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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품격 있는 춤을 레퍼토리로 남겨 놓고 싶어
‘월간 춤’ 인터뷰 2015. 5. p98~103
1)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전남 광양출생으로 학창시절 문학과 예체능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다수의 백일장과 경연대회에서 입상한 바 있다. 늦깎이로 무용을 시작했지만 서울시립무용단을 거쳐 한양대학교 박사를 마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서울문화예술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천안시립무용단 상임안무자로 재직 하면서 안무가, 교육자, 공연기획 및 연출가로 활동을 하고 있다.
대표작품 : ‘네 개의 시선, 일곱 가지 빛깔’ - [색춘향色春香](2015), [100년의 꿈](2014),
[아빠의 청춘](2009), [四季-꼭두의 눈물](2008), [또 다른 음모](2007)
수상 : 무용문화포럼 연기상(2013),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무용부문 최우수상(2012),
대한민국 무용대상 시상식 -솔로 & 듀엣 부문 Best 5- 수상(2011),
제13회 경북무용제 연기상(2002), 제1회 전국차세대 안무가전 [묘비명] 최우수상(1999), 1991-1993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장학생(1991-1993)
2) 천안시립무용단 예술감독으로서 <석오 이동녕 - 100년의 꿈>에 이어 이번 <색춘향> 작품을 정기공연 무대에 올려 좋은 평을 받았다. 조택원 선생의 <춘향조곡>도 이번 국립극장 무대에 올라 관객을 즐겁게 한 바 있다. 특별히 춘향 공연을 선택하게된 계기는?
‘네 개의 시선, 일곱 가지 빛깔’이라는 부제가 달린 색춘향(色春香)은 신윤복의 <월하정인도>와 중첩된 이미지를 사용하여 인문학적 접근과 전통춤의 재해석을 바탕으로 무대와 관객의 새로운 관계설정을 모색하기 위함이었다. <월하정인도>와 같은 에로틱한 그림이 그려질 수 있었던 데에는 신윤복이 살았던 영·정조 시대의 사회 분위기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당시는 서민들이 자기 생활에 대한 관심과 현실 직시가 문화·사회적인 제반 분야에 미치기 시작한 때이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춘향전]이 창작되어진 것도 이 시기이며, 숙종 이후에 비롯된 판소리도 이 시기에 그 예술적 지위를 확립하고 서민의 애환을 실어 주는 가극(歌劇)으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이런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춘향전에 전통춤을 아름답게 채색하고 구성하였다.
3) 색춘향 작품소개
‘네 개의 시선과 일곱 가지 빛깔’은 춘향과 몽룡의 만남, 이별, 그리움, 재회라는 네 개의 장면과 상황에 맞게 배치된 일곱 가지 전통춤을 의미하는데, 신윤복의 [월하정인도]를 통해 스펙트럼에 투영된 사물을 관찰하듯 다양한 색채로 [춘향전]을 재구성하였다.
4) 색춘향 작품에서 특별히 애착을 가지는 부분이 있다면
작품을 하나의 이미지로 탄생시키기 위해 다양한 협력 작업이 이루어졌다. 왕기석 명창의 사설과 창, 장석영의 절제된 조명과 황정남의 서정적 이미지의 영상, 민병구의 아름다운 설치미술, 그리고 작품을 세련되게 뒷받침해준 민천홍과 신근철 의상디자이너의 작품을 하나의 이미지로 만든 연출력이 아닐까싶다.
5) 김온경 재구성 및 지도 등이 필요한 이유?
예술감독의 임무는 단원들의 역량강화와 레퍼토리의 발굴, 무용단의 스타일을 결정시키는 일이라고 한다. 나는 강태홍류의 ‘산조춤’을 통해 춘향의 단아한 맵시를 표출하고 동시에 단원들에게 품격 있는 춤을 레퍼토리로 남겨주고 싶었다.
6) 천안시립무용단은 어떤 단체인가? 활동상황은? 본인이 부임이후 변화시키거나 계획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천안시립무용단은 2005년 7월 창단되어 현재까지 스쿠루지와 신데렐라 등 쉽고 재미있는 소재의 작품과 천안흥타령춤축제를 통하여 전통춤을 재구성하여 시민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였다.
