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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0일 장마가 시작되면서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더욱이 11일 강수확률 90% 라고 잔뜩 겁을 주던 기상청의 예보로 행사를 접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다 강행키로 했는데, 비갠 하늘 치곤 너무도 멀쩡한 하늘이 열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제의 날씨와 기상청의 예보로 일정을 바꾼 것 같았다. 하지만 오히려 다행스런 현상잉이었는지 모른다. 한꺼번에 4~5백 이상의 사람이 숲길을 걷는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아무튼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스텝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36차 갈맷길 그린워킹은 하절기의 특성을 고려하여 금정산 자락 계명봉 의상대 남산봉의 가장자리 숲길을 따라 일대를 탐방하는 시간으로 했다. 기점은 청룡초등학교로 하였다. 청룡초등학교에서 범어사 어귀교차로를 향하다 경동아파트삼거리에서 범어사 방향 차로를 따라 20분정도 이동하면 성불사와 원효사 안내간판이 나온다. 금어동천길의 들머리인 셈이다. 여기서 부터 맛깔나는 숲길이 열린다. 약 2.2km 정도 오솔길을 따라 가면 금어동천 계곡이 나오고 얼마 가지 않아 범어사 매표소가 나온다. 범어사 매표소에서 등운곡으로 빠져 편백숲을 지나 상마마을을 향해 올랐다 만성암과 청초집 사이 테크를 통해 남산봉 자락 숲길로 빠져 사기점못 옆 외대운동장에 이른다. 약 8km 정도로서 양탄자를 깐듯 편한 코스다. 초대시인들의 시낭송과 부산일핀로제의 공연이 있었다. 오후 일정은 외대운동장을 지나 구서동 우성아파트 쪽으로 마무리한다.
청룡초등학교를 나와 계명봉 자락으로 향한다. 도로변 신리마을 당산나무 한 그루 동민의 각별한 관심 속에 서 있다. 신리마을은 ‘새로 생긴 마을’이란 뜻으로 1940년대 북면 사무소가 기찰(부곡동)에서 팔송으로 이전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팔송정은 현대자동차학원자리로서 여덟그루의 소나무가 정자와 함께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범어사 어귀 교차로까지는 약 5분 거리에 있다. 방향을 좌회전하여 경동아파트쪽으로 이동한다. 모퉁이에 찐빵집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찐방집이 입소문을 타고 번지드니 제법 유명세를 탄다.
금어동천길은 경동아파트방향과 범어사 순환도로쪽 둘 다 이용이 기능하다. 초하의 볕을 피해 그늘이 있는 순환도로쪽을 타고 오른다. 약 10분 쯤 언덕길을 휘감아 오르면 성불사와 원효사 안내표지판이 서있는 갈림길이 나온다. 입구에서 10m 정도 들어서면 좌측 능선 오솔길이 열린다. 노폭은 1.5m 정도이며 리기다소나무가 참나무류와 어울린 길이다. 5분정도를 다시 걸어 가면 네갈래 길이 나온다.
숲바닥은 거지덩굴과 마삭줄, 덩굴딸기가 군락을 이루고 무덤가에는 엉겅퀴가 피기 시작했다. 가끔씩 뻐꾸기가 울었다. 누군가 낫을 들고 오솔길을 다듬으며 온다. 길 위로 줄기를 뻗어 영역을 확장하는 덩쿨성 풀들의 가지를 쳐내고 있었다. 의외로 금정산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 이름이라도 알려달라고 했으나 그는 손사래를 치며 사라졌다. 이 여름 숲은 사람의 길을 호시탐탐 노린다. 조금만 사람의 발길이 뜸해도 숲은 사람의 길을 감추어 버린다.
실제 금정산은 너무도 많은 등산로가 나있다. 너무 많아 헤아리기도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금정산의 전체면적은 42.98㎢로 꽤나 넓은 크기이지만 산자락 주변은 금정구를 비롯하여 동래구, 북구, 양산지역의 도심에 포위되어 있는 형국이다. 달리 갈 곳이 마땅찮은 시민들은 자연히 금정산으로 향할 수 밖에 없다보니 길은 사방팔방 생겨나는 것이다. 금어동천길 역시 예외가 아니다. 불과 2km 남짓한 거리임에도 갈림길을 비롯해 샛길은 10여 개나 된다.
