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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의 중요성과 그 방안
2014. 8. 25. 글(다양성의 수용에 대한 글을 읽고서)에서, 소나기님께서 “이 주제를 가지고 의미 있는 토론의 장이 있기를” 희망하셨습니다. 이번 연차대회에서 이 주제를 토의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좋을 듯합니다. 정기모임 때 의논해 보겠습니다. 우선 현재의 제 생각을 간략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당사자의 말에 귀를 기울지 않는 이유
이 주제는 당사자에 대한 전문가, 가족, 그리고 사회일반인의 인식구조와 매우 밀접히 연관된 주제입니다.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이유는 제 생각에 크게 두 가지 때문입니다.
1) 조현병의 특징 : 산만함. 요점-중심적이지 못함
첫째는 당사자들의 사고와 언어표현 방식의 특징 때문입니다. 조울증의 경우에는 기분이 안정된 시기에는 자신의 경험을 회고적으로 논리정연하게 말로써, 그리고 글로써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현병의 경우에는 활성기 증상이 가라앉고 겉보기에 아무런 증상이 없어 보이는 시기에도 상당수 당사자들이 이 점에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왜냐하면 조현병의 특징 중 하나가 사고와 언어가 지나치게 추상적(관념적)이거나 또는 지나치게 문자적(지엽적)인데, 이 특징은 활성기에는 거의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심하게 나타나지만, 활성기 증상이 가라앉아도 기본적인 사고와 언어의 특징으로 남아있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입니다. 조현병을 지닌 사람들은 평상시에도 대화 중에 생략(꼭 언급해야할 기본가정 또는 증거를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버림)과 논리적 비약, 그리고 주제로부터의 이탈(하려고 했던 말에 집중하지 않고 엉뚱한 말을 자주 함으로써 말하고자 하는 요점이 흐려지거나, 엉뚱한 결론을 말하는 것, 때로는 동문서답) 등이 정상인에 비하여 심하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조현병을 지닌 사람과 대화할 때에는 듣는 사람이 여유로운 마음으로, 장시간 주의집중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대화 중에 때때로 자신이 이해한 바, 즉 들은 내용의 요점을 표현하고, 그것이 맞는지, 자신이 바르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물어봐야 합니다. 또한 대화 중간에 가급적 당사자의 말을 중단시키거나, 재촉하지 않고, 당사자가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줘야 하며, 좀 더 깊은 내면탐색을 이끌어내기 위해 중간 중간에 적절한 질문을 던져줘야 합니다. 또한 당사자를 가르치려 하지 말고,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경험을 하는지 충분히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대화에 임해야 합니다. 만일 당사자의 사고와 언어표현 방식의 특징을 고려하지 않고, 내 방식대로 대화를 하려 하면, 특히 조급한 마음으로 빨리 대화를 마치고 빨리 결론을 이끌어내려 하면, 당사자들은 대화 중에 심한 부담감을 느끼고, 혼란을 경험하며, 하고자 했던 말을 잊어버리고 당황하게 됩니다. 이때 당사자에게 “요점을 짧고 간단하게 말하라.”고 몰아붙이면 당사자는 아무런 말을 못하거나, 엉뚱한 얘기를 하게 됩니다.
사고와 언어표현 방식에서의 당사자의 이러한 특징은 그들의 글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그들의 글은 대체로는 논리정연하지 못합니다. 생략과 비약, 주제로부터의 이탈이 심합니다. 또한 매우 관념적, 추상적, 과잉일반화, 지나친 단순화, 단어 하나의 뜻에 매달리는 문자적, 지엽적 표현 등이 많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글을 한 번 대충 읽어서는 요점이 뭔지 의미파악이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의 글을 읽을 때에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그 글 속에 나름대로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들어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가지고 읽어야 하며, 얼른 이해가 안 되면 몇 번씩 반복해서 찬찬히 읽어봐야 합니다. 그리고 생략되고 지나간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며 읽으려고 해야 합니다. 만일 그들의 글을 논문으로 발표하거나, 자서전 또는 수기로 발간하려고 할 경우에는 편집조력자가 있어서 그들의 글을 함께 검토하고 수정을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미국의 소비자 자서전과 수기들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발간되기에, 일반대중들에게 의미전달이 잘 되고, 호소력이 있습니다.
