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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0장 9-16절. 베드로가 곤충들 환상을 봄
9절.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On the next day, as they were on their way and approaching the city, Peter went up on the housetop about the sixth hour to pray.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Τῇ δὲ ἐπαύριον, ὁδοιπορούντων ἐκείνων, καὶ τῇ πόλει ἐγγιζόντων,
On the now next day, journeying these, and on the city approaching,
직역하면, ‘다음날 이들이 여행하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가고 있을 때’란 뜻입니다.
‘가다가’(ὁδοιπορούντων)는 현재분사이고(journeying), ‘가까이 갔을 때’(ἐγγιζόντων)도 현재분사로서(approaching) 계속 여행하면서 성에 가까이 가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ἀνέβη Πέτρος ἐπὶ τὸ δῶμα προσεύξασθαι, περὶ ὥραν ἕκτην.
went up Peter on the housetop to pray, about hour six
직역하면 ‘여섯 시경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갔다’는 뜻입니다.
‘기도하려고’(προσεύξασθ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pray) 단호한 의지로 기도하려는 것을 가리킵니다.
‘올라갔다’(ἀνέβη)도 부정과거로서(went up)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올라간 것을 가리킵니다.
고대 동양의 지붕은 평평하게 되어 있었고, 밖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습니다.
중풍병자를 지붕을 뜯고 예수님께로 달아내리운 것도 이처럼 지붕이 평평했기 때문이었습니다(막 2:4).
이 지붕은 쉬기도 하고 기도하거나 개인적인 시간도 갖은 아주 편리한 장소였습니다. (마 10:27, 14:17, 눅 17:31).
율법에 지시한 대로(신 22:8) 지붕은 1미터 정도의 난간이 설치되어 있었고, 기도하는 데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시간이 제 6시라는 것은 점심 때란 것인데, 이 때 베드로는 시장함을 많이 느꼈던 때였습니다.
10절.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he became hungry and was desiring to eat; but while they were making preparations, he fell into a trance;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ἐγένετο δὲ πρόσπεινος καὶ ἤθελεν γεύσασθαι·
he became hungry and desired to eat
직역하면 ‘그가 시장하게 되어, 먹기를 바랐다’는 뜻입니다.
‘되어’(ἐγένετο)는 부정과거이고(he became), ‘먹기를’(γεύσασθαι)은 부정과거 부정사형으로서(to eat) 간절히 먹고자 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바랐다’(ἤθελεν)는 미완료 과거로서(desired) 계속 바라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παρασκευαζόντων δὲ αὐτῶν
preparing then they
직역하면 ‘그들이 준비하고 있는 중에’라는 뜻입니다.
‘준비할 때에’(παρασκευαζόντων)는 현재분사로서(preparing)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은 보통 하루에 두 번 식사를 하는데, 오전 10시 반경에 한 번 식사하고, 오후 5시경에 한 번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 때는 12시경이었기 때문에, 베드로가 많이 시장한 때였습니다.
이 때 음식은 대체로 꿀을 밀가루 반죽한 것에 발라서 구운 생선과 메뚜기나 고기나 양파를 주로 먹었다고 합니다. (Palestine in the Time of Christ. 189).
황홀한 중에
ἐγένετο ἐπ’ αὐτὸν ἔκστασις,
fell upon him trance
직역하면 ‘황홀함이 그에게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일어났다’(ἐγένετο)는 부정과거로서(fell) 갑자기 황홀지경에 빠진 것을 가리키고, 원형(γίνομαι)은 ‘되다, 일어나다’(come into being, happen, become)는 뜻입니다.
여기 ‘황홀함’(ἔκστασις, trance)은 헬라어 발음 그대로 엑스타시스(écstăsis, 무아지경, 황홀경)을 가리키는데, 헬라어 문자의 뜻 그대로 자신의 밖에 서 있는 것(a state which a man stands outside himself)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황홀지경에 있었던 경우들이 성경에 종종 나타납니다(행 11:5, 22:17, 고후 12:3, 민 24:4, 겔 8:3).
