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사체험을 겪는 사람이 늘고 있다.”
국제적으로 임사체험(NDE)의 최고 전문가로 평가받는 제프리 롱 박사는 한국 언론과의 첫 인터뷰에서 이처럼 말했다. 한 번의 통화와 두 번에 걸친 e-메일 인터뷰에서 롱 박사는 “의학기술이 발달해 병을 앓거나 사고를 당해도 죽지 않고 치료로 소생하는 사람이 늘고, 그 가운데 많은 이가 임사체험을 한다”며 “임사체험연구재단에 임사체험을 알려 오는 사람들이 최근 두 배 이상 급증했다”고 말했다. 임사체험은 심장 및 뇌파가 정지돼 의학적으론 사망한 상태이면서도 독특한 체험을 하는 현상을 말한다.
롱 박사는 전 세계 최대의 임사체험 연구기관인 ‘임사체험연구재단’의 설립자다.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인 1300건 이상의 임사체험을 연구, 『죽음 그 후』라는 연구서적을 냈다. 재단은 체험을 추가해 현재는 2000건의 사례를 수집했다. 이 사례는 재단 사이트(www.nderf.org)에 공개돼 있으며 한국어 사이트도 있다. 물리학자이자 방사선종양학과 전문의인 그는 현재 루이지애나주 호마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임사체험자가 느는 것은 인터넷 사용자가 증가했기 때문일 수 있지만 세계적으로 임사체험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고 있으며 체험자 숫자도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며 “재단은 20개 이상의 언어권에 대한 사례를 수집하고 있으며 유사 이래 최대 규모로 비교문화적인 임사체험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 과정에서 체험이 세계의 어디에서 일어나는지와 관계없이 놀라울 만큼 유사성을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압도적으로 많은 임사 체험자가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데 평균 7년에 걸쳐 변화를 겪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또 “체험자들이 보이는 변화에는 공통점이 존재한다”며 ▶죽음에 대한 공포가 줄고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 강화되며 ▶신의 존재를 더 굳게 믿는 경향이 생기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 중요시하고 더 강하게 찾아나서는 경향 등을 꼽았다.
한국에선 임사체험은 일종의 미신으로 간주된다. 미국에선 다른가.
“미국에서 임사체험 연구는 엄연한 의학 분야다. 임사체험은 1975년 처음 보고된 뒤 수백 건이 넘는 학문적 보고서와 논문이 제출됐다. 임사체험에 관한 전문잡지인 ‘임사체험 연구저널’도 발간된다. 임사체험은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사실이고 체험 뒤 삶에 대한 태도와 믿음에 실질적 변화가 온다는 것도 의학적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임사체험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학계에 의견 차이가 있다.”
임사체험을 하는 유형이 있나.
“생명의 위협을 겪은 사람들의 12~18%가 임사체험을 한다. 왜 누구는 하고 누구는 안 하는지 아직 의학적 설명을 못 한다. 수십 년 임사체험을 연구해도 여전히 남는 의문이다. 임사체험이 일어나는 순간과 인구학적 연관성을 찾는 연구도 있다. 현재로선 누가 임사체험을 할지, 하면 어떤 내용이 될지 예측 불가능하다. 아이, 어른 모두 체험할 수 있고, 의사, 과학자, 고학력자와 교육을 못 받은 자 모두 겪을 수 있다. 성직자와 무신론자들도 그렇다. 1982년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약 5%가 임사체험을 했다. 또 매일 약 774명 미국인이 임사체험을 한다는 연구도 있다.”
임사체험의 정의는 무엇인가.
“나는 ‘생명이 위협받는 순간 일어나는 명확하고 조직화된 경험’이라고 정의한다. 생명을 위협할 만큼 의식을 잃거나 의학적으로 사망선고를 받은 때를 가리킨다. 현대의학의 사망 기준은 두뇌와 심장의 활동 정지다.”
미국, 유럽, 아시아 등 대륙, 문화권별로 체험 양상이 다른가.
“지금까지 연구를 종합하면 전 세계 임사체험이 놀라울 정도의 동일성을 보인다. 비서구권 국가들에선 약 200건의 체험이 문서로 상세히 보고돼 활발한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서구권의 체험과 아주 흡사하다.”