2) 청취자의 급한 성격, 잘못된 가정
아무튼 당사자들과의 대화는 인내력, 집중력, 그리고 끈기를 필요로 합니다. 또한 조급해하지 않고 편안하고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고, 당사자의 판단능력과 경험을 높이 평가하는 기본자세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정신과의사 또는 숙련된 상담전문가라 할지라도, 조현병을 지닌 사람의 말을 끈기 있게 듣지 못하는 전문가들도 많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본인의 성격입니다. 성격이 급하고 불같은 분들은 조현병을 지닌 사람들의 지루하고, 산만하고, 지엽적이고, 관념적이고, 때로는 동문서답식의 대화방식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견뎌내지도 못합니다. 요점-파악이 안 되기 때문에,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자체가 본인에게 스트레스가 되어, 재촉하고, 짜증내고, 핀잔주고, 무시하고, 묵살하고, 화내고, 비난하게 됩니다. 즉 본인의 급한 성격 때문에 화가 나고, 그 때문에 경청을 못하게 됩니다. 또 한 가지는 기본가정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흔히 많은 전문가 또는 가족들이 조현병을 지닌 사람은 논리적, 합리적인 판단력이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들의 지리멸렬하거나 횡설수설하는 말, 또는 요점-정리가 부족한 말은 단지 증상일 뿐, 귀담아 들어야 할 별다른 중요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즉 사소한 것, 쓸데없는 것, 별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 변명, 핑계 등일 뿐이라는 가정입니다. “판단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가정과, “요점-정리가 부족한 말은 귀담아 들을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라는, 이 두 가지 가정은 둘 다 전적으로 잘못된 가정입니다.
2. 조현병을 "자기-장애"라고 보는 관점
오늘날 영어문화권(미국과 영국)에서는 철저히 무시되고 있지만, 조현병의 가장 큰 특징을 “자기-장애(self-disorder)”로 보는 유럽 정신건강의학의 관점이 있습니다. 이 관점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DSM-IV(곧 개정될 DSM-5를 포함해서)와 ICD-10을 중심으로 하는, 조현병에 대한 기존의 미국식 접근방법을 거의 “사기”에 가깝다고 비난합니다. 왜냐하면 미국식 접근법은 조현병의 표면적인 모습만 관찰해서 증상을 분류하고 치료하려 하는데, 이것은 전문가들의 “편의주의”라는 것입니다. 조현병을 “자기-장애”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조현병 환자들이 삶의 어느 시점부터 세상의 “참여자”로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세상으로부터 뒤로 물러서서, “관찰자 내지는 구경꾼”이 되는 삶을 택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오랜 시간 “구경꾼”에 머물러 있다 보니, 이전에는 익숙하고 자연스러웠던 모든 일들, 예로써 자기 자신과의 관계, 사물과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가 어색해지고 부자연스러워졌다고 합니다. 즉 정상적이라면 인식되거나 의식되지 않고 자동적으로 처리되어야 할 자신의 몸짓, 신체감각, 사고의 과정 등이 인식되고 의식되며, 대인관계에서도 정상적이라면 인식되거나 의식되지 않아야 할 타인의 몸짓과 표정, 말소리의 미묘한 변화가 인식되고, 공간 내의 사물을 사용할 때에도 그 사물의 불필요한 특성들이 인식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불필요한 자극들이 억제되지 않고, 그대로 인식됨으로써, 정작 집중해야 할 주제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자동차 운전을 할 때 정상적이라면 아무 생각 없이 운전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조현병을 지닌 사람들의 경우에는 마치 다시 운전초보자가 된 것처럼 자신의 동작 하나하나가 지나치게 의식되고, 불필요한 계기판들이 모두 눈에 들어와서, 오히려 운전을 제대로 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조현병을 “자기-장애”로 보는 학자들은 조현병 환자들에게 세상에 대한 “관찰자 또는 구경꾼”으로서의 삶의 자세를 버리고, 세상에 대한 “적극적 참여자”가 되라고 권합니다. 그들은 그것이 가장 확실한 치료법이라고 주장합니다. 제가 이 말을 들려줬더니, “불교의 참선법/명상법에서는 24시간 자신이 자신을 관찰하도록 하지 않느냐?”, 따라서 “자신이 자신을 관찰하는 것이 더 좋은 방식이 아니냐?”