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천저수지 / 신원사(계룡산둘레길 일부구간길)
경천지에서 자전거와 함께한 죽향님 | 신원사에서 죽향님 |
양화리 뒷산에서 버러본 계룡산 마루금 | 신원사 석등 |
2022-02-18(셋째 금요일/맑음) 충남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신원사/경천리 경천저수지(계룡산둘레길 일부) 코스 : 양화리뒷산 -> 경천(양화)저수지 -> 경천중학교 -> 솔로몬 지인분 농원(점심) -> 경천지 -> 신원사.
함께한 분들 안내 : 솔로몬 참여 : 죽향 / 청마(靑馬).
사진 청마(靑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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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鷄龍山)
백두대간(白頭大幹) 금남정맥[錦南正脈-전라북도 무주의 주화산(珠華山)에서 북서로 뻗어 계룡산에 이르고, 계룡산에서 다시 서쪽으로 뻗어 부여의 부소산(扶蘇山) 조룡대(釣龍臺)까지 약 118km에 이르는 산줄기의 옛 이름]의 끝자락에 위치한 계룡산(鷄龍山)은 삼국시대 때부터 백제를 대표하는 산으로 널리 중국까지 알려졌으며, 신라통일 후에는 오악(五嶽)중 서악(西嶽)으로 조선시대에는 상악 묘향산, 하악 지리산과 함께 삼악(三嶽)중 중악(中嶽)으로 봉해질 정도로 상당한 유명세를 가진 명산이다. 계룡산의 고도가 845미터로 다른 국립공원들에 비해 그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일찌감치 1968년에 지리산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것도 이런 배경이 영향을 미쳤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은 계룡산이 ‘조선조 초기에 이태조가 신도안-지금의 계룡시 신도안면 일대-에 도읍을 정하려고 이 지역을 답사하였을 당시 동행한 무학대사가 산의 형국이 금계포란형이요, 비룡승천형이라 일컬었는데, 여기서 두 주체인 계(鷄)와 용(龍)을 따서 계룡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 태조 즉위 다음해인 1,393년에 이 일대에서 본격적인 신도 공사를 착공하면서 사용했던 주춧돌들은 지금도 흔적으로 남아 있고 신도안이란 지명으로도 그 역사적 배경을 전해주고 있다.
특히 계룡산은 소위 ‘기도빨’이 잘 받는 산으로 알려져 있고 우리나라 도맥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데 근세에 정역을 완성한 김일부 선생이 계룡산 국사봉에서 공부하면서 많은 제자들을 배출한 바 있다. 스스로 계룡산학파의 후예라고 밝히고 있는 동양학자 조용헌씨에 따르면 “계룡산은 수많은 수도인들에게 영양분을 제공하고 있는 민족의 성지”라며 그 이유에 대해 “첫째, 계룡산은 통바위로 되어 있다. 거대한 바위 덩어리는 기운이 강하다. 둘째, 계룡산은 산태극, 수태극의 형세를 하고 있다. 산맥과 강물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계룡산은 신령스럽고 기묘한 기운이 있어 도 닦기에 좋다.”고 설명하고 있다.
계룡산 산행은 사찰을 기준으로 크게 동,서,남의 3가지 방향에서 시작된다. 동쪽의 동학사, 서쪽의 갑사, 남쪽의 신원사, 여기에 더해 가장 긴 능선 종주 코스인 병사골이 산행의 시작점 들이다. 계룡산 산행의 맛은 적당히 길고 짧은 코스들이 있어서 이를 조합하면 반나절 산행, 한나절 산행, 종주 산행, 원점 회귀 산행 등 아기자기하게 다양한 등산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동학사쪽 코스는 가장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코스로 남매탑으로 올라 삼불봉에서 계룡산 산행의 백미인 자연성릉을 타고 관음봉을 거쳐 은선폭포로 내려오거나, 그 반대로 돌거나, 거리상으로는 8.6킬로미터에 달하는 4시간 내외의 원점 회귀 코스 등이 있다. 여름철에는 오르면서 땀을 빼고 내려오면서 폭포와 계곡을 만나 시원하게 산행 마무리를 하는 것이 나은 편이라 수량이 풍부한 편인 은선폭포쪽 하산 코스를 추천한다.
