '나'는 누구일까. 나는 이제 영감보다는 15분에 몇 자 이상을 써야 하고 장편 한 작품에 단어가 몇만 자 이상 들어가야 한다는 기계논리로 써가는 영국의 작가 앤터니 트롤로프식으로 길들여지고 있다.
겨울날 방바닥에 엎드린 채 온돌의 뜨끈함만으로 행복을 느끼며 뒹굴었던 습작기는 손맛과 영감이 글쓰기의 전부였다. 컴퓨터 글쓰기도 손으로 벌이는 작업이지만 손맛이나 작은 행복을 느끼지는 못한다. 육필원고를 내야 했던 때 3000자 내외의 글을 완성하기 위해서 벌이는 작업이란 가히 수도사의 정진이라고 해야 했다. 아무리 마음에 드는 초고라도 10번은 고쳐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일일이 손으로 새 원고지에 고쳐가면서 옮겨 적었던 작가 데뷔시절도 있었다. 그러한 번거로움을 한꺼번에 없애준 컴퓨터는 아무리 많은 분량의 원고도 저장만 해 두면 수시로 열어 고쳐야 하는 부분만 지우고 짜깁기하도록 간편해졌다.
마흔 한 살의 짧은 생 동안 예술가적 정신으로 살며 고통스러워했던 카프카가 디지털 시대에 살았다면 그의 글쓰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카프카도 저장키를 누르며 문장을 짜깁기했을까. 살아있는 동안에도 작품을 별로 발표하지 않았지만 죽을 무렵 친구에게 미처 발표하지 않은 작품은 모두 없애달라고 부탁했던 카프카의 마음은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다. 일기를 써놓고 누가 볼까 두려워 태워 버리곤 했던 내 소녀적 결벽증과 카프카의 심리적 압박감은 무엇이 달랐을까.
카프카는 자신의 일기에서 표현했듯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쓴다는 것은 기도의 한 형식'이라고 했다. 삶과 예술이 서로 분리되지 않아 자신을 소모시키다시피 한 작가생활이 그의 삶을 일찍 끝나게 했는지 모른다.
때로 나는 글쓰기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빠진다. 쓰지 않거나 쓰거나 나는 늘 당혹스럽다. 작가라는 이름 아래 '나'를 속이며 글을 쓰고 있는 내게서 마치 울면서 밀린 일기 숙제를 해댔던 어린 날의 나를 느끼기 때문이다. 별다를 게 없는 비슷한 책 몇 권을 낸 내 모습은 마치 사무엘 베케트가 쓴 '메르시아와 카미에'의 우유부단한 중년의 두 주인공 남자와 다를 게 없다. 이들 작품 속에 나오는 두 남자 메르시에와 카미에는 어느 날 모든 것을 뒤로하고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둘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안전하고 유익한 여행을 위해 더없이 세밀하게 의논한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침착하게 자신들이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인지, 어떤 좋지 않은 일을 만날 것인지 끝없이 저울질하면서 토론만 거듭한다. 결국 둘은 '모르는 것 속으로 가볍게 나서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며 떠나지 않는다. 끝내 그 어느 곳으로도 떠나지 못하는 두 남자의 용기 없는 모습은, 입버릇처럼 무언가 독창적인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하면서 그 어느 것도 자신 있게 쓰지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도는 내 분신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는 두 남자는 언제나 똑같은 글만 쓰고 있을 뿐 아무것도 써대지 못하는 '나'이다.
아… 열꽃처럼 전신을 뒤덮었던 습작시절의 그 맹목이여. 스무 살 무렵은 카프카처럼 수줍음으로 자신을 감추고 도사린 채 자신을 냉혹하게 다룬 아날로그식 습작기였다.
낙서노트에 숱하게 쏟아놓은 욕망과 부조리에 절망했던 감정의 덩어리들, 헤세를 흉내 내고 그의 글을 베껴두었던 내 습작기는 거칠지만 꽤나 영혼의 청빈함을 향해 내닫고 있었다.
젊음 이외에는 모든 결핍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그 무렵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날마다 편지를 써대고 머릿속을 오가는 생각들을 끄적이는 것이었다.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어쩐지 불행한 젊음이라는 변덕에 사로잡혀 지낸 채 우울해한 날들, 시도 때도 없이 찾아드는 비감함을 움켜쥐고 뒹굴었던 한 칸짜리 하숙방에서 일기를 쓰고 넋두리를 붓고 대상도 존재하지 않는 낭만적 연애감까지 얼마나 쏟았던가.
누구에게 보일 것도 없는 가장 자연스러운 정신의 발로가 나의 습작시대였다.
나는 추운 겨울이 아니어도 걸핏하면 글 쓴다는 핑계로 방바닥에 엎드렸다. 책을 읽을 때도 편지를 쓸 때도 낙서를 해도 가장 낮은 자세로 엎어져 나를 다스렸다.
노트와 펜 한 자루가 전부였던 습작기는 이제 오지 않는다. 미처 엎드릴 기회를 주지 않는 나의 저작도구는 호화판이다. 16피트로 시작한 컴퓨터 사용은 이제 몇십 기가가 넘는 초고속 인터넷망으로 진화하였고 컬러 프린터에 스캐너, 디지털 카메라 등 오만하기 짝이 없지만 내면은 오히려 더 쓸쓸하다. 누군가 나보다 훨씬 진화된 기계로 글을 쓰고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지 않는 젊음처럼 '나의 청빈했던 습작시대'도 나를 떠나 버렸을 것이다.
가난했기에 아름다웠던 내 습작기여….
