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대장
진 현 정
삶이 힘겨운지
덥수룩히 잘 다듬지 못한 얼굴
키 큰 남자가 내가 운영하는 건축공사 현장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어디서 본듯한 모습은 ,,,,
하루종일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렇게 삼일을 보내고
부실부실 비가 오는데 건축현장 아저씨들 하나 둘씩 집으로 돌아 가는데
가지도 않더니 반짝 드는 햇살에 다시금 작업복차림으로
왔다갔다 서둔다
중식을 끝내고 오후 새참이되니 키큰 남자가 내 앞에 섰다 "참 여덟목 주이소 "
(8인분)
입에 뱅뱅 도는 어디서 본듯한 모습을 ...
아저씨 어디서 오신분이세요 ?
어눌한 말씨
"나 부산이 고향입니다 "
아! 본듯한 모습은 고향사람이구나
"사장님도 부산 같읍니다 "
"네"
그러고 보니까
내 어릴적 우리 집은 황토로 지은 딱 방 한칸에
현관이 부억이며 부뚜막이고 도까리종이 (세멘포대 종이 )
가 벽지인 일명 하꼬방 집
내가 태어난곳 부산 사하구 괴정동이다
그곳은 대티고개를 넘어서 온세상 똥을 다 모아놓는
크다란 네모진 세멘트 뚜껑이 있는 저장고도 있는곳이고
정말 무서운것은 등 너머 공동묘지 뒤로 가면 문디들이 모여
사는 부락
애들 말 안들으면 "너 문디한데 팔아묵어삔다"종종 듣고 컨
열악한 환경 나 태어난곳이다
삐죽 마른 남동생 둘에 납작하니 코 질질 흘리는 나
아버진 간장 공장에서 두어 말 받아서 양 어깨 길다란 막대기 걸처서
그 먼 대티고개 넘어서 대신동 부자 동네 가서 팔고 오시는 직업 인것 같았다
새새식 엄마는 동네 할머니 따라서 시금치 밭에서 하루종일 허리 피지 못하고 시금치 뽑는
일하고 한 움쿰씩 얻는 삯 이래야 몇푼될까
하루종일 아부지 엄마 기다리며 대문도 없는 부억문에 코박고 동생들 끼고
그러다 보면 전신에 황토훍물이 콧물과더불어 줄줄흐르고 ...
뉘엇뉘엇 지는해 시간이 되면은 울 아버지 왕 눈깔 사탕 색색이 쌕동색인것 같다
딱딱한 누런 봉투에 앞이 뭉퉁한 하얀 남자 고무신같은 여자고무신 울 동생것도 ...
낮엔 쪽자 (하나짜리 연탄 불에 국쪽자에 설탕넣고 끊으면 쇼다 넣고 부풀면)해 먹다가
군데군데 데인 자국 호호 불어주시던 우리 아바지 ....
갑자기 넘 보고파진다
오밀조밀하게 참말로 우리 아버지 우리엄마 동생 둘 나 행복하게 살은 것 같다
어느 해 아마도 초등 들어 가기 전이니
5살 아님 6살 쯤 ...
자갈치 시장 갔다 가 날 잊어신 것 같다
나도 울고 불고 발에 땀이범벅이되어 하얀 고무신이 미끄러져서 발이 찍찍 빠저 버리고
울고 울고 있었다
"지아"어디서 나타나셨는지
"지아" 아이쿠나 콩알만한 날 잡고 엉어엉엉 우시던 우리 아버지
눈물이 앞을 가려진다
근 48여년이 됐었네
날 어깨에 혹말 태우시고 자갈치에서 아미동 골짜기 큰 집꺼정 엉기덩기
하시며 걸으시던 우리 아버지
내가 그 똥 동네 사하 초등학교 입학 할 무렵에
난리가 났나보다
온동네 할배 할메 우리 엄마는 보이지도 않고
며칠째 보이지도 않는 아버지 엄마
흐흐흐 흐흐흐 ... 울고 싶다 울고 있다
이 비가 짜락 짜락 퍼 부었음 한다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 무덤도 없다 가보고 싶어도
그 공동묘지는 개발이다 머 해서 벌써 파 헤친지도 이 삼십년이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숨을 모우고 계신다고
나 동생 둘 멋모르고 따라가서는 죽은지 살았는지 왜 저렇듯이 가만이 있는지
힘겹게 울고 있는 우리 엄마 꺼억꺼억 ....꺽 억
고통사고였다 그것도 내가 다닐 학교 옆 국토개발 한답시고
엉어어엉엉 .....
갔다 없어져 버렷다 우리 아버지는 그렇게 없어져버렷다
우리엄마는꽃다운 25살 청상에 과부가 되신것이다
어느날 누가 우릴 조사차 왔다고 한다
사회복지과에서
대신동 구덕산 밑에 다비다 모자원이란곳이다
자격은 미망인이고 미 입학자여야 한다는것
뒤에 알은 이야기지만 그래서 한 학년 늦게 입학을 했다
우리 어머니는 그때부터 처음으로 교회를 다니시게 되었다
나도 동생도 ,,,
그 모자원에서 코 흘리게로 그네도 타고 소꼽장난도 하고 ...