좋은 작품을 위해서는 내부의 결속력과 단원들의 기량 향상이 가장 우선되어야한다는 생각에 부임당시 '천안시립무용단ONE'이라 칭하고 단원들에게 세 가지를 주문했다.
“1.여러분은 예술가입니까? 그렇다면 예술가의 품격을 잃지 마십시오. 최고의 예술가가 될 수 있도록 제가 여러분과 함께 뛰고 땀을 흘리겠습니다. 2.여러분은 프로입니까? 아마추어가 아니라면 오로지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십시오. 3.우리는 하나의 공동체입니다. 개인의 심성이 전체에 반영되고 그것이 곧 우리의 이미지가 됩니다.” 이를 바탕으로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며, 공정한 평가와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7) 천안시립을 어떻게 이끌어가고 싶은지?
천안시립무용단은 천안시민의 문화 복지의 일환으로 시민의 예술작품 향유하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단체이다. 따라서 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동시대성과 천안을 소재한 작품을 통하여 천안시민의 자긍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아울러 그동안 쌓아온 무형의 자산을 바탕으로 예술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천안시민의 문화적 욕구와 단원들의 기대를 어떻게 충족시켜야할지 고민 중이다.
8) 특별히 마음에 드는 무용수나 스텝이 있다면? 이유
협력 작업에 참여한 스탭과 모든 무용수가 작품을 탄생시킨 중요한 구성원이지만, 직업무용단원이 되면 대개 안주거나 수동적일 수 있는데, 이번 작품에 주역과 조안무를 맡은 김진아 수석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무용수로 작품에 큰 기여를 해주었다. 이 기회에 지면을 빌어 김진아 수석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9) 안무자로서 여러 권의 책을 낸 수필가이자 칼럼니스트이고, 무엇보다 시인이다. 한국춤에 있어서 춤세계가 넓은 것이 이런 다양한 영역에서의 시도 및 성취와 무관하지 않은 듯싶다. 이와 관련하여 소개 부탁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전/국립극장장과 의정부예술의 전당 사장을 역임하신 최진용 님의 추천의 글을 대신할까한다. ‘그의 온 몸에서는 언제든지 시(詩)와 음악, 춤과 색채가 뛰어 나올 준비가 되어 있다. 그 이유는 삶 자체가 예술이며, 무용이고 또한 그가 꿈꾸는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의 무용은 시(詩)이자 철학적 사유이며, 사색의 몸짓이다. 그가 쓰는 시(詩)는 외로운 날의 일기와도 같은 기록이지만 단순히 외롭거나 아픈 것만은 아니다. 아픔과 외로움을 넘어서려는 아름다운 노력은 밝은 채광을 통해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삶 자체가 무용을 닮았는지, 그의 무용이 삶을 닮았는지 그 답은 글을 통해 의미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저서로는 ‘모난 삶에 호통치지마라.’(자료집), ‘시간은 책임을 게을리 한적 없다.’(시집)
공저로는 ‘춤으로 본 지역문화’(경기.충청편) 등이 있으며, 칼럼은 김종덕이 쓰는 ‘춤으로의 긴 여로’(댄스포럼)와 ‘예술가의 식도락’(서울문화투데이) 등이 있다.
10) 신작에 대한 계획은? 더불어 “좋은” 예술작품을 만들 능력이 개인 무용단보다는 국공립단체에 있는 지금의 지원체계 속 혹시 가능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제약이 ( “좋은” 예술작품 창작을) 더 어렵게 하는지 궁금하다.
