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먹고 말 더덤는 사람을 고치시다
마가복음 7장 32-35절『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귀는 들을 귀를 의미한다. 세상의 말을 듣지만, 영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말을 듣지 못하면, 이는 영적으로 귀먹은 자인 것이다. 말 더듬는 자는 하나님 말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복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복음을 전하기는 하는데, 진리의 말씀이 왜곡되어 전하므로 배나 지옥자식이 되게 하는 자들인 것이다.
“손가락(다크틸루스 δακτύλους)을 그의 양 귀(오타 ὦτα)에 넣고(에발렌 ἔβαλεν) 침을 뱉어(프튀사스 πτύσας) 그의 혀(글로세스 γλώσσης)에 손을 대시며(헾사토 ἥψατο)”
손가락인 “다크틸루스”는 어근이 데카(열:10)이다. 마태복음 20장 24절에서『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열은 완전함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손가락은 완전한 권세를 가지는 분이라는 표현이다. 오타(귀)가 적용된 문장은 누가복음 4장 21절에서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여기에서 귀는 영적인 귀를 의미한다. 영적인 귀가 열린 자는 예수님의 완전한 권능이 임하는 것이다.
“에발렌”은 던지다 라는 의미가 있는데, 마태복음 3장 10절에서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누가복음 14장 35절에서『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예수님이 영적 귀가 열리지 않으면, 던져버린다. 그러나귀가 열리면 하나님의 권능이 들어가는 것이다.
프튀사스는 침을 뱉다 라고 번역했는데, “두루마리를 접다” 라는 의미가 있다. 누가복음 4장 20절에서『책을 덮어(프튀사스)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두루마리(성겨)을 접는 것은 예수님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접어놓는 것이다.
글로세스는 혀, 언어, 방언의 의미를 갖는다. 고린도전서 14장 5절에서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글로세서)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헾사토는 만지다, 소속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헾사토의 어근은 헾사스(불을 붙이다)에서 유래된 것으로 누가복음 8장 16절에서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이를 가장 잘 표현한 곳이 요한계시록 3장 22절이다.『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는 오늘날 교회를 예표한다. 오늘날도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은 교회가 있다.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시는데,『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라고 하셨다. 보통 교회사람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행위』를『믿음이 없고, 열심이 없다』는 말씀으로 이해한다.『교회를 안나오는 것도 아니고, 교회에 나와서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라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행위는 어떤 일에 관계되는 것이다.
요한복음 6장 27절에서『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즉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에 관계되는 일이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에 관계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며,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다. 즉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다. 그 영생을 얻는 일에 대해서『더웁지도, 차지도 않다』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은『차지도 않고 더웁지도 않고, 내 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라고 했다. 내 입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의 입에서는 하나님 말씀이 나오는데, 그 말씀인즉『너는 미지근해서, 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네가 말하기를『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못하도다』 라고 하셨다. 이런 것이 미지근한 상태이다. 교회를 향해서『부자라고 하는 것은 구원받은 자』를 말한다. 자신은 구원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은『그렇지 못하다 』라고 하신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곤고한 자요, 가난한 자, 눈먼자 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네가 교회에 다니면서 죄사함받고, 구원받았다고 하지만, 구원받지 못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가난한 자요 곤고한 자요 가련한 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예수믿고 구원받았다』라고 생각하지만『예수님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다.
예수믿는다고 말은 하지만『율법에 얽매이면서도 성령도 좋고 율법도 좋고』하는 식으로 자기들의 생각대로 믿는 자들이 다 여기에 속한다. 이런 자들은 실제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깨어있지 못하여, 여전히 그 앞에 수건이 가려져 있는 상태를 말한다. 고린도후서 3장 14절에서『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수건이 가려져 있어서 율법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자』라고 지적하신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서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예수님은 교회 문밖에서 두드리고 있다. 그런데, 들을 귀가 없으므로 문을 열지 못한다. 『문을 열지 않으므로 예수님이 들어가지 못한다』라는 말이다.이 말은『예수 그리스로 말미암아 죄사하심을 받고 구원을 받는 것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죄사함받고 구원을 얻었다』라고 한다면 율법과는 관계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율법 위에 계시는데,『예수를 믿는다』라고 하면서 예수 밑에 있는 율법을 믿으면 곤란하다.
예수님은『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면하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하라』라고 하셨다. 라오디게아 교회 사람들은『다 구원받았다』라고 생각하는데,『내(예수님)게서 불(성령)로 연단한 금 (하나님 말씀)을 사라』고 하셨다. 성령에 의해서 감동으로 기록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부자가 되어라』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부자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부자가 아니라는 말씀이다.『라오디게아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는 뜻이다. 흰옷은 하나님의 의를 말한다. 흰옷을 사기 위해서는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야 한다.『벌거벗었다』라는 것은『의인이 아니라 죄인이라』는 말이다.『안약을 사서 발라』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눈이 열어지라』는 말이다. 그렇게 눈이 열어져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만나라』는 말이다. 만나라는 말은 십자가의 예수와 연합되는 것이다.
『회개하라, 무릇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열심을 내라』라고 하셨다. 회개하라는 말은『하나님께로 돌이키라』는 말이다.『세상에 잘못한 일을 반성하라』는 말이 아니라『세상으로 향하던 것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라』는 말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서『회개하라』는 말은『예수님이 문밖에 있으므로 예수님께로 돌이켜서, 문밖에 계신 예수님을 문 안으로 들어오게 하라』는 말이다. 그냥 예수님을 향해서 들어오라고 해서 예수님이 들어오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예수님과 연합될 때, 예수님이 들어오시는 것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겠다』고 하셨다. 이기는 자는 예수님처럼 이겨야 한다. 예수님은 세상을 버리심으로 세상을 이기셨다. 세상에 대하여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이기신 것이다. 세상에 대하여 죽고, 죄에 대하여 죽고, 율법에 대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이기신 것이다. 로마서 8장 3-4절에서 설명하고 있다.『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심이니라』우리는 육신이 연약하므로 율법을 이룰 수 없지만,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을 이루게 하신다는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