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그 분들이 불교의 참선법/명상법의 의도를 잘못 이해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렇게 하라는 것은 “역설적 의도”입니다. 즉 궁극적으로는 “주체와 객체가 없는 합일된 상태”에 도달해야 하는데, 그 방편으로서 “의도적으로 주체와 객체를 분리시키고, 그 끝까지 가보는” 역설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불교의 참선법/명상법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아무튼 불교 수행법 얘기는 뒤로 하고, 자신이 자신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사물의 불필요한 부분들까지를 수시로 인식하게 되면, 중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의 구분이 사라지고, 정보과잉 상태, 즉 혼란상태가 초래되게 됩니다. 이는 유럽의 심리학 실험에서, 정상인을 대상으로 이미 입증되고 있습니다. 즉 실험에서, 정상인들에게 매사에 관찰자의 자세를 취하라고 했을 때, 정상인들도 조현병을 지닌 사람들과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자신과 환경의 불필요한 부분들을 의식하게 되고, 그 결과 자신과 환경에 대해 평소와는 다르게 동떨어진 느낌, 어색한 느낌을 느끼게 되며, 감정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하고, 매사가 무덤덤하게 느껴지며, 자신이 세상과 동떨어진 듯 낯선 느낌과 소외감, 그리고 고립감을 경험한다는 결과가 발표되고 있습니다.
3. "무엇이 진실인가?"
제가 “자기-장애” 이야기를 소개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무엇이 진실인가?” 하는 점입니다. 정상인의 사고와 행동은 효율성(생존과 번성)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효율성(생존과 번성)에 방해가 되는 모든 진실(실제 존재하지만 생존과 번성에 불필요한 사소한 가외자극들)은 외면됩니다. 그것이 “정상”의 의미입니다. 즉 정상인이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 상대방의 모습, 그리고 자신의 모습은 실제 그대로가 아니라, 효율성(생존과 번성)과 관련된 측면만 부각해서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즉 사실 그대로가 아니라, 철저히 왜곡된 모습이며, “세상의 진실” 그 자체와는 거리가 멉니다. 이에 비해 조현병을 겪는 사람들의 인식구조는 다릅니다. 그들은 정상인들이 놓치고 있는 “진실”을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이 조현병 환자들이 세상의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비유하자면 정상인들이 바닷가의 모래 한줌을 머릿속에 넣고 그것이 다 인줄로 착각하고 살아간다면, 조현병 환자들은 머릿속에 모래 한 바가지를 넣고 그것이 다 인줄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우리들 중 누구도 진정한 “진실” 근처에 닿아있지 못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조현병 환자들은 정상인이 놓치고 있는 어떤 측면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재차 말하지만 이것이 조현병 환자들이 진실에 더 가깝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효율성(생존과 번성)과는 관계가 없을지 모르지만, 정상인들이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쳐버리는 “사물, 사람, 또는 관계 속에 존재하고 있는 어떤 특성”을 (각자 나름대로의 측면에서) 보다 더 민감하게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대화 시에 정상인들이 원하는 방식의 대화를 방해하는 것이지요. 예로써, 이 글을 읽을 때, 정상인들은 불필요한 많은 말들 속에서 요점을 추려내는 방식으로 이 글을 읽습니다. 이에 비해 조현병을 지닌 사람들은 글을 읽다가 중간 중간에 단어 하나에서 또는 표현 하나에서 방해를 받습니다. 왜냐하면 그 단어가 지닌 이중적인 의미, 그 단어와 관련된 개인적인 추억, 그 단어와 관련해서 읽었던 신문기사 등이 동시에 머릿속에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작 제가 이 글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의미를 놓치고, 자신에게 가장 강하게 다가오는 의미(예로써 어린 시절의 추억과 관련된 어떤 개인적인 의미)로 왜곡해서 제 단어를 이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렇듯 그들은 요점-파악에 어려움을 겪을 뿐만 아니라, 글을 다 읽고 나서, 자기에게 다가온 강한 정서적 의미를 바탕으로, 나름대로의 엉뚱한 결론을 말할 수 있습니다.
