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푸코의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1. 1976년 푸코가 콜레쥬드프랑스에서 강의한 내용을 묶은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권력과 정치 그리고 앎의 문제를 다룬다. 푸코는 ‘권력’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 대신 새로운 담론으로, 내용적으로는 ‘전쟁담론’과 ‘인종주의’를 선택했고, 방법론적으로는 권력에 대한 법적인 접근이 아닌 ‘정치적-역사적 담론’으로서 ‘계보학’적인 방법을 권력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접근방법으로 채택한 것이다. 푸코는 계보학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앎들을 과학에 고유한 권력의 위계질서 속에 기입하는 기획에 비하면, 계보학은 역사적인 앎들을 탈예속화하고 자유롭게 하는 기획이라고, 달리 말하면 통일적이고 형식적이며 과학적인 이론적 담론의 강제에 대립하고 투쟁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획의 일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푸코는 ‘권력’에 대한 대표적인 두 주류였던 계약론을 바탕으로 한 ‘자유주의’ 담론과 경제적 토대를 배경으로 한 ‘맑스주의’ 담론을 ‘경제주의’라 비평하면서 ‘권력에 대한 분석모델이나 이해가능성의 격자로서의 전쟁론’을 도입하고, ‘정치가 전쟁의 연장’이라는 명제 속에서 권력과 정치에 대한 전쟁담론을 전개한다. 푸코가 ‘전쟁’을 중시한 이유는 다음과 같은 진술 속에 나타난다. 첫째, “우리 사회와 같은 사회에서 기능하듯이, 권력관계는 원래 역사적으로 확정될 수 있는 어떠한 시기에 전쟁 속에서, 또한 전쟁에 의해 확립된 일정한 힘관계에 정박되어 있습니다.” 둘째, “시민평화의 내부에서, 정치투쟁이나 권력에 관련된 권력에 대한, 권력을 위한 항쟁이나 한쪽의 증대 전복 등, 힘 관계의 변경 같은 이 모든 것은 하나의 정치체제에 있어서 전쟁의 계속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셋째, “최종 결정은 전쟁에서 즉 무기가 최후의 판관이 되는 힘겨루기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 최후의 전투가 정치를 종식시킨다는 것, 혹은 달리 말하면 최후의 전투가 지속된 전쟁으로서의 권력의 행사를 최후에 최후에서만 정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3. 푸코는 서양 정치철학사의 흐름 속에서 홉스와 마키아벨리의 정치이론의 추상적 의미를 비평하면서 정치의 구체적 성격은 실제의 전쟁 상황에서 분석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서구에서 ‘전쟁담론’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종교전쟁이 끝난 17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다양한 전쟁의 전략과 전술이 정치와 권력을 형성하는 주요 동력으로 작동하였다. ‘전쟁으로서의 정치’라는 개념은 “정치권력의 역할은 이 힘 관계를 일종의 조용한 전쟁에 의해 제도들, 경제적 불평등들, 언어, 심지어 각자의 신체에 계속 기입해 넣으려고 하는 것, 달리 말하면 정치란 전쟁에서 드러난 힘의 불균형을 승인하는 것이자, 갱신하는 것”이다.