11절.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he saw the sky opened up, and an object like a great sheet coming down, lowered by four corners to the ground,
하늘이 열리며--보니
καὶ θεωρεῖ τὸν οὐρανὸν ἀνεῳγμένον
and he beholds the heaven having opened
직역하면 ‘그가 보니 하늘이 열리고’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내려오는데)는 뜻입니다.
‘보니’(θεωρεῖ)는 현재형으로서(he beholds) 보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열리며’(ἀνεῳγμένον)는 완료분사로서(having opened) 이미 하늘이 열린 것을 가리킵니다.
하늘이 열린 것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도 그랬고(눅 3:21), 요한이 밧모 섬에서 계시를 받을 때도 그랬고(계4:1, 19:11), 스데반이 순교할 때도 그랬습니다.(행 7:56)
구약 시대에도 야곱이나(창28:17) 이사야나(사 6:1), 에스겔이나(겔 1:1), 다니엘의 경우에도(단 4:13) 하늘이 열렸습니다.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καὶ καταβαῖνον σκεῦός τι,
and descending vessel certain,
직역하면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내려오는데’란 뜻입니다.
‘내려오는’(καταβαῖνον)은 현재분사로서(descending) 지금 계속 내려오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큰 보자기 같고
ὡς ὀθόνην μεγάλην,
as sheet great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τέσσαρσιν ἀρχαῖς καθιέμενον ἐπὶ τῆς γῆς,
by four corners being let down upon the earth
직역하면 ‘네 귀가 땅에 드리워져 있는 것을’(보았다)는 뜻입니다.
‘드리워진’(καθιέμενον)은 현재분사 수동태로서(being let down) 현재 드리워져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2절.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there were in it all kinds of four-footed animals and crawling creatures of the earth and birds of the air.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ἐν ᾧ ὑπῆρχεν πάντα τὰ τετράποδα, καὶ ἑρπετὰ τῆς γῆς, καὶ πετεινὰ τοῦ οὐρανοῦ.
in which were all the quadrupeds, and creeping things of the earth, and birds of the heaven
‘있더라’(ὑπῆρχεν)는 미완료 과거로서(were) 계속 꿈틀거리며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ὑπάρχω)은 ‘시작하다, 가까이 있다, 있다’(begin, be at hand, be)는 뜻입니다.
‘공중에 나는 것들’(πετεινὰ)은 원문에 충실한 번역인데, 새들(birds)을 가리킵니다.
‘각종 네 발 가진 짐승’이란 레위기 11장에 기록된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모두 포함한 것들이었습니다.
13절.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거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 voice came to him, "Get up, Peter, kill and eat!"
또 소리가 있으되
καὶ ἐγένετο φωνὴ πρὸς αὐτόν
and came voice to him
직역하면 ‘그에게 소리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있었다’(ἐγένετο)는 부정과거로서(came) 갑자기 분명한 소리가 들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Ἀναστάς, Πέτρε, θῦσον καὶ φάγε.
Having risen up, Peter, kill and eat
‘일어나’(Ἀναστά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risen up) 단호하게 벌떡 일어나는 것을 가리킵니다.
‘잡아 먹어라’(θῦσον καὶ φάγε)에서 앞의 동사는 부정과거 명령형이고, 뒤의 동사도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kill and eat) 단호하게 잡아서 단호하게 먹어버려라는 뜻입니다.
‘잡아’(θῦσον)의 원형(θύω)는 원래 ‘드리다, 제사하다’(offer, sacrifice)는 뜻인데, 여기서 ‘죽이다’(kill)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는데, ‘베드로야’라고 그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모세의 경우나(출3:4), 사무엘의 경우나(삼상 3:10), 바울의 경우나(행 9:4), 고넬료의 경우에도(행 10:3) 하늘에서 음성이 그 이름을 불렀습니다.