[작가 프로필]
․ 1977년 수도여자사범대학(세종대학교) 과학교육과 졸업
․ 1984년 한국여성문학인회 주최 전국여성백일장 산문부 1등 수상
․ 1987년 월간문학 수필 등단
․ 1997년 대표 에세이 회장 역임
․ 1999년 독서논술 사이트 119study.com 공동창업
․ 1999~2002년 송파수필작가회 초대회장 역임
․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문단사 편찬위원, 송파문인협회 부회장
․ 월간 한국수필 주간
․ 수필집
‘미시족’, ‘그대 삶의 붉은 포도밭’, ‘시간의 방 혼자남다’, ‘어머니의 남자’외 다수.
공동저서 ‘고백’
․ 문학상
제 24회 한국수필문학상, 새천년문학상 수상
[작품 심사평]
권남희의 <시간의 방, 혼자 남다>
지난 20여 년 동안 우리 수필 문단에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해온 권남희 수필가가 이번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한국수필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것을 충심으로 축하한다.
사람은 태어나 성장하면서, 원숙기를 거쳐 휴식기로 접어들 때까지 수많은 과정을 겪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작가의 생애도 여러 형태의 단계를 거치게 된다. 문학 청소년기에 열병을 앓으며 습작을 하다가 등단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게 되지만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 그 다음에는 바로 자기와의 싸움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고독과 무명의 시간 속에서 각고의 노력으로 작품집을 묶어내지만 그것이 곧 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좋은 작가는 헤아릴 수 없는 자기 담금질을 통해서만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권남희 수필가의 세 번째 수필집 <시간의 방, 혼자 남다>를 읽어보면 솔직담백하고 직관형이었던 그의 글쓰기가 이젠 다각적인 언어요소와 이미지 확대기법을 통해 매우 자유롭고 풍요로워졌음을 직감하게 된다.
첫 번째 작품집 <미시족 >은 문장에 대한 집착과 강박관념, 그리고 정제된 소재 선택 대신 폭넓은 시각과 사고를 바탕으로 거의 달변으로 일관되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작품집에서는 달관과 통찰과 인격화된 사고로 빚어낸 어휘들이 독자의 시선을 강하게 흡인시켜주고 있음이 돋보였다. 이것은 여러 곳의 문화센터에서 수필 창작론을 강의하고 있는 그가 후진들과 함께 얼마나 열정적으로 작품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있는가를 짐작케 하는 것이라 하겠다.
권남희 수필가의 문학 세계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간성 회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하겠다. 즉 인간의 심성을 정화 고양시켜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작가의 고뇌와 소망이 작품 구석구석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인간의 가식 없는 삶의 태도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가정, 사랑, 자녀문제, 사회참여, 작가적 고민, 미래적 삶까지 예지의 눈으로 보고 있다. 일상을 놓치지 않고 관찰하며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내며 건강한 사회인으로 공존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한 맥락은 그가 조금치도 자신의 허물을 감추려하지 않고 과감하게 드러내는 데서 찾아 볼 수 있다.
"나는 왜 수필을 쓸 수밖에 없는가"의 머리말에서 자신의 콤플렉스가 어떻게 작가적 정서의 뿌리가 되었는가를 가식 없이 털어놓고 있다.
인간은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예술가가 될 수 없다. 자기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해 갖기를 열망하고 상처받고 예민하게 반응하고 집착해야만 문학도 탄생하는 것이 아닐까….
권남희 수필은 다양한 소재를 형상화하는 역량에서 그 작품성의 깊이를 알 수 있다. 가족해체 현상을 아파하며 쓴 [그 아이의 낡은 신발에 꽃을 심는 마음]이나, 아기를 낳지 않는 사회를 염려하는 마음으로 바라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 또한 전혀 모르는 타인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받아들이며 쓴 편지 [삼십대 초반이었을 때]와 사회의 고정관념이 한 인간의 진로에 어떤 작용을 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 [내 안의 주홍글씨] 그리고 사회참여의 한계를 느끼는 작가적 고뇌의 글인 [국가 전복죄나 저질러 볼까] 등은 만인이 공유하는 시대의 아픔을 자신의 몫으로 수용하는 작가적 안목과 도량이 돋보이는 글들이다. 특히 일년에 수천 권의 책을 읽고 독서빌딩까지 갖고 있는 일본의 다치바나를 경쟁자로 생각하며 훗날 책 마을을 세우고 싶어 한 [그래도 책을 사랑해]는 권남희 수필가만이 갖고 있는 야심찬 꿈이며 도전정신이다. 그의 글에서는 결코 편안한 삶으로 물러서지 않으려는 강인한 작가정신을 느끼게 한다. 이 작가의 메시지는 누비 이불처럼 빈틈없이 엮어져 독자의 가슴을 따뜻하게 덮어주고 있다 하겠다.
일단 주제를 설정하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작법을 구사하는 그에게서 많은 역량을 발견하게 된다. 심리학자 칼 융은 한 젊은 여성이 쓴 [나방과 태양]이라는 시에서 괴테의 파우스트, 기독교의 성경, 니체의 실존철학 등 박학다식한 확대해법을 통해 여성의 무의식을 분석했는데 권남희 수필가의 수필이야말로 바로 이런 것들을 연상케 하는 좋은 이미지의 글이다. 왜냐하면 그의 수필 속에는 많은 독서량을 유추케 하는 근거들이 경이와 깨우침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체득하게 되는 경험적 소재를 사상이나 자아 발견의 동인動因으로 접목하고 또 인간성 회복을 통해 사회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그의 작가적 자세와 사명감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