어찌보면 산과 숲이 몸살을 앓는 것이다. 주말이면 남포동이나 광복동같은 번화가로 변신한다. 그래서 걷고싶은부산과 새세상여성연합회에서 매월 한 차례 금정산 일원에서 실시하는 명상길 걷기는 늘 수요일 사람없는 때 열린다. 아무튼 이 달갑지 않은 현상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한 지혜가 요구되는 것이다.
그런 방편으로 지난 1996년부터 금정산에는 자연휴식년제가 시행되고 있다. 5년 단위로 구역을 바꾸어 가며 시행되고 있는데, 등산객에 의해 심각하게 훼손된 생태계가 회복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재 금정산은 식물 538종, 조류59종, 어류8종, 포유류11종, 양서파충류 15종, 거미류 134종, 곤충류185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는 이들 생물들이 사람들의 빈번한 출입과 간섭에 의해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등산로는 답압에 의해 딱딱해지고 숲은 무분별한 채취와 벌목에 의해 생명이 깃들 수 있는 조건들을 빼앗기고 있다. 그런 결과로 난대림에 속하는 금정산에는 동백나무며 가시나무 군락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소나무와 상수리나 갈참, 졸참 등 참나무림이 우점하면서 음나무, 물푸레나무,때죽나무 등 호습성의 음성수종으로 대체되고 있다.
다시 길을 걷는다. 지장암으로 향하는 길에 짓푸른 대밭이 바람을 일으킨다. 사유지로서 출입을 금하고 있다. 누가 먼저 뿌리를 내렸는지 모르겠다만 대숲에 산벚나무 서너 그루 자라다 말고 고사한 상태로 서 있다. 패거리문화를 떠올렸다. 산벚나무가 군락을 이루었다면 대나무들은 어떤 형태로 무리를 이루었을까. 문득 사람 사는 모양도 저와 같다는 생각에 씁쓸해진다.
지장암으로 가는 길은 범어사 옛길이다. 순환도로가 만들어지기 전에 범어사를 출입하던 사람들의 길이다.
옛길에서 내려다보자니 순환도로 옆에다 별도의 테크길을 조성 중이다. 누군가의 요청이 있어서 그리 하겠지만 예산의 낭비요 길의 덧내기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테크 설치비용으로 진짜 금정산이 긴히 필요로 하는 길에 쓸 수 있을 텐데 안타까운 노릇이다. 식나무로 식재된 지장암 초입을 지나 절마당에 들어서면 메타쉐퀘어가 절집과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오래된 살구나무 한 그루 연분홍 화사했던 봄날의 기억을 푸른 열매속에 살찌우고 있다. 절 마당을 가로질러 다시 순환도로 옆 산길을 탄다. 마치 누가 좋은 길이냐는 듯 나란히 달린다. 휜 빛 수피의 서어나무들이 마중이라도 나온 듯 금어동천(金魚洞天) 입구에 서성인다.
얼마나 좋았으면 금어동천이라 했을까. 특히 동래부사 정현덕은 이곳을 즐겨 찾았다 하니 그이의 눈에 비친 그 시절 이곳의 풍광이 새삼 궁금하다. 바위(가로 3m x 세로2m) 중앙에 ‘금어동천’이라 음각하고 그 옆에 김철균(金撤均)의 이름을 명시하였다. 앞 바위에 정현덕 그 밑에 윤필은 건너편에는 김교헌 동래부사의 이름등이 새겨져 있다. 산으로 둘러쌓인 선경에서 금빛 물고기와 노닐었다 하여 이름한 금어동천은 이땅에 그리 많지 않다. 실로 수려한 산천에만 부여하는 동천을 금정산이 품고 있다는 것은 금정산에 대한 새로운 의미로 다가선다. 골짜기에 툭 튀어나온 바위에서 남족을 조망한다. 윤산과 장산이 보이고, 온천천의 발원지인 금정 계류가 소리 내며 흘러내리는 곳이다. 목이 마르면 송림 석간수가 솟아나는 참새미가 있어 목을 축일 일이다.
얼마 가지 않아 다섯 기의 비석(정현덕,홍길우,조엄,정현교,장호진)이 있는 비석골이다. 피폐한 사찰구제와 보시로 은덕을 베풀었던 공로로 범어사에서 비석을 세웠다. 정현덕은 범어사 곳곳에 그 이름이 남아 있다. 그는 대원군의 심복으로서 대원군이 물러난 다음 원악도 (遠惡島)로 유배된 뒤 그곳에서 사사되었다. 윤필은은 동래부윤 출신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재무차관을 지낸 독립운동가이다. 아무튼 봐 왔던 허다한 공덕비를 사실대로 믿지는 않지만 이곳에 선 공덕비는 그 이름자 살아온 면면을 따져보아 사실인듯 하다. 모퉁이를 돌아서면 범어사 매표소 입구다.
