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변진심이 부른, 계면 <이수대엽> 관련 이야기를 하였다.
이 곡은 <우조>를 끝내고 <계면조> 악곡으로 이어가는 첫 곡이란 점, 가곡에서 말하는 <계면조-界面調>란 “그 소리를 듣고, 슬프거나 비애를 느끼게 되어 얼굴에 경계(境界)가 생긴다”라는 뜻에서 생겨난 이름이란 점, 이 곡에는 다섯 바탕이 전해오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그는 임을 기다리는 여인의 마음, <언약이 늦어가니 -->를 불러 시(詩)의 문학성과 성(聲)의 음악성을 조화롭게 구사하였다는 점, 그의 노래에서는 농음(弄音)을 비롯한 추성(推聲)이나 퇴성(退聲)의 표현이 자연스러웠고, 음과 음, 장단과 장단 사이에 스며있는 여백(餘白)의 미(美)를 잘 살려주었다는 등등의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그가 시조창과 만나, 해당 분야에서 활동해 온 이야기, 스승 월하 명인을 만나게 된 당시의 관련 이야기들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알려진 바와 같이, 변진심은 처음에 시조창을 즐겨 부르다가 월하 명인에게 여창 가곡을 배우게 되면서 가곡의 새로운 음악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처음으로 만났던 시조창에 대한 애정이나 친근감은 쉽게 달라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잠깐 그가 시조와 만나게 된 배경을 들어보기로 한다.
“저는 위로 오빠 한 분, 그리고는 아래로 내리 딸 5자매 중 셋째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저희에게 음악적 특기를 하나씩 익히도록 권고하셨는데, 위로 두 언니는 가야금, 저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해 시조창(時調唱)을 배우기로 했지요. 고교 1학년(1969) 때, 우연한 기회에 완제(完制)시조창에 입문하게 되었어요.”
시조창을 배운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공개적인 자리에서 평시조 “청산리 벽계수야”를 부르게 되었는데, 그녀의 시조창을 들은 주위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소녀, 김월하가 왔다”라고 칭찬이 자자했다는 것이다. 그 소문을 듣게 된 당시 《대한시조협회》 홍진표 회장이 그를 월하 선생께 소개, 가곡을 배우도록 권유해 주었다고 한다.
▲ 2024년 "별들의 축제" 서산 공연 사진(가운데가 변진심 가객)
변진심이 전해주는 당시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기로 한다.
“당시 저의 두 여동생(성금, 종혁)이 고향을 떠나, 서울 《국립국악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였어요, 저는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전주에서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서울로 왔지요. 그때가 1970년대 초로 기억되는데, 그때부터 월하 선생님에게 가곡을 배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시 선생은 가곡의 예능보유자가 막 되셨고, 그 밑에 현 예능보유자, 김영기 선생이나, 이승윤 선생 등이 전수생으로 공부하고 있었어요.
그때, 저는 시조창만 부르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불러 주시는 여창가곡의 아름다운 음악성에 매료되어 열심히 배우고 있었지요. 그 뒤, 대학을 졸업하고 음악교사로 지내면서도 선생님께 노래 공부를 계속해서 86년도에 여창가곡 이수자가 되었습니다. 모두가 다 선생님 덕분이고, 주위 분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어 감사할 뿐입니다.”
매사 저절로 되는 일이 있던가!
그의 이름, <진심>은 바로 참된 마음의 소유자라는 뜻인데, 동생을 위하고 아끼는 마음에서 자신이 다니던 학교를 중단하고 서울로 와서 동생들을 돌봐주었다는 말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마음이 착해서 <진심>이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 준 것일까? 아니면, 이름이 예뻐서 착해진 것일까?
여하튼, 월하 여사를 만나고 이수자가 된 뒤에도 본인의 쉼 없는 정진은 이어졌고, 그러는 가운데 가곡과 시조계의 훌륭한 정가인(正歌人)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노력한 결과, 그는 현재 서울지방의 무형유산, <경제(京制) 시조>의 예능보유자가 되어 활동하는 것이다.
그에게 물었다.
- 당시 기억되는 월하 선생의 매력을 꼽는다면?
“네, 무엇보다도 꿋꿋하고 꽉 찬 성음(聲音)이죠, 긴 호흡을 비롯하여 성악에서 가져야 할 모든 발성을 자유자재로 아우르고 계셨지요. 또한 전체적인 음악의 해석과 표현, 강ㆍ약의 조율 등이지요. 또한 시조창과 여창가곡의 음악적 특징 등을 명확하게 구분해 주셨지요. 특히 선생님이 무대에 오르시면 무대가 꽉 차는 듯한 의연한 자세 등은 제가 항상 무대에 설 때마다 염두에 두고 실행에 옮겨 보려고 하는 선생님의 매력이지요.”
▲ 월하 선생님과 변진심 가객
변진심 가객은 국립국악원 대회 <금상>을 비롯해서 KBS 국악대경연 정가부문 <금상>, 2005년 KBS <국악 대상>, 수차에 걸친 <개인 발표회>와 음반제작, <국악 FM방송> ‘국악이 좋아요’에 고정 출연하며 시조창을 지도해 온 경력, 등등이 그의 능력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또한 후진들을 위한 교육활동도 활발하게 진행하였던바 <국악예술고교>, <남원국악고교>, <전남대>, <한양대>, <추계예대> 등의 외래강사로 가곡과 시조창 등을 지도해 왔다.
이러한 교육활동과 함께 2016년, 서울시 무형유산 <경제시조>의 예능보유자가 된 뒤에는 <경제> 시조를 살리기 위해서 정가를 전공하는 젊은이들이나, 어린 학생들의 양성에 온 힘을 쏟고 있는데, 특별히 기억해 두어야 할 고마운 점은 정가 전공자들의 양성이 절대적이라는 판단 아래 스승, 월하 명인이 실천해 온 장학제도를 그 자신도 실행에 옮기고 있다는 소식이다.
전문가들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현재 한국의 시조계 현황은 석암(石庵) 정경태(鄭坰兌)가 창시한 <석암제 시조>가 휩쓸 정도로 전국적이다. 그러나 서울 경기지방에서 불러 온 <경제(京制)시조>의 세(勢)도 점차 확산의 분위기를 타고 있다는 점이 희망적이다.
오늘도 경제시조의 부흥을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는 변진심 가객은 그가 만나게 되는 국악계 인사들이나 관련 전문가, 그리고 애호가들을 향해 이렇게 외치고 있다.
“책임을 무겁게 느끼고 있습니다. 더더욱 겸허한 자세로 개인의 영광보다는 여러 선생님이 지도해 주신 <여창가곡>과 <경제(京制)시조>의 보존과, 확산, 그리고 후진 양성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디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