12월 하반기 정기공연은 [크리스마스의 기적 - 'Love is...']라는 사랑에 대한 에피소드를 무용극(dance theater)의 형태로 선보일 예정이다. 전문직업무용단은 공연을 위해 작품제작비와 연습할 수 있는 공간, 뛰어난 무용수가 제공되기 때문에 예술가에겐 안정적으로 작품에 매진할 수 있는 기회이며 축복이다. 하지만 시민들의 문화향수와 체험이라는 공공성에 방점을 두어야하기 때문에 시민들의 눈높이를 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예술성과 대중성의 적절한 배분과 주제선정에 대한 제약, 실험성 결여는 어느 정도 감안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11) 안무할 때 춤작가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한국춤의 창작이 다른 분야의 창작과 비교해서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약20년 전, 월간 ‘춤’ 발행인 조동화 선생님께서는 동아무용콩쿨 운영자문위원이던 당시 현대무용과 모던발레처럼 한국창작무용도 컨템포러리 댄스(Contemporary Dance)의 범주에 포함시켜야한다고 주장하셨다고 한다. 그 제안이 실현 되었더라면 더디긴 했어도 한국창작무용이 세계화로 갈 수 있는 초석이 되었을 것이다. 창작(創作)이라하면, ‘예술 작품을 독창적으로 만들거나 표현하는 일’을 뜻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독창적(獨創的)이란? ‘자기 혼자 힘으로 새롭고 독특한 것을 고안해내거나 만들어내는 일‘을 일컫는 말이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동시대적 객관성 결여라는 덫에 갇혀 지낸다면 앞으로도 변화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의 부토는 ‘암흑의 춤’ 또는 ‘죽음의 춤’이라는 의미로 전쟁에서 패배한 일본인들의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공황을 독일의 표현주의와 일본 전통춤인 가부키의 형식을 바탕으로 체계화한 일본식 현대무용이다. 미적 범주의 확장, 독일의 표현주의의 철학적 수용과 일본전통춤의 형식을 현재적으로 적용하는 등 새로운 관점에서 미학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의지와 용기가 있었기에 일본적 현대무용으로 세계무대에서 당당하게 인정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12)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인물이 있다면?
SIDance 2014에 초청되었던 마기 마랭 무용단(La Compagnie Maguy Marin)은 거의 20년 전 [May B]라는 작품을 통해 처음 만났다. 테크닉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시절 미니멀리즘(극소주의/minimalism)을 처음 접하게 되었으며, 발을 끌면서 걷는 것만으로도 긴장감을 극대화 할 수 있다는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춤 언어뿐만 아니라 소리, 리듬, 시각적 이미지를 동원하며 연극과 문학 등 다양한 장르와 연계하는 현대무용의 새로운 물결(누벨 당스/Nouvelle Danse)를 주도하고 있는 마기 마랭을 꼽고 싶다.
13) 최근 본 작품이나 관심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면?
아크람 칸은 드라마적인 요소와 동서양을 넘나드는 정서, 신체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는데, 최근에 감상했던 아크람 칸의 작품 [데쉬Desh]는 ‘고국’이라는 뜻의 80분짜리 솔로작품으로 인도 전통 '카탁'과 현대무용을 접목한 아크람 칸의 화제작으로 2006년 무용비평가협회의 우수 안무가상을 수상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버티컬 로드Vertical Rosd]에 이어 두 번째 만나는 아크람 칸의 작품 [데쉬Desh]는 문화, 세대, 가족 간 충돌과 화해 등이 녹아 있는 작품으로 기발한 아이디어를 통해 8개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빡빡머리에 페인트를 칠해 아버지를 닮은 얼굴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과거로 돌아가 아버지에게 반항하던 폭풍 같은 10대로도 변하기도 하며, 해머 내리치는 소리로 긴장을 고조시키거나 하얀 종이를 빼곡하게 설치하고 그 사이에 거꾸로 매달리는 등 1시간 이상의 솔로작품이 지루할 틈이 없었다. 동시대 예술가로 아크람칸의 작품에 대한 집중력과 자유로운 상상력을 현실화 시키는 추진력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14) 천안시청에서 공연했는데 천안예술의전당과 어떻게 다른가? 직업무용단의 미래에 대해서 하고싶은 말이 있는지?
천안시청에 봉서홀이라는 1,100석 규모의 극장이 있다. 천안예술의전당에 비해 열악한 무대이지만 시민들의 접근성을 배려해 봉서홀을 활용하게 되었다. 앞으로 직업무용단의 성공과 발전을 위해서는 작품에 대한 다양한 접근 방식과 예술단 노조의 득과 실에 대한 공론화와 점검이 필요한 시기이다.