금정산 이름의 유래와 범어 3기와 금정 8경
《동국여지승람》권 23 동래현 산천조에 보면 “금정산은 동래현 북쪽 20리에 있다. 산마루에 3장 정도 높이의 돌이 있는데 그 위에 샘이 있다. 둘레가 10여척이고 깊이가 7촌가량으로 물이 늘 차 있어 가물어도 마르지 않으며 빛은 황금색이다. 세상에 전하기를 한 마리 금빛 고기가 오색 구름을 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 그 샘에서 놀았으므로 산 이름을 금빛 샘이 있는 산 「金井山」이라 하고, 그 산 아래에 절을 지어 절 이름을 범천의 깨끗한 물고기라고 ‘범어사(梵魚寺 678년 창건)라 불렀다.
범어 3기
- 원효석대(元曉石臺) : 원효암 뒤의 암석이 매우 기묘하게 아름답다.
- 자웅석계(雌雄石鷄) : 암탉과 수탉의 모습을 한 암석을 말하는데, 계명암 위에 있다.
- 암상금정(巖上金井) : 바위 위에 금빛 나는 샘을 말하는데, 창건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금정 8경
- 어산노송(魚山老松) : 어산교 주변의 울창한 노송의 아름다운 풍치.
- 계명추월(鷄鳴秋月) : 계명암에서 바라보는 가을달의 아름다운 풍경.
- 청련야우(靑蓮夜雨) : 청련암 주위의 울창한 대숲에 내리는 빗소리를 나그네가 되어 청련암 객사에서 밤에 듣는 그 운치.
- 대성은수(大聖隱水) : 대성암 선방에서 깊은 밤 방밑으로 조용히 흐르는 가느다란 물소리를 듣는 화음의 풍정.
- 내원모종(內院暮鐘) : 큰절에서 울리는 저녁 종소리를 내원암에서 듣는 은은한 종소리의 운치.
- 금강만풍(金剛晩楓) : 늦은 가을 금강암 주변의 아름다운 단풍이 장관.
- 의상망해(義湘望海) : 의상스님이 앉아 참선하던 석대에서 멀리 바라다 보이는 동해 바다는 참으로 훌륭한 풍경.
- 고당귀운(高幢歸雲) : 고당봉에 흰 구름이 산허리를 감고 도는 모습이 선경.
범어사는 금정산 자락이 동쪽으로 완만하게 흐르면서 계명봉과 만나는 두 산세가 맞부딪히며 이루는 Y자형 계류사이 넓은 경사지대에 자리를 틀었다. 대부분의 건물이 동쪽을 주향(主向)으로 배치하였고 절 입구로부터 대웅전에이르는 건물들은 상승감을 가지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남북방향은 부축(副軸)을 삼고 동서를 3단으로 나누어 공간적 위계(位階)를 가지게 하였다. 하단의 경우 속진(俗塵)을 걸러내는 통과의례 수단으로 계류를 건너게 하고, 중간 단은 법회와 불재, 신참스님의 강학과 수행거처로, 상단은 화장세계(華藏世界)의 중심이자 가람세게의 중심으로 편재했다.
얼마전 천왕문이 불에 타 소실되는 사건이 있긴 했지만 범어사는 여전히 호국사찰로서 또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 한국 절집의 맏형 격으로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일주문을 앞두고 등운곡으로 들어선다.
목재데크로 다리를 놓아 계류를 건넌다. 등운곡(藤雲谷)은 등꽃이 구름처럼 모여 핀다하여 붙인 이름이다. 사진은 올리지 않았지만 주변 계곡이 엉망이다. 금정구청에서 관심을 보일 일이다. 지난 여름 호우에 떠내려 온 잡목더미며 쓰레기들이 방치되어 있다. 둘레길 자랑 이전에 정비해야 할 일이다. 등나무군락지는 1966년 1월 13일 천연기념물 제176호로 지정되었으며 범어사에서 소유, 금정구청에서 관리하고 있다. 등나무 군락지에는 약 500~450주가 있다. 다양한 형태의 등나무가 자라고 있다. 등나무 숲에 뿌리내린 서어나무며 팽나무가 힘겹다. 등나무 군락지를 벗어나면 조릿대 밭이다. 바람이 불자 떼지어 소리치며 아우성이다. 잠시 내리막을 내려와 상마마을로 향한다.
