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낙안읍성으로 1.. (승주IC를 나오며)
금전산 금강암에서 들려오는 저녁 종소리인 금강모종(金剛暮鍾)... 백이산에서 불어오는 맑고 시원한 바람인 백이청풍(伯夷淸風)... 오봉산 위에 떠오르는 밝고 둥근 달인 오봉명월(五峯明月)... 제석산 허리에 피어오르는 아침 안개인 보람조하(寶嵐朝霞)... 화살대로 사용하였으며 왕께 진상한 옥산에서 나는 곧은 신우대인 옥산총죽(玉山叢竹)... 멀리 선수 앞바다에 만선의 깃발을 날리며 돌아오는 돛단배인 원포귀법(遠逋歸法)... 용소의 맑은 물과 깨끗한 돌맹이인 용추수석(龍湫水石)... 내동의 꽃과 버들(청계정)인 안동화류(雁洞花柳)...
위 시(詩)는 낙안읍성의 8경(景)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금수강산(錦繡江山)으로 불리며 지역마다 또 다시 아름다운 곳을 선정하여 ○○팔경 등으로 불렀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계획도시인 낙안(樂安)읍성(061-749-8831)... ‘즐겁고 안락한 고을’이라는 뜻으로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에 있다. 북쪽의 금전(金錢)산을 주산(主山)으로 동쪽의 개운(開雲)산이 좌청룡, 서쪽의 금오(金鰲)산이 우백호란다. 이는 주변 산이 산발한 머리카락처럼 에워싸여 옥녀산발(玉女散髮) 형국의 명당이란다. 이 낙안읍성을 한화투어를 따라 3월 28일 여행을 떠났다.
대전을 떠난 여행길... 호남고속도로를 따라 가다가 장성분기점에서 담양과 곡성을 거쳐 승주IC로 빠져 나간다. 이사천을 따라 857번으로 가는 길... 신라 헌강왕 때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한 선암사(仙巖寺)가 있다. ‘신선이 내린 바위’라는 뜻으로 태고종의 본산이다.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서편에는 송광사(松廣寺)와 쌍벽을 이루어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의 대표적 가람이다. 갓 부화한 물고기의 여린 몸뚱이처럼 야들야들한 신록(新綠)으로 조계산이 물들기 시작하면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사찰 곳곳에는 벚꽃 등이 만산홍엽을 이룬다.
이곳에 대웅전과 삼층 석탑 등 문화재가 많지만 대표적인 것이 승선교(昇仙橋)다. 기다란 화강암으로 다듬은 장대석(長臺石)을 연결하여 반원형의 홍예(虹蜺)를 쌓은 昇仙橋... 결구(結構)솜씨가 정교하여 虹霓밑에서 올려다보면 부드럽게 조각된 둥근 천장과 같은 느낌을 준다. 虹霓란 무지개 같이 휘어 반원형으로 쌓은 구조물로 불국사 청운교와 백운교, 창덕궁 금천교, 공주 무령왕릉, 경주 석빙고도 있다. 이곳에 호수가 상사호(上沙湖)다... 연간 5,000만kw의 발전능력을 갖춘 상사조절지댐이다. 주암 본댐에서 도수터널을 통해 보내주는 물로 순천, 여수, 광양시 등에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순천 낙안읍성으로 2.. (금둔사를 나오며)
상사호를 더 지나면 금전산(金錢山) 서쪽 기슭에 태고종(太古宗) 소속인 금둔사(金芚寺)가 있다.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다만 삼층석탑과 석불비상(石佛碑像)으로 보아 통일신라 때 창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폐사(閉寺)되었다가 1984년 지허선사가 불사(佛舍)를 시작하였다. 경내에 홍매화와 청매화 여섯 그루가 자라고 있다. 이들 매화나무는 ‘납월매(臘月梅)’라고 불리는데 臘月은 음력 섣달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눈 속에 매화(雪中梅)로 그만큼 추운 겨울기운을 이겨내고 일찍 피어나는 매화라는 뜻이다.
