뗏목과
결별하기
늘 그랬던 것 같다. 가슴을 저릿하게 만드는 사람들과
문장을 만났을 때의 감동이 기억 속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는 순간. 그리고 그 순간들을 무한
반복(일종의 소비)하며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의 부끄러움! 하지만 이내 또 다른 무언가에
열광하고 그것을 욕망하는 나를 본다. 마셔도 마셔도 채울 수 없는
갈증처럼 끝없이 채우려드는 이 '결핍'의 정체는 과연
뭘까?
“예전에는 사람들
개개인이 자기나 자기 가족의 건강 문제는 스스로 어느 정도까지 책임질 줄 알았죠. 일리히는 삶의
기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습니까? 옛날에는 출산이라든지
사람이 늙어 간다는 것, 태어나고 죽는 다는
것은 질병이 아니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현대산업의료체제에서는 다른 질병과 같은 식으로 처리된다는 것이죠. ……
그리고 모든 사람이
정기적으로 신체검사를 받아야 하는 의료보장제도에서는 사람들이 의료라는 산업기술체제에 수동적으로 의존하는 습관이 굳어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삶의 기술에 대한 관리의 힘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김종철, 간디의
물레, 52쪽)
우리는 누군가의 '서비스'에 의존하는 삶에 이미 익숙해져
버렸다. 태어남(병원과
산후조리원)과 죽음(상조회사)을 비롯해 수많은 삶의 부분들을 내
손과 발이 아닌 것에 의존하고 살고 있다는 거다. 그러한 의존은 엄청난 결핍과
갈증을 동반한다. 그 결핍과 갈증을 채우고 감추기
위해 삶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리라. 헨드메이드 라이프의 빌 코퍼스웨이트가 강조하듯이 “일상 생활에서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이, 개인적인 삶과 공동체적인
삶이, 사적인 삶과 정치적인 삶이 서로
불일치”할수록 그
간극이 벌어질수록 우리는 곤란해진다.
“악덕에 대하여
공적으로는 반대 시위를 하면서도 사적으로는 그런 악덕의 원천이 되는 생활방식에 의존하며 그것을 지지하는 삶을 산다면 그것은 분명 모순이며 위험한
일이다.……
착취적인 산업에
대하여 경제적으로 독립적이며, 덜 소비하며 사는
법을 배우고, 오래 쓸 수 있는
것들을 만들며, 무의미한 사치를
포기하며, 영업사원이나 광고
전문가들이 쓰는 언어를 잘 이해하고 거부하며, 솔깃할 만한 패키지
상품의 속성을 꿰뚫어보며, 패션이나 성적
매력이나 특권을 누리기 위해 돈 쓰기를 거부해야 마땅하다.” (윌리엄
코퍼스웨이트, 핸드메이드
라이프, 28쪽)
내 결핍과 갈증의 원인은 결국 ‘대타자’에 의존하면서 그 결여를 메울 수
있는 대상을 끊임없이 찾기만 했던 것이었다. 그런 삶은 자기 삶과 세상에 대해
구경꾼으로 사는 것이 아닌가? 아주 작고 일상적인 삶의
부분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내 몸에 대한 공부와 이해를
비롯해 내 삶의 영역에서 스스로의 힘(능력)을 키우는 것
말이다. 스스로 먹을 음식을
만들고, 물건을
고치며(아직 만드는
것까지는^^:;), 세상에 관심을 갖는
것! 나도 모르는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해 저질렀던 수많은 폭력들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는 세상이다.
“어떠한 경우든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는 이상적인 거리가 있는 법이다. 이는 두 별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과도 같다. 둘 사이의 거리가
적당할 때에는 계속해서 둘레를 돌지만 서로 너무 가까워지다 보면 충돌하고 너무 많이 벌어지면 각자 떨어져 나가기 마련이다. 이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니며, 단지 사물의 이치일
뿐이다. 관계 속에서 서로
적당한 거리를 알기 위해서는 상대의 반응에 민감해야 하며 서로 이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핸드메이드
라이프, 44쪽)
나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져 본다. 내 삶을 재배치하면서 필요한
균형을 찾아내는 것! 석가모니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내 가르침은 저편 기슭으로
건너갈 수 있도록 해주는 뗏목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 뗏목을 저편 기슭으로 착각한다는 점이다.” 여태껏 수많은 뗏목을 저편
기슭으로 착각하면서 살아왔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갈증은
또다시 일어났고, 삶은 변하지
않았다. 이제는 그 뗏목들과 결별할
순간이다. 어떤 뗏목을 선택하든 그 뗏목을
움직여 저편 기슭으로 가려면 결국 내가 움직여야 한다. 내 손과 발을
놀려서, 내 몸과 마음의 근육을 움직여야만
하는 것이다. 올 한해 내 몸과 마음의 근육을
만들기 위해 나는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 어떤 모험을 하게 될까? 두렵고도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