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낮 12시10분 서울 능동 광진문화예술회관 나루아트센터. 오후 2시 뮤지컬 ‘진짜진짜 좋아해’ 공연을 앞두고 마지막 연습 중이던 한국컴패션(대표 서정인) 홍보대사 신애라(40)씨의 얼굴에 먹구름이 가득했다.
“아이티를 휩쓴 지진으로 아이들의 숙소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눈앞이 캄캄했어요.” 유난히 동그란 두 눈엔 깊은 슬픔이 그렁그렁했다. 아무리 잊으려고 애써도 수양딸의 얼굴이 떠올라 집중이 안 되고 한숨만 나온다고 했다.
카리브해의 섬나라 아이티에 있는 웨스터 린(10)이 생각나서다. 지난해 3월 본 것이 마지막이다. 유난히 수줍음을 많이 타는 아이였다. 좀처럼 웃지도 않고 엄마 치맛자락에 얼굴을 숨긴 채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사탕 하나를 내밀자 두 손을 모아 아주 공손하게 받는 모습이 너무나 애처로웠다. 사탕 하나에도 90도로 절하는 아이였다. 남편을 잃은 30대 중반의 아이 엄마는 소리 없는 눈물만 쏟았다.
“주님, 이 가련한 모녀의 눈물을 닦아주세요. 저는 연약하지만 당신은 하실 수 있잖아요. 이 모진 굶주림의 공포에서 이들을 구해 주세요.” 신씨는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만나는 사람들마다 아이티의 아이들을 도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지난 13일 오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가슴이 타지는 않았다. ‘물고기를 먹여주는 것보다는 물고기 잡는 법’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너무나 절박하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었는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한 명이라도 살려야 합니다. 물고기 잡는 법은 그 다음이죠. 우리나라도 6·25전쟁 때 이들과 똑같은 신세였어요. 그때 보이지 않는 수많은 온정이 없었으면 오늘의 행복이 가능했을까요?”
아이티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이어져온 정치 불안과 계절마다 반복되는 허리케인, 폭우 등 자연재난으로 갈기갈기 찢긴 세계 최빈국이다. 신씨는 요즘 인생길에서는 기도밖에 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하루빨리 도와주고 싶지만 연락이 안 되니 속만 까맣게 타고 있다. 정말로 기도밖에 할 수 없다. “다가가서 웃어주면 밝게 웃고 부끄러워했던 아이들의 맑고 예쁜 눈동자가 공포와 두려움, 배고픔에 잔뜩 겁먹었을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나요.”
신씨는 2005년 필리핀 여자아이를 입양 후원한 이후 지금까지 33명의 어린이를 후원하고 있다.
신씨 외에도 컴패션을 후원하는 ‘한국컴패션밴드’ 멤버인 예지원씨 등 아이티 어린이를 후원하고 있는 연예인들도 발을 동동 구르며 초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신씨 남편 차인표씨, 가수 주영훈 이윤미씨 부부, 엄지원 황보 심태윤 박시은 나오미씨 등 10여명이다.
한편 한국컴패션(compassion.or.kr)은 1952년 전쟁고아를 돌보기 위해 설립됐다. 아프리카, 중남미 등 26개국 극빈 가정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1대 1 후원자 결연을 통해 양육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서정인 대표는 “아이티 컴패션에는 6만5000여명의 어린이가 등록돼 있다”면서 “이 가운데 한국 후원자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어린이는 2124명”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