조현병 환자들의 이러한 정보처리방식은 정상인과의 대화를 어렵게 합니다. 요점-중심적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수많은 연상과 불필요한 정보들이 뒤섞여 있는 산만한 대화가 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말 속에 정상인들이 피하고 외면하고 싶어 하는 “불편한 진실”이 담겨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조현병 환자들은 대체로 “속이려는 의도”를 정상인보다 훨씬 더 민감하게 포착해냅니다. 즉 “겉 다르고 속 다른 말”, 또는 행위를 정확히 집어냅니다. 다만 그들은 이것을 정확하게 말로 지적하거나 표현해내지 못합니다. 그들은 갑자기 화를 내거나, 안절부절 하거나, 혼란스러워하거나, 자리를 피하려는 행동을 보입니다. 뭔가를 눈치 챈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때때로 그들의 이러한 정확성을 “귀신같다.”고 표현합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조현병을 지닌 사람들은 “눈치가 귀신같기 때문에”, 애초에 속이려고 마음먹지 않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아마도 “귀신은 속여도 그들은 속이지 못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따라서 조현병 자녀를 둔 가족들은 정직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녀는 계속 혼란에 빠집니다. 또한 조현병을 지닌 사람을 접하는 전문가들도 정직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들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아니면 그들은 혼란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4. "잘난 부모"의 문제점
제가 경험한 바로는, 특히 나름대로 “성공한 부모, 잘 나가는 부모”를 둔 조현병 당사자들이 이 점에서 더 힘들어 하는 것 같습니다. 그 부모들의 문제는 세 가지쯤 됩니다. 첫째는 많은 경우에 그 부모들은 “눈치가 빠르고, 머리가 잘 돌아가고, 순간적인 둘러치기에 능하고, 종종 위선적이고, 이중적이고, 진실하지 못하며, 흔히 체면치레가 많고, 겉 다르고 속 다른 말을 많이 하고, 거의 모두가 자존심이 지나치게 강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특성을 지니고 있는 듯합니다. 이러한 특성들이 사회적 성공에는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녀로서는 부모가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을 대할 때 혼란스럽습니다. 특히 조현병을 지닌 자녀는 부모의 이러한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모습을 귀신같이 알아내기 때문에, 부모에 대한 존경심을 잃어버리고, 때로는 부모를 경멸하며, 나아가 부모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제 생각에 흔히 조현병 자녀는 부모의 이러한 위선을 집어내주는 “감시자, 감독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듯합니다. 다만 그들은 이를 말로써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기에, 화내거나, 울거나, 불안해하거나, 혼란스러워하거나, 몸이 아파지거나, 등등의 방식으로 부모에게 “저를 그렇게 위선적인 방식으로 대하지 말아주세요. 정직하고 진실하게 저를 대해주세요.”라고 호소하는 듯합니다.
“성공한 부모, 잘 나가는 부모”의 두 번째 문제는 “내가 옳다.”는 생각입니다. 그들은 흔히, “자신감, 자부심, 우월감, 종종 자만심, 교만심”을 지닌 채 살고 있습니다. 그 마음을 깔고, 타인이나 자녀를 대합니다. 그들은 무의식중에 끊임없이 “나는 옳다, 너는 그르다. 나는 잘났다. 너는 못났다.”는 메시지를 말과 음성, 몸짓과 표정으로 전달합니다. 자녀와의 대화 시에는 요점-중심적으로 말할 것을 요구하며, 웬만한 자녀의 의견은 대충 다 무시하고 묵살합니다. 또한 요점-중심적, 논리적, 효율적인 사람만 인정할 뿐, 그러한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 대해서는 경멸하는 마음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조현병을 지닌 자녀로서는 이러한 부모의 기대와 욕구를 충족시키기가 매우 버겁습니다. 병의 특성상 그게 어렵지요.