14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 대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Peter said, "By no means, Lord, for I have never eaten anything unholy and unclean.“
베드로가 이르되,
ὁ δὲ Πέτρος εἶπεν
the but Peter said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Μηδαμῶς, Κύριε,
in no way, Lord,
이때 베드로가 완강하게 거절한 것은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에 관한 율법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유대인 독립운동가 마카베오 시대에는 유대인들이 불경스런 음식을 먹도록 강요당했을 때, 차라리 죽음을 택하곤 했습니다(마카베오 하 6:18, 7:1).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ὅτι οὐδέποτε ἔφαγον πᾶν κοινὸν καὶ ἀκάθαρτον.
for never have I eaten anything common and unclean
속된 것(common)은 거룩하지 않고 부정한 것(impure)을 가리키는데, 이처럼 속된 것과 부정한 것은 율법에 먹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15절.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gain a voice came to him a second time, "What God has cleansed, no longer consider unholy.“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καὶ φωνὴ πάλιν ἐκ δευτέρου πρὸς αὐτόν
and voice again from second to him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Ἃ ὁ Θεὸς ἐκαθάρισεν, σὺ μὴ κοίνου.
what the God cleansed, you not call common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셨다’는 것은 이미 예수님께서도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고 하셨고(마 15:11), 하나님께서 지은 모든 음식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딤전4:3-5).
즉 하나님께서 정하셨던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의 규정을 하나님 스스로 철폐하신 것입니다.(Baker)
그러므로 유대교인들이나 마호메트교도들이나 안식교인들이 돼지고기 같은 음식을 부정한 것으로 확정한 교리는 오늘 성경에 위배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유대인 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도 하나님께서 차별 없이 모두 다 하나님의 교회 교인으로 받아들이신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이제는 모든 사람이 차별이 없고, 하나님의 교회에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차별이 없이 하나로 동등하기 때문입니다(롬 1:14-16, 3:22,29-30, 갈 3:28, 엡 2:14-22).
유대인은 사마리아인을 상종하지 않았고,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은 이방인을 상종하지 않았고, 오늘날도 백인은 흑인을 차별하고, 백인과 흑인은 동양인을 멸시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두 하나이고 동등하다는 것입니다
16절.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is happened three times, and immediately the object was taken up into the sky.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τοῦτο δὲ ἐγένετο ἐπὶ τρίς,
this now happened three times,
‘세 번’이나 계시를 보여주신 것은 베드로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함이었고, 강조의 목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었습니다.(단6:10, 13, 고후 12:8)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καὶ εὐθὺς ἀνελήμφθη τὸ σκεῦος εἰς τὸν οὐρανόν.
and immediately was taken up the vessel to the heaven
설교
하나님은 이방인을 대표해서 경건한 군인인 고넬료를 택하시고, 유대인을 대표해서는 사도 베드로를 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에게 환상을 보여주시고 하나님이 만나게 하심으로 이방인과 유대인이 만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의 중보기도는 무엇입니까?
'아버지여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내가 저들과 하나 되게 하시고 저들이 내 안에서 하나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교회가 세상에 전도하는 비결이 하나 되는 것입니다.
하나 되면 세상이 깜짝 놀라는 것입니다.
서로 원수 된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 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로마서 9-11장에 말씀한 대로 하나님은 이방인의 남은 숫자가 채워지면 다시 이스라엘을 다시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결국 이방인을 통하여 유대인에게 복음이 이렇게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완성이 되었을 때 주님이 다시 재림하실 것입니다.
어떻게 베드로와 고넬료가 만나는가 하는 것을 이 부분의 말씀을 통하여 듣습니다.
9-11절.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 하나님은 먼저 고넬료에게 찾아가셔서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고넬료에게만 환상을 주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에게도 아주 정확한 시간에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면 베드로에게 보여준 환상은 어떤 것입니까?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하늘로부터 내려왔다고 말했습니다.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짐승이 들어있는 그런 환상이었습니다.
2. 베드로는 제 육시에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갔습니다.
우리나라 지붕은 삼각형 같은 집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지붕은 평평합니다.