그게 진짜 체험이란 것을 어떻게 보장하나.
“인터넷으로 받는 체험기와 실제 면접을 병행한다. 또 체험 보고 수집 과정에서 질문을 조금씩 다르게 하는 방법도 쓴다. 그 과정에서 일관성을 보이는 것만 인정한다. 한 임사체험자를 여러 차례 조사해 일관성을 확인한다. 매번 다른 방법을 사용한다. 체험을 밝힌 지 20년 뒤 다시 조사한 케이스도 두 건 있다. 다행히 내용이 부풀려지지도 않고 본인이 잊지도 않았다.”
임사체험은 환상이라는 지적이 있다.
“내가 『죽음, 그 후』를 쓴 이유가 이를 반박하기 위해서다. 책엔 임사체험이 사실임을 보여 주는 증거들이 등장한다. 우리 재단 홈페이지에 있는 사례들을 보라. 사실 못 믿겠다는 생리학적⋅심리학적⋅문화적 주장이 20여 가지 있다. 설명이 그렇게 많은 것은 하나도 설득력을 못 얻는다는 증거다. 임사체험에 대한 설명은 왜 그렇게 많은지 물을 것이다. 간단하다. 임사체험이 나타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현상이 다양해 하나로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임사체험을 의학적으로 꼭 집은 뒤 절대적이고 보편적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무엇보다 회의적인 사람들은 사후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임사체험은 현대의학으론 잘 설명되지 않는다. 의사와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의학적 설명이 어렵다는 점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예를 들어 산소 부족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란 주장은 어떤가.
“가장 흔한 반박 중 하나가 ‘뇌의 산소 부족으로 나타나는 환상’이라는 주장이다. 의사들은 산소 부족의 경우 두통, 혼란, 기억상실과 피로감을 겪는다고 알고 있다. 맞다. 산소 부족현상이 심하면 정신착란이 악화될 수 있으며 의식도 잃는다. 그런데 문제는 산소 부족현상을 겪은 이들의 경험이 임사체험자의 경험과 다르다는 점이다. 산소 부족은 대부분 기억 혼란을 일으키는데 임사체험의 경우 대개 기억 혼란은 없다. 임사체험의 기억은 매우 선명하며 조직화돼 있다.”
임사체험을 이해하는 게 왜 중요한가.
“임사체험은 의식이 육체의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신체적 증거로 보이기 때문이다. 임사체험 연구는 우리 모두는 두뇌 이상의 존재이며 의식은 육체와 분리된 존재라는 것을 보여 준다. 과학적, 종교적, 의학적으로 엄청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임사체험을 경험하는 어떤 것은 뭔가. 육체인가, 아니면 소위 영혼이라는 것인가.
“임사체험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독특하다. 보고 듣기도 하지만 물리적 세계와 상호작용을 못 한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아니면 지구의 시간과 비교할 때 엄청나게 가속된 시간을 경험한다. 이동도 소통방식도 ‘비물리적’이다.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텔레파시처럼 교환한다. 이런 점들은 종교가 ‘죽음 뒤 나타난다고 믿는 비물질적인 어떤 것’과는 다르다. 그들의 체험 내용은 ‘영혼’에 대한 기독교적 믿음과는 다르다.”
서구에선 임사체험이 의학-과학의 영역으로 진입
임사체험의 사례
#사례1
2004년 경기도 수원 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 33세, 임신 26주째 임산부가 출혈로 산부인과를 찾았다. ‘저위태반’과 ‘태반조기박리’. 태반이 자궁 아래로 내려가고 출산도 아닌데 자궁에서 태반이 떨어지고 있었다. 바로 제왕절개 수술에 들어갔다. 아이는 별 탈 없이 나왔지만, 산부의 출혈은 멈추지 않았다. 끔찍했다.
시간이 가도 피는 계속 흘렀다. 의사들은 수술에 집중했다.
▶수술 1시간25분=과다 출혈로 혈압이 측정되지 않았다.
▶1시간40분=맥박이 거의 정지 상태로 됐다. 의학적으로 가사 상태였다. 수술팀은 심폐소생술을 결정했다.
▶1시간 55분=15분간의 전기충격 심폐소생술로 맥박은 돌아왔다. 혈압은 여전히 잡히지 않았다.
