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이 소란스럽다. 새벽 4시다. 야시로 산장의 새벽은 나그네를 스스로 깨운다. 어젯밤 9시에 소등을 하여 평소보다 일찍 잘 수밖에 없었다. 숙취가 약간 남았으나 밖으로 나가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몽환적 풍광에 홀려 넋을 잃은 듯 했다. 보이지 않는 먼 길을 따라 목도를 걷는 사람, 이 순간을 기억으로만 남기기 아쉬워 카메라에 담는 사람, 그냥 감탄만 하면서 바라보는 사람 등 인간의 다양한 군상이 또 다른 볼거리다. 산장 정면으로 약 6km 길이의 아카다시로 고원습지에는 안개가 너울거리며 그 끝 희미한 자작나무 뒤로 시부스산이 보일 듯, 말 듯 우리를 홀리고 있었다.
‘천상화원’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오제국립공원은 혼슈의 동북지방 후쿠시마(福島), 군마(群馬), 니가타(新潟) 3개 현(縣)에 걸쳐 있는데 약 500년 전 히우치가다케에서 화산 폭발이 일어나면서 흘러내린 용암이 다다미강(只見川)을 막으면서 형성되었는데 일본 100명산 중의 하나인 히우치가다케(燧ヶ岳, 2,356m)의 해발 1,400m~1,600m대 산허리에 띠를 이룬 듯 형성된 습원과 호수 그리고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야생화와 고산식물이 다양하여 독특한 풍광을 이룬 곳이다.
1960년 특별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후 닛코(日光)국립공원에 속해 있다가 독특한 자연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2007년 오제국립공원으로 분리되었는데, 400여 개에 이르는 연못과 늪이 있어 물파초를 비롯한 습윤식물, 여름의 오제를 대표하는 큰원추리가 자생하고 있으며, 눈잣나무와 너도밤나무 숲이 호수와 어우러져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첫날 13시 센다이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이동시간 때문에 버스에서 간단한 도시락으로 점심을 대체하고 미나미아이즈로 가면서 고시키누마(五色沼)라고 불리는 호수를 먼저 관광하였다. 오색소는 1888년 반다이산(1,819m)의 화산폭발로 분출된 용암으로 인해 형성된 호수인데, 토양에 함유된 다양한 광물질로 인해 여러 가지 색을 나타내 화려할 뿐 아니라 일본 100명산이라는 반다이산의 모습이 맑은 물에 투영되어 더욱 아름다우며, 호숫가로 약 4km의 탐방로가 만들어져 있어 크고 작은 호수를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호수구경을 마치고 다시 버스를 타고 에도시대(1603~1868)의 역참마을인 오우치주쿠(大內宿)에 들렀는데 17시가 넘어서인지 마을은 고요했다. 옛 마을의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오우치주쿠는 국가중요 전통 건조물 보존지구로 지정되어 있으며, 시모츠케가도(下野街道)로 불리는 아이즈(会津)와 닛코(日光)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길가 양쪽에 늘어선 초가지붕의 민가들은 에도로 향하는 영주나 여행객들의 숙박지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30채가 넘는 이엉으로 지붕을 인 집들이 늘어서 있는 모습은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추억이 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오우치주쿠의 화장실이 모두 닫혀 인근에 있는 유노가미온천역으로 갔는데 역 건물 자체가 고풍스러운 전통가옥이어 특이하면서도 멋진 볼거리였다.
아이즈고원(會津高原) 호텔에서 1박을 하고 아침 일찍 히우치가다케 등반과 오제가하라 트레킹을 위해 오제의 미이케(御池, 1,500m) 등산로 입구를 향해 출발했다. 미이케를 중심으로 오제국립공원을 탐방하기 위해서는 히우치가다케의 둘레길을 걸어도 되고, 등산에 자신 있는 분들은 히우치가다케(2,356m) 정상에 오른 후 오제호수로 내려가서 오제가하라에 있는 산장에서 숙박하고 반대방향으로 오제호수를 걷고 미이케로 다시 나오면 된다. 우리도 자신의 체력에 맞게 둘레길을 걷는 팀과 정상가는 팀으로 나누어 출발했다.
