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 4. 3. 21:47 |
[옹달샘터 낭독회,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이신 김조년 교수님을 만나다 3월 15일 낮]
생태공동체 연구소 뮨에서는 한국 공동체의 선구자들을 만나 뵙고 말씀을 나누는 공동체 여행을 기획하였다.
세 번째 분은 대전에서 옹달샘터 낭독회를 이끌고 계시는 김조년 교수님이다. 이 분과의 만남을 글로 옮기는 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였다. 글로서 쓰려고 결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해야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2시간여의 만남으로 주신 말씀을 온전히 글로 엮어낼 수 있을지도 걱정이 많이 되었으니 말이다.
만나뵙기 전에 나는 우선 교수님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고, 집필하신 책을 찾아서 보았다. 1987년 3월부터 교수님께서 사랑하는 벗들인 제자, 친구, 친지, 사회활동을 함께 하는 분들, 뜻을 같이 하는 분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된 작은 잡지인 표주박 통신을 통해 교수님의 따뜻한 편지글을 접할 수 있었으며, 한남대 사회복지학과의 제자 한 명 한 명에게 2008년 3월에서 2009년 6월까지 하루에 한통씩 450여일을 쓰셨던 편지를 책으로 엮으신 ‘청춘에게 안부를 묻다’를 보며 제자에 대한 교수님의 애틋함을 접하게 되었다.
우리는 대전에 위치한 옹달샘터가 있는 교수님의 공간에서 첫 만남을 갖게 되었다.
밝게 웃으시며 보시자마자 선물을 주신다. '청년에게 안부를 묻다'와 '씨알의 소리'이다.
감사하다는 말씀도 제대로 못 전했는데, 감사하다는 말씀을 다시 올린다.
공간의 왼쪽에는 교수님이 그동안 읽으시고 소장하고 있는 책들이 책장에 빼곡하게 늘어서 있고, 정면에는 집필하시고 직무를 보시는 책상이 놓여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창문이 있어 아마도 밝은 날이면 햇빛이 따사롭고 은은하게 비춰질 것이다.
따스한 봄날 교수님의 공간에서 처음 뵈었을 때 첫 느낌은 선이 참 고우신 분이시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표현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단아하신 모습이 뵙는 순간 편안해지면서 ‘무슨 말이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저 마주 하고 앉아 있어만 있어도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시는 분이셨다. 존재 자체에서 나오는 향기와 분위기에서 나 자신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고 교수님을 만난다면 누구라도 그런 경험을 하지 않을까 싶었다.
어떤 대화를 나누지 않고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그 자리에 계셔 주시는 것만으로 너무 감사한 분이셨다.
교수님은 한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2011년에 정년퇴임하시고 지역사회에서 생명 또는 생활공동체를 꾸준히 만들어 가시면서 활동을 하고 계셨다.
옹달샘터라는 도심 속에 작은 사랑방을 마련하셔서 세상의 젊은 학생들과 소통을 이어가셨다. 2012년 5월 15일에 ‘옹달샘터 낭독회(http://cafe.daum.net/readingconcert)’ 첫 모임을 갖고 지금까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는 곳이다. 좋은 사람들끼리 좋은 분위기에서 좋은 글을 같이 읽어보자는 모임이라고 한다. 젊은 학생이라는 표현이 재미있어 교수님의 말씀을 기다리는데, 해맑게 웃으시면서 주신 말씀이 ‘감사하게도 옹달샘터를 찾는 이들이 자신보다 모두 젊은 분들’이라는 거였다.
격주 화요일 저녁 7시30분에 낭독회를 갖고 계신데, 낭독회의 방법이 독특하다.
옹달샘터 공간의 정면에 무대를 만들고 앞에서 혼자 낭독을 하는 방법이다. 앞에서 낭독하는 분은 미리 준비된 마이크 앞에서 낭독을 하게 되고 낭독하는 분에게만 조명이 비쳐지고 전체의 불은 끈다고 하다. 1시간은 읽으시고 1시간은 소감을 나누는데 이 2시간의 시간이 참가자들 모두에게 힐링의 시간이 된다고 한다.