한 3년은 살수 있는곳이다
어느정도 자립이 되면은 퇴거를 하고 ...
매일 다마를 한 움쿰씩 (다마는 유리구술알)갖고 온 동네 머슴애들 모아서
두주먹 가득 흔들면서 한손에 나누어 쥐고선 몇개야 ? 이렇게 맞치는
계임이다
또 아니면 구멍을 파고선 일정 하게 줄을 긋고는 그 구멍에 넣는게임
한군데 서로 몇개씩 일정하게 모아놓고 2 m 멀찍이 서서 맞추면서
그곳에서 튀어나온 구슬이 내것이 되는 그래서 많이 차지 핸 사람이 갖는것
키키키,,,
다마치기 하면은 내가 제일 많이 땄다
구술치기 (다마치기)선수였다
그리고 모자원 머슴애들 다 모아놓고 전쟁놀이를 하면은
길쭉한 나무를 고무줄로 손잡이 만들고 따발총 ,장총 흐흐흐흐....
따따따딸,르르르..그 울타리안에서 (우리를 밖으로 못 나가게 하셨다 )
돈 벌러 가시면 우릴 돌보는 형식이였다
그때 우 히히히,,,,오메나 !
여 대장 밑에 똘마니가 있었는데 (사실 동생은 멀찍이 따라만 다니지 나처럼 설처되진 못했다 )
내 똘마니 석식이다 .
얼마나 고생 했음 나보다 더 늙은듯 했다
한바탕 전쟁 놀이 끝나고 이기면 구술 (다마) 동그란 종이에 계급장 그려진
딱지 수북이 지 앞 섶에 놓아 주면 연신 대장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
그러면 그놈은 지 집 앞에 땅을 파고는 묻어서 수북이 흙을 덮어놓으면
내가 살짝쿵 밤이면 밤마다 훔쳐오곤 했다
그러면
"대장 또 없어졌다 "잉잉잉"...씩씩거리며 울보처럼 울었다
낸 줄 모르고 ....
난 아침 집에서 가정 예베 시간엔 항상 회개하며 기도 했다
잘못했읍니다 하곤 매일 주고는 훔쳤다
어떤 땐 긁게 종이 딱지를 맹그러서 있는힘 다해 왼족 발 땅에 딱 받혀서
해 딱 치면은
석식인 두발 모우고 앉아서 손뼉을 치고 난리다
가시내 딱지 친다고 혼날 까봐서 또 석식이 준다
그런 똘맹이를 ...
대신 국민학교 입학을 했다
내가 3학년이 되던 땐가 보다 우리 동생 두살 터울 이고
흰 손수건 길게 내리고 왼쪽가슴에 이름표 옷삔으로.. 성은 모르겠다
석식이 그때도 난 지 대장이다
영원한 대장 ,,,,
물 먹을때도 어느새 내 뒤를 ...한번씩 보면은 우리교실이 높은 언덕위에 과 교사 (임시교실)
그 곳까지도 몰래 대장 보려고 기웃 하던 내 똘맹이르 여기서 만났다
그러고는 모른다 어떻게 살았는지
세월이 유수 같이 흘렀으니 기쁜 마음도 잠시
나 만이 옛과거를 회상 하는듯 했다
어느새 슬쩍이 와서는 대장 !
나직이 불러본다
또 대장 ,,, 지도 늙었다 이거지 님자를 안 붙이니 ....
대답 못하지 ....
아무튼 반가워 널 보니 내가 또 대장 할께
또 주고 훔칠라꼬
알고 있었나 보다
눈가에 힘든 자국이 내려 앉는다
힘이드는구나
목이 메인다
대장 노릇을 어떻게 할꼬나
많이 반가움과 잊혀버린 어린 내 모습
오늘 아직 퇴근도 못하고 많이 울었읍니다
세차게 내리는 이 비처럼 ....
첫댓글 글한참일고갑니다,, 좋은글 감사 ㅎㅎ
바쁜일상에 느낌대로 철자 받침이 다 틀려도 그당시의 내 맘이라 그대로 초고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기쁨맘으로 감사인사드립니다
인연이 참 많네요. 그 세월에도 기억이 다시 떠오르던가보죠?
그 당시에는 왜 그리 콧물이 많이 났었는지 한결같이 소매자락은 반질반질하고, 요즘 애들은 아무도 그렇지 않은데. 참 신기하지요?
많은 사람속에 살다보니 그런가봐요
담박에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
그땐 너무 울엇답니다
이젠 잘 있는지 궁금도 하네요
귀하신 답글에 감사 인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