작품의 다양화는 교육에서부터 출발해야한다. 그러므로 독립무용학과를 고집하는 우리의 교육체계는 지나치게 폐쇄적일 수밖에 없다. 다른 분야와의 협력은 지속적으로 기회가 주어지고 학습이 되어져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국의 사례처럼 독립학과가 아닌 무용과 연극, 무용과 체육, 무용과 영상미디어, 무용과 인문학 등 융합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아울러 무용학도들의 진로와 무용단의 발전을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담보 되어야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정당한 요구와 직업무용수에 대한 자긍심을 발휘할 수 있도록 공정한 기회제공과 대우뿐만 아니라 단원들 스스로 본분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2. 무용가 탐구
춤과 사람들 2013.8 p36~38
1) ‘전통음악과 의상, 동작으로 현재를 표현하는 한국무용은 모순’
한국무용가 김종덕, 그는 지난 6월20일 춤 입문 25주년을 계기로 쓴 [모난 삶에 호통치지마라]라는 출판기념회와 공연, 6월16일과 7월18일 Talk & Dance라는 공연을 기획·연출하고 출연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젊은 나이에 책을 쓴 한국무용가 김종덕을 탐구해본다.
2) 국문학과를 합격하고도 포기하셨다고요?
[접시꽃 당신을]을 쓰신 도종환 선생님의 친한 친구이신 임정아 선생님이 제 고등학교 은사님이십니다. 그분께서 저의 문학적 소양을 일깨워주셨고, 詩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시화전에 출품하도록 도와주셨고, 교내 백일장에서 ‘누나’라는 시로 장원한 이후 ‘아버지’란 시를 일간지에 몰래 보내셔서 난생 처음으로 제 시가 인쇄되어 세상 밖으로 소개되기도 했죠. 그런 관심으로 국문학과를 합격했지만, 가정형편도 넉넉하지 못했을 뿐더러 6남2녀의 막내이자 늦둥이다 보니 부모님께서 연로하시고 병환중이라 학업을 포기해야만 했어요.
3) 무용가가 어떻게 되었나요?
연극을 하기 위해 무용을 처음 접하게 되었어요.
4) 쉽게 무용가가 되기로 결정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 당시로는 남성이 무용가가 된다는 것은 매우 생소한 일이었죠.
하지만 춤이라는 장르가 시처럼 창의적인 언어를 만들어 표현의 도구로 활용한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꼈던 것 같아요. 특히 춤은 힘든 시기에 억눌린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일종의 방편이기도 했을 겁니다.
5) 억눌린 감정이라면?
부모님께서 워낙 엄격하셨어요.
항상 빈틈없으신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키려니 심리적 압박이 심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춤을 통해 심리적 압박에서 벗어나려고 한 것은 당시로서는 극복해야할 매우 절실한 과제였는지도 모르죠.
6) 그런 성격이라면 현대무용과 어울릴 것 같은데요?
재학시절 많은 분들께서 전공을 바꾸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하시기도 했어요.
하지만 저는 한국적 정서로 표현하는 것을 즐겼고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아마도 한국적 현대무용에 대한 갈증이 심했던 모양입니다.
7) 젊은 나이에 한국적이라는 생각을?
나만의 독특한 나이 계산법이 있어요. 우리 DNA에는 5천년 역사의 기록이자 선조들의 경험이 저장되어 있어요. 그러니 내 나이는 5천년 더하기 실제 나이인 셈이죠.
우리가 아무리 서구화된다고 해도 정서만큼은 한국적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판단했어요.
8) 그럼 현재 한국적인 것의 현재화는?
해외유명 안무가들의 워크숍과 공연 참여, 그리고 작품관람을 통한 간접경험은
우리 것을 현재화시키려는 방법 찾기의 일환이었어요. 우리보다 무대메커니즘이 발달한 그들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토대나 초석도 없이 건물을 올릴 수 없잖아요. 앞으로 컨템포러리 댄스로서 한국창작무용을 보다 많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9) 한국창작무용이 현대무용을 한다는 비판도 있는데.