▶2시간 35분=소생술 55분 뒤. 산부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혈압 95~115, 맥박 100~110회. 자궁적출 등 남은 수술이 마무리됐다.
▶수술 7일 뒤=환자는 일반 병동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수술 시간 동안 겪었던 일을 주치의에게 말했다.
“차를 타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고 있었어요. 멀리서 불빛 같은 것을 봤어요. 터널을 지나니 파란 하늘이 밝게 보였어요. 갑자기 아주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고, 뭔가를 가슴에 대는 걸 느꼈어요.”
『최신의학』2008년 5, 6월 호에 실린 ‘전신마취하 수술 중 심폐소생술 생존자가 경험한 임상체험 사례’에 나온 내용이다. 전연수 가톨릭의대 교수는 논문에서 “의료진은 환자의 임사 체험을 파악하거나, 환자의 경험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반응 때문에 정신적 외상을 받지 않게 임사체험의 발생 가능성과 내용을 알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해 논문을 썼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의사가 ‘임사체험’으로 정의하고 공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임사체험은 두뇌, 심장 활동이 멎어 의학적으론 사망했으나 실제론 ‘뭔가를’ 겪은 뒤 소생하는 경우를 말한다. 영어로 NDE(Near Death Experience)이며 근사(近死)체험이라고도 한다. 심장이 정지해 뇌에 피가 안 돌면 10~20초 뒤 뇌파가 기록되지 않는다. 죽은 것이다. 급성 심장마비, 외상에 의한 뇌손상, 갑작스러운 과다출혈, 질식으로 인한 의식 소실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겪는 체험이다. 그런데 이런 경험을 어떻게 봐야 할까. 또 다른 사례를 보자.
#사례2
1984년 서울 불광동. 전직 간호사로 결혼 3년차 주부였던 A씨는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자주 막혀 동네의원을 찾았다. 의사는 천식으로 보고 항생제 카나마이신을 주사했다. 순간 주부의 눈이 빨개지며 쓰러졌다. 주사 쇼크였다. 혈압이 40~20으로 떨어졌다. 바로 옆 청구성심병원으로 옮겼지만 깨어나지 않았다. 당시 서소문에 있던 한일병원 응급실로 옮겼다. 심폐소생술도 소용없었다. 호흡, 맥박이 없었다. 쇼크 이후 19시간, 사망 판정이 내려졌다. A씨는 영안실로 옮겨졌다. 그런데 “후유…” 긴 숨과 함께 살아났다. A씨가 당시 치료 의사로 알려준 한일병원의 의사는 “수많은 환자가 있어 따로 기억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런데 그 19시간 동안 A씨는 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경험을 했다. 다급한 의사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A씨는 좁고 어두운 터널을 바람처럼 빠져나갔다. 밖은 넓었다. 공기는 너무 깨끗했다. 나무와 풀은 황금색이었다. 인적 없는 들판을 계속 날았다. 한옥이 보여 들어가려는데 수문장 두 명이 막았다. “문 안은 무섭다. 들어오지 마라.” 그는 빙 둘러 색동 비단이 깔린 긴 계단을 올라갔다. 삼존불이 나타났다. 가운데 부처가 붉은 팔을 던지며 고함을 쳤다. “빨리 나가라. 네가 올 데가 아니다.” 이번엔 돌아가신 외조부모가 나타나 거울을 보여줬다. 거기엔 삭발 스님의 모습을 한 자신이 보였다. 놀라 비명을 지르다 깨어났다.
『빙의』 『대한민국과 결혼한 박근혜』의 저자, 묘심화(妙心華) 스님이 23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말한 자신의 임사 체험이다. 간호 전문대를 졸업하고 간호교사까지 지냈던 그는 이 ‘믿기 어려운’ 체험 뒤 불가에 입문했다.
#사례3= 이모(당시 34세, 여성)씨는 이유 없는 슬픔과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았다. 어릴 때부터 어둡고 공허한 정서에 익숙했다. 정신과 약을 먹어도 호전되지 않았다. 어릴 때 집안도 화목했기 때문에 원인을 찾기 어려웠다. 그는 최면치료를 원했다. 세 번째 최면치료에서 이씨는 과거 삶을 떠올렸고 현재 우울증과 연결된 기억들을 찾아냈다. 이런 내용이다.