집사람과 진영이는 둘레길(셔틀버스를 타고 누마야마고개(沼山峙)까지 가서 그곳부터 약 3km 숲길을 걸으면 오제호수 옆 오제누마탐방안내소에 이르고, 오제호숫가로 이어진 목도를 따라 산페이고개를 넘어 휴게소에 도착하여 점심을 한 후, 오제호수를 벗어나면서 산길로 3시간 정도 걸으면 오제가하라에 있는 야시로산장에 도착)로 가고 나는 산행팀과 미이케 주차장 끝에 있는 입구에서 간단하게 몸을 풀고 산행을 시작했다. 500m를 가니 히우치가다케 갈림목(미이케 0.5km, 오제가하라 8.9km, 히우치가다케 4.5km)에서 왼쪽 길을 따라 조그만 개울을 건너 급한 경사의 돌길을 50분정도 올라가니 넓게 펼쳐진 습원에 야생화들이 화려하게 피어있었다. 히로사와다시로습원이다. 습원을 따라 길게 이어진 목도는 다시 급한 오르막을 이루면서 또 하나의 습원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바로 구마사와타시로습원이다. 비슷한 두 개의 습원이 높이만 높이면서 이어진 것이다. 길은 다시 오름길로 이어지면서 산을 휘감아 돌자 갑자기 스키장 슬로프를 연상케 하는 눈이 쌓인 오름길이 나타났다. 여름의 눈길이라 그리 미끄럽지는 않지만 경사가 제법 심해 오르기가 쉽지 않았다. 설사면을 지나 조금 오르니 앞이 훤히 트이면서 왼쪽으로 봉우리가 나왔다.
히우치카다께는 두 개의 봉으로 이루어져있다. 정상은 바위로 이루어져 있으며, 먼저 오른 마나이다구라(2,346m)는 푯말과 아주 조그만 석물이 있으며, 사방이 훤해 짙은 숲에 둘러싸인 오제호수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활처럼 휜 안부 서쪽에 솟아있는 시바야시구라(2,356m)가 정상인 셈이다. 짧지만 급경사를 내려가서 다시 급경사를 올라야 한다.(30분 정도 소요) 정상에서 바로 내려가는 길이 훼손되었다고 해서 우리는 두 봉 안부 사이로 난 급경사로 내려갔다. 30여분 후 오제호수가 정겹게 보이는 조그만 안부에 닿게 되고 이후 길은 너도밤나무 숲길로 지루하게 이어진다. 길고긴 숲길은 오제누마탐방안내소에서 오는 오제가하라 가는 호숫가 목도와 만난다. (아사미시스켄, 정상에서 여기까지 5.4km)
물파초와 여러 야생화가 아름답게 피어있는 오제호수를 보면서 걷는 길은 그야말로 흥겹고 즐거운 길이었다. 1시간쯤 가니 휴게소가 나왔는데 시원한 맥주를 팔고 있어 전체 일행들에게 캔 맥주를 하나씩 돌리니 모두들 즐거워했다. 한 잔의 맥주로 피로를 풀고 휴게소를 출발하여 숲길로 접어드니 너도밤나무숲의 신선함이 또 다른 오제의 기쁨을 전해 준다. 시라스나고개(白沙峙`1,642m)를 넘어 개울을 따라 오제가하라(尾瀨ケ原`見晴, 1,423m)에 도착하니 벌써 6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야시로산장에 미리 도착해 있던 진영이가 반갑게 맞아준다. 이곳은 전화도 되지 않고, 걸어서만 접근이 가능한 곳이다. 이곳의 쓰레기마저도 다 건조시켜 다시 가져나간다고 하니 이들의 자연보호를 위한 노력에 감탄할 만하다.
그 유명한 오제가하라의 몽환적인 새벽을 보고 아침식사 후 출발을 재촉했다. 오늘은 히우치카다께의 북쪽으로 난 둘레길로 미이케로 가는 코스다. 원추리와 붓꽃 그리고 난초과의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있는 오제누마에서 가장 환상적인 풍광을 자랑한다는 아카다시로습원의 목도를 따라가면 유모토산장과 온천산장이 나오고, 산장을 지나면 숲으로 접어들면서 산죠폭포 가는 길과의 갈림길이 나온다. 그 길은 40여분 후 다시 만난다. 숲에는 묘한 나무들이 많았다. 예술작품처럼 땅바닥에 기댄 채 옆으로 자라고 있는 다케캄바(岳樺), 수백 년 된 주목을 연상케 하는 구로히노키(黑ケ檜) 등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나무들이다. 긴 숲길이 끝나면 텐진다시로습원(오제가하라 6.1km, 미이케 3.3km)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하우치카다께가 잘 보인다. 이어 나시타시로, 키미타시로, 미이케타시로습원이 연이어 펼쳐지며 오제국립공원이 천성화원임을 맘껏 뽐낸다. 11시경 미이케주차장에 도착하여 점심을 하고 쉬고 있으니 모두가 도착하여 12시 미이케를 출발, 고풍스러운 옛 거리 아이즈와카마쓰에 있는 쓰루가성을 관람하고 센다이로 돌아왔다. 쓰루가성은 1384년 건축이 시작되어 아이즈 영주에 의해 현재의 성곽 원형이 구축되었고, 1591년 가모우 우지사또가 천수각을 지으면서 쓰루가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오제국립공원은 일본에서 환경운동의 모범이 되는 곳이다. 한때 이곳도 관광객들에 의해 심하게 훼손된 적이 있었는데 목도를 설치하는 등의 노력으로 지금은 아름다운 자연을 그대로 보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