올라가서 기도할 수 있는 지붕입니다.
그때가 정오 시간으로서 배고픈 시간이었습니다.
3. 10절에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라고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가 기도하러 지붕에 올라갔는데 밑에서 음식을 준비하니까 음식 냄새가 올라왔습니다.
바로 그런 순간에 먹을 것에 대한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4.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첫째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십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하나님은 언제나 적절한 때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때가 차매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꼭 죽을 때 죽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을 놓치면 기차 놓치는 것 같습니다.
이 시간을 잘 잡아야 합니다.
성령님이 감동하시면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고넬료의 종들이 베드로가 있는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하나님은 절묘하게 베드로의 기도시간 속에서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이 다 우연히 일어난 것 같지만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연히 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 환경과 역경을 통하여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이 고넬료에게만 주셨다면 베드로가 얼마나 당황이 되었겠습니까?
베드로가 그냥 아무 예고도 없이 고넬료에게 찾아가서 ‘너한테 세례주라고 하셨다’고 하면 얼마나 놀라겠습니까?
하나님은 고넬료에게도 환상을 주시고 베드로에게도 환상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고 할 때 본문에 나타난 두 가지 원칙을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표현하시고,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이 일하실 때는 언제나 양편의 사람이 서로 잘 이해할 수 있게 하십니다.
6. 그러면 베드로가 본 환상은 무엇이었습니까?
11절.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가 음식을 생각하고 있었을 때 음식 냄새를 맡고 있었을 때 일종의 기절을 했습니다.
‘비몽사몽간에’ 라는 말이 그런 말입니다.
그런데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계시록 4장 1절에도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있을 때 환상을 보았는데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하늘이 열리고 네 귀를 맨 보자기 같은 것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큰 그릇과 같은 것이었는데 그 보자기 안에는 여러 종류의 짐승들이 있었습니다.
12절.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1. 참 이상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그 안에 있는 짐승들은 이상하게도 성경에서 먹지 말라고 하는 부정하고 속된 짐승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는데 이런 더러운 짐승들을 베드로에게 잡아먹으라고 했습니다.
13절.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거늘
1. '잡아먹어라' 그랬습니다.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왜냐하면 그런 더러운 짐승을 한번 만지기만 해도 목욕을 하고 옷을 빨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11장, 신명기 14장을 보면 자세히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는 분명히 자기의 귀를 의심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자기의 일을 의심하는 그런 명령이 떨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내가 이것을 해야 합니까? 거기를 내가 꼭 가야 합니까?
자꾸 하나님은 가라는 것입니다.
너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아브라함을 요즘 이해합니다.
남의 이야기는 듣기 좋습니다.
그런데 나의 이야기가 되면 심각합니다.
신앙은 그런 것입니다.
신앙은 자기의 존재의 근거, 존재의 기초 뿌리 이것을 흔들어 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정면으로 하나님과 일대일로 대면하지 아니하면 안 되는 심각한 상황에 들어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베드로는 이런 하늘의 음성을 듣고 기막혔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대단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일단 거절합니다.
14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 대
1. 레위기 11장 1절 이하에 <지상에 동물 가운데 약대 사반 돼지 등을 먹어서는 안 된다. 바다의 고기 가운데는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것은 안 된다. 하늘의 새 중에는 독수리와 솔개 어응 매종류 까마귀 종류 타조 다오마스 갈매기 새매종류 올빼비 노자 부응이 따오기 당아 울릉 황새 대승 박쥐 이것을 먹으면 안 된다. 곤중 중에는 메뚜기 베짱이 귀뚜라미 외에 날개가 있고 기어 다니는 것은 다 먹지 말고, 땅에 기는 것 중에는 쪽제비 쥐 도마뱀종류와 합개와 육지 악어와 수긍과 사막 도마뱀 칠면석척은 먹으면 안 된다. 그 사체도 만지면 안 된다. 하나님의 법이다. 율법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그냥 먹지 말라고 한 것이 다 이유가 있어서 성경에 그렇게 말씀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정한 것들을 잡아먹으라니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도 베드로가 들으려고 하겠습니까?