이 시간에는 모두가 낭독하는 분께 집중하고 귀담아 듣고 소감을 나누게 되는데 그 시간이 참여자들에게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라 여겨진다. 그 장면을 이야기로만 듣고 이미지로 본 나조차도 그런 마음이 전해져오니 말이다. 그 순간에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어떤 고민과 생각, 걱정들에게서 자유로와질 수 있을 것이다.
교수님의 이 방법을 듣고 시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여러 가지 모임을 하고 있지만 모임 중에도 휴대폰으로부터 자유로와지는 분들이 많지가 않기 때문이다. 온전히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힐링의 시간이 될 수 있을텐데 말이다.
그와 더불어 매주 화요일 책읽기 모임을 진행하신다고 한다. 이 시간은 인문학을 공부하는 시간으로 고전을 함께 읽으시는데 현재는30~40대가 주로 함께 하신다고 한다. 공부하시는 책들은 톨스토이의 참회록, 괴테의 파우스트, 루소의 에밀, 장자, 묵자 등 다양하다고 하신다. 교수님과 함께 공부하실 수 있는 분들은 참 귀한 분과 귀한 시간을 나누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어져 주신 말씀이 있으시다.
우리가 어떤 모임을 진행하다 보면 몇 명이 신청할까? 몇 명이 올까? 하는 걱정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 또한 모임이나 행사를 하게 되면 몇 명이 올지 많은 걱정을 안고 준비를 하곤 하였다.
옹달샘터가 있는 층의 한켠에는 교수님의 부인께서 진행하시는 춤명상을 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춤명상을 정기적으로 진행하시는데 등록하는 분이 많은 적도 있고 적은 적도 있다고 하신다. 그런데 클래스를 진행하게 되면 수업에 꼭 맞는 인원이 항상 오신다는 거였다. 등록을 많이 한 날은 몇 분이 어떤 일이 생겨서 못 오시기도 하고, 등록을 적게 한 날은 또 어떻게 시간이 허락이 되어 더 오신다는 거였다.
그래서 교수님께서는 옆에서 지켜보시면서 드시는 생각이 어떻게 하든 수업이 잘 진행되도록 인원이 구성된다는 거였다. 그 말씀 속에는 마음으로 뜻이 있고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모임이라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도록 되어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여겨졌다.
이렇게 교수님께서 주신 말씀은 마음에 깊이 남고 앞으로 이어질 수많은 모임과 행사에 임하는 나에게 용기를 주셨고 나의 마음가짐을 되돌아보게 해 주셨다.
‘한다는 것 자체가 아름답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임한다면 더 없이 편안하다.
강좌를 듣는 숫자에 연연하지 말고 숫자에 매이지 않는다.
책 읽기 모임에 함께 하는 이들이 많이 오든 적게 오든 자신이 책을 읽는 것은 동일하며,
책 읽기 모임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지 않는가?
나의 앞으로의 모임에 대한 마음가짐은 이러할 것이다.
‘스스로 끝없이 공부할 수 있어 즐겁고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하다.’
교수님과 우리는 옹달샘터에서의 담소를 이어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유난히 대전의 날씨가 싱그럽게 느껴진다.
교수님과 점심을 함께 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때마침 점심 시간이라 붐비는 식당을 뒤로 하고 잠시 산책을 나섰다.
인근에 있는 학교 운동장을 걸으며, 옛 이야기를 들러주신다.
이렇게 함께 걸으며 말씀을 듣는 것을 나는 무척 좋아한다.
걸으면서 들려주시는 말씀들은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함께 하지 못한 시간을 공유하게 해 주는 묘한 힘을 갖고 있는 듯하니 말이다.
김조년 교수님은 함석헌 선생님의 제자이시다.
19살의 청년의 나이에 함석헌 선생님을 처음 뵙고 스승과 제자로서의 인연을 이어가셨다고 하신다.
