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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법사 영어법문>
성현 교육과 범부 교육(Education for Saints or Ordinary People)
중국은 예로부터 성현을 위한 교육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범부를 위한 교육이 부족했습니다. 성현을 추구하는 교육은 현대 중국인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입니다. 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 않으면, 중국의 다음 세대들은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갈 희망이 없을 것입니다.
성현을 바라며, 성현이 되고자 하는 것은 인류의 공통된 아름다운 바람입니다. "모든 사람은 요순이 될 수 있다." "모든 중생은 불성을 가지고 있으며, 불성을 가진 자는 모두 성불할 수 있다." 이는 사람들에게 무한한 희망과 힘을 줍니다.
성현 교육과 범부 교육의 차이는 목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의 현실적인 수준에 있습니다. 성현 교육에서 교사는 반드시 성현이어야 하며, 범부가 성현을 길러낼 수 없습니다. 학생이 비록 즉시 성현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성현이 될 자질을 갖추어야 합니다. 나무는 비록 의자가 아니지만, 의자가 될 수 있습니다. 물은 절대 의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성현 교육을 추진하려면, 교사와 학생이 자신을 성현 또는 준성현으로 자처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마치 연극을 하는 것처럼 아무리 진짜처럼 연기해도 가짜가 될 것입니다. 성현의 교육을 아무리 잘 가르치고 수행해도, 결국은 표면적인 일에 불과하여 가짜 성현이 됩니다. 보통 사람은 성현이 될 소질과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일반 대중을 위한 범부 교육에서는 우리의 능력이 보통 사람의 한계와 불완전한 본성과 업장에 의해 제약받고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절망 속에서 우리는 어떤 위대한 자비로운 힘이 우리를 구해주기를 희망합니다. 우리는 이 힘에 우리 삶을 완전히 맡기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노력으로 새로운 삶을 얻기 위한 방법입니다.
평범한 사람의 본성에 대해 교육이 필요할까요? 불행히도 그렇습니다. 오만과 위선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불완전한 본성을 통찰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선행과 공덕으로 가장하여 성현의 모습을 흉내 내는 데 익숙합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한계를 알아야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 인식을 이미 잃어버렸습니다.
동서양을 비교하자면, 서양의 기독교는 범부 교육을 지향하며 원죄론을 제창합니다. 반면 동양의 유교 문화는 성현 교육에 속합니다. 불교에서 성도문은 완벽한 성현 교육에 속하며, 정토종은 전형적인 범부 교육에 속합니다. 불교는 성현과 범부를 위한 교육이 모두 똑같이 숭고하다는 점에서 독특합니다. 이들은 갈등 없이 공존하며 서로 조화롭습니다. 각 교육의 방법, 이론, 성취수준, 공덕과 이익이 매우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습니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교육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1. 현실에 부합합니다. 모두가 범부이지만,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깊이 탐구하지 않았습니다. 진실은 모든 진리 추구의 기초입니다. 첫걸음이 잘못되면, 이후의 모든 걸음도 잘못됩니다. 진리를 추구하는데 가장 큰 적은 잘못된 행위가 아니라 거짓입니다.
2.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교육 뒤에는 대자대비한 힘이 있어서, 죄 많은 평범한 사람들을 포용하고 정화하며 구제해 줍니다. 그것은 우리를 죽음에서 구해내고 생명을 줍니다. 우리가 어떤 범죄, 한계, 불순함 혹은 어깨에 짊어진 짐이 있더라도, 이 대자대비한 힘에게 우리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내재된 걱정이 사라지면 우리가 사는 사회는 행복하고 조화로운 곳이 될 것입니다.
평범한 존재가 깊이 뿌리박힌 잘못을 스스로 씻어낼 수 있을까요? 탐욕, 분노, 무지를 없애고, 견해와 번뇌의 망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절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성현을 위한 교육은 우리들 대부분에게 막다른 길로 안내하게 됩니다.
3. 죽음을 넘어 새로운 생명을 얻고 범부가 성현이 됩니다. 정토종에서는 범부 교육이란 자신의 죄 많은 생사 범부임을 인정하고,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없음을 먼저 확신하는 깊은 믿음을 포함합니다. 이렇게 하면 의심 없이 부처님의 원력을 타고 반드시 왕생하여 성불할 수 있습니다.
