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말
김세연
나는 말을 잘 못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이나 마음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못한다. 어떤 단어를 사용했다가는 뜻이 왜곡될 것 같아서 혹은 순간의 감정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단어를 찾지 못해서 나는 대부분의 경우 상황과 맞지 않는 말을 한다. 뜬금없이 하늘을 보고 맛있겠다고 하거나 누워있는 애인의 얼굴을 보고 살아있냐고 묻는 식으로 말이다. 다시 말해 2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사용해왔음에도 나는 아직까지 이 언어를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고등학교 3학년 때 내가 글을 쓰겠다고 나선 것은 모두에게 꽤 웃긴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쇼핑몰을 운영했다. 딱히 옷에 커다란 애정이 있다거나 해서는 아니고 단순히 집에 돈이 없어서였다. 학교를 마치면 곧장 동대문으로 옷을 떼러 갔고 일이 끝난 새벽 4시면 울산으로 돌아왔다. 사실 그 때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이돌 스타였지만, 뭐 어차피 그리 간절한 것도 아니었다. 꿈이나 미래 따위에 관심을 기울이기에 우리 집안 형편은 여유롭지 못했다. 누구라도 빨리 사회에 나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을 열다섯의 나는 온몸으로 느끼며 자랐다. 꿈은 나의 입에 밥을 넣어주지 않을 것이었고, 입에 밥이 들어오지 않는 행위는 우리 가족에게 있어 전부 사치였다.
주유소 영업, 기름 배달 기사, 택시 운전기사, 장의사, 보일러 수리 기사, 전단지 제작자……. 이 수많은 직업들 중 어느 것도 아빠의 꿈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빠는 꿈을 제외한 모든 활동을 통해 나의 입에 밥을 넣어주었다. 그러니까 아빠는 자신의 꿈과 나의 식사를 맞바꾼 셈이었다. 아빠의 미래와 맞바꾼 밥. 그렇게 생각하면 왠지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으므로. 나는 지금의 아빠처럼 어쩔 수 없는 것을 인정하는 쿨-한 어른이 되기로 했다. 하찮은 것에 신경 쓰지 않는 쿨-한 어른.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는 쿨-한 어른 말이다. 그래서 나의 꿈이었던 아이돌 스타는 그 이름답게 딱 나와 별의 거리만큼 멀어졌다. 딱히 아쉽지는 않았다. 어차피 나는 텔레비전 속 아이돌 스타들처럼 잘 웃지도 못했다.
그렇게 약 3년 반 가량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나에게 있어 꿈이란 자면서 꾸는 것 정도가 되었고 나는 그런 생활에 익숙해진 채로 살았다. 꿈을 빼더라도 어느 정도의 미소는 남았기 때문에 괜찮았다. 나는 엄마에게 가죽 장갑을 사줄 수 있었고 아빠와 함께 먹은 칼국수를 계산할 수 있었다. 간간히 신나거나 보람찬 일도 있었다. 돈을 번다는 건 꽤 괜찮은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예민함의 절정’이라 불리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우리 집의 가난은 절정을 맞이하게 되었다. 하루아침에 우리 집의 주요 노동력이었던 내가 잠정 은퇴를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담임 선생님의 “세연이는 작가가 되는 게 어떨까?”라는 말 한 마디. 그러니까, 꿈이라는 이름의 사치가 또 한 번 나를 유혹한 것이었다. 그리고 열아홉의 나는 그 유혹에 넘어갔다. 유혹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 유혹에 넘어가면 모두가 힘들어질 것을 알았지만, 알면서도 넘어갔다.
한 번도 입술이 닫히지 않는 발음의 단어. 작가.
금방이라도 웃을 것 같은 입모양으로 발음하게 되는 이 직업을 내가 가지게 된다면, 언젠가의 아이돌 스타처럼 나도 잘 웃을 수 있게 될 것 같았다. 근거나 가능성 같은 것은 없었지만 왠지 그냥 그럴 것 같았다. 나는 그늘 한 점 없이 웃는 나의 미래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 날 오후 쇼핑몰을 폐업했다. 쇼핑몰을 없애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아무도 모르게 혼자 미소를 지었다. 그 날 엄마와 아빠는 웃지 않았는데도, 나는 여전히 고시원에서 살고 있었는데도, 입 꼬리를 올려서 억지로 웃어 보았다. 그런 나를 본 아빠는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세연아, 사랑해. 그 말을 들은 나는 앞으로의 내가 영원히 제대로 웃을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며칠 뒤 아빠는 고시원에 콩나물 무침과 콩자반을 싸들고 왔다. 그 두 가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었다. 이 좁은 곳에 뭐 하러 들어오느냐는 내 말을 듣고도 아빠는 굳이 방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아빠의 손에 들린 반찬통 뚜껑에는 매직으로 커다랗게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김세연. (외 손대지 마시오.) 아빠는 책이며 수건 같은 것들을 손으로 쓸어보다가 나를 향해 씩 웃어보였다. 마치 어릴 적 만화에서 보았던 용사처럼, 쿨-하게 말이다. 나는 그런 아빠를 보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원래 용사는 박수를 받거나 환호성을 들어야 하는데. 하다못해 멋지다거나 잘생겼다는 말이라도 들어야 하는데. 나의 용사, 쿨-한 아빠는 반드시 조용해야만 하는 고시원에서 아무 말도 듣지 못하고 뒤돌아섰다.
아빠, 사랑해.
그 때 나는 아빠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어야 했다. 어릴 적 내가 씹다 뱉은 음식은 그게 무엇이든 다 받아 먹어주었던 아빠에게, 놀이터에서 잃어버린 반지를 몇 시간이고 찾아 결국 내 손에 끼워주었던 아빠에게, 하루아침에 돈 벌기를 그만둔 나의 선택을 응원하며 사랑한다고 말해준 아빠에게 나도 사랑한다고 말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했고, 아빠가 돌아간 그 날 저녁 뜬금없이 혼자 노래방엘 갔다. 그리고는 내가 아는 모든 노래 중 ‘밥’이라는 가사가 들어간 노래만 골라 불렀다. 밥을 차렸어, 밥이 좋아, 밥을 주세요, 밥만 잘 먹더라, 밥은 챙겨 먹고 다니니.
노래방을 나와서 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돌 스타가 되기 위해 오디션을 보러 다닐 때 함께 했던 친구였다. 이 시간에 갑자기 웬 일이냐는 그 애에게 나는 다짜고짜 물었다. 네가 그랬지. 나는 윤미래 노래를 제일 잘 부른다고. 야. 세중아. 윤미래 노래 중에 밥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노래가 있냐? 그렇지? 없지? 윤미래도 밥은 모를 걸…….
전화를 끊은 뒤 나는 고시원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내 이름이 적힌 반찬통이 담긴 공용 냉장고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밥을 먹기 위해 나온 사람 몇이 나를 쳐다보다가 이내 식탁에 앉거나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아무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으니까.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나는 웃었다.
수필_아무 말.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