금둔사의 주산(主山)은 金錢山(해발 668m)이다. 이 산의 옛 이름은 쇠산이었으나 100여 년 전 금전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한자의 뜻을 그대로 번역하면 금으로 된 돈 산이다. 그러나 실은 불가(佛家)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부처의 뛰어난 제자들인 오백비구(혹은 오백나한)중 금전비구에서 산 이름을 따왔다’고 전한다. 이곳의 고개는 ‘조정래 길’이라 한다. 소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는 선암사에서 출생하였으며, 보성군 벌교읍에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태백산맥 문학관’이 건립되었다. 여행길은 낙안읍성에 도착한다.
고려 후기에 왜구가 자주 침입하자 조선 태조 때 토성으로 4만 여 평을 축조한 낙안읍성... 그 후 낙안읍성은 세종 때 석성(石城)으로 개축하고 훗날 인조 때 임경업 장군이 이곳 군수로 재임할 때 중수(重修)하였다. 조선 중기의 명장(名將)인 임경업... 야사(野史)에서 인조반정을 성공시킨 김자점과의 인연(因緣)이 있다. 임장군의 부친인 임황은 원주감영의 옥사에 근무하였다. 비록 말단직이었으나 성품은 의협심이 강하고 인정이 두터웠다. 어느 날 누명에 의해 살인협의로 붙잡혀온 청년이 있었다. 그는 계책(計策)을 일러주어 도망가게 하였다.
그 후 임황은 퇴직하고 낙향하여 농업에 전념하였다. 어느 날 찾아온 스님이 시주를 청하면서 자신이 10년 전 옥사에 붙잡혀 온 청년이었다고 소개하였다. 스님은 은덕의 보답으로 훌륭한 자손을 볼 수 있는 명당자리를 잡아주면서 하시는 말씀... 만일 상(喪)을 당하면 관을 모신 후 그 근처에 광을 지어 거적을 씌우고 무슨 소리가 나도 절대 들여다보거나 자리를 떠나지 말라는 부탁을 하였다. 그 뒤 부친상을 당하고 임황은 스님이 시키는 대로 하였다. 그런데 정말 적막하기만 하던 광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임황은 스님의 경고를 잊고 광속을 들여다보았더니 광속에서 두 사나이가 칼을 휘두르며 힘을 겨루고 있었다.
순천 낙안읍성으로 3.. (낙안읍성에 도착하며)
임황과 눈을 마주친 한 사나이... 눈이 마주치는 순간 상대의 칼에 맞아 죽었단다. 임황은 급히 거적을 덮었지만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였단다. 그런데 이 명당자리는 김군수가 선점하였단다. 훗날 두 집안의 자손이 된 임경업과 김자점... 김자점의 역모로 죽게 된 임경업... 두 사람은 전생의 인연이란다. 임황의 계책하니 최근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기 위하여 정부청사의 보안을 뚫고 들어간 응시생... 행정직에 응시하지 말고 그에 실력에 맞는 수준 높은 기술직으로 응시하면 좋았을 것을... 국민교육헌장에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하라 하였으니 말이다.
동문인 낙풍루를 지나 성 안에 들어가니 조선시대 농업이나 운송수단으로 이용하였던 우마차가 있다. 칭기즈 칸은 전쟁에도 이용하였단다. 또한 자유당 때는 ‘3선 개헌안’의 ‘사사오입’ 통과를 저지하기위해 수백 대의 우마차를 동원 시위를 벌인 적도 있었다. 이곳에 많은 초가(草家)가 있는데 100여 세대가 현재 거주하고 있단다. 경내에 기념품을 파는 구멍가게도 있다. 임경업장군 비각(碑閣)을 지나니 객사(客舍)...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시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를 올렸던 곳이다. 동헌보다 격이 높아 교지(敎旨)를 이곳에서 전달하였단다. 중앙에서 내려오는 관리들의 숙소로도 사용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객사는 강릉의 객사문(客舍門), 전주객사, 고령의 가야관(伽倻館), 통영객사, 여수 객사 등이 남아있단다. 더 지나면 고을의 수령(守令) 등이 정무를 집행하던 동헌(東軒)이 있다. 東軒 안에 있는 형틀... 고을 수령에게 심문을 받고 형틀에 묶여 곤장을 맞고 있다. 당시 수령은 사법권(司法權)도 있어 무소부위(無所不爲)다. ‘못 할 일이 없다.’는 無所不爲... 하나님만 전지전능(全知全能)하고 無所不爲하는 줄 알았더니 일부 권력층이 감청(監聽)하는 등 권력을 휘둘러 국민들에게 지탄(指彈)을 받고 있음은 물론 재판을 받았다.