“200년 전 서양에서 십대 소녀였던 나는 임신했다. 부모는 남자가 비천하다며 관계를 끊었다. 소녀는 목매 자살했다. 마음의 상처와 강한 감정이 현재 영향을 미쳐 우울과 공허감을 느꼈던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이 과정에서 ‘임사체험’을 했다. 죽어가면서 소녀는 나무에 매달린 자기 몸, 부모의 슬픔, 장례식을 지켜봤고 곧 밝고 강한 빛을 통해 다른 세상으로 가게 됐다.
보통 사람으로선 믿을 수 없는 이런 사례는 전형적인 임사체험이다. 임사 체험은 죽음만큼 꺼림칙하면서도 꾸준한 관심의 대상이 돼 왔다. 한국에선 ‘미신’ 이나 여름철 납량특집처럼 취급되지만 주로 서구권에서는 정식 학문 연구의 대상이 돼 있다.
최고의 국제적 임사체험 연구자인 미국의 제프리 롱 박사는 “첫 기록은 2000년도 전인 플라톤 시대에 나온다. 에르라는 이름의 병사가 겪은 경험이다. 중세시대에도 나온다”고 했다. 의학 영역으로 들어온 것은 미국의 레이먼드 무디 박사가 60건이 넘는 사례를 연구, 1975년 『임사체험』이란 책을 낸 시기였다.
1926년엔 물리학자 윌리엄 바렛이 산부인과 의사인 부인의 환자가 말한 임사체험을 묶어 『죽음의 자리에 나타나는 환영들』이란 책을 출간했다. 이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0세기 10대 사상가 중 한 명인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가 임사체험이 ‘인종, 연령, 성별, 종교의 유무, 종교’에 무관하게 동일하게 관찰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러다 철학 박사인 레이먼드 무디 주니어가 1975년 『사후생』이란 책을 발간, 1300부가 팔리면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81년엔 임사체험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연구회가 미국에서 조직됐고 88년엔 ‘국제 임사체험 연구회’로 발전했다. 연구회는 유일한 임사체험 전문학술지를 발간한다.
서울대 의대 내과 정현채 교수는 “98년엔 일본 교린 의과대학 노인병과가 질환으로 깊은 혼수에 빠진 48명의 노인을 연구, 14명(37%)이 임사체험을 했음을 밝혀냈다”고 말했다. 성별, 나이, 기저질환, 직업, 종교, 교육 정도, 사고 장소, 혼수 기간 등의 차이를 연구했지만 차이가 없었다. 2001년 네덜란드에서는 죽음에 접근했던 344명 환자 중 18%인 62명이 겪은 임사체험을 연구, 3대 국제 의학 저널의 하나인 ‘란셋’에 실었다.
연구에 따르면 50%는 ‘의학적 사망 상태’에서도 ‘내가 죽었다’는 인식을 했고, 그럼에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56%), 체외이탈을 하고(24%), 터널을 통과하고(31%), 빛과 교신하며(23%),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13%) 경험을 했다.
2007년 대만에선 임사체험 연구센터가 타이베이 7개 병원 710명의 혈액투석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가 ‘미국 신장병학회지’에 실렸다. 51명이 임사체험을 했으며 긍정적 감정(74.5%), 체외이탈(51%) 등을 경험한다. 네덜란드와 대만 모두 임사체험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다른 사람과 더 공감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며, 사후생과 인생의 목적을 믿는 등 긍정적 현상을 보여준다.
아직은 ‘비주류’지만 국내 의료진 가운데도 임사체험을 받아들이거나 과학적으로 연구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길 병원의 이근(59) 부원장은 40대 후반 폐렴을 앓으면서 특이한 경험을 한다. “3~4일간 열이 42~43도까지 오르며 어떤 약도 듣지 않고 사실상 방치됐던 때였다. 갑자기 내가 바위가 널린 척박한 민둥산 위로 날아다녔다. 방금 심은 것 같은 소나무. 닿을 것 같으면서도 잡히지 않았다. 멀리 강이 보였다. 깨보니 시트가 흠뻑 젖었고 열이 내렸다. 다음날 병이 다 나았다”고 했다. 그는 “환각일 수 있지만 임사체험으로 보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대 의대 내과 정현채 교수는 임사체험을 포함한 내용의 강의를 자주 다닌다. 그가 만든 자료 ‘의사로 갖추어야 할 죽음관’은 임사체험을 중요 주제로 다룬다. 정 교수는 “세상을 설명하는 데 물질적 연구만으로 충분하다는 ‘과학적 근본주의’에 의문을 던지게 된다”고 했다.