상마마을은 청룡동 자연마을 중에 하나다. 상마ㆍ하마는 청룡마을 서쪽에 있는 마을인데, 이곳에 마(麻)를 많이 심었던 것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원래 마을은 범어사의 창건이래의 잡역에 종사한 사람과 목수의 가족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 오늘에 이르렀다. 현재는 닭백숙 등을 판매하는 음식점이 즐비하다. 안타깝게도 특색이 없다. 국적불명의 건물과 제주 돌하르방 등이 무분별하게 설치되어 있다. 이왕에 존재하는 시설이라면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마을이기를 희망한다.
가막살나무가 꽃을 피웠다. 이미 이 친구들의 한창때는 지났지만 이렇듯 꽃을 피워 눈을 즐겁게 한다.
만성암과 청초집 사이에 난 테크길을 따라 부산외대운동장으로 향한다. 이 길 또한 운치있는 길이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 계명봉 산자락 보다 종다양성이 높다. 이른 봄 이 길 좌우에는 노루귀며 현호색, 얼레지, 족두리풀이 피어 마음을 들뜨게 한다. 유감스럽게도 주변에 유일하게 있는 나무이름소개 표지판은 하고 많은 나무들 중에 밤나무를 소개하고 있어 실소를 금치 못한다. 병꽃나무며, 한국특산 노각나무 등이 주위에 있음에도 설치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나 보다.
남산봉 일대의 산자락은 남산동 시가지로 연결된다. 남산동은 옛날 범어사 사전(寺田)을 소작하던 농민들이 많이 살았던 곳으로 범어사에서 볼 때 남쪽 산등성이라 하여 남산이라 했다. 모퉁이를 돌아설 즈음 범어사 경계석이 있다.
백선 한송이 늦이막이 개화를 준비중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친구의 존재를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듯 하다. 느릿느릿 걷기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길은 좌우 숲정비를 통해 자연스러움이 다소 떨어지긴 하나 그 나름 횡하니 또는 사행하여 걷는 맛을 더 한다.
외대운동장까지는 약 1km 거리다. 옛날 사기그릇을 굽던 사기점이 있었다 하여 사기점이라 불리던 골안에 일제 강점기때 못를 축조하며 사기점못(남산소류지)이라 했다. 골안이 죄다 밭이다. 최근 각광받는 유기농 도시농법으로 작물을 재배했으면 해보지만, 화학농법이 아직은 대세라 바램일 뿐이다. 밭을 가로지르면 외대 운동장이다. 예전에 공동묘지터 였던 이곳을 정지하여 운동장이 조성되어 있다. 휴일 하루 시민들의 방문이 많은 곳이다. 외대운동장 맨 위에 130여 년 전 문지성화란 이름을 가진 보살이 선몽을 한뒤 지은 불광사가 있다. 원래 극락암이라 하였으나 중창불사를 하며 불광사로 개명했는데 전망하나는 끝내 준다.
초대시인들의 시낭송이 먼저 있었다. 2000년 '다층'으로 등단한 이은주시인이 먼저 낭송을 했다.
온몸이 둘레길이다
이은주
새순들 애벌레처럼 피어나며 노래할 때
햇살 먹은 오솔길을 따라 들꽃처럼 길에 나선다
찰진 흙길과 부드러운 숲길에 몸을 맡기고
비릿한 연두의 냄새를 따라 가면
잎사귀들 바람이 되고
길가에 수줍게 피어 있는 들꽃은
나비가 되어 길동무가 되어준다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따라 걸으며
자박자박 돌길도 만나고
너른 품을 내어주는 쉼터도 만나
비늘처럼 붙어있는 일상을 잠시 털어내고
먼지 날리는 마음도 잠시 내려놓으면
어느덧 마음에도 시원한 물소리가 난다
그 물소리를 따라 금빛 물고기 떼도 헤엄쳐 온다
금빛 햇살로
길과 사람, 그 사연들 속으로 들어와 함께 유영한다
금정산 둘레길을 둘레둘레 둘러 나오면
몸속에 숲향과 물고기 떼가 가득하다
온몸이 숲과 샘이 되어 다시 살아갈 힘이 난다
이어 오늘 두 딸과 같이 참가한 김재홍시인( 2003년 계간『시의나라』및 2010년 계간『문학청춘』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가야산 호랑이』『어느 시낭송』, 한국작가회의 및 부산작가회의 회원 )이 두번째 시낭송을 했다.
