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남동 혜화동 명륜동3가 이야기
1)서울대병원 위치에 얽힌 비화
★일제시대부터 병원이다
★6.25전쟁시에는 부상병이 천여명 입원하고 있다 북한군에 전사한 역사적인 장소다
현재 장례식장 오르는 길로 들어가면 우측에 추모비가 서 있는데(이름 모를 자유전사의 비) 그걸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전쟁전에도 일본시대부터 가장 크고 정교한 실험적 해부학이 존재(?)했다고 판단되는 곳이다
☞그 한예로 2007년도에 낡은 건물을 헐고 새 건축물 구축을 위해 터파기 과정에 80여구에 이르는 유해들이 쏟아졌다
그런데 자세히 관찰해보니 아주 어린아이 뼈부터 나이먹은 노린에 이르는 다양한 인골, 두개골에 메스를 댄 날카로운 매끈한 흔적등
생체해부학이나 인체실험을 한 흔적이 있었고 수인번호같은 적패(나무에 새김)도 있었다
또한 제한된 숫자지만 군인이라 할 수있는 완전유해(통일화 밑창이 있었다)가 있기도 했다, 혜화경찰에서 처리~!
★조선시대에는 "함춘지"라는 연못이 있었고 매워진 곳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하여 많은 지역주민 증언을 들어 봤다
1)혜명경로당 88세 할머니 000
사실 이곳은 많은 할머니들이 계셨다
하지만 서로 꺼리고 회피하는 모양새였다
한명의 할머니가 말을 하려하는데 가로막고 못하게 하고 다른데가서 하라고 밀어내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할머니가 비가 내리는데 결국 밖으로 나와 말해 주신 것은 전쟁이 나고 주변에 많은 군인이 죽어있었는데 어떻게 처리 되었는지 모른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한 곳을 알려주며 할아버지들이 있다고 가 보라 하셨다
안에서 들리는 이야기는 당시 민간인간에 서로 고자질하고 그래서 불려가 여기저기 묻혀졌다는 이야기, 군인들이나 경찰 인민군 지역빨갱이간에 벌어졌던 보복적인 이야기 ~~
2)어느 경로당에서는
ㄱ)소진철(83세), 전남 보성이 고향
중학교때부터 이곳으로 올라와 살았다
처음 왔을 때는 주변에 큰 건물이 별로 없고 특히 미아리고개에서 길음시장 가는 길 안쪽은 공동묘지가 크게 있었다
서울대 병원뒤에도 동산이 조그맣게 있었다
지금 혜화동이고 명륜동이고 많은 지역이 야산처럼 되어 있었고 조선시대 무덤 밭~!
하지만 모두 주택지로 행길로 바뀌어 알 수 없는데 고생한다
전쟁때는 군인만 죽은 것이 아니고 민간인도 억울하게 많이 죽었다
★특히 보도연맹이라고 전쟁전에 싸인한 사람들이 무차별로 죽었다
나)신부만(81), 전남 함평이 고향
★어릴때 올라와 살아서 그 당시 모습을 안다
병원자리에서 많이 죽었다고해서 지금 "비"가 서 있다
★그런데 그때는 대부분 가마니나 거적같은 걸로 말아서 미아리고개 넘어 공동묘지로 갔다가 대충 매장해 버렸다고 한다
당시에 그 고개를 넘으려면 차도 검은 연기를 뿜어야 한다
그 공동묘지가 지금 길음시장있는 쪽인데 버스 종점도 함께 있었다
너무 많이 죽어서 어수선하게 대충 묻혀있다 나중에 개발하면서 서울시에서 발굴하여 일부는 망우리묘지로 가기도 하고 화장 처리 되기도 했다고 하더라
미아리고개 일대도 민간인도 많이 죽어 있었다
다)리병무(87), 충북 괴산이 고향
★51년 중간에 제주도 교육받고 국군 5사단 27연대로 가서 전투했다
★속초위 어딘지(351고지?)기억도 없는데 엄청 전투하여 많이도 죽어 나갔다
인사계하고 중대장이 서로 마음이 안맞으면 누군가는 전투시 죽는다
사실 병사처리도 중대장 마음대로다
전사자도 실종이라하면 실종이고 실종도 탈영이라하면 탈영이고 탈영도 실종이라 하면 실종처리 된다
(★인사계 한테 잘 보여야 군대 풀린다)
당시 중대장중에 못된 짓 많이 하고 그때도 왜 그렇게 두둘겨 패는지 ~~
53년도에 속초에서 훈련하다 화천인가로 나가게 되는데 잠시 홍천에 나오면서 1개분대 인원을 전부 집으로 보내버렸다
가면 죽는데~~
그래서 중대장과 옥신각신하다 불명예 재대해 버렸단다~
라)김동만(80), 전북 고창이 고향
매형이 전남 영광 백수면에 살았는데 그곳에 가 있었다
그런데 지역 빨갱이들 잡는다고 군경이 혈안이 되어 되려 죄없는 민간인도 죽었다
한가족 4형제가 죽어버린 집도 있더라
북한군이 있을 때는 경찰이나 공무원 잘 살던 집 서람들이 많이 죽었다
백수 깐봉제(?)에서 공비들과 전투해서 군경도 많이 전사하고 공비들도 죽었다고~~
☞창경궁(그때는 창경원) 안에는 전투 흔적이 없다
문화 해설사에게 물어도 지역 주민들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성균관, 성균관 대학교 자리도 탐문/탐사 했으나 시원한 증언 듣지 못함
내부 건물도 성벽에도 흔적이 보이지 않음
☞서울대 병원 터파기 공사간 나온 유해 처리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이건 궁금한 사건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