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민정음 해례본과 일본 어용학자 : 진리를 거부하는 무지의 사람들
국제 문자학술 대회에서 일본의 한 학자가 한글은 한국 가옥의 문살을 모방한 매우 비과학적인 글자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수많은 추측과 억측이 난무했다. 1940년 해례본이 발견되기 전까지, 훈민정음은 고대 글자 모방설, 고전 기원설, 범자 기원설, 몽골 문자 기원설이 나올 정도로 온갖 기원설에 시달려야 했다.
<훈민정음 해려본>
이런 내용들은 일제강점기의 일본 어용학자들의 주장이었으며, 일제는 우리의 언어가 사라지기를 바랐기 때문에 더욱더 이 훈민정음해례본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훈민정음 해례본이 1940년 발견되어 모든 억측과 망상은 하루 아침에 사라졌다. 진리와 진실을 모르면 망상에 빠져 거짓된 삶을 살 수 있다. 만약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얼마나 많은 가짜 박사들이 나왔을까?
■ 지동설과 천동설 : 거짓을 진실로 믿다
천동설(天動說)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다른 모든 천체가 정지해 있는 지구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학설이고, 지동설(地動說)은 지구가 자전하면서 다른 행성과 마찬가지로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는 우주관입니다.
1543년 폴란드의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란 책을 발간합니다. 이 책에서 그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태양의 주변을 회전하는 한 행성에 불과하며 자전(自轉)한다는 사실도 증명했습니다. 또 우주의 중심은 바로 태양이라고 주장합니다. 코페르니쿠스는 근데 천문학의 포문을 열고 자연과학의 새 시대를 예고한 셈이지요. 중세의 암흑기를 빠져나온 자연과학과 철학은 교회의 속박에서 벗어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게 됩니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새로운 과학의 진리를 세상에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30년 일생 받친 한 사람의 인류 최고의 결과물입니다. 2,000년간 진리로 받아들여진 천동설을 비판하고 지동설을 주장하여 거짓에 속아 살던 사람들을 구한 것입니다. 망상과 상상이 만들어 낸 가짜 신(神) 중심적 세계관의 종말을 고합니다.
■ 사람을 제물로 바친 미신(迷信) : 인과관계의 오인
태양신을 섬기던 중남미(中美)의 아즈텍 인들은 혹시라도 태양이 다음날 떠오르지 않을까 두려워서 높다란 피라미드 위 제단에서 수백 년 동안 매일매일 사람을 죽여 태양신에게 심장을 제물로 바쳤지만, 이 일이 태양이 떠오르게 한 원인은 아니다. 이 인신공희(人身供犧)는 1520년 스페인인 코르테스의 아즈텍 정복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태양은 여전히 떠올랐다. 전날보다도 더 핏빛으로 빛나면서 떠올랐다.
<아즈텍 피라미드>
누군가 한 사람의 망상(妄想)이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것이다. 단, 하루라도 제물을 안 바치고 시험을 해보았으면 될 것을 소심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은 행여 지구의 종말이 올세라 꿈도 못 꾼다. 무지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사람은 스스로 구속될 뿐이다.
■ 동물을 제물로 바친 미신(迷信) - 허깨비 신을 믿다.
인도는 부처님 당시에 대규모 동물희생제의가 실시되었다. 부처님이 암소 500마리, 수소 500마리 등을 희생해서 큰 제사를 지내려는 왕을 설득해서 포기하게 하는 일화가 불경에 남아있다. 우리는 어떤가? 아직도 대명천지(大明天地) 시대에 통돼지를 놓고 제사를 지내고 있다. 무지의 극치요 동물에 대한 엄청난 배반이다. 동물이 행복할까요? 사람이 행복할까요? 동물도 사람과 똑같이 불성이 있는 고귀한 존재입니다. 망상(妄想)으로 만든 허깨비 신에게 수많은 생명을 희생시키는 미신은 하루빨리 사라져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중생은 평등하다. 하나같이 고귀한 불성(佛性)을 지니고 있다. 겉은 짐승 가죽을 뒤집어쓰고, 털과 비늘로 뒤덮이고, 네발로 걸어 다니고, 배로 기어 다니고, 비린내를 풍기고, 땅위의 음식을 먹을지라도 속에는 불성이 있다. 그러므로 잡아먹을 수 없다. 절대로 거짓된 일에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불교 속 무속적이고 미신적인 행위들이 하루빨리 모두 사라져야 합니다. 미신적인 거짓된 행위는 업이 되어 내생에 영향을 미칩니다.
■ 오역(誤譯)의 피해 – 가짜가 진짜로 사용되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나가는 것보다 어렵다.” 마태복음 19장 24절에 나오는 말이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익히 들어본 성경 구절이다. 예수의 기막힌 비유다. 하지만 번역자의 오류가 만든 명언이다. 히브리어 원전은 낙타(gamla)가 아닌 밧줄(gamta)이란다. l과 t를 잘못본 번역자의 실수가 엉터리 번역이 되었는데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바늘에는 실(밧줄)이 당연히 있어야 하는데 엉뚱한 낙타가 어찌 어울리는가.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밧줄을 바늘 구멍에 넣기보다 어렵다. (O) 바른 번역
밧줄이 낙타가 되어 말도 되지 않는 말을 억지로 설명하고 이해하려고 했으니 얼마나 웃기는가?
그래도 믿고 살았으니 인간의 허약하고 허무한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