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형 시인에게 시를 쓴다는 것은 “태그”를 거는 일이다. 그 상대는 속악하고 이율배반적 세상, 비루하고 허위적인 자기 자신, 고루하고 답답한 언어적 관습 등이다. 시적 방법 차원에서 그의 “태그”는 독특하고 새롭다. 그의 ...
더보기 이돈형 시인에게 시를 쓴다는 것은 “태그”를 거는 일이다. 그 상대는 속악하고 이율배반적 세상, 비루하고 허위적인 자기 자신, 고루하고 답답한 언어적 관습 등이다. 시적 방법 차원에서 그의 “태그”는 독특하고 새롭다. 그의 “태그”는 기존의 시적 메타포의 유사성, 이미지의 연속성, 혹은 관념의 구체화라는 시의 문법을 과감하게 넘어뜨린다. 그의 시에는 이질성을 극대화한 은유, 단속적 이미지들의 병치, 구체의 관념화나 언어유희와 같은 시적 “태그”가 빈도 높게 나타난다. 그는 “태그”를 위한 테크닉으로 반어나 반전을 자주 활용하곤 하는데, 이러한 방식은 강고한 관념과 가식적 윤리를 조롱하는 데 아주 효과적이다. 가령 “환호와 야유를 먼저 선언하고/ 천천히 웃거나 비웃어도 되겠습니까”(「태그」), “똥은 똥색만 있는 줄 알았는데 가끔은 칼라 똥도 싸는가 보다”(「붉은 똥을 싸면서 곪았다고 말하는」) 같은 시구처럼. 그래서 그의 시적 “태그”에 독자들의 마음도 훌렁 넘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닫기 시인 이돈형은 광장에서 고독하다. 그는 자신을 내비치지 않는다. 세속 도시를 활보하고 있을 때도, 지인들과 함께 있을 때도 그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그가 하는 일은 하루를 복기하는 것. 그는 언어의 갬블러가 되어 ‘패’...
더보기 시인 이돈형은 광장에서 고독하다. 그는 자신을 내비치지 않는다. 세속 도시를 활보하고 있을 때도, 지인들과 함께 있을 때도 그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그가 하는 일은 하루를 복기하는 것. 그는 언어의 갬블러가 되어 ‘패’를 재어 본다. ‘엿, 좆, 쥐꼬리’(「패」) 같은 소심한 인간들을 그린다. 그는 제법 퇴폐적인 포즈를 취하기도 한다. 음습한 죄를 짓고 살아가는 범속한 삶을 클로즈업할 때의 그에게서는 위선이라는 것을 찾을 수 없다. 그의 시는 자주 약동하는 청년의 근육처럼 신축성 있는 비약을 보인다. 사건들은 “그 다음을 말하기 전에”(「노쇼」) 이미 눈앞에 나타난다. 그의 시는 비트감 있게 행과 연으로 쪼개진다. ‘힙합’을 말하지만, ‘뼈’는 중년이어서 중년의 비애와 우수가 약한 오줌발로 새어 나오기도 한다. 쓸쓸한 그는 식인종처럼 먹는 이야기를 또 한참 한다. 이 시집에서는 그의 저작詛嚼이 일종의 시작법으로 이어지는 장면도 있다. 나는 그를 잘은 모르지만, 그가 세련된 청년들의 세계를 기웃거리지 않고 「발인」과 같은 ‘혜안’의 시에 경주한다면 대성하게 되리라는 것은 말할 수 있다.
간판
너는 복권방 평상에 앉아 다리를 떨고 있다
복이 새나간다는 말을 몇 번 들려주었지만
올해는 태풍의 발생 빈도가 적고 북상하는 태풍이 없어
8·15 광복절 특사를 위해 꽂아놓은 길거리의 태극기만 간판 앞에서 휘몰아친다
복권방처럼 복을 파는 데가 있다면 간판의 이름은 뭘까
복방,
복 파는 곳,
대한민국에서 제일 싸게 파는 복 집?
우리는 낄낄거리다가
그래도 그렇지 개나 소나 사면은
너는 국기처럼 다리를 흔들며
달아날 복이라도 갖고 태어났으면 나를 만났겠냐고
평상에 앉아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즉석복권을 긁는다
통과
그래도 월요일이 빨간 날이잖아
너에게만 온 복처럼 말하는 동안에도
태극기 휘날리는 날에 빽 간판은 철문을 열고 굴러 나온다
첫댓글 <우리는 낄낄거리다가>시집 색상이 몹시 도회적입니다. 그래서 뒷골목에서 낄낄 거리는 게 아니라 여럿이 좌측인지 우측인지 깜빡이를 켜고 광장으로 나가는 목소리일 것 같습니다.
시집 상재 축하합니다. 이돈형 시인!!!
바쁘고 고단한 연휴의 일상을 잊게 해주는 반전의 틈새 같은 시간입니다 ,,,
당근 낄낄거리는 시간 말이죠 ㅎㅎ
한 편의 시집을 출간하기 까지 얼마나 외롭고 고통이 많으셨을까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낄낄거리다가' 대박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