좀더 긴 산행을 즐기려면 병사골에서 시작해 장군봉을 거쳐 신선봉, 삼불봉, 관음봉을 찍고 은선폭포로 내려오는 대략 11킬로미터 6시간 내외에 달하는 코스다. 이 코스는 경사가 심하고 거리가 멀지만 장군봉 정상에 도달하면 멀리 제 1봉인 천황봉과 이어지는 계룡의 봉우리들을 한 눈에 보며 산 전체를 감상할 수 있고 능선을 따라 주봉들을 두루 거친다는 점에서 도전할 만하다.
갑사 코스는 춘동학, 추갑사라고 불릴 정도로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코스다. 갑사쪽에서는 금잔디 고개를 거쳐 삼불봉, 관음봉으로 돌아 내려오는 9.6킬로미터의 원점 회귀코스도 있고 여기에 연천봉을 들러 내려올 수도 있다. 신원사 쪽에서도 관음봉을 거쳐 동학사로 하산을 할 수 있는데. 갑사나 신원사에서 출발해 동학사로 산을 타고 넘는 코스는 능선 길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7킬로미터에서 9킬로미터 내외이며, 시간상으로는 짧게는 3시간에서 길게는 5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동학사 입구 쪽에는 식사 시 숙박을 무료로 제공하는 식당들이 여럿 있어서 당일치기 산행을 하기 무리한 경우에는 이들 식당을 간단히 이용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또는 산행을 마치고 인근 유성으로 이동해 온천 욕으로 일정을 마무리하는 것도 좋다. 새로운 도읍지를 찾아 나선 태조와 그의 아들 태종도 유성에서 온천을 즐겼다고 하니 가히 수 백년의 역사가 물을 통해 지금까지 이어지는 셈이다.
솔로몬 지인분이 운영하는 농장에서 푸짐한 삼겹살과 뜨끈하게 끓인 냉이된장찌게로 맛난 점심을 해결한다.
맛난 음식을 제공해주신 솔로몬 지인분께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를 드린다.
동네분 자전거를 잠깐 실례해서 사진을 담아본다.
자전거 주인이 중고로 15만원에 구입했다고,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ㅎㅎㅎ
미륵정토사
◎ 종명의 의의
미륵이란 고불 이후 당래불로서 하생하시어
용화회상의 삼 회 설법 등으로 일체중생을 제도하여
용화세계를 개벽하는 자비제일 공덕제일의 미륵부처님을 말하는 것이요,
정토란 부처님이 직접 제도 개벽하시어 주석 조화하시는 세계로서
일체의 번뇌와 부정함이 없는 이상세계 즉 불국토를 말하는 것이요,
종(宗)이란 근본의 정수를 뜻하는 말이다.
고로 미륵정토종이란 당래불로서 하생하시어
용화회상의 삼 회 설법 등으로 일체중생을 제도하여 용화세계를 개벽하시는
자비제일 공덕제일의 미륵부처님을 주불로 모시고
일체의 부정이 소멸된 이상의 불국토
즉 미륵정토를 구현하는 것을 근본이자 정수로 하는 교단이라는 뜻이다.
① 사명(寺名)
- 미륵정토사
② 개찰 시기
- 1996년 5월 24일 개찰
③ 계룡산 이전 개설
- 1998년 12월 25일 충남 논산시 상월면 상도리 311- 1 도량개설
- 2000년 1월 1일 충남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388, 389 미륵도량 개설
신원사 대웅전(公州 新元寺 大雄殿)
계룡산 자락에 위치한 신원사는 백제 말기인 의자왕 11년에 열반종의 개조인 보덕이 창건하였다. 고려 충렬왕 24년(1298년) 무기에 의해 중건 되었고, 조선 태조 3년(1394년)에 무학대사가 삼창한 후 다시 고종 13년(1876년)에 중수하였다. 현재의 대웅전은 보연화상이 중건하면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대웅전은 자연석 기단 위에 서향으로 세웠으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로, 처마의 끝을 살짝 올려 우아한 멋을 낸 팔작지붕의 다포식 건축물이다. 정면 3칸은 동일한 간격으로 분할하여 중앙칸에 사분합 빗살문을, 좌우칸에는 사분합 띠살문을 달았는데 3칸 모두 상부에 '정(井)' 자 살창의 교창을 설치하고 있다. 건물의 측면과 후면은 관장벽으로 막았다.