그런데 문제는 “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입니다. 저는 그것은 단지 “서로간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사물을 지각하고, 사고하는 방식의 차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그것이 차이라면 내 식으로 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서로가 조율해야 하는 것이지요. 즉 어린아이와 대화할 때에는 어린아이에게 맞는 방식으로, 노인과 대화할 때에는 노인과 맞는 방식으로, 언어장애가 있는 사람과 대화할 때에는 언어장애의 특성에 맞는 방식으로 대화해야 하는 것처럼, 조현병이 있는 사람과 대화할 때에는 그들의 특성에 맞는 방식으로 대화해야 하는 것이지요. 다리가 아파서 절뚝거리는 사람과 같이 길을 걸을 때에는 그 사람에게 빨리 걸으라고 다그칠 게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의 걸음속도에 맞추어서 천천히 함께 속도를 맞추어서 걸어가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하지만 “잘난 부모”는 그게 어렵습니다. “나는 옳다. 너는 잘못됐다. 나처럼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고쳐라.”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병”을 “차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열등한 것, 부족한 것, 나쁜 것, 없애야 하는 것, 바꿔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래서 자녀가 심하게 조현병의 증상을 보일 때는 봐주지만, 조금만 회복되었다 싶으면, 자기 방식대로 만들려고 자녀를 몰아치고, 구박하지요.
“성공한 부모, 잘 나가는 부모”의 세 번째 문제는 남들로부터 배우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의 인식구조로는 웬만한 전문가는 다 자기 발 아래로 보이고, 전문가로부터 배우려하기보다는 오히려 전문가를 가르치려고 하죠. “잘난 사람”에 대한 기준이 각자 다르지만, 흔히 돈, 지위, 명예가 기준이 되는 듯합니다. 그래서 자기보다 엄청 잘나야 잘났다고 인정해주지, 웬만큼 잘난 사람은 애초에 상대도 안하지요. 그러니 “우물 안 개구리”지요. 자신이 만들어놓은 자신의 왕국 속에서 큰 소리치고 왕 노릇하며 살고 있는 것이지요. 전문가로부터도 배우려하지 않는데, 자신의 자녀로부터 배우려 하겠습니까? 자녀는 늘 자기보다 못한 한심한 존재라고 착각하며 살지요. 사실 정상인들은 조현병 환자로부터 배울 것이 많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생각지도 않고 지나쳐버린, 전혀 의식하지 않았던 “세상의 진실, 삶의 진실, 관계의 진실”의 어떤 측면을 생생하게 목격한 사람들이기 때문이지요.
뭐... 좀 더 곰곰이 생각해보면 “성공한 부모, 잘 나가는 부모”의 문제점이 수도 없이 나오겠지요.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걸 찾아내서 조목조목 말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이쯤 해두죠. 아무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그들은 “헛똑똑이”라고 할 수 있죠. 성공은 “효율성”의 열매죠. 그런데 효율성이란 “요점-중심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세상 속에, 관계 속에, 자신의 내면에, 자녀의 내면에 존재하는 수많은 진실을 외면하고, 전혀 인식하거나 의식하지 않고,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직 외길로 앞만 보고 살아온 삶”이 가져다 준 보상이지요. 하지만 그 보상을 얻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많은 걸 “외면”하고 살아왔는지, 얼마나 많은 “진실”에 눈을 감았는지 그들은 모르고 있지요. 조현병을 지닌 자녀는 그 점을 똑똑히 목격하고 경험한 “살아있는 목격자”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5. 직접경험과 간접경험의 차이
지금까지 “자기-장애”라는 관점에서, 조현병의 문제를 어떻게 볼 수 있는지를 말했었네요. 이제 화제를 조금 바꿔서, “직접경험”과 “간접경험”이라는 말을 해보겠습니다. 우리가 조현병을 겪은 당사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조현병에 관한한 그들은 “직접경험”을 한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소위 말하는 전문가들은 직접경험은 못하고, 단지 풍문으로 듣거나, 풍문을 전해놓은 책을 보거나, 기껏해야 멀찌감치 떨어져서 관찰하고 나름대로 추측해본 경험밖에 없는 사람들이지요. 그러니 현재의 우리 정신보건 분야의 현실이 아이러니죠. 직접경험한 사람의 말은 애초에 들어보려고도 안 하고, 기껏해야 간접경험밖에 없는 사람이 자신의 지식이 전부인양 착각하고 큰소리치고 있는 형국이지요.