임사체험을 연구해야 하는 이유
임사체험은 ‘죽음에 임한 사람들이 겪는 특이한 현상’을 의미하는 심리, 정신의학 용어다. 미국 정신과 의사 레이먼드 무디가 ‘의학적으로는 죽었지만 다시 살아난 사람들과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회복된 사람들’이 전하는 특이한 체험을 모아 1975년, ‘삶 이후의 삶’이라는 책을 발표하면서 처음 사용한 표현이다.
임사체험은 영적, 내적 성장을 이끄는 촉매도 되지만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큰 위기가 될 수 있다. 기존의 가치관 때문에 내적 갈등을 겪을 수 있고, 주변에서 체험을 부정하거나 조롱하는 경우 자기 정신상태를 의심하며 불안해할 수도 있다. 내원하는 치료자나 상담자 중에도 솔직하게 경험을 털어놓았다가 주변에서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바람에 상처를 입는 경우도 많다. 거꾸로 임사체험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해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체험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긍정적으로 적응해 가며 삶의 깊이를 더해가게 된다.
임사체험이 우리들 삶의 중요한 현상임을 보여주는 객관적 자료도 제법 있다. 82년 링은 자신의 저서에서 “실제 죽음의 문턱에 갔던 사람들 중 최소 3분의 1 이상이 이 체험을 한다”고 했고, 95년 미국의 갤럽 설문조사에서는 1300만 명 이상이 미국 사람이 임사체험을 경험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자아초월 정신의학 교과서’에 따르면 미국 여론조사 결과 조사대상자의 70~80%가 현대의학 치료 기법의 한계에 실망하고 있으며 미국인의 58%가 영적 성장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초자연적 신비 체험을 하는 인구가 전체의 30~40%에 이른다는 연구도 있다.
한국에서는 잘 안 받아들이는 임사체험을 과학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현상이 ‘인간의 의식은 두뇌의 산물이며 육체가 죽으면 소멸된다’는 유물론적 생물학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병원의 치료 과정에서 볼 때 육체와 상관없이 의식이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두뇌가 형성되기 전인 임신 1개월의 태아 시절 기억이나, 엄마의 자궁으로 들어오기 전 상태의 기억을 말하는 환자들을 최면치료 과정에서는 흔히 만난다. 이들의 기억을 절대로 단순 환상이나 일부러 만들어낸 것으로 볼 수 없다. 치료 과정이 진행될수록 환자가 고통받는 현재의 문제와 기억 사이의 깊은 상호관련이 드러나고, 일반 상담에서 해결할 수 없던 문제들이 기억 속에서 해결 실마리를 찾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내원 환자의 10명 중 8~9명은 이런 치료를 통해 돌파구를 찾는다.
기존 정신의학과 심리학은 임사체험과 유체이탈, 전생 기억, 초자연적 체험 등을 외면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실제로 경험하는 이런 현상에 대한 연구와 이해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국제적으로 커져가고 있다. 60년대 말 탄생한 자아초월(Transersonal) 정신의학이 그것이다. 기존 정신의학을 확장해 인식의 근원과 영혼, 죽음, 신비체험 등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정신현상을 연구 영역에 포함하는 ‘자아초월 의학’은 기존 정신의학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많은 증상을 해결한다. 임사체험도 자아초월 정신의학의 중요 연구과제며 이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인간 의식의 정체와 작용기전을 밝히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의 과학은 아직 ‘영혼’이라든가 인간의식의 근원과 본질을 규명하지 못하고 있지만 임사체험이나 유체이탈과 같은 현상을 진지하게 연구하면 죽음 이후의 삶이 정말 존재하는지, 육체의 죽음 후에도 소멸되지 않는 영혼이 정말 있는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를 포함해 서울대 의료진 등 여러 전문가가 ‘양자에너지 의학 연구회’를 구성해 정기 학술 모임을 갖는 것도 ‘정신과 의식’의 문제를 ‘현재 과학, 의학’을 넘어 역동적으로 발전 중인 ‘양자론’과의 연계성 속에서 찾아보려는 시도 중 하나다.
