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에서 도경철학관을 36년 째 운영하고 있는 인산 손우용입니다.
한 해가 시작되는 설 명절이 되면 옛날에는 모두다 고향으로 내려가고 없어 도심 거리에는 사람과 자동차가 없는 한가한 거리 였습니다.
요즈음과는 무척이나 다른 모습인 것 같습니다.
옛날과 달라진 새해 설 모습이 생각이나 글 올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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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설이 그립습니다.
시대와 외식의 변화로 그 때 그 시절의 설은 돌아오기 힘들어 졌습니다.
되돌릴 수 없기에 더욱더 그리운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의 설은 설렘이었습니다.
나프타린 냄새 솔솔 풍기는 새 옷은 설렘의 상징이었습니다.
명절이 아니면 새 옷을 입기 어려웠던 시절이었고 그 기다 검정 고무신은 신기루 같은 신발이었습니다.
검정 고무신이지만 새것이라는 것에 아까워 함부로 신지도 못하고 머리맡에 고이 두고 설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메이커 운동화를 몆 컬레씩 갖고 번갈아가면서 이것저것 마음데로 신고 다니는 호사를 누리고 있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연예인이 아니라도 드레스 룸을 갖출 정도로 옷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말랑말랑한 떡가레를 조청에 찍어먹던 그 맛이 일품이었던 기억을 70년 100 년이 지나도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떡가레 대신 떡볶이를 수시로 먹을 수 있고 초코렛과 치즈 과자는 일상의 주점 부리가 되었습니다.
부침게 대신 피자가 입맛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요즈음에는 설날이 되어도 민족 대이동도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밤새워 귀성표를 구하던 긴 행렬은 이제 하나의 추억이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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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성 인구가 준다는 것은 차례를 지내지 않은 가정이 늘었다는 의미도 됩니다.
대가족의 해체와 1인 가구의 증가 성 평등과 노동 혈평성 논란 등 명절 후유증이 확산 되면서 제사 무용론으로 이어지는 분위기로 변해버렸습니다.
설날 아침 차례가 끝나면 집안 어른 들께 새해 첫 인사인 세배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이웃 어른들을 찾아다니면서 세배를 드렸습니다.
어른들은 덕담을 하며 세찬(歲饌)과 세주(歲酒)를 권하던 것은 세사풍습이자 미풍양속이었습니다.
요즘 어린이들은 공경의 의미로 세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세뱃돈을 받기위해 세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설은 흩어졌던 가족이 만나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며 손주의 재롱을 보는 것이 낙으로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의 기다림이었습니다.
요즈음은 수시로 휴대폰 영상통화로 손주의 얼굴을 볼 수 있으니 애틋한 기다림이 예전 같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설은 단일 문화민족의 동질성이 녹아있는 어울림의 축제가 되기도 합니다.
일제는 고유의 문화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설을 없애 버리려고 떡을 못 만들게 섣달그믐이 되면 방앗간을 일주일 동안 문을 닫게 하는 횡포도부렸습니다.
우리나라는 태양력을 채택한 1896년 1월 1일 이후 양력설과 음력설이 병존하면서 신정과 구정 논란이 이어지다가 이제 겨우 자리를 잡았는데 너무 쉽게 설날이 퇴색되어 버려 아쉬움이 많습니다.
설은 흩어졌던 가족이 모이고 조상의 음력을 기리는 미풍양속의 전통입니다.
그 때 그 시절의 옛날 설 분위기 회복은 불가능하더라도 민족의 정서와 얼이 스민 설 명절의 전통적 가치는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곧 구정 설 명절을 앞두고 글 올려 보았습니다.
용인 도경철학관은 기문둔갑비법으로 감정하는 철학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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