6. 미국 소비자운동의 전술전략 : "자서전/수기쓰기" 운동과 "외부강연하기" 운동
미국의 전문가들도 오랫동안 그랬지요. 하지만 최근에는 많이 바뀌었습니다. 전문가들이 스스로 바뀐 게 아니라 “소비자운동(consumer movement)”의 결과로 바뀌었지요. 1980년대에 미국의 소비자단체들은 전술전략으로 “자서전/수기쓰기”와 “외부강연하기” 운동을 펼쳤습니다. 이것은 1960년대에 미국의 동성애단체들이 펼쳤던 “커밍아웃(자기공개)” 운동을 모방한 전술전략입니다. 아무튼 1980년대에 소비자단체들은 전문학회들에 대하여, 자신들의 수기를 매 번의 학술지에 최소한 1편씩 실어줄 것을 요구했고, 전문학회의 학술행사에 자신들을 강사로 초청해줄 것을 요구했으며, 정신보건과 관련된 교과목 강의에 자신들을 특강 강사로 초청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많은 수기들이 발표되었고, 디건(Deegan)의 수기처럼 전문가들의 인식을 바꿔놓은 수기들도 발표되었습니다. 그 결과 1990년에 미국 정신재활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전문가인 앤쏘니(Anthony)가 수기에서 수없이 등장하는 재기(recovery)라는 단어를 학술적 개념으로 등장시키고, 그에 대한 연구를 촉구하게 됩니다. 이로부터 미국에서는 당사자 수기를 연구하거나, 당사자들을 심층-면접하는 연구방식이 유행하게 되고, 그 결과 당사자들의 증상경험/치료경험/재활경험/재기경험의 자세한 측면들이 연구를 통해 밝혀지게 됩니다. 또한 당사자들이 원하는 치료개입의 목표/방법에 대한 연구들과, 재기촉진요인, 재기방해요인이 무엇인지가 밝혀지게 됩니다. 소비자들의 경험으로부터 추출된 이러한 연구결과들은, 역으로 소비자단체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펴는 이론적 근거로 활용되게 됩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치료모형, 재활모형, 재기모형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치료모형과 재활모형은 전문가들의 시각에서, 전문가-주도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모형인데 비해, 재기모형은 당사자들의 시각에서, 당사자-주도적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모형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미국의 경험을 응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우리도 “자서전/수기쓰기 운동”과 “외부강연하기 운동”을 펼쳐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자서전/수기는 매우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즉 전문가들이 알지 못하는 내용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일생동안의 일을 몇 페이지 분량으로 쓰는 수기로는 전문가들을 압도하지 못합니다. 일생동안의 일을 쓰려면 적어도 책 한 권의 분량은 써야 합니다. 하루 동안의 일, 한 가지 사건, 어떤 계기, 도움이 된 일, 방해가 된 일, 아무튼 매우 초점적인 주제에 대하여 적어도 몇 페이지에 걸쳐서 자세히 세세하게 묘사하는 수기가 필요합니다. 즉 수기 속에는 전문가들이 모르고 있던 정보들이 들어있어야 하며, 전문가/가족/당사자에게 그 정보가 왜 중요한지 충분히 설득력 있게 묘사되어야 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수기를 읽어본 사람들이 자신이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어, 정신이 멍해질 정도의 수기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수기를 쓰는 과정에서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주변 당사자들의 조언을 구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전문가(작가, 정신보건전문가)들로부터 교정을 받아야 합니다.