업장 많은 평범한 존재가 자신의 내면 깊숙이 숨겨진 죄를 부처님의 빛 아래 완전히 드러내지 않는다면 그의 업장은 빛을 받아 사라지지 않게 됩니다. 그의 더러움은 드러나지 않은 채 숨겨져 있으며 부끄러움도 없이 여전히 강하게 저항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다양한 가짜 미덕(탐욕, 분노, 무지에 물든 세속적이고 결점 많은 공덕)을 빠르게 소환하여 포장합니다. 무명의 독약은 그러한 포장 안에 꽉 차 있어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 다음 포장 꾸러미를 가장 아름다운 예술로 장식하여 성인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무슨 도움이 될까요? 마치 오물로 가득 찬 꽃병과 같습니다.
범부가 성현이 되는 것은 매우 힘들고 어렵습니다. 용문(龍門)을 뛰어넘은 잉어처럼 극소수의 사람들이 범부의 경계를 뛰어넘어 진정한 성현의 자재한 영역에 도달하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랑이를 그리려다 개를 닮은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성현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범부로서도 제대로 될 수 없게 됩니다. 얼굴에 코와 눈이 없고, 팔다리를 뻗지도 굽히지도 못하는 왜곡된 모습이 됩니다. 내적으로 억압되고 왜곡되며, 외적으로는 혼란스럽고 흐릿한 괴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순수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견딜 수 있으며, 선악을 구분할 수 있는 평범한 존재가 되고자 한다면, 우리는 아미타불을 믿고 그분의 구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미타불의 구제를 믿는 것은 우리 안의 불성을 깨우는 것이며, 이는 성인의 경지에 접근하고 불도를 성취하는 데 필수적인 전제 조건입니다.
우리는 성인인 척 하지 말아야 하며, 범부를 깎아내리지도 말아야 합니다. 공자의 말씀을 빌리자면, “군자는 그 지위에 맞게 행동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우리의 위치에 만족하고, 범부의 신분으로 성실하게 아미타불의 명호를 염해야 합니다. 진심으로 부처가 되기를 발원하는 것은 성현이 되기를 발원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아미타불 명호를 칭념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부처와 성현이 되는 가장 현실적이고 확실한 지름길로 많은 허위와 위선을 덜어줍니다.
Education for Saints or Ordinary People?
What China has lacked since ancient times is education for ordinary people, not that for saints (virtuous people of exemplary moral standards).
Education for saints is a burden that contemporary Chinese can no longer bear.
China will have little hope if this burden is not removed, with successive generations of its children being unable to hold their heads high, walk tall and move forward.
To be a saint or a virtuous person is a common aspiration of mankind. Sayings such as these instill great hopes and strength in people: “Everyone can be as virtuous as the two ancient sagely emperors Yao and Shun” and “All sentient beings have Buddha-nature and can become enlightened.”
The difference between education for saints and that for ordinary people lies in how the stakeholders are positioned, not in the educational objective.
In the former, those who teach must be saints themselves, as ordinary people can never nurture saints. The students, though they are not yet saints, must have the aptitude and capability of becoming one. For example, a piece of wood, although not a bench, could be made into a bench, whereas water can never become one.
Education for saints today is bound to fail unless both the teachers and the students are sure of their capabilities and pride themselves in being saints and saints-to-be respectively. If not, the whole thing will be like a stage play which, despite its brilliant performance, remains a world of make-believe. So it is with education for saints. No matter how good and refined the teaching is, sadly, it can only be a façade: ordinary beings simply do not have the aptitude and capacity to be a saint.
As to education for ordinary people, we must recognize that our capability is that of ordinary beings, with the immutable limitations, iniquitous nature and karmic hindrances of humans. In utter hopelessness and deep sorrow, we yearn for some great and compassionate power to free us from a state of desolation. We are willing to entrust our lives completely to this power. This is our last-ditch effort to obtain a new lease on life.
Does a person need to be educated about ordinary human nature? Unfortunately yes. Due to arrogance and hypocrisy, people fail to gain any insight into their iniquitous nature as ordinary beings. Customarily, they don the costumes of saints and act in a virtuous manner through a multitude of meritorious deeds. It is important that we should know our limitations. However, these days no one seems able to do this anymore.
Comparative studies of the East and West suggest that the Christian doctrine of original sin in the West amounts to education for ordinary people, while the dominant Confucianism in the East can be said to be education for saints. In Buddhism, the schools of the Sacred Path represent perfect education for saints, while the Pure Land school is a typical kind of education for ordinary people.
Buddhism is unique in that its education for both saints and ordinary beings are equally sublime. They exist side by side without conflict, and are compatible with each other. Their respective methodologies, theories, levels of attainment, merits and benefits are all defined in an extremely clear manner.