4. 정치와 권력에 대한 ‘전쟁담론’에 강력한 요소가 추가된다. 그것은 ‘인종주의’이다. 인종주의는 한 인종에 의한 다른 인종의 정복과 예속화를 뜻하는 것으로 이 담론의 의미는 “우리는 사회에 맞서 ‘우리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뜻에 반해 우리 자신이 구성하고 있는 중인 이 다른 인종, 이 ‘하위-인종’, 이 ‘대항-인종’의 모든 생물학적인 위협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종주의는 경계 밖의 다른 인종뿐 아니라 내부의 다른 집단에게도 작동하는 프레임으로 작용한다. 이렇게 전쟁담론과 인종주의가 결합되면서 정치와 권력은 상대에 대한 철저한 복종과 탄압으로 이행되었으며 그 정당성을 부여하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인종과 인종의 갈등은 항상 사회적 보수주의의 전반적 전략으로 퇴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5. 권력관계와 정치체제 속에서 ‘저항’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저항은 ‘통치하는 권력’이나 ‘지도하는 권력’에 대한 저항이라는 특정한 의미를 가지며, 어떤 이념이나 정언적 명령에 따른 투쟁이 아니라, ‘참기 힘듦’에서 시작한 ‘감성적’ 요소가 중요한 동력이 된다. 이러한 투쟁에서 정치의 또 다른 가능성이 생겨나는 것이다. 투쟁은 국지적으로, 일상적으로, 두드러지지 않는 형태로 행해지는데, 이런 구체적이고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투쟁들에서 무엇이 관건이고 전선이 어디에 있으며, 어떤 도구가 사용되는지 등이 문제인 것이다. 푸코는 “정치를 절대로 하지 말라”라고 했다. 이것은 투쟁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정치적 논쟁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푸코는 “논쟁에서 어떤 새로운 생각이 생겨난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라고 말했는데, 논쟁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동맹을 규정하고 동료를 모으며 이해관계와 의견을 집약하고 당파를 대표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6. 푸코가 강조한 접근은 문제화의 방식과 ‘앎’에 대한 철학적 태도이다. 정치와 저항의 문제에서 우선 요구되는 것은 ‘문제화’인데, 이것은 “정치에 문제를 제기하는 듯한 사실, 실천, 사유의 영역을 수립하는 것”이다. 푸코에게 핵심은 ‘윤리로서의 정치’이다. 법적인 정당화가 아닌 참을 수 없기 때문에 지각, 행동의 방식에 변화를 가져오며 감성과 관용의 형식을 변형시키는 작업이다. “통치와 그것에 대한 불관용, 저항이 정치를 산출한다. 이것은 역사에 대한 독해 틀인 동시에 현실에 대한 변혁의 계기이기도 하다.” 이때 필요한 것은 철학적, 이론적 작업의 중요성이다. 푸코는 변혁을 위해서는 이론적 작업을 유효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가 하는 것은 진실의 정치입니다. 사회학도 역사학도 경제학도 아닌 바로 진실의 정치가 문제인 한에서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 권력 메커니즘의 분석은, 제 머리 속에는 우리 사회에서 전개되는 투쟁, 대결, 싸움 그리고 이 투쟁의 요소인 권력의 전술들에 의해 우리 사회에서 생산되는 앎의 효과들이란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것을 그 역할로 삼습니다.”
7. 푸코가 강조한 권력을 작동시키는 전쟁담론과 인종주의의 극단적 형태는 20세기 중반 ‘나치’의 ‘국가인종주의’였다. 하지만 현재 전 세계의 분쟁과 국내의 정치적 대립을 보면서 푸코의 권력담론이 현 상황을 설명해주는 하나의 관점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상대 세력의 완전한 제거가 나의 생존과 존립에 절대적인 조건이기 때문에 관용과 타협이 실종되는 극단적 사고가 정당화를 얻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파당적 감정으로 숙고의 시간없이 행동과 투쟁의 장으로 들어오는 일은, 결국 파벌 또는 인종들 간의 반복적인 싸움에 불과한 것이다. 푸코는 ‘앎’, 이론적 접근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은 실천의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다. 전쟁에서는 승리가 목표이다. 현재의 권력관계에서 승리를 위해서는 세밀한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전략의 궁극적인 목적은 ‘감성’에 있어야 한다. ‘참기 힘듦’이라는 부정적 상황이 재현되지 않는 환경의 구성, 저항의 감성은 거기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그러한 작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치열한 앎의 투쟁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약간 결은 달리 하지만, 푸코의 견해 속에서 크리슈나무르티가 말했던 문제에 대한 ‘수동적 응시’와의 연결성을 감지한다.
첫댓글 - 권력에 대한 욕구는 모든 것을 정당화 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