나는 한국적 현대무용, 즉 한국무용의 현재화를 위해 현대무용과 발레, 인접분야의 예술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서구적 사상과 몸짓을 그대로 따르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한국적 수용을 위해 고민하는 과정이었어요.
10) 생각이 매우 친취적이다.
다양한 경험, 즉 신문방송학과와 연극영화과, 철학과, 의류학과 등에서 매스컴과 현대사회, 연기·연출법, 조명과 구성, 미학과 심리학, 의상 등 공연에 관련되는 것이면 닥치는 대로 공부했고, 그것들은 열린 사고의 확장으로 이어졌어요.
11) 선생님은 말씀을 잘하세요. 무용가는 뛰어난 언변이 아니어도 된다고 하는데.
무용가가 유창한 말솜씨를 자랑할 필요는 없겠지만, 작품을 구성하고 그것을 설명할 때 논리성은 가져야죠. 무용수들에게 이해를 구하지 못하면 의도와는 달리 주제와 동떨어진 작품이 공연되고 그러면 관객은 재미와 흥미를 잃을 수 있어요.
‘예술은 사회를 반영한다.’고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책과 신문은 사회와 소통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죠. 저는 책읽기를 좋아하며, 후배나 제자들에게도 많이 권하는 편입니다.
12) 춤을 늦게 시작해서 더 넓은 안목을 가질 수도 있겠군요.
맞습니다. 현재 우리의 무용교육 시스템 내에서 조기 입문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은 아닌 것 같아요. 무용을 즐길 수 있는 분위기와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우리는 표본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맞추길 원하는 획일화된 교육방식을 채택하고 있어요.
13) 늦게 입문하면 어휘의 한계를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럴 수도 있지만 유행을 쫓거나 획일화되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죠.
어떻게 잘 배우는가와 본인의 열정과 노력에 따라 한계점은 점점 축소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4) 무용가로서 경제관념은?
제가 가장 부유했던 시기는 대학생 때입니다. 과외비와 장학금, 집에서 보내준 등록금 등으로 마기 마랭, 피나 바우쉬, 산카이 쥬쿠 등 무용가들의 작품을 가장 비싼 좌석을 예매해서 봤고, 연극 에쿠우스, 뮤지컬 오페라 유령, 캣츠, 레미제라블, 유물전과 명화 감상, 작품제작 등 자신에 대한 투자에는 아낌이 없었어요. 그러니 손익계산과 대차대조는 할 필요가 없죠.
늘 어떻게 수익을 창출할지보다 지출할 것만 생각하니 넉넉한 역시 살림살이는 힘들더군요.
15) 작품에는 어떤 주제를 다루었나요?
과거엔 무용의 주제가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 잡혔어요.
그러나 지금은 내가 경험한 일, 내 주변의 이야기로 관심이 옮겨갔어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는 당연히 관객도 이해할 수 없으니 감동도 축소될 테니까요.
16) 춤과 사람들에 투고한 ‘나의 보물’이라는 글을 작품에 인용하셨던데.
네. 원고청탁을 받아서 쓴 글의 내용이 어머님에 대한 소중한 기억들이었어요.
그래서 [굿바이 맘]이라는 작품이 만들어지게 되었지요. 개인적으로 잡지사에 깊이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원고청탁을 받지 않았다면 그 글을 쓰지도 않았을 테고, 작품도 만들어지지 않았을 테니 말입니다. 우린 모두 부모님에 대한 원죄를 지니고 태어났어요. 그래서 관객들은 감정이입이 더욱 잘된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17) 극장을 벗어나 공연을 많이 했지요?
네. 그런 경험이 꽤 있지요. 김남조 시인의 시화전이나 한국 문인화의 대가이신 창현 박종회 선생님의 전시회, 방송 및 각종 축제, 출판기념회 등에서 의뢰가 오면 종종 하기도합니다.
18) 조명이나 영상 등 무대메커니즘의 활용에 적극적이더군요.
안무를 시작하면서부터 무대구성과 조명디자인을 염두에 두는 편이죠.
최근에는 무대설치보다 영상을 더 많이 활용하고 있어요.
즉 다양한 무대메커니즘의 활용을 극대화 하려는 시도이죠.