현재는 함석헌기념사업회의 이사장으로서 1970년 4월 19일에 함석헌 선생님이 창간하신 씨ᄋᆞᆯ의 소리(www.ssialsori.org)를 발행하고 계시다. 오는 9월 대전시민대학에서 ‘함석헌 선생님의 씨알사상강좌’를 진행하다고 하니 제자로서 스승의 뜻을 이어가고 계신 것이다.
교수님께서는 함석헌 선생님과의 일화를 하나 들려주셨다.
함석헌 선생님께서 자주 하신 말씀이 ‘글쎄’라고 하신다.
고견을 청하거나, 질문을 드리거나 하면, ‘글세’라고 답하시는 경우가 참 많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제자들 사이에서는 선생님의 별명이 ‘글쎄’라고 할 정도였다고 하신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자신이 생각하여야 할 것을 묻는 경우’라는 거셨다.
스스로 답을 구하여야 하는 것을 타인에게서 답을 구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답을 주지 않으셨다는 말씀이다.
다른 일화를 하나 들려주셨다.
옛 어르신들의 말씀을 듣는 것은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흥미롭다.
그때 그 시절 김조년 교수님과 친구분이 함석헌 선생님께 청을 드리러 무작정 찾아가셨다고 한다. 어떤 분이 하고자 하는 일을 포기할 수 있도록 설득해 달라는 청을 드리기 위해서였다고 하신다.
함석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은 세가지셨다고 한다.
첫째, 그렇게 말을 한 사람이 없었겠는가?
둘째, 내 말을 들었으면 국민의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셋째, 안타까우면 직접해라. 무슨 일이든지 ‘누군가’ 대신 해줄 것이라 생각해선 안 된다.
김조년 교수님께서는 ‘역사는 뛰어넘는 법이 없다’라는 말씀을 주시면서 급진주의자가 씨앗을 뿌리고 뒤에 있는 분들이 함께 동의하였을 때 한걸음 나아갈 수 있는 것이지 먼저 간 사람이 홀로 역사를 이룰 수는 없다는 거였다.
점심을 같이 드시면서 부모가 자식을 챙기시는 것처럼 처음 만난 우리들을 살뜰이 챙기시는 모습을 뵈면서 품고 있던 긴장감이 스스로 풀어졌다. 당신의 제자들을 떠올리시며 글을 쓰시는 모습이 함께 떠올랐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진정한 스승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며, 그리고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 것이다. 김조년 교수님을 스승으로 둔 분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큰 힘이 되어 주시는 분을 곁에 둔 참 행복한 분들일 것이다.
나는 교수님께서 오랜 기간 동안 동일한 일들을 정성을 다해 하시는 것을 보며
꾸준히 무엇인가를 이루어가는 삶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유난히도 화창하고 따뜻한 봄날에 김조년 교수님을 뵙고 돌아가는 길에 차를 타고 가는 우리의 모습이 배웅하시는 모습을 뵈면서 ‘오늘도 나는 참 큰 선물을 받았구나’ 스스로 혼잣말을 해본다.
마지막으로 씨알의 소리의 뒷표지에 적힌 글을 적어본다.
[씨알이란 말은 민(民은), people의 뜻인데, 중략...
씨알은 선(善)을 혼자서 하려 하지 않습니다.
씨알은 너 나가 있으면서도 너 나가 없습니다.
네 마음 따로 내 마음 따로가 아닌 것이 참 마음입니다.
* 며칠 뒤에 교수님께서는 만나서 반가웠고 고마웠다는 이메일을 보내주셨습니다. 보내주신 이메일을 보며, 교수님과의 만남을 다시 한번 되새겨봅니다.
이 세상에는 같은 이념과 뜻을 갖고 살아가는 분들이 참 많이 계십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뵙고 있는 분들이 그런 분들이라고 생각하니 제가 새롭게 선택한 제2의 삶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귀한 시간을 내 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