What are the advantages of education for ordinary people?
1. It is realistic. We are all ordinary beings although we lack the ability to recognize our ordinary nature and have not studied it deeply. Reality is the foundation of all truths. If the first step is false, all subsequent steps are false. The greatest rival of truth is falsehood, not wrongdoing.
2. It sets our hearts at ease. Behind education for ordinary people is a great and compassionate power which embraces, purifies and delivers iniquitous ordinary people. It saves us from dying and gives us life. Whatever offenses, limitations, impurities, burdens or chips on our shoulders we have, we can pour our hearts out to this great and compassionate power. With our visceral worries removed, the society we live in will become a happy and harmonious place.
Is an ordinary being able to expunge his own deep-rooted wrongdoings? Can he eradicate greed, anger and ignorance, and free himself from the delusions of views and thoughts? Certainly not! As such, education for saints is a dead end for most of us in this day and age.
3. It gives us a second life, transforming us from ordinary people into saints. As far as the Pure Land school of Buddhism is concerned, education for ordinary people involves two kinds of deep faith: firstly, firmly believing that we are iniquitous ordinary beings subject to endless rebirth and, since time immemorial, have died and been reincarnated, without any hope of ending such cycles; and secondly, deeply trusting that only Amitabha Buddha can deliver us through the amazing power of his 48 vows. If we are resolute in these beliefs, we are certain to be reborn in the Pure Land and attain Buddhahood without fear or worry.
An iniquitous ordinary being who fails to expose fully her innermost offenses under the light of the Buddha is not letting her transgressions bathe in sunshine and be illuminated by it. Her defilements remain unrevealed, are in hiding and unashamed, and are still trying to put up a fierce resistance. In desperate attempts to keep her wrongdoings under wraps, she quickly invokes a multitude of feigned virtues (none other than worldly flawed merits infused by greed, anger and ignorance) to package them. The venom of delusion sits tightly inside the package without being disturbed one bit. She then decorates the parcel with the most exquisite art to portray a saintly look. But what good could this bring? It is like a beautiful vase filled with excrement.
It is difficult and exhausting for ordinary people to pose as saints. With the exception of a very few who have successfully jumped beyond the bounds of ordinary beings, like the carp that leapt over the Dragon’s Gate (a Chinese proverb meaning a brave and successful attempt) and arrived at the defilement-free realm of the saints, most of us simply end up with a pathetic travesty, trying to draw a tiger, which only looks like a dog (meaning that if you try to copy a genius, you will only make yourself ridiculous). Not only do we fail to become saints, we cannot even be proper ordinary beings as we are completely distorted: a face without nose and eyes; limbs that cannot stretch or bend. In short, a monster with a suppressed and twisted mind and a nebulous and blurry appearance.
If we want to become ordinary beings who are innocent, and able to withstand any situation in life and also to tell good from bad, we must have faith in Amitabha Buddha and accept his deliverance.
Having faith in Amitabha’s deliverance will awaken the Buddha-nature within us, a prerequisite to gaining access to the realm of saints and even attaining Buddhahood.
We should neither pretend to be saints, nor run down ordinary people. To borrow from Confucius: “An honorable man acts in accordance with his station in life.” As ordinary people we should be content with our place, reciting the name of Amitabha Buddha in such a capacity scrupulously. Devoting ourselves whole-heartedly to aspiring to become a Buddha means we are aspiring to become saints as well. Hence Amitabha-recitation is the most realistic approach and surest shortcut for ordinary people to become Buddhas and saints, saving us much fakery and hypocri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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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성현 교육에서 교사는 반드시 성현이어야 하며, 범부가 성현을 길러낼 수 없습니다
오만과 위선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불완전한 본성을 통찰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선행과 공덕으로 가장하여
성현의 모습을 흉내 내는 데 익숙합니다
성도문은 성현교육 정토문은 범부교육 좋습니다
명호를 칭념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부처와 성현이 되는 가장 현실적이고 확실한 지름길로 많은 허위와 위선을 덜어줍니다.
성현을 흉내내는 수 많은 집단을
비판하며 범부를 인정하고
명호를 의지하는 정토종의
탁월함을 멋지게 포장하신 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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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이 망념범부가 "부처와 성현이 되는 가장 현실적이고 확실한 지름길"은 당연히 아미타불의 본원칭명 칭명염불 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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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오늘도 기와 법에 대한 깊은 믿음으로 염념상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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