19) 전통춤은 안 추나요?
이매방 선생님께 전통춤을 사사 받기도 하고, 강습회를 통해 정재와 민속춤을 두루 익혔지만, 한 가지도 제대로 못하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것 같아 전통춤으로는 당분간 무대에 서지는 않을 작정입니다.
20) 서울시립무용단에서도 활동했지요?
배정혜 단장님과 임학선 단장님께서 재임하시던 시절 2년 6개월 동안 단원으로 활동했습니다.
21) 궁극에는 어떤 작품을 남기고 싶은가?
관객이 즐겁거나 흥미롭거나 감동받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3. 관객을 향한 배려
파워코리아 2015.4 p61~63 (지윤석 기자)
그의 온 몸에서는 언제든지 시(詩)와 음악, 춤과 색채가 뛰어 나올 준비가 되어 있다. 그 이유는 삶 자체가 예술이며, 무용이고 또한 그가 꿈꾸는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의 무용은 시(詩)이자 철학적 사유이며, 사색의 몸짓이다. 그가 쓰는 시(詩)는 외로운 날의 일기와도 같은 기록이지만 단순히 외롭거나 아픈 것만은 아니다. 아픔과 외로움을 넘어서려는 아름다운 노력은 밝은 채광을 통해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삶 자체가 무용을 닮았는지, 그의 무용이 삶을 닮았는지 그 답은 글을 통해 의미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최진용(전/국립극장장 관장, 의정부에술의 전당 사장)
김종덕 안무가와의 만남이 그저 반가웠다. 첫 연락 이후, 석 달이 조금 넘어가도록 뒤늦게 성사된 서면 인터뷰(올해로 천안시립무용단은 창단 10주년을 맞이한 탓에, 스케줄을 맞추기는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라는 이유를 제외하고서라도 그랬다.
그저 반가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단 하나. 비전문인인 기자에게 무용은 아직도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는 분야 중 하나이지만 김종덕 안무가를 통해서는 좀 더 무용을 편안하게 이해받을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인으로서 참 감성적인 사람, 누군가는 그를 애칭으로 ‘어린 시인’이라고 불렀다던 지난 날, 습관처럼 글을 즐기는 무용가라는 사실만으로 그는 충분히 한번쯤 인터뷰를 하고 싶은, 아니 인연을 맺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 감성에 기자는 이끌렸다.
그렇게 그의 삶의 전부가 되었다.
“저는 지나치리만큼 혼자 잘 지냅니다. 그런 탓에 홀로 사색하는 시간도 많고 독서나 글쓰기도 자주하는 편이죠. 따로 작품구상을 위해서는 영화나 공연 및 유물전시를 즐기기도 합니다. 최근에 관람한 공연은 세계적인 무용가 아크람 칸의 ‘데쉬’였고 전시는 쿠사마 야요이 특별전, 김중만 사진전, 그리스 로마 유물전 등을 관람했었어요. (관람 폭이 조금 넓은 편인 것 같아요.) 다양하게 보는 편입니다. 사진전부터 설치미술에 이르기까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무형의 자산인 동시에 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하기에 따로 구분을 두지는 않아요.” 다재다능했던 그의 나이 열아홉, 한참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았던 시기였다. 누군가는 대문호가 되리라 예상했고, 누군가는 연예인, 또 누군가는 스포츠선수가 될 것이라고 조언해주었기에 정작 본인도 예정된 미래가 기대되었으리라. 하지만 삶은 늘 그렇듯,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 그것을 열아홉의 김종덕은 받아들여야만 했다. 힘들었던 환경 속에서 대학을 포기하고 방황하던 시기, 문득 연극배우가 되기 위해 뒤늦게 시작했다던 무용은 그의 삶의 전부가 되었다. 적어도 춤을 추는 동안에는 희열을 통해, 그토록 잊히지 않던 외로움과 고통을 함께 잊을 수 있었기에 무용은 그의 삶에 정말 고마운 존재였다. 결과적으로 그가 지금처럼 다양한 작품을 감상하고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 국문학을 전공하고자 했던 그가 어릴 적 닿지 못했던 첫 관문에서부터 그리 멀지 않게 생활하고 있는 현재 역시, 모두 무용 덕분이었다.
