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석거(萬石渠)>
역시 수원은 물의 도시이자 정조의 도시다. 소중한 정조의 흔적을 쫓아 가보았다. 수많은 시민이 이용하는 활기찬 공원으로 여전히 만석거는 현재형이다. 이제는 논에 물을 대는 대신, 사람들 가슴에 물을 대고 있는 것 같다. 비록 물은 옛물이 아니라도 그 물을 물고 들어온 물일 터이니, 그때의 물이라 할 수도 있을진대, 그 물이 가슴을 적시고 있는 셈이다.
아쉬운 점은 규모가 줄어들고, 영화정마저 그때의 그 건물이 아니라는 것, 가장 아쉬운 점은 정조 일행이 지났던 방죽 뚝길, 1.3km의 둘레길이 시멘트길이라는 것이다. 영조의 흔적도 덮고, 산책하는 시민들 건강도 덮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우려가 된다.
소재지 :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송죽동 239-2 외
방문일 : 20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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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세계 관개시설물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로써 김제 벽골제를 이어 우리는 4개의 유산을 갖게 되었다. 수원 축만제(서호), 당진 합덕제 등까지 4개 중 수원에 두 개가 있으니, 수원은 드디어 국내를 넘어 국제적인 물의 도시가 된 것이다. 축만제도 이곳 만석거도 모두 정조의 유산이니, 국제화의 공 또한 정조에게 돌려야 하지 않을까.
*소개
수원시 북문 밖 공설운동장 북쪽에 위치하며, 수원지방에서는 조기정방죽, 조귀정방죽, 조개정방죽, 일왕저수지, 북지라고도 불린다.
1795년(정조 19) 정조 때 축조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용수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길이는 387m, 높이는 4.8m, 저수면적은 24.7㏊, 몽리면적은 82.2㏊, 평균수심은 1.8m이다.
정조는 수원성을 축성하면서 수원성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네 개의 호수를 파고 방죽을 축조하였는데, 북쪽에 판 것이 만석거(萬石渠)이다. 1794년(정조 18) 극심한 가뭄이 들자, 정조는 화성 공사를 중지하고 가뭄에 대비한 구휼대책과 농가의 이로움, 수원화성 운영 재원마련을 위해 만석거를 조성하였다. 만석거는 당대 최신식 수문과 수갑을 설치하였으며, 여기에 모인 물을 농업용수로 이용하여 대규모 농장인 대유둔[北屯]을 설치하여 풍요로움을 누리고자 했다. 저수지 가운데는 작은 섬을 두어 꽃과 나무를 조화롭게 심었고 호수에는 연꽃을 심었으며, 호수남단의 약간 높은 곳에는 영화정(迎華亭)을 세워 만석거 부근을 조망할 수 있도록 배치하였다.
만석거는 예로부터 농업용수로 중요하게 사용되었고, 주변 경관 또한 아름다워 누렇게 익은 벼가 황금물결을 이루는 풍경은 ‘석거황운’(石渠黃雲)이라 하여 수원 추팔경 중의 하나로 손꼽혔다. 한편 동쪽, 지금의 수원시 지동에 축조한 것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1798년(정조 22) 남쪽에 축조한 것이 사도세자 묘역인 화산(花山) 현륭원(顯隆園) 앞의 만년제(萬年堤)이고, 1799년(정조 23) 서쪽에 축조한 것이 수원시 서둔동의 축만제(祝萬堤, 西湖)이다.
이들 저수지들은 수원성[華城]을 수축하면서 장용위(壯勇衛)를 설치하게 되자 사관병졸들의 급료나 기타의 경비에 충당하기 위한 화성둔전(華城屯田)에 물을 대려고 판 것이었다.
만석거는 1997년 만석공원 조성으로 저수지의 일부가 매립되어 원래의 규모보다는 많이 축소되었지만, 현재는 만석공원으로서 시민들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재)
만석거는 이름이 여럿인데, 그중 일왕저수지는 최근까지 공식적인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1936년 수원군 일형면과 의왕면이 합쳐져 일왕면으로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일왕저수지로 명명됐다. 2020년 3월 수원시는 국토지리정보 고시(제2020-1130호)에 따라 '일왕저수지'와 '서호'의 명칭이 원래 이름인 만석거와 축만제로 공식 변경됐다고 밝혔다.
만석거(萬石渠)는 '만석의 도랑'이다. 쌀 만 석을 생산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만든 방죽이다. 수원화성 축조 당시 가뭄이 들자 정조는 화성 축조를 멈추게 하고, 안정된 농사를 위한 관개시설 확보를 위해 1795년에 만석거를, 1799년에 축만제를 조성했다.
*영화정(迎華亭)
현재의 영화정은 1996년 10월에 원래의 자리에서 동쪽으로 이전하여 복원한 것이다.
*여의루
*여의루(如意樓)
소종래를 알 수 없는 누각이다. 인근에 안내문도 없어 준공시기도 알 수 없다. 물론 최근에 지은 것이다. 지금은 없어진 만석거 축조 당시의 다리 여의교를 기려 만든 거 같기도 하다.
정조의 행차가 지나갔던 둑길. 지금도 많은 사람이 다니니 정조가 낸 그 둑과 길이 이어진다. 둑도 길도 물도 이어지는 정조의 공간, 벽제성이 들리는 것 같다.
*공연장
만석거의 다른 이름은 수원의 북쪽에 있다 하여 북지(北池)이다. 북지의 아름다운 연꽃은 수원 8경의 하나인 '북지상련(北池賞蓮)'이다. 북지에서 감상하는 연꽃이 절경이라는 말이다. 만석거 대유평에서 누렇게 익은 벼의 황금물결은 화성 추8경인 '석거황운(石渠黃雲)'이다. 석거의 노란 구름, 벼를 구름에 비유하였다. 만석의 방죽이었음이 분명하다.
*진목정(眞木亭)
참나무정자다. 만석거 서쪽의 낮은 고개를 참나무고개라 했다고 하니 여기서 온 이름으로 보인다. 이곳을 벼슬아치들이 업무를 교대하던 곳이라 달리 교귀정(交龜亭)이라 불렀다고도 하는데, 영화정의 안내문에서는 영화정을 교귀정이라 했다 해서 서로 상치된다. 그러나 유수의 인수인계가 이루어지는 교귀(전임과 후임이 거북 모양의 관인을 인수인계 하는 일)의 례를 하기에는 영화정이 더 적절해 보인다.
교귀정은 또한 문경새재의 정자 이름이기도 한데, 신구 경상감사가 거북 모양의 관인을 주고받아 인수인계를 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교귀정은 일반적으로 업무 교대를 행하던 건물의 이름이었던 듯하다. 관인은 일반적으로 거북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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