나무들이 합장하다
- 금정산 중턱에서
김 요아킴 (김재홍)
지금
금정의 나무들은 하지정맥류를 앓고 있다
둥글게 생을 그리며 제 몸 일으켜 세우는 만큼
바들바들 떨며 안간힘을 쓰는
저 뿌리의 힘들.
뵤뵤하던 새떼들의 연한 고요가 사라지고
여전히 해는 그 자리에 시들어 버리자
어둠을 재촉하는 수많은 하산의 발걸음들, 유독
그 도드라진 실핏줄을 꼼짝없이 짓누른다
매캐하게 기어오르는 안개는, 슬며시
뱀처럼 달라붙어 하나 둘 살갗마저 조여 오는데
순간 갈가마귀 한 마리 날아오르고
기다렸다는 듯
굴삭기마냥 파헤치며 달려오는 네온불빛
금정의 나무는 더 이상 서질 못하고
정한수 금샘에 떠놓고 무병장수를 기도 중이다
모두 입술을 깨물며 합장 중이다
그리고 이어진 부산알핀로제 요들클럽의 공연
갈맷길자원봉사단의 박경애(소풍가는 도보길)씨의 추천으로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부산알핀로제 요들클럽의 활동역사는 제법 오래됐다. 1973년 발족했다. 매주 목요일 연신동 모처에서 모임을 가지면서 목소리를 다듬고, 가끔 봉사활동도 나간다고 한다.
가운데 분이 신참이고 좌우는 부녀지간이다. 어쩐지 닮았다 싶었다.
요들(독어 jodel/jodle, 영어 yodel/yodle)이란 중세기 이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알프스지방의 노래로 알고 있다. 활세토 (Falsetto-두성)와 흉성(육성)을 음률에 따라 교차시키는 발성기법으로 부르는 노래이다. 자연에 대한 경이감을 아름다운 음색으로 표현한 노래로,보통 음악에서 느낄 수 없는 신비로운 독특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기원은 마을과 마을사이의 통신수단 내지 구조 신호등 다양한 신호로 시작되었는 것에서부터 흩어진 양떼를 모으기 위해, 또는 새나 짐승의 소리를 표현했다 는 등 여러 설이 있다.
어쨌거나 오늘 길걷기는 그들이 있어 더욱 빛났다. 특히 이분 오늘 '데뷰'라고 했다. 다소 떨림이 있었지만 일반인으로서는 엄두도 못낼 일이다. 발성법이 다르고 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
결론적으로 부산알핀로제 요들클럽의 노래는 신선했다.
참가자들의 반응도 좋았다,
하산을 한다. 외대 두 번째 운동장을 가로질러 콘크리트 길을 따라 가다 구서동 방향으로 내려선다. 구서동은 조선시대(1580) 동래군 북면 구세리로 불리웠고, 동래부지에서는 ‘관문에서 12리에 있다’고 소개하는 곳으로 일제 강점기 구서, 금단, 두실 3개 마을을 묶어 구서리로 개칭했다. 예부터 굿을 하는 동네라는 뜻에서 그 이름이 연유하고 있으며 금정산 변우암이 이 동네 위에 있어 기우소로 치성을 드리던 장소였다. 이 구간은 제7등산로와 6등산로 사이 구서동 산자락 가장자리 솔숲을 걷는 길이다. 마른계곡을 건너 어린이쉼터를 지나 소나무 사이에 설치해 놓은 끈을 따라 반송치고는 곧게 뻗은 다섯줄기반송을 거쳐 우성아파트 입구로 내려선다. 약 1.5km의 거리다. 크게 4개의 골짜기를 지나며 중간 중간 3망루며 의상봉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다수 있다.
반송치고는 쭉쭉빵빵이다. 대부분 뒤틀린 형태이거나 키가 작은데 이 반송은 한마디로 미끈하다.
첫댓글 사진 글 잘 봤습니다.
그리고 사진속에 그녀들 하고는 늘 그렇게 지내는지요.? 고것이 참 궁금하네요.^^
처장니임...우리 앞으로 더 친하게 지내자구요...ㅋㅋㅋ
언제는 안친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