임사체험을 부정하는 사람들
과학계와 의학계는 대체로 임사 체험에 대해 부정적이다. 체험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연구 결과 생체 반응으로 일어나는 물리적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부정적 입장은 ‘뇌가 헷갈리는 현상’의 원인으로 ▶환각 ▶저산소증 ▶흥분, 행복감 ▶정신분열 등을 꼽았다.
환각설은 뇌 기능이 완전히 멈추면 그런 체험을 하고 또 기억해 낸다는 게 불가능하다고 본다. 뇌사 상태에 빠졌던 환자가 기적적으로 의식을 회복해 임사 체험을 얘기한다고 해도 이는 뇌가 기능을 멈추기 직전이나 외식 회복 후에 작동해서 생긴 환각이라는 논리다. 마약이나 정신분열증에서도 일어나는 환각 같은 것이라는 입장이다.
저산소증으로도 설명한다. 『죽음 그 이후』의 저자 블래처 박사는 임사 체험을 죽음에 대한 환각이라고 한다. “심장이 멈추면서 저산소증에 빠진 뇌가 의료 절차나 질병에 대한 불안을 처리하려고 애쓰는 모습에 불과하다. 임상 보고에 의하면 심각한 저산소증을 겪은 사람은 의식을 잃기 전에 인지 능력이 심각히 손상돼 뒤죽박죽 혼란스러운 기억을 갖게 된다”고 했다. 『죽음의 체험에서』를 쓴 영국의 정신과 의사 제임스 맥더그는 ‘임사 체험이란 죽음에 이른 뇌가 산소결핍으로 전두엽에서 일으키는 발작’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뇌 안에 모든 정보가 입력돼 있는데 뇌가 충격을 받으면 추억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임사 체험을 한 사람들이 말하는 ‘흥분, 행복감’도 설명 가능하다고 본다. 라크머 차우 박사가 이끄는 미국 조지 워싱턴대 연구진은 죽음이 임박한 환자 7명의 두뇌 활동을 한 달간 분석했다. 그 결과 죽기 직전 30초~3분 동안 많은 전기 에너지가 분출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라크머 박사는 “사망 직전 체내 산소가 줄어들고 혈류가 늘어나는데 이때 뇌세포가 마지막으로 많은 에너지를 방출한다. 분출 에너지가 뇌의 한 부분에서 시작해 폭포수처럼 퍼지며 엄청난 흥분을 준다”고 분석했다.
정신분석학자 중 상당수는 임사 체험을 ‘심층심리의 자기방어 기능’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앨런 왈드와 노이즈 박사는 ‘죽음에 임박하면 엄청난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는데 이를 의식에서 배제하기 위해 마음이 여러 이미지를 만드는데 이게 임사 체험’이라고 한다.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 김영보 교수도 뇌과학적 견지에서 임사 체험을 부정했다. “임사 체험의 전제는 뇌의 사망인데 사실은 정말로 죽지 않아 환각을 보는 것”이라며 “뇌 기능을 다하기 직전 마지막 전기활동이 급증하면서 보게 되는 환각을 임사 체험이라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서울대 내과 정현채 교수는 “예를 들어 마약이나 정신분열증에 의한 환각과 임사 체험의 경험은 다르다. 분열증의 기억은 조각 나 있고 일정치 않으며 정리도 안 돼 있고 생의 회고도 없다. 환각제의 환각도 임사 체험과 달리 공포스럽고 기괴하다”며 “즉 근(임)사 체험은 뇌가 헷갈리는 게 아니라 실제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정신과 전문의이며 융 분석심리학자인 이나미 박사는 ‘과학의 잣대로 임사 체험을 부정하는 것은 틀릴 수도 있고 유익하지도 않다’는 입장이다. 그는 “임사 체험을 비과학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음과 그 이후 경험에 대해 결론을 내리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
첫댓글 자료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