2. 여기서 우리는 갈등을 느낍니다.
율법은 누구의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기록된 율법에 하나님이 이런 것 이런 것 먹지 말라고 그랬는데 하나님이 지금 나타나셔서 ‘지금 잡아먹어라’ 그러니까 얼마나 갈등이 많습니까?
3. 여기에 나타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첫째는, 여기에 나타난 부정한 음식들은 이방인을 나타냅니다.
거룩한 음식은 이스라엘, 더러운 음식들은 이방인들을 가리키는데, 하나님께서은 더러운 짐승들을 잡아 먹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베드로는 못 먹겠다고 한 것이지요.
그러나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부정하게 여기는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구원의 보자기 안에서는 깨끗함을 얻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율법으로 부정한 이방인 죄인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모든 죄를 깨끗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차별이 없이 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로마서 10: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갈라디아서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골로새서 3: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둘째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위해서 때로는 자기의 생각을 부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특히 베드로는 이 면에서 많이 훈련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실 때, 베드로가 손발만이 아니라 온 몸도 씻어주시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몸이 깨끗한 사람은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잘랐을 때 예수님은 이것까지 참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위해서 죽기까지 하겠다고 맹세했을 때 예수님은 네가 닭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도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보자기에 싸인 짐승을 잡아먹으라고 했을 때, ‘나는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하자, 하나님께서 내가 깨끗케 한 것을 네가 왜 부정하다고 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와 완고한 유대인 성도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도 자기 생각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야 할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특히 기도할 때 기도가 잘 안 될 때는 내 생각을 바꾸고 성령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기도해야 성령의 감동이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15절.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베드로가 나는 못 먹습니다 그러니까 '두 번째 소리가 있어' 하나님이 또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그랬습니까?
'하나님이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나님이 더러운 것을 깨끗케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방인을 깨끗케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이방인들을 구원받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깨끗케 했다는 것입니다.
세 번씩이나 이런 일이 반복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16절.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1. 이방인이나 이스라엘의 차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는 이 둘이 하나가 되어서 막힌 담을 허시고 휘장을 찢어버리시고, 유대인들이 더려운 짐승처럼 취급하는 이방인에게도 하나님의 복음의 구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정한 짐승이 보자기에 싸여서 하늘로 올라간 것은 놀라운 계시적인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신 사건도 놀라운 계시 사건이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성전의 휘장이 둘로 갈라진 것도 놀라운 계시적 사건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부정한 짐승이 하늘 보자기에 싸여서 하늘로 올라간 것도 놀라운 계시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앞의 두 사건(세례 사건, 휘장이 갈라진 사건)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을 가르쳐주고, 부정한 짐승 사건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 즉 인간 사이의 화목을 계시하신 사건입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유대인이 구원받아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해주었지만, 다음에는 이방인들이 많이 구원 받아서 지금은 유대인이 이방인 같고 우리가 꼭 이스라엘 같습니다.
거꾸로 되었습니다.
그러나 후에는 유대인들이 시기가 나서 거국적으로 예수님을 믿을 것입니다.
그 후에야 예수님의 재림이 있을 것입니다.
로마서 11:2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2. 또 하나의 메시지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전통과 문화라는 것입니다.
전통과 문화는 그것 자체가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로 말미암아 생긴 유산에 불과 합니다.
그러므로 전통과 문화는 언제나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재해석이 되고 적용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혈통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했으나 실상 예수님의 족보를 보아도 이방인의 피가 흐르고 심지어 창녀의 피도 흐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마태복음 1장에 나와 있는 대로 기생 라합의 피가 흐리고, 이방인 룻의 피도 흐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흐름으로 파악해야 하지 육신적인 혈통으로만 파악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베드로에게 하나님께서 부정한 음식도 깨끗하게 하셨으니, 부정한 음식처럼 취급하는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을 차별하지 말고, 기도하고 축복하고, 포용하면서 전도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