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장례식은 1945년 3월 6일 그의 집 앞뜰에서 거행되었다. 용정중앙교회 문재린 목사가 장례식을 집전했다.
윤동주는 1943년 7월 14일 교또에서 형사에게 체포되어 시모가모 경찰유치장에 감금되었다.
송몽규는 7월 10일에 체포되었다.
윤동주 조부,조모,부모와 동생 광주도 같은 동산 묘원에 묻혔으나 위치를 알지 못한다고 한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살아 있는 유족들이 고인들의 생몰을 함께 적어 기린다고 하였다.
1944년 4월 1일 윤동주의 형이 확정되었고, 송몽규의 형은 4월 17일에 확정되었다.
윤동주는 복역 중, 1945년 2월 16일 오전 3시 36분에 소천하였다. 만 27세 2개월의 나이였다.
송몽규는 1945년 3월 10일에 옥사하였다. (만 27세 5개월의 나이였다.)
그러나 송몽규 비석의 기록에 의하면 3월 7일에 옥사하였다.
그의 유해는 명동 장재촌 뒷산에 묻힌 것을 연변의 유지들이 찾아서 용정 동산의 윤동주의 무덤 근처로 이장했다.
(용정중학교 교장 류기천을 비롯하여 교육계와 노인회 조직이 협력하여 송몽규 무덤 찾기를 하였고 1991년 4월 5일에 확인)
해서 김석관 선생이 윤동주와 송몽규의 비문을 짓고 글씨도 썼다.
그들은 1917년 용정 명동촌에서 태어나 1945년 후꾸오까 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그 분들의 빼앗긴, 짓밟힌, 처절하게 슬프고 아프고 억울한 삶의 의미를 누가 알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