공포는 다포식이지만 세부 구성에 있어서 간략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외부는 1출목에 불과하다. 첨차의 쇠서 위에 연꽃을 조각하여 장식하고 있다. 내부의 살미첨차는 모두 무의미한 장식판으로 변해져 있으며, 주간포는 전면에 2개씩, 측면에는 1개씩을 배치하고 있다. 불단 좌우에 세운 옥내 기둥과 앞뒤 평주로 대들보를 받쳤으며 충량이 배치되었다. 종량에 의지하여 우물천장을, 주위 4면에 빗천장을 가설하였다.
건물 내부에는 우물마루를 깔고, 후면에는 불단을 조성하여 아미타여래,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의 삼존불을 모셨으며, 상부에 닫집을 설치하였다.
계룡산중악단(公州鷄龍山中嶽壇)
공주 계룡산 중악단(中嶽壇)은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위치한 신원사 대웅전 뒤편에 자리잡은 산신각으로, 일명 중악전(中嶽殿) 또는 계룡단(鷄龍壇)이라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이 제단은 1879년(고종 16)에 재건한 것이다. 이 제단은 1973년 12월 24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다가 1999년 3월 2일에 해제되었다. 그후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 제1293호로 지정되었고, 신원사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중악단은 나라에서 계룡산(鷄龍山)의 산신에게 제사 지내기 위해 마련한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계룡산은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 예로부터 우리나라 5악(嶽)의 하나로 중사(中祀)의 예로써 제사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북쪽의 묘향산을 상악(上嶽)으로, 남쪽의 지리산을 하악(下嶽)으로, 중앙의 계룡산을 중악으로 하여 단을 모시고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1394년(태조 3) 처음 제사를 올린 뒤 1651년(효종 2) 이후 제단이 폐지되었다가, 1879년(고종 16)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재건하여 제사를 올리게 하였다. 1.5m 높이의 석조기단 위에 서남향으로 지은 건물로, 사찰 건물과 흡사하다. 내부 중앙 뒤쪽에 단을 마련하여 그 위에 산신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건물로, 공포(栱包)는 내4출목(內四出目)·외3출목(外三出目)으로 구성되었고, 밖으로 돌출된 쇠서의 끝에는 연봉(蓮峰)을 조각하였으며, 내부의 살미첨차도 복잡한 장식판으로 변형시켜 봉황머리, 연봉 등을 조각하였다.
지붕은 앞뒤 평주 위에 대들보를 걸고 동자주(童子柱 : 세로로 세운 짧은 기둥)를 세워 우물천장을 설치하였으며, 건물 측면의 기둥에서 대들보에 걸친 충량(衝樑)의 뒤끝은 용머리모양으로 조각하였다. 조선 후기의 우수한 건물로 내출목의 화려한 포작(包作)과 우주(隅柱: 모서리기둥) 위의 귀포가 매우 우아하다. 한편 중악단의 현판은 조선 후기 문신 이중하(李重夏)가 쓴 것이다.
묘향산의 상악단과 지리산의 하악단이 현재 남아있지 않은 것에 비해 중악단은 잘 보존되어 있어 조선시대에 국가에서 산신에게 제사지냈던 유일한 유적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보시느라 수고하셨네요..
첫댓글 아름다운 날에 계룡둘레 신원사 & 경천저수지 둘레길 소풍 탐방기 생생포토 사진 풍경 수고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