관객을 배려한다는 것
‘예술가는 철저하게 관객을 배려해야 하는 것이다.’ 그간 김종덕 안무가를 취재했던 기사 중, 가장 관심을 갖게 되었던 글귀였다. 현대사회에서 무용가로 활동한다는 것에 대한 호기심, 더불어(장인과 비슷한 의미로) 전통을 보존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일종의 고집 같은 것들이 그의 마음에도 존재하는지 궁금했다. “예술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죠. 시대가 변하면 언어도 변하기 마련입니다. 한국전통춤 역시 창작된 그 시대에 속한 예술을 뜻하는 말이지, 현대인을 대상으로 무조건적으로 수용되어져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관객과 소통하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우리전통춤의 정서나 원리를 시대에 맞게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미이죠.” 정리하자면 그가 이야기했던 배려는 곧 발전을 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관객을 대상으로 그 시대의 춤 언어를 적극 활용하여 ‘소통’하고자 하는 것이 취지이기에 관객을 기준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은 적극 수용한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다. 무조건적인 받아들임 또는 변화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덧 봄, 새롭게 접근하는 춘향전
2015년 4월 10일, 천안시립무용단은 김종덕 상임안무자의 지휘 하에 천안시청내(內) 봉서홀에서 춘향가의 재해석을 바탕으로 한 ‘색춘향(色春香)'을 공연한다. 어쩌면 앞서 이야기한 ’관객에 대한 배려‘가 담긴 작품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공연은 가장 그 의미에 충실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월하정인도>와 같은 에로틱한 그림이 그려질 수 있었던 데에는 신윤복이 살았던 영·정조 시대의 사회 분위기도 한 몫 했을 것입니다. 그 당시는 서민들이 자기 생활에 대한 관심과 현실 직시가 문화·사회적인 제반 분야에 미치기 시작한 때이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춘향전]이 창작되어진 것도 이 시기이며, 숙종 이후에 비롯된 판소리도 이 시기에 그 예술적 지위를 확립하고 서민의 애환을 실어 주는 가극(歌劇)으로 자리 잡았던 것 이죠. 보다 인문학적인 접근과 고전을 재해석할 것으로 기대되는 천안시립무용단의 이번 공연이 대중과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흥미로운 무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가 준비하는 이번 공연은 월하정인도의 중첩된 이미지를 사용하여 그가 기대한 인문학적 접근과 전통춤의 재해석을 바탕으로 무대와 관객의 새로운 관계설정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이며 춘향과 몽룡의 만남과 사랑을 다양한 구성과 연출로 선보일 예정이다.
4. 별에서 온 그대,
열정과 에너지 또한 뜨겁고 강하다.
[인물 초대석] 주간인물 2014.11 p38~39 (임혜진 기자)
우리 춤의 현대화를 위해 장르간의 경계를 과감히 무너뜨리는 무용가가 있다. 무용계의 별종으로 통하는 김종덕 대표. 그의 춤은 전통의 변용이나 재현이 아니다. 그는 한국무용이 전통을 바탕으로 시대를 반영하는 동시대의 예술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사소한 사건들을 작가 관점에서 어떻게 관객에게 각인시키고 흥미롭게 할 수 있느냐를 고민한다. 이에 주간인물은 우리 춤의 근원을 알기 위해 동양사상을 공부하고, 글을 즐겨 쓰는 무용계의 시인인 김종덕 대표를 만나 가슴속 불타는 예술혼을 조명해보았다.
