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을 변호합니다. 그는 이 순간을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는 데 쓰지 않고, 복음을 전할 기회로 사용합니다.
12-18절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 5:44)는 말씀을 실천하십니다. 그 은혜로 핍박자 바울을 용서하시고 죄인들의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18절) 돌이키는 주님의 종으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품지 못할 죄인, 변화시키지 못할 악인은 없습니다. 고집 센 황소처럼 자기 길을 가던 내게 주님은 어떤 은혜를 베푸셨습니까?
1-3절 바울은 유대인의 모든 풍습과 문제에 정통했던 아그립바 왕에게 변론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자신의 말을 경청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이는 벨릭스에게 바울을 고소했던 더들로의 아첨(24: 2,3)과는 완전히 다른 말입니다. 더들로는 없는 말을 만들어 아첨함으로 사람을 조종하려는 마음에서 말을 했지만, 바울은 사실에 입각해 칭찬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정중히 부탁합니다. 우리 말에도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거짓을 곁들여 자기 유익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하고 정직한 말로 사람을 세워주고 담대한 복음 증거로 세상을 구원하는 입술을 가집시다.
4-8절 바울은 부활을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바라던 바 라고 설명합니다. 부활은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사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오래 전부터 이스라엘에게 주신 언약이고, 하나님의 백성이 오래 기다려온 간절한 소망이었습니다. 우리는 부활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매몰된 삶에서 벗어나 부활을 기다리는 믿음으로 순례의 길을 가는 것이 부활 신앙입니다.
9-15절 바울이 예수님을 믿지 않을 때 하나님을 위해 가졌던 열심은 하나님이 세우신 그리스도를 박해하고 그분의 백성을 핍박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날뛰는 그의 모습은 주인의 지시를 거부하느라 가시가 채찍을 발로 차면서 도리어 제 몸에 상처를 입는 황소와 같았습니다. 주님을 멀리 하면서 주님과 상관없이 열정만 내다가는 하나님의 역적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열심은 주님을 향해 있어야 하며, 그것이 내게도 가장 안전하고 유익합니다. (매일성경, 2024.05/06, p.164-165, 아그립바 왕 앞에서, 사도행전 26: 1-16에서 인용).
①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을 변호합니다. 그는 이 순간을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는 데 쓰지 않고, 복음을 전할 기회로 사용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 5:44)는 말씀을 실천하십니다. 그 은혜로 핍박자 바울을 용서하시고 죄인들의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18절) 돌이키는 주님의 종으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품지 못할 죄인, 변화시키지 못할 악인은 없습니다. 고집 센 황소처럼 자기 길을 가던 내게 주님은 어떤 은혜를 베푸셨습니까?
② 바울은 유대인의 모든 풍습과 문제에 정통했던 아그립바 왕에게 변론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자신의 말을 경청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이는 벨릭스에게 바울을 고소했던 더들로의 아첨(24: 2,3)과는 완전히 다른 말입니다. 더들로는 없는 말을 만들어 아첨함으로 사람을 조종하려는 마음에서 말을 했지만, 바울은 사실에 입각해 칭찬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정중히 부탁합니다. 우리 말에도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거짓을 곁들여 자기 유익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하고 정직한 말로 사람을 세워주고 담대한 복음 증거로 세상을 구원하는 입술을 가집시다.
③ 바울은 부활을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바라던 바 라고 설명합니다. 부활은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사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오래 전부터 이스라엘에게 주신 언약이고, 하나님의 백성이 오래 기다려온 간절한 소망이었습니다. 우리는 부활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매몰된 삶에서 벗어나 부활을 기다리는 믿음으로 순례의 길을 가는 것이 부활 신앙입니다.
④ 바울이 예수님을 믿지 않을 때 하나님을 위해 가졌던 열심은 하나님이 세우신 그리스도를 박해하고 그분의 백성을 핍박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날뛰는 그의 모습은 주인의 지시를 거부하느라 가시가 채찍을 발로 차면서 도리어 제 몸에 상처를 입는 황소와 같았습니다. 주님을 멀리 하면서 주님과 상관없이 열정만 내다가는 하나님의 역적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열심은 주님을 향해 있어야 하며, 그것이 내게도 가장 안전하고 유익합니다.