또한 외부강연하기도 그냥 덜렁덜렁 가서 강연/강의하면 안 됩니다. 1시간 강의를 위해서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강의원고, ppt 자료를 반드시 준비해야 합니다. 그것도 전문가들의 자료를 압도할 정도로 내용이 충실하고, 보기에 깔끔한 방식으로 자료를 준비해야 합니다. 강의 때 할 말들을 사전에 수도 없이 연습하고 연습해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프로 강사들이 강의하는 정도로 강의해야 합니다. 학생이나 청중들이 강의를 듣고, 자료의 충실함, 내용의 논리정연함, 강의기술의 원숙함과 깔끔함 등에 압도되도록 해야 합니다. 강연/강의를 듣고 청중/학생들이 감동을 받도록 해야 하며, 기립박수를 칠 정도로 완벽하게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준비하는 과정에서 혼자 힘으로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면, 다른 당사자들과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각종 위원회에 당사자들이 위원으로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위원으로 활동하는 당사자들은 다른 당사자들에게 회의에 참석할 때 몇 가지 사항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는 철저한 준비입니다. 회의안건에 대해서 철저히 연구하고 분석하고 공부해서 회의에 참석하라고 조언합니다. 두 번째는 회의진행방식에 관한 것입니다. 당사자를 위원으로 참석시킬 경우, 회의진행자는 많은 참석자들 중 한 사람으로서 당사자의 의견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참석자들과는 다르게 당사자이기에 발언할 수밖에 없는 그만의 고유한 의견을 요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당사자가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세 번째는 지자자입니다. 당사자가 위원으로 참석할 경우, 전체 위원들 중 최소한 1명 이상의 지지자(당사자의 입장을 지지하고 옹호해주는 위원)가 있어야만 당사자가 자신 있게 자신의 의견을 발표할 수 있다고 합니다.
7. 결론 : 누군가 먼저 시작해야 한다.
이 글의 주제인 “당사자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와 관련하여, 깨어있는 당사자/가족/전문가는 사회 전체의 분위기와는 관계없이 이를 자신의 삶에서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수의 당사자/가족/전문가들의 경우에는 사회 전반의, 최소한 정신보건 분야 전반의 분위기가 바뀌어야만 비로소 “당사자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에 관심을 보일 것입니다. 따라서 누군가는 전반적인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자발적으로, 먼저 시작해야 합니다. 즉 당사자들의 판단력이 때로는 전문가와 가족들보다 나을 수 있다는 점, 당사자들의 경험이 전문가와 가족들이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간 중요한 점들을 정확하게 집어내줄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하고 증명해내려는 노력을 시작해야 합니다. 사회전반적인 일들에 대해서는 어떨지 몰라도, 최소한 정신보건과 관련된 일들에 관한한, 좀 더 좁게는 자신이 겪고 있는 병에 관한한, 자신은 직접경험자이기에 누구 앞에서든 당당하게 자신의 경험을 말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전문가와 가족들은, 자신들이 이 병에 관하여 아는 것은 단지 간접경험일 뿐이기에, 당사자들의 직접경험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부족하나마, 소나기님의 제안에 답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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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글]
다양성의 수용에 대한 글을 읽고서
http://cafe.daum.net/saraskey/ca4b/1
다양성을 어떻게 수용하고 융합해 나갈 것인가?
http://cafe.daum.net/saraskey/dm7h/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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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이 글은 2014. 8. 26. "경청/대화법" 게시판에 올렸던 글입니다.
http://cafe.daum.net/saraskey/ca4b/2
이후 2015. 5. 7. "[촛불강의] 동영상/원고" 게시판에 스크랩하여 올렸던 적이 있습니다.
첫댓글 2015. 5. 7, 올렸던 이 글에 오늘 하연맘님께서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다시 한 번 이 글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램에 오늘 다시 한 번 이 글을 게시글로 올립니다.
좋은 정보를 다시 보게 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댓글이 제게 격려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부족하지만 거짓없는부모가 되도록 노럭하겠 습니다.
촛불님의 좋은 글을 늘 고맙게 보고 있습니다
환절기에 건강하세요~~~
따뜻한 격려의 말씀을 들으니 힘이 나네요. 감사합니다.
낮병동에서 수기쓰기 해보았어요. 8회기에 걸쳐 라이프싸이클도, 연도별, 애경사별로 뒤적여 리스트도 만들고, 마인드맵으로 미래생활까지 그렸지요. 과거는 부끄럽고 미래는 두렵고 그러더군요. 발표하면서 울컥하는 것이 당사자의 마음이구나 했답니다. 리커버리의 한 부분으로 수기를 더 쓰지 못하지만 당사자의 말에 귀기울이는 또한당사자로 살아보려합니다. 촛불님 힘내시고 좋은일로 가득하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