무용계의 별종, 그는 천상예술인
“늦은 나이에 가족들 몰래 시작한 무용이라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춤추는 순간 느끼는 큰 희열 때문에 외로움과 고통도 잊을 수 있었지요.” 고등학교 시절, 국어선생님의 지도와 관심으로 국문학과에 합격했지만 아버지의 병환과 집안 환경 때문에 학교를 포기해야만 했던 그는 연극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 일을 계기로 무용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식구들 몰래 학원을 다녀 5개월 만에 무용학과에 합격하였습니다. 아버님께서는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무용을 전공한다는 사실조차 모르셨고, 가족들은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이라 묵인을 하거나 눈치조차 채지 못했습니다. 부족한 실력을 향상시켜야만 장학금을 탈 수 있었고, 과외와 학과공부를 하느라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몸을 혹사시켜 병원에 실려간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대학원을 마치고 서울시립무용단에 들어가게 된 김 대표는 타성에 젖을 것이 두려워서 그만두고 2001년에 ‘창작춤집단 木’을 설립했다고 한다. “장르의 구분을 없애고 동시대성을 추구하기 위한 단체였습니다. 되돌아보니 독립무용가로 생활한다는 것은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이었지요. 아무튼 그런 과정이 밑거름이 되어 척박한 춤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지 않았나싶습니다.” 그는 서울시립무용단을 거쳐 창작춤집단 木대표로 활동하다 2014년 6월23일 천안시립무용단장으로 부임했다. 사실 그는 천안시립무용단의 최초 공채 단장이다. “천안시립무용단은 천안시민의 문화·복지의 일환으로 시민의 예술작품 향유하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단체입니다. 따라서 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동시대성과 천안을 소재로 창작되어진 작품을 통하여 천안시민의 자긍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100년의 꿈’
올해는 항일 무장투쟁의 전사들을 배출한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년 하고도 두 해가 되는 해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산류천석(山溜穿石/산에 흐르는 물이 바위를 뚫는다)’이라는 명언을 남기며 광복되는 그날까지 투쟁할 것을 독려한 석오 이동녕 선생.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신적 지주이고, 백범 김구 선생이 존경했던 인물이며, 윤봉길 의사의 마지막 일기장에서도 이동녕 선생의 초상화가 발견될 만큼 독립군 양성에 힘썼던 천안의 인물이다. “저는 애국지사의 고장인 천안을 새롭게 재조명하고, 한국창작춤의 동시대성과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특별한 공연을 준비했습니다. 12월 4일과 5일에 공연되는 ‘100년의 꿈’은 평생 대한민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석오 이동녕 선생의 독립의지와 민족애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내년이면 광복 70주년으로 나라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공감하는 의미 있는 공연이 될 것이며, 앞으로도 꾸준히 다듬고 보완하여 후손들에게 이 땅과 이 나라가 얼마나 많은 선열들의 노력으로 지켜졌는지를 깨우치는 학습의 장(場)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이번 작품은 장르간의 경계를 무너뜨린 과감한 시도와 역동적인 에너지 그리고 드라마를 느낄 수 있다. 김성옥 시인의 대본을 통한 서정성과 논리적 구성을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고취시켰고, Horizont(Back Drop/지름 15m 원형)와 Dance floor를 흰색으로 제작하여 영상과 조명의 효과를 극대화해 시·공간성을 다변화할 것이다. “‘무용은 신체를 재료로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시·공간성의 예술’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무용은 과학과 기술을 포함하며, 인문학을 바탕으로 음악, 미술, 연기, 연출, 영상, 의상을 포함하는 총체예술이기도 합니다. 특히 작품구성과 주제를 선정하고, 텍스트를 정리하는 것은 문학에 기초를 두어야하며, 사상과 철학, 인접예술분야와도 긴밀한 협력이 이루어져야 가능한 분야이기도합니다.” 안무와 연출, 무용수, 칼럼리스트, 모델, 방송·패션쇼 연출, 기획, 홍보뿐만 아니라 강의를 하며 시(詩)와 대본도 쓰는 그는, 춤의 영역 확장과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통섭이나 융합에 대한 필요성을 알리고 있었다.
우리의 전략은 현재의 관객을 대상으로 동시대의 춤 언어를 적극 활용하는 것입니다. 즉 경계구분의 철폐, 역동적인 에너지, 드라마적인 요소 등 관객을 배려하고 흥미롭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적극 수용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예술가는 철저하게 관객을 배려해야합니다.”라고 말하며 인터뷰를 마치는 천상예술인, 김 대표. 주간인물은 그의 뜨겁고 강한 에너지를 느끼며 앞으로 한국의 무용계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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