한편 실컷 두들겨 패줘야 점점 살아나는 것은? 팽이란다. 난센스 퀴즈 몇 개 더... 북인데 살아 있는 북은? 거북... 날마다 이상한 것을 보는 사람은? 치과의사... 다섯 그루의 나무를 두 글자로 부르면? 오목... 물고기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불고기... 고릴라의 콧구멍이 큰 이유는? 손가락이 굵어서... 동헌 옆의 내아(內衙)... 조선 시대에 지방 관아에 있던 안채로 밖에서 들여다보지 못하게 발이나 자리를 쳐서 가렸던 염석문(簾席門)이 생각난다. 이곳의 내아는 (ㄱ)자 형인데 통제영 내아는 (ㄷ)자형. 울산내아는 (一)자형이다.
순천 낙안읍성으로 4.. (낙안읍성에서)
동헌에서 나와 문 앞에 있는 낙민루(樂民樓)로... ‘불안에 시달리는 백성을 즐겁고 안락하게 한다.’는 뜻이란다. 김삿갓(金笠)으로 널리 알려진 조선후기의 시인인 김병연(金炳淵)이 함경도에서 지은 樂民樓란 시(詩)가 생각난다. ‘宣化堂上宣火黨(선화당 위에서는 화적 같은 정치를 펴고)... 樂民樓下落民淚(낙민루 아래에선 백성들 눈물 떨구네)... 咸鏡道民咸驚逃(함경도 백성들이 다 놀라 달아나니)... 趙岐泳家兆豈永(조기영의 집안이 어찌 오래 가랴.)... 宣化堂은 각도의 관찰사가 사무를 보던 정당(正堂)으로 임금의 덕화(德化)를 널리 펼치라는 뜻이지만 宣火黨은 화적떼를 뜻한다. 즉 음(音)은 같지만 뜻이 다른 내용이다.
그의 시는 문학 장르 자체를 희화화(戱畵化)하고 있으며, 장난, 농담(弄談), 유희(遊戱)를 목적으로 현실 풍자(風姿)가 함축되어 있다. 그는 어릴 때 조부 김익순(金益淳)이 홍경래란 당시 선천부사로 있다가 농민군에게 항복한 죄로 참형을 당하여 폐족(廢族)되었다. 그런 이유로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방랑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또 예전부터 감사골로 불리어졌던 대전의 선화동(宣化洞)... 먼 과거에 미리 예견이라도 하듯 도청이 들어섰다. 감사(監司)가 집무하던 곳을 선화당(宣化堂)이라 하므로 이때부터 이 지역을 宣化洞이라 하였단다.
낙민루에서 나와 마을 고삿 고삿을 살피기 시작하였다. 빨래가 널려있는 소박한 마당과 대문마다 붙어있는 주소가 단독 주택 시대로 돌아간 듯하다. 큰샘이라 불리는 읍성(邑城)의 우물을 지난다. 옛날 고을의 수령님이 마셨다고 하는데 맑은 물이 넘쳐흐른다. 낙안 읍성은 물길을 헤치고 나아가는 배의 형상을 한 행주(行舟)형이라 우물을 파는 것을 금하였단다. 오직 낮은 곳에서 솟는 물을 길러 쓰도록 했단다. 그것은 배 안에 고인 물을 퍼낸다는 의미란다. 이 물을 마시면 마음이 착해지고 미인(美人)이 된다는 전설도 있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1.4㎞에 달하는 석성... 돌의 틈새마다에는 작은 돌쐐기가 박혀 있는데 매우 정교하다. 남문인 쌍청루에서 잠시 휴식을... 성곽을 오르니 주변이 훤히 보인다. 많은 황금색의 초가지붕이 널려있어 60년대 시골 풍경 그대로다. 지붕 위에는 넝쿨박이며 빨간 고추가 얹혀 하나의 풍경화를 만들었던 어린 시절... 어머니의 젖무덤 같은 이 집들 사이로 뛰놀던 소꿉친구들이 생각난다. 이곳에서 나와 광장(廣場)에 있는 아름식당(061 751 7723)에서 꼬막정식으로 점심을 먹고 대전으로 돌아오면서 여행을 마친다. 고맙습니다.
임경업장군